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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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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
2014년 08월 02일 10시 15분  조회:2488  추천:19  작성자: 김혁

. 중편소설 .
 
바다에서 건진 바이올린
                 

김 혁
 

 
 
 
“만물의 변화란 실제에 있어서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허나 바로 형식의 내면에 항구불변의 생존의 의지가 잠자고 있다.”
 - 쇼펜하우어 “생존공허설”중에서
 
 “우리의 정신세계 및 리념의 구축은 언제나 현실세계의 경험에서 비롯하여 다시 여러가지 형태로 변형되여 전개되며 나중에 우리는 그 한 형식의 내용으로 과제를 해결하군 한다.”
- 야마다까 가이요 “인간의 심층심리분석”중에서
 
 “무릇 변형은 모두 그 자체로서의 리유가 있다.”
-저자
 
 
이변(異變)의 바다
 
 …관광기를 보낸 바다의 모래사장은 짜장 려객선을 고동에 실어보낸 뒤의 항만 그 모습이였다. 보이잖는 신의 채찍질에 쫓기는듯 줄달음쳐와 백사장을 처절썩 때리고는 뒤걸음쳐가는 멍든 빛깔의 모습과 낡은 태엽으로 풀어내리는 시계처럼 단조로운 음향, 시끌벅적하던 관광기에는 자취없던 바다새들이 사장에 찍어놓은 상형문과도 같은 죄꼬만 발자국, 그 스스로 각인해놓은 자취를 굽어보며 뿜어내는 새들의 괴이쩍은 목울음이 바다가의 고적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러한 사장의 한 귀퉁이에서 소요가 일었다. 바다의 거품속에서 태여난 비너스인양 어데선가 불쑥 솟아난 조무래기 몇몇이 쫓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백사장을 달리고 있었다. 윤택하지 못하여 린색함에 가까웠고 바다바람도 훈풍을 제쳐놓은 한산한 바람이였지만 조무래기들은 저마다 알몸이였다. 바다새보다는 퍽 아름다운 홍소를 지르며 추위를 모르고 달려가는 조무래기들뒤로 새들의 발자국보다 조금 큰 귀여운 자국들이 꿈을 홈파고 있었다. 하얗고 조그만 몸뚱이들, 그리고 저마다의 사타구니에서 우습강스럽게 달싹이고 있는 고추들, 바다의 꼬마요정 같은 그 귀여운 모습들에 바다가는 금시 생기를 되찾은듯하였다.
 홀연 맨 앞에서 톱상어처럼 본때스레 내달리고 있던 애가 우뚝 멈춰 섰다. 급촉한 멈춤이였기에 애의 작은 발이 모래속으로 움푹 빠져들어갔다. 애는 쳐들린 눈매를 하고 앞을 지켜보았다. 뒤따라 섰던 애들도 그 애의 모습을 되풀이하며 하나 둘 그 자리에 급정거를 해버렸다. 잔 돌멩이 하나 없이 혹여 작은 조갑지들만이 달그락거리던 사장에 거밋한 물체 하나가 탄성한계로 늘어져있는 것이 보였다. 보통장년의 키만한 그 실체는 조무래기들에겐 엄청 큰 괴물로 안겨왔다. 애들은 눈에 버팀목을 한채 식지를 입에 물고 숨을 꺽 죽였다. 맨 앞장선 애의 넌들넌들 흘러내리던 코물이 커다란 기포로 되여 부풀어오르다가 빵 소리를 내며 터졌다. 와악! 하고 애가 고함을 질렀고 그 소리를 폭발물로 하여 조무래기들은 혼겁한 소리들을 련발하며 돌아서서 내뛰기 시작했다.
   사장의 웃쪽으로부터 한 나그네가 내려오고 있었다. 소일거리를 찾는 유한자인듯 살집 좋은 나그네는 구름과 같은 보법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는 나그네의 풍성한 아래배를 달려오던 애가 골받이 하고 말았다. 그 서슬에 애와 나그네가 뒤로 벌렁 나가 넘어졌다.
   “저기… 사람이… 사람이 죽었심더…”
  호젓한 바다가를 찾아 소풍하려던 나그네는 아닌밤중에 웬 홍두깨냐는듯 으깨진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의 너무도 진지한 표정에 밀려 나그네는 애의 식지가 가리킨 곳을 향해 스적스적 걸어갔다. 반신반의에 절은 나그네의 눈길에 아닌게아니라 시체 하나가 비쳐들었다. 마구 엎딘 자세인 그것은 분명 여름철에 흔히 보게 되는 익사자(溺死者)의 모습이였다.
    맨먼저 사내의 눈길을 포박한 것은 익사자의 앞으로 뻗친 손이였다. 손마디가 기름하여 여느 사람들의 손보다 훨씬 큰 손, 허나 결코 거쿨지지 않고 보기 좋은 손이였다. 그 무슨 의욕에서였던지 손마디는 무언가 움켜잡는 동작을 하고있었다. 머리칼은 유난히 작아 보이는 머리통에 찰싹 붙어있었는데 꼭 마치 바위에 엉겨붙은 청태처럼 보였다.
그런데… 익사자의 전신을 훑어내리던 나그네의 눈길이 다리부분에 와서 뚝 멎어버렸다. 나그네는 두눈을 슴벅거리며 불뚝 불거진 눈매를 하고 다시 익사자의 아래몸뚱이에 시선을 주었다.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맙소사… 물고기의 꼬리가, 물고기의 꼬리가 두가닥 지느러미를 축 늘어뜨린채 응당 다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그네는 익사자의 알몸뚱이 전신에 정교한 문신마냥 촘촘히 박혀있는 비늘을 보아낼수 있었다. 나그네는 꿈을 꾸고있는 기분이였다.
   “이크크…” 나그네의 입으로 헛바람 섞인 괴상한 소리가 새여나왔다. 느닷없는 공포가 신상에 까맣게 밀착해왔다. 조무래기들 앞에 선 년장자라는 체신도 잊고 공포의 그물에서 벗어나련듯 허우적거리며 나그네는 내뛰기 시작했고 그 거동에 다시 겁기를 되살린 조무래기들도 괴성을 지르며 함께 내뛰였다. 비대한 몸집을 놀리며 굴러갈듯이 달리는 나그네와 그 뒤를 바싹 쫓아선 알몸의 개구장이들. 그것은 바다속 말향고래와 그 뒤를 바싹 따라선 새끼 흡반어를 련상케 하는 기이한 광경이였다.
 
