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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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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꽃밥
2014년 05월 31일 10시 00분  조회:2791  추천:19  작성자: 김혁

길림신문》 제1회《두만강》문학상 소설본상 수상작품


단편소설 .
 
련꽃밥
 
김 혁

 

 
 
택시가 한참 달려서야 나는 사진기의 건전지가 다 떨어져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마을을 찾아서 사진 한장 남기려 했는데 건전지가 다 떨어지다니… 간밤에 고향으로 간다는 흥분에 충전을 깜박한데다가 연도에서 좋은 풍경들을 보고 마구 눌러댄터에 사진기의 건전지가 수명을 다한것이다.
“이 걸로 찍어요. 아빠”
이마살을 모으는 나에게 아들애가 사진기를 내밀었다. 플로라이드 사진기다. 장난감이지만 제법 인회되여 나올수 있는, 즉석사진기였다. 귀국해서 아들애한테 세상 그 무엇도 다 사줄테니 뭐가 갖고싶은가 하니 플로라이드 사진기라했다. 촬영쪽에 애호가 있는 나를 닮긴닮았나보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녀석의 반급 애 하나가 역시 그 아비가  외국에서 돌아오면서 사온것이 플로라이드 사진기였던것이다. 그자리에서 인화되여 툭 떨어져 나오는 사진에 녀석들은 어지간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돌생일을 쇠자 일주일도 못되여 출국한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보는 나의 아들이다. 가무스름한 피부에 놀란듯 망울진 눈동자에 외겹눈꺼풀가지 녀석은 나를 꼭 빼닮았다. 그동안 할머니의 집에서 지내다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운명하자 처가편 이모의 집에서 지냈고 그네들이 모두 출국하자 또 학교에서 꾸리는 단친가족숙소로 전전하면서 지내온 불쌍한 녀석, 애련한 녀석은 공항에서 두눈을 끄먹거리며 선뜻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아홉살배기로서는 무언가를 빨리 알아버린듯한 울울한 그 눈동자가 나를 슬프게 했다. 그 눈동자를 보며 나는 아들애에게 뭔가 보상을 주리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6장밖에 찍지 못하는 플로라이드의 사진기도 필림이 겨우 한장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 아들애의 초동머리를 만져주었다.
“련화마을로 가는 뻐스, 취소한지 오랩니더”
련화마을로 간다는 말에 모두가 머리를 저었고 그러다 어렵게 설복해 차머리를 돌린 택시 기사가 말했다.
“왜겠어요? 이제 그 마을도 페촌이 됐는걸요 뭘”
백미러로 당혹이 서려드는 나의 얼굴을 힐긋 쳐다보며 기사가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뽕밭이 바다로 변한다”는 십년이 가까운 아홉해가 지났으니 고향은 많이 달라질법도 했다.

한때는 제법 번성을 자랑했던 마을이였다. 마을앞의 커다란 자연 못에 련꽃이 무성해 련화촌으로 불리던 마을이였다.
어쩌면 내 안해의 이름도 련화였다. 고향마을에는 녀자고보면 태반은 련화라는 이름을 달고있었다. 그래서 “작은 련화”, “큰 련화”, “앞집 련화” ,”뒤집 련화”, 지어 “못생긴 련화”, “애꾸눈 련화”로 구분하기까지 했다. 모두다 련꽃처럼 예쁘게 꽃피고 번성하게 열매맺기를 팔자소관에 새겨넣은 결과였다.