어떤 외출
 
    … 발바닥이 괴로웠다. 어느 짬에 어떤 알맹이가 들어갔는지 그 자그만 이물질이 내내 그의 발바닥을 괴롭히고 있는겄이였다. 그렇다고 숱한 사회지명인사들이 둘러앉은 회의장소에서 신발을 벗고 그 속의 이물질을 털어내는 불미한 거동을 할수도 없었다.
“일요석간지” ㄷ시 주재기자 철인(哲人)씨는 지금 엉뚱한 곳에서 취재수첩을 펼쳐들고있었다. 여느때와는 달리 정열의 개미들처럼 보도할 수치들이 우글거려야 할 취재수첩은 하얀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 필을 장신구처럼 만지작이며 그는 한 글자도 적어내려가지 못하고있었다.
며칠전 ㄷ시 해변료양소 부근에서 괴상한 익사체 하나가 발견되였다. 웃통은 분명 중년남자의 몸체인데 아래도리는 물고기꼬리가 달려진 괴상한 생명체라는것이였다. 소문은 불과 며칠도 못되여 이 해변도시의 구석구석에까지 촉수를 뻗쳤다. 조무래기들, 조무래기 반급의 동학들, 부모들, 부모들의 직장동료들, 직장동료들의 안해들 남편들… 이런 순으로 소문은 열에 십, 십에 백, 백에 천으로 해일마냥 온 도시를 삼켜버렸다. 이에  과학기술대학과 의학원의 몇몇 교직원들이 커다란 홍미를 갖고 그 기이한 생명체를 소장했고 소식간담회까지 가진것이였다. 맨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철인은 애들의 못된 장난으로 여기고 웃고 지나가려 했다. 한 사람 건너 두 사람 건너 그 기문이 륜곽 크게 자리잡혔을 때도 강호곡예단의 돈벌이를 위한 조야한 짓거리, 혹은 피서지들의 신기한 광고수단쯤으로 생각해두었었다. 과학기술대학에서 그 “장난 혹은 돈벌이나 광고”를 위한 이른바 “기이한 생명체”를 위해 소식간담회까지 연다고 회의통지가 오자 “미친 수작이야.”하고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극력 큰 신문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해 몸서리를 하고있는 신문사 본부에 어떤 이들이 련락주었던지 주필께서 친히 장거리전화를 걸러 그에게 주말판 톱감으로 쓸 터이니 꼭 사진까지 곁들여 보도를 해내라고 분부를 내렸다. 하여 철인은 마지못해 간담회에 출석했고 맹활약을 보이던 여느때의 기자답지 않게 한쪽구석에 자리지킴만 하고 있었던것이였다.
“,,, 이 괴상한 불명체의 정체에 대해 우리는 한 두마디로  억단을 내릴수 없습니다. 이 생명체가 항간에서 늘 말하는 미인어인지? 아니면 약물의 부작용, 혹은 근친결혼으로 초래된 기형아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과학환상영화에서 늘 보게 되는 별나라사람인지? 여하튼 기상천외한 일이라 해야겠습니다…”
   간담회 참가자들이 필요이상 격동된 낯빛을 하고 너나없이 목청을 한 옥타브씩 살리고있었다. 그러나 그에 무감각한듯 철인은 도수안경너머로 이물질이 잠복해있는 신발을 멀거니 내려다볼뿐이였다. “아디다스표”신발, 기자의 한달 로임과 맞먹을 엄청난 값의 신발이였다. “명월”표 딸기술공장 ㄷ시 도매경영부의 방경리, 즉 그의 소꿉친구 방황씨의 적선이 있었기에 철인은 난생처음 그렇게 값진 신발을 신어 보는것이였다.
어느 변강의 시골에서 한 달을 사이 두고 이웃에서 둘은 태여났다. 발가벗고 고향의 강에서 무법자처럼 물장난도 쳤고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한학급에서 지내면서 시험답안 보고쓰기에서 “내조”를 해주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부시험에서 방황은 음악계를, 철인은 신문계를 택했다. 그 후로 방씨는 고향소재지의 예술단에서 수석바이올린수, 국가1급 악사로 부상했고 철인은 “일요석간지”에 취직해 지금은 ㄷ시 주재기자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그러던 방씨가 생명으로 아끼던 바이올린을 버렸다. 음악계와 고향사람들의 경아의 눈총속에 ㄷ시 “명월”표 술도매부 경영부 경리로 탈바꿈해 둘이는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친구의 그루바꿈에 둘이는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친구의 그루바꿈에 그 누구보다도 반감을 보였던 철인이였지만 여하튼 배달족이 몇몇 없는 산재지역에서 도타운 친구와의 만남인지라 기쁘기만 하였다.
그런 친구 방황이가 어느 날인가 행적을 감추어버렸다. 그렇게 증발되듯한지가 어언 넉달째 잡혀온다.
간담회의 연막탄 같은 담배연기속에서 철인은 자기를 내내 괴롭히고 있는 것이 신발속의 이물질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이물질, 곧바로 그 “아디다스”를 사준 친구의 실종에 대한 불안임을 문뜩 느낄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질서없이 떠올리는 사이 간담회는 어느새 끝났고 회의 책임자의 안내하에 모두는 의학원의 랭동실로 향했다.
   … 랭기가  훅- 끼쳐왔다. 타일을 깐 바닥은 앙금진 랭기로 하여 유난히도 번들거렸다. 카드가 붙여진 커다란 서랍이 일매지게 서렬을 짓고있었다. 모두들 책임자가 건네주는 대로 마스크를 걸고 가운을 걸치고 슬리퍼를 바꾸어 신었다. 긴장이 서린 거친 호흡소리와 자박자박 슬리퍼 끄는 소리, 공연한 마른기침소리가 랭동실의 농도짙은 정적을 흔들었다. 랭동서랍을 지켜보며 철인은 은연중 약방의 각종 약재가 들어있는 서랍을 머리에 떠올렸다.
저 서랍속에 생명을 박제당한 하나 또 하나의 불우한 인간들이 들어있겠지? 개구리표본처럼… 하고 생각하니 부르르 진저리가 쳐졌다. 인솔자가 조심스레 그 중의 한 랭동서랍을 당겨 뽑았다.
 “오???”
 “정-말-이-네-에-?”
 “입은 왜 저렇게 부죽히 나왔노?”
 “머리칼을 좀 봐. 고수머리같군 그래.”
  경아성속에 마그네슘섬광이 요란스레 번쩍이였다. 철인이만은 침체된 모습으로 맨 뒤에 동그마니 서있었다. 도수안경에 불려앉는 물방울을 닦아내며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 친구 어데로 갔을가?”
 