련꽃같은 안해와 나는 함께 출국의 길에 올랐다. 밀입국으로 허위단심 오른 길이 어쩌면 생각밖에 무난히 틔였다.
나는 해산물 류통회사 창고에서 물건을 싣고 나르는 일을 했다.
추운 랭동창고에서 일했지만 한 묶음에 수십킬로나 되는 랭동어물을 짐져 나르려니 땀이 등줄기를 적셨다. 그리고 어깨 부들기가 까져 피가 배여 나왔다. 촌에서 나서 자랐다지만 향의 문화소에서 책상물림으로 일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였다.
“이궁, 이럭케 하구 밥을 얻어 먹울수 있겠슴둥?”
사장님이 개그 프로에서 마냥 비하의 상대로 삼는 연변방언을 흉내내며 무거운 짐을 지고 행사장의 풍선아치처럼 허둥대는 나의 엉뎅이를 발로 찼다. 어깨의 피가 딱지로 앉고 다시 멍으로 자리잡을때에야 나는 간신히 일에 적응할수 있었다.
안해는 초밥집에서 일했다. 해종일 빙빙 돌아가는 회전초밥집의 식탁에서 밀밀 밀려나오는 크고작은 그릇씻기를 멀미나게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한번 안해의 얼굴이 매스컴을 탔다.  불량제품을 고발하는TV프로에서 바퀴벌레가 기여다니는 초밥집의 위생상태를 몰카로 찍어 고발한것이였다. 구청에서 벌금을 부과했고 초밥집 체인점 사장의  얼굴까지TV에 나왔다. 그런대로 사장님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하지만 그 뒤에 멍하니 섰는 안해의 얼굴은 력력히 그대로 나왔다. 그 와중에 안해의 불법체류자신분도 드런났고 안해는 강제송환조치를 당했다.
혼자 서울에 나 역시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드러날가 전전긍긍했다. 그 약점을 옴켜쥔 악덕업주에게서 연거번겨 로임체불을 당하했다. 그 성화를 피해 경남의 한 치벽지에까지 내려갔다. 그곳에서 한우를 키우는 농장에서 일했다. 고향마을에는 소를 키우는 집이 많았으므로 다른 업종에 비해 이 일이 그나마 내게는 쉬웠다.
인차 안해는 재입국했다. 불법체류자로 송환되였던 안해는 이번에는 위장결혼이라는 험로를 택했다. 그런데 당시 인민페6만원이라는 거금을 받고 위장결혼을 허락했던 남자가 출국이 성사되자 정식 결혼을 제안했다. 지지리 늙도록 결혼의 관문을 넘지못했던 그 로총각은 한사코 안해를 놓아주지 않았고 그 횡포와 공갈을 못이겨 결국 안해는 그에게 눌러앉고 말았다. 자국에서도 타국에서도 보호를 받을수없는 위법의 선택을 했으니화를 스스로 자초한 셈이였다. 역시 스스로 덫에 오르는 이 길을 알면서 묵인했던 나자신도 그 누구를 탓할수 없었다. 앙다물다 부러진 이발을 자기배속에 삼킬수밖에 없었다.

안해는 그 남자와 쌍둥이 남자애까지 낳았다고 했다. 역시 출국해 타지에서 앞갈망뒤갈망하고 있던 련화마을사람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 듣던 날, 건초더미에 쇠스랑이를 꽂아 넣은채 나는 그 자리에 못박혀 버리고 말았다.
“왜 그래 김씨?”
농장 주인이 다가와 물었다.
“눈에 티가 들었슴다.”
나는 고개를 탈며 눈가로 흠씬이 배여나온 이슬 멀기를 지웠다.
  안해는 련화마을에서 첫손에 꼽히는 예쁜 녀자였다. 마을 문화관에서 일하며 그림솜씨에 사진찍는 재주도 갖고있는 나에게 안해가 먼저 마음을 열었다.
마을앞 련못가가 우리들의 밀회장소였다. 저녁놀이 지는 련못가에 그녀를 세우고 찍은 “황금 련못”이라는 사진작품은 진에서 조직한 향촌문화경색대회에서 금상까지 받았다. 금상으로 “갈매기”표 사진기를 상금으로 받아안았다.
“이제 우리 행복한 나날들을 낱낱이 기록합시다”
상으로 받은 사진기를 그녀앞에 자랑했고 그녀는 옥석이라도 만지듯 조심스레 사진기를 만지며 기뻐마지 않아했다.
그날 밤, 련꽃잎이 늠실이는 련못가에서 안해는 벙그는 꽃잎같은 몸을 나를 향해 열었다.
귀국해 그동안 친척집에 맡겨둔 짐들을 찾다가 그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은 겉봉에 “향선진사업자라”는 글발이 새겨진 낡은 노트의 갈피에 꽃혀 있었다.  사진은 색이 바래지려하고있었다. 하지만 사진속 련꽃은 아직 아름다웠고 녀인의 미소도 아직 채 바래여지지 않고있었다.
사진속 련못을 지켜보노라니 또 다른 련못이 늠실거리며 나의 동공에 나의 뇌리에 차올랐다.