불감증의 도시
 
…친구의 점적에 대한 철인이의 불안은 간담회가 끝나 의학원대문을 나설 때까지 계속되고있었다.
제품구입외출이나 무역상담회를 위한 행차는 아닌 것 같았다. 평소에 그런 행사가 있다해도 열흘, 혹은 보름을 넘기는 때가 적었고 돌아오면 역에 내리기 바쁘게 철인이한테로 핸드폰을 쳐주군 하였다. 그리고는 둘이 함께 맥주집으로 흘러들어 억병으로 마셔대군 하였다. 그런데 이번 걸음은 장장 넉달을 잡았고 도타운 친구는 여전히 얼굴을 내밀지 않고있다. 더욱이 방황이가 맨 마지막으로 걸어온 전화가 철인을 불안케 하고있는것이였다. 핸드폰은 분명 달리는 차속에서 치고있었다. 어미가 흐릿한 말을 뭉그려 내뱉는 핸드폰의 임자는 만취한 상태였다.
   “철인아야? 나 황이야. 황이란 말이야! ‘명월’경영부 방경리를 몰라?”
   곁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여들어왔다. 분명 녀자의 웃음소리였다. 차의 오디오를 한껏 틀어놓아 무엇인가 지끈지끈 란타하는 것 같은 음악소리가 수화기의 벽을 쿵쿵 울리며 전해 오고있었다. 그 시끌벅적함속에서도 철인은 분명 그 음악의 곡조를 헤아려들을수 있었다.
 베이료츠-“어떤 예술가의 생애”의 음조였다. 한 예술가의 흥망성쇠를 희곡적인 정절로 지은 17세기의 교항곡ㅡ 이 음악을 친구 방황이는 가장 즐겨 들었다. 더우기 하는 일이 여의치 못하거나 번뇌에 잠겼을 때, 만취했을 때면 꼭 이 곡을 틀군 하였다. 때문에 곁에서 곡조를 함께 익히게 된 철인이였다. 하지만 이 곡조만 나오면 철인은 또한 골살을 찡그리군 했다. 침울하기 그지없고 어덴가 염세적인 분위기가 저층에 짙게 깔린 음악이였던것이다.
지금 곡은 4악장에서 조약하고 있었다. 4악장의 제명은 “단두대에로”, 교향곡속의 화자가 사랑도 잃고 리상도 잃게 되자 련인을 죽이고 단두대로 오르는 바로 그 부분이였다. 원체 침울한 곡조는 핸드폰의 맑지 못한 전달과, 승용차의 엔진소리, 방황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괴성에 혼반되여있었고 그 음부마다 야릇한 불안의 덩이가 되여 철인의 고막이며 가슴이며를 울리고있었다.
   “취한거요? 지금 뭣 하고있는거요?”
 철인은 불안감을 곰삭이며 소리 높여 채문했다.
   “나 지금 좋은 곳으루 가고있네. 엄마품으루, 그 따스하고 포근한 양수속으로 가고있네. 후핫하하하.”
   용의를 알수 없는 허튼소리끝에 발작적인 웃음소리가 터져 올랐다. 등줄기를 서늘히 파 내리는 괴상한 웃음소리였다. 웃음소리를 중등내며 핸드폰도 끊겼다. 덴겁하여 방황의 핸드폰넘버를 눌렀다.
   “용호가 전화기를 열지 않았습니다.”
 기계적인 교환의 말소리만 들려올뿐이였다. 다시 방황의 저택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는 사람이 없었다. 장거리전화로 본 공장에 있는 그의 안해에게 련락하려 했으나 외출중이였다. 그날 저녁 철인은 잠을 잃고말았다. 가장 도타운 친구의 여태껏 밟아온 려정에 대해 새삼스레 반추해보게 되였다.
   방황은 분명 전생에 음악과 인연의 끈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개구쟁이시절 강녘에서 버들피리 꺾어 불때부터 그는 그 간단하고 조야하기 그지없는 원시적인 도구로 여느 애들이 도저히 불어낼수 없는 곡조를 지어내군 했었다.
학교적 바이올린에 현혹했던 그는 숙소동학들에게서 소란스럽다는 리유로 곧잘 소박만군 했다. 그때면 그는 바이올린을 들고 조용히 자리를 뜨군 했다. 어느 겨울날 오밤중에 기숙사 화장실출입을 했던 학교사감은 그만 화장실 문곁에 뿌리내리고말았다. 매큼한 냄새가 충천하는 화장실 창문쪽에서 방황이가 몽유병환자마냥 두 눈 지그시 감고 바이올린에 신들려있었고 그 광경에 버릇된듯한 모양, 학생 하나가 한 켠에서 무감각하여 자기 “사무”를 보고 있는것이였다.
동학들은 누구나 그를 두고 못말려! 하는 태도들이였고 어떤이는 차분한 바이올린곡조를 들으면서 일을 치르면 리뇨가 잘된다고 악의없는 조롱을 하기도 했다. 음악학원응시시험에서 방황은 여느 응시생들과는 달리 간단한 기법연주를 보인 것이 아니라 수준급 바이올린스트들도 연주하기 어려워하는 “파그니니 24수 수상곡”을 켰다. 그 나이에 비해 더없이 탁마된 모습에 시험관들이 경아로 입을 딱 벌렸고 주감독은 격동된 나머지 “강압령”두 알을 삼키고나서 방황의 그 천부적인 손을 으스러져라 하고 부여잡았다. 그의 결혼 역시 음악을 전제로 한것이였다. 예술단 분조배우들과 함께 시골에 온돌공연을 갔다가 “베틀가”를 곧잘 부르는 시골학교의 음악교원과 호흡이 맞았던것이였다.