한우농장 주인은 서울에 계시는 아버지를 늘 외웠다. 산수(傘壽)의 년세인 아버지는 유명한 동양화 화가라 했다. 여태 서울에서 예술활동을 하던 아버지가 이제 거동이 불편해지자 굳이 번화한 도시에서 모셔오려 했고 로인장을 위해 마당에 특별히 련못을 만들기로 했다. 로인장이 련꽃을 많이 그렸다고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곳에도 련꽃이 린근에서 알아주는 특산이여서 해마다 련꽃축제까지 열리고 있었다.
들에 촉촉하고 따뜻한 기운이 돌자 주인장은 뜨락에 련못공사를 시작했고 공사에 나도 동참했다.
주인장이 로프줄을 늘여 못의 륜곽선을 표시했다. 그 선을 따라 석회가루를 뿌려 원하는 련못의 형태를 표시했다.
포크레인까지 동원되여 굉음으로 동네를 깨우며 마당의 언땅을 노크했다.
포크레인의 큰 손이 벌레들이 사는 땅속을 짚어내려가자 깊고 어두운 세계가 층층이 드러났다. 기계가 갈수 있는 마지막 깊이에서 주황빛 진흙바닥이 드러났다. 거기서부터 공기는 시린 기운을 뿜었다.
“련못을 만들려면 일조량이 좋은 곳이 적당하지.”
그 무슨 비법을 계수해주듯이 주인장이 련못공사를 벌리고있는 우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주위에 해볕을 가리는 나무나 집채들이 있는곳은 피해야지, 나무가 우거지며는 잎이 련못에 떨어져 썩어들면서 수중의 산소 부족과 물을 오염시키게 되는거요.
될수록 깊이 파야 돼. 련못의 깊이가 낮으면 련못 전체가 얼어 버릴수 있다고”
부친을 위한 련못을 만들기위해 공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것 같았다.
포크레인이 딱지를 뗀 구덩이속에 들어가 여럿이서 쟁기를 들고 파고 다져서는 땅을 편평하게 고른뒤 비닐 시트지를 깔았다. 강화유리섬유로 만들어 진것이라는 시트지는 내구성이 강하고 동파의 념려가 없어 저온에 강하며 쉬이 썩지 않는다고 했다. 시트지 위에 세멘트를 입혔고 마르기를 기다려 방수제를 발랐다.
주인장이 아침마다 강으로 나가 하나 둘 정선하듯 주어 온 무늬결 고운 호박돌로 련못 테두리를 쌓고 세멘트로 발라 주었다.
련꽃 종근을 가득 싣고와 못에 심었다. 날이 한결 풀리자 못에 고기들을 넣어주었다.
“흔히들 못에 붕어를 넣지만 피라미도 괜찮지. 갈겨니도 좋아, 피라미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라미에 비하면 눈이 크고 검지. 몸 량측에는 검은 자주색 세로 띠가 있다네, 저기 보이지 저 놈”
주인장이 련못속을 굼니는 붕어, 피라미, 갈겨니를 짚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벌거숭이가 되여 무법자처럼 뛰놀던 고향마을의 강을 떠올렸다.
그렇게 인공련못을 만드는데 옹근 봄과 여름을 보냈다.
농장마을 언덕우의 산수유나무잎새가 한결 푸르러 지자 련못에 수련의 둥근잎이 둥둥 뜨기 시작했다. 둥근 잎사이로 물고기들이 물을 굽어보는 이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수면에 호화롭게 떠올랐다. 그리고 드디여 련못에서 분홍빛 수련이 꽃을 피웠다. 꽃잎속에 금빛 수술이 화려한 수련은 귀태가 나고 제법 운치가 있었다.

잠못드는 밤이면 나는 풀벌레들의 울음이 가득한 련못으로 나가곤했다. 벌레울음소리속에 나는 밤사이 수련이 몇 송이나 벙글었는지 헤여보군했다.
어느 비 오는 밤, 나는 또 잠못 이루고 련못가로 나왔다. 이제 막 피어나는 련꽃이 송얼송얼 비를 맞고 있다.
툭 또르르르..
꽃잎에 구르는 물방울이 은빛으로 달려와 꽃받침에 모였다가 련잎에 떨어진다, 또르르 또르르 비방울은 굴러 련잎 가운데로 모이고 있었다. 비물이 고여 무거워지면 련잎은 스스로 머리를 숙여 자신을 비워내고 있었다. 비우지 않고서는 다시 채울 수 없음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를 돌아보았다. 비울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채워만 온 내가 부끄러워졌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련꽃은 피였는데 완상(玩赏)할 이가 따로 없구만”
주인장이 다가와 우장도 없이 얼빠져 서있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련못은 만들어졌지만 주인장의 부친 로화백은 고향에 오지 못했다. 련못에 꽃이 잎새를 펼치기에 앞서 그만 붓자루를 떨구며 눈을 감고 만것이다.
“’련꽃은 눈으로 들여서 마음으로 느끼는 꽃이다.’고 련꽃을 좋아했던 선친은 말씀하셨네. “
주인장도 나처럼 비오는 날 잠못이루고 감회에 젖어 련못가로 나온것이였다.
“다가서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는 꽃이지만 또 많은 가르침을 주는 꽃이라 선친은 말씀하셨지”
역시 화가의 길을 걸었다 접었다는 환갑년의 주인장은 평소의 육두문자를 날리던 농장주답지 않게 깊은 화두를 꺼내들었다. 
“련꽃을 마음에 들이면 번뇌를 씻은 평정한 마음을 가질수 있다고 선친은 말하셨네. 련꽃은 비록 진흙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잎과 꽃은 오히려 더욱 정갈하지. 무욕의 평정한 마음은 무한한 안락과 평화의 나래를 펼쳐준다는데 선친께서 가르치셨던 그 간단한 리치를 난 여태 실천해 오지 못했지. 서울 최고의 화랑을 꿈꾸었던 내가 시골로 내려와 촌 무지렁이가 되여서 그리고 련꽃을 완상할줄 아는 이들을 보내고서야 이제야 늦게나마 느낀바라네.”
 “우리 연변에도 련이 난답니다. 두만강 홍련이라고”
내가 그 감흥에 물젖으며 답했다.
“그럴테지,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고향의 것이 더 아름다울것이네”
“이보게 연변 나그네, 이제 고향의 꽃을 완상하러 가시게. 더 늦기전에 말일세.”
그렇게 말하는 주인장은 우리들의 로임을 체불하는 악덕업주와는 달리 선친을 닮은 탁월한 예술인 같기도 하고 전설속 련못가에 칩거해 사는 철인(哲人)같기도 해 보였다.
힘든 나날, 련못의 풍경과 그 고즈넉한 시간, 그리고 순백의 꽃송이들로 텅 비였던 내 가슴은 그득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는개비(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보다는 작은 비)가 내렸고 는개비가 내린 며칠후 마을에서는 련꽃축제가 열렸다. 련이 마지막 꽃 입술을 뗄때는 반드시 는개비가 온다고 주인장이 말했다.
린근마을에서는 물론, 서울에서도 련꽃체험을 즐기려는 가족들이 삼삼오오 몰려 왔다.
마을 회관마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마을의 농업경영인들과, 생활개선회, 마을부녀회원들의 주최로 련꽃의 잎, 줄기, 꽃, 열매를 사용해 각종 밥, 떡, 차, 죽, 짱아찌 등의 음식 만들기로 이어졌고 련꽃잎 미용팩 시연회도 개최했다.
 