항시 천부적인 이들에게서만 볼수 있는 특유의 격정과 불온정감을 담을 듯 구부구불 온곱지 못하게 흘러내린 고수머리, 까닭 없이 그러나 지적인 기품이 어려 오만스레 들려진 유난히 운두높은 코와 그 코끝에 위태롭게 걸려진 도수안경, 쉼없이 맞비비거나 박자쳐주군 하면서 정서미를 환기시켜주는 기름진 손마디… 이 친구를 대할 때마다 철인은 곧 “사물놀이”의 곡조를 머리에 떠올리군 했다. 필사로 음조의 한계에까지 치닫다가도 돌처럼 추락해내려 음조를 껌벅 죽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무아의 경지에로 환혹해가는 그런 부풀디 부푼 정감의 덩어리로 주물된 존재로 방황에 대한 인상을 각인하게 된것이다…
    갑자기 터져오른 경적이 철인의 친구에 대한 련민의 추적을 중둥 잘랐다. 의학원 정문곁에 벤츠600 한대가 정차해있었고 그 차의 경적은 분명 철인을 바라고 울려지고 있는것이였다. 철인은 차를 향해 미적미적 다가갔다. 도어의 커피색유리가 스르륵 내려졌고 안으로부터 낯익으나 그닥 반갑지 않고, 그러나 요사이 꼭 찾고만싶었던 얼굴 하나가 불쑥 나왔다. 방황의 안해, 적절히 말하면 후실- 황금전(黃金錢)이였다.
   “오래간만이네요, 철인씨.’
   황금전이 입귀로 웃었다. 허연 차아가, 허옇다 못해 어덴가 푸른 기운이 감돌고있는 가짜 치아가(방황은 안해가 이발미용을 하고 유방확대수술까지 받았다는것조차 철인한테 털어놓는 시럽쟁이 친구였다) 유난히 철인의 시선을 자극했다. 이 녀자만 만나면 마냥 까닭모를 한기를 느끼군 했다. 푸른 칠갑을 올린 눈두덩, 허연 이발, 자주빛 루즈를 진하게 바른 입술, 그리고 목이며 손목이며 손가락에서 현시하고있는 금은장신구들이 그 랭의를 더 해주는상싶었다. 어쩌다 친구지간에 술잔을 기울이려고 방황의 저택을 찾을 때도 녀자의 손맛이 배인 맛갈스런 김치나 국 대신 포장식품들을 가위로 썩둑썩둑 잘라 부어놓는 그녀가 철인에게는 방황의 애젊은 후처이기보다는 “명월”표 딸기술공장 황금전공장장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안겨들군 했다. 방황의 첫혼인이 보뚝에 물이 새는 것을 막아보려 애도 써봤던 철인이였다. 그보다도 음악의 드넓은 대륙에서 활보하는 방황이를 물에서 화페의 바다로 끌어들이고 행복했던 가정을 쑥밭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 녀자라는데서 오는 거부감은 컸다.
   “그러잖아도 찾으려던 참이였습니다.”
   철인이 반갑다는듯한 기색을 만들어 보이면서 본제를 꺼냈다.
   “용건이 뭔데요?”
   “제 친구 말입니다. 방황씨가 여태 소식 없어서… 그러다 형수은 그 멋진 남편을 덜컥 잃기라도 하면 어쩔려구요.”
   “웃기시네-“
   웃음의 홍수가 차창사이로 터져 나왔다. 어덴가 과장된 웃음을 계속하면서 황금전이 외려 반문을 내들었다.
   “철인씨는 뭐 우리 주정뱅이나그네의 파출부라도 되나봐. 돌장이도 아닌 사람 제집 찾지 못할 가봐서요.”
   “그저 웃고만 있을 일 같지 않은데요. 한 두달도 아니고 넉달이나 소식 한 장 없으니…”
   심각한 낯빛의 철인이 승용차 지붕을 손으로 짚으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여하튼 고마워요. 걱정해주셔서. 피서지를 찾았거나 마작친구들과 밤새기를 하고있는 것쯤으로 생각해두세요. 자, 김기사 이젠 고만 가보지요.”
   황금전은 떠올릴감이 못 된다는듯 청량제 같은 어투로 철인의 걱정을 무질러버렸다.
    “의학원 제약공장서 요사이 뭐 인체태반으로 미용보건품을 만들었다나요. 몇갑 써볼가 해서요. 자, 그럼… 놀러 오세요.”
   유리가 철판처럼 사이를 가로막으며 올려졌고 부귀, 우월감, 오만과 휘발유냄새를 뒤로 던지며 차는 철인의 앞을 휘익- 스쳐지나버렸다. 철인은 한동안 망연한 기색이 되여 그 자리에 뿌리내려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와 살밭은 사람에 대한 저런 불감스런 자세가 그의 불만의 면적을 크게 해 주고있었다. 하면 자기가 괜스런 걱정을 키우고 있지 않나 하는 자문이 들었다.
발바닥의 괴로움이 다시 한번 감지되여왔다. 철인은 신을 벗어들고 체증기어려 동작으로 털어댔다. 번거롭다는듯 털어댔다. 그러나 마음속에 덩어리진 이물질은 종시 털어낼수 없었다.
 