날 찾아 오신 내님 어서오세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라이라이야 어서오세요/ 당신의 꽃이 될래요.
 
회관지붕에 달아 맨 스피카에서는 트로트의 녀왕 장윤정의 노래가 들려왔다.
 
사랑의 꽃씨를 뿌려 기쁨을 주고 서로 행복 나누면
라이라이라야/ 당신은 나의 나무가 되고
라이라이라야/ 나는 당신의 꽃이 될래요.
 
마을은 숫제 명절기분이였다. 농장주인이 이날은 모든 이들에게 휴가를 주어 나도 행사장으로 나갔다.
련꽃밥을 시식하는곳에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나는 회장에서 나누어주는 일회용 식기를 들고 줄에 섰다.
련꽃잎을 따서 련잎으로 감사 쪄낸 련꽃밥은 “신장기능을 보강해주고 해독, 지혈, 설사에 효능이 있는것으로 알려져 최근 웰빙붐을 타고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안내원이 설명을 거듭했다.
사람들은 줄지어 련꽃과도 같은 분홍빛 유니폼을 입고 “농장마을 련꽃축제”라는 띠를 가슴앞에 두른 도우미들이 퍼주는 련꽃밥을 식기에 받았다.
“맛있게 드세요”
도우미가 방긋 웃으며 련꽃밥을 한주걱 봉고밥으로 퍼담아 주었다. 련꽃몽우리가 터지는듯한 은근하면서도 상냥한 목소리, 왠지 그 소리가 귀에 익었다. 흠칫 소리의 임자를 쳐다보았다. 그순간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나의 놀라는 거동에 목소리의 임자도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밥주걱이 떨어져 나갔다. 둥근 련꽃을 담은 그 둥근 얼굴이 중등을 자른 연의 구근처럼 시르죽었다. 얼굴은 늦가을의 련꽃처럼 함북 일그러져 들었다.
그녀가 유니폼 자락으로 와락 얼굴을 감싸쥐였다.
 
어디서 무엇하다 이제왔나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라이라이야 어서오세요/ 당신의 꽃이 될래요.
 
스피카에서 경쾌한 노래는 그냥 울리고 있었다.
   마을회관앞에도 련못이 있었다. 련못의 지름은 어느 학교의 운동장만할지도 모르겠다. 그 가장자리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면 반대편의 끝자락이 아드막히 느껴지는 정도의 크기이다.
그 끝에서 나는 회관쪽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안해는 련꽃씨처럼 작게 보였다.
행사장의 귀퉁이에 숨어서 바람에 쓸리는 련꽃잎처럼 비칠거리며 사라지는 안해의 뒤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도모르게 련꽃밥을 한입 떠 입에 넣었다. 향긋한 향이 푹상 올라왔다. 한입 가득 환장하게 향기로운 실의를 머금고 울걱거리다 나는 그만 목이 꺽 메여 가쁜 눈물을 쏟고 말았다.
눈물의 련꽃밥을 먹던 그날 밤 나는 또 잠들지 못하고 련못가로 나왔다.
련잎들 사이로 올라온 분홍빛 꽃봉우리들이 어딘가를 향해 가리키는 손짓 같았다. 나는 그 손짓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드디여 귀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고향의 련못은 스스로 꽃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렸던 나는 주체못하고 혀끝으로 터져오르는 탄음(彈音)을 금치 못해 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려 사람 하나없는 호젓한 마을에서 외로움에 부대끼면서도 련꽃잎은 만개해 있었다.
그동안 타향의 련못가에 앉아 처음에는 수련과 붕어며 피라미며를 보고 있지만 나중엔 련못 속에 비쳐진 구름이며 별이 보였고, 그 다음에는 얼굴 찌프린 내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안해의 둥근 얼굴과 얼굴조차 익히지 못한 아들애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기도 했다.
타향의 차거운 바람이 일어 련못속 풍경을 물살이 곧잘 헤살지군했다. 그리운 영상들은 오간데 없이 흐려지면 물살을 타고 외로움이 밀려 왔다. 그동안 나는 련못의 주인장보다 련못을 더 즐겨 찾았었다. 비록 내가 일군 련못이지만 사실 잠시 머물다 돌아가는 나는 이 련못의 주인이 아니였다. 주인일 수가 없는것이다. 그저 돈을 바라고 고향을 내쳐두고 온 나는 길떠난 나그네이고 어쩌면 그들에게는 귀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련못의 실제 주인은 그 곳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는 그들이였고 나는 다만 그 남의 련못에서 잠깐 완상을 흉내내는 어설픈 주인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드디여 나의 련못가에 이렇게 섰다. 고향의 련꽃을 보겠다는 마음 하나 껴안고 길을 나섰던 나는  손대면 톡 터질듯이 봉싯한 련봉오리를 점도록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버린 련꽃은 잘도 피여나고 있었다. 금수술 빛나는 해를 품고 강건한 련잎 중심에서 튼튼한 꽃대가 올라왔고 꽃대는 푸른 하늘을 향해 천연한 자태로 웃고 있었다.  
두만강 홍련이라는 학명의 이 꽃은 일억 삼천 오백만년전에 벌써 이곳에 구근(球根)을 묻고 가지를 치고 꽃잎을 펼쳤다고 했다.
방석만한 련잎이 못을 가득 덮은 사이사이로 청초한 련꽃이 고개를 비죽 내밀어 세상을 둘러본다.   
련잎은 새가 군무를 하듯 하늘 향해 날개를 펴고 있었다. 그로서 련꽃은 어디론가 날아가려는것 같기도 했고 금방 날아와 날개를 접으려는것 같기도 했다.
어떤것은 금방 피여있고 어떤것은 벌써 다 져서 련밥을 익혀가는것도 있었다. 이제 물속에서 얼굴은 내밀고 어른 손만한 봉오리를 쳐든것도 있었다. 그 여린 꽃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할가 싶었다. 
두만강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련못은 향기로 흔들렸다. 련향이 천지에 그윽하다. 련꽃향은 몸으로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맡아보니 련꽃 향기만이 아니었다. 물냄새, 진달래꽃 냄새, 버드나무의 냄새, 이 냄새들은 련꽃향기에 섞이어 바람이 들깨워주는 기억에 따라 낯선듯하면서도 익숙한  향기가 되여 나의 코속을 마음속을 헤집었다. 이 환장할만큼 지극히도 친숙한 향기는 내 고향마을의 냄새였다.
련못에서는 다양한 수서생물들이 터를 잡아 서식하고 있었다.
물방개와 소금쟁이 같은 곤충들이 그리고 마름과 개구리밥과 물달개비와 부레옥잠 같은 물살이 식물들이 련꽃과 함께 천년만년 살고지고있다. 련잎이 수면을 촘촘히 덮은 못은 뭇 생명체들의 공동체적인 삶의 현장을 지키며 살고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아름다운 못을 버리고 뿔뿔이 헤여져 떠났던것인가?
련못은 멀리 다른 곳의 련못에서 서성이며 못난 자신을 비추며 옹색하게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아들애가 련잎을 해빛 가리개로 쓰고 신바람 나게 달려 왔다. 고추잠자리가 놀라 푸드득 날개짓을 했고 청개구리도 풍덩 못에 뛰여든다. 아들애는 나에게 플로라이드 사진기를 내밀었다. 이 풍경을 놓칠수야 없지하고 나는 조촐한 사진기일망정 못을 향해 조리개를 맞추며 셔터를 눌렀다.
한여름 정오의 강렬한 해살이 련잎에 촘촘히 떨어져 내린다. 해살에 반사되는 눈부신 수면에서 련꽃은 더욱 소담스럽고 청초해 보였다. 어쩌면 저리 잡념도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가.
툭!  사진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사진을 꼭 손아귀에 품었다. 그리고 가슴앞에 대였다. 빨리 인화되라고, 그리웠던 그 모습을 빨리 현시하라고.
내 가슴에서 련꽃 한점이 바야흐로 피여나고 있었다.
  
“길림신문” 2014년 3월 27일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꽃 - 장윤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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