낯선 자를 위한 족보
 
   ᅀㄷ시 해변료양소 구역에서 발견된 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가설A—
 “미국의 일부 과학자들은 해양심처이 어떤 곳에 지력이 고도로 발달한 생명체 해저인이 있을수 있다고 인정하고있다.
   그 사례로 보면: 1973년 4월 단니 데르모니라고 하는 화물선 선장이 버무다삼각주 부근의 스트리움 항만에서 려송연처럼 길죽한 머리를 가진 해저인을 발견했다.
 미국의 UFO전문가 이반, 쌍드센도 1963년 버우더거 동남부의 바다에서 수상괴물을 발견했다. 해군기지에서도 이를 발견하고 한 척의 구축함과 잠수정을 내여 500해리를 수색해냈으나 끝내 잡지 못하고말았다.
   수중괴물을 발견한 사례는 이뿐만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널리 전해 지고있다. 미국 북부의 쎈푸른호, 카나다의 웬니버거시스호, 일본의 오까다호, 뿐만 아니라 스위스, 뉴질랜드, 오스트랄리아 등지에서도 련이어 수중괴물이 나타 나고있다. 근자에 멀리도 아닌 우리 주변의 장백산천지에서도 수중괴물이 나타나 과학계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있다. 이러한 사례와 이 불명체의 형태에 대한 수치로 비해볼 때 새로운 종류의 수중괴물로 우리는 가설해볼수 있다…”
   ᅀㄷ시 해변료양소 구역에서 발견된 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가설 B-
   추산에 의하면 은하계에는 태양계와 비슷한 성계가 400억개나 있다. 그중 10분의 1은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다. 지구와 비슷한 물질결구조건을 가지고있으면 생명을 온양하고 발전시킬수 있다. 이로써 우주인의 가설이 설립되는것이다. 지혜가 우리보다 앞선것으로 추정되고있는 그들의 지구방문사례도 세계 각지에서 전설같이 전해지고있다. 이로 볼 때…”
   ᅀㄷ시 해변료양소 구역에서 발견된 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가설 C-
   “프랑스의 과학자 미께르 오덴은 인류의 선조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내놓았다. 학설에 의하면 인류의 어떤 행위는 원숭이와 비슷하지만 포유동물들의 온화함과 민감성, 우애의 본성은 인류와 더 근사한 점이 많다는것이다. 원숭이는 눈물을 흘릴줄 모르지만 바다고래와 같은 기타 해양포유동물들은 눈물을 흘린다. 인류는 유일하게 염분을 함유한 눈물을 흘리는 령장류 동물이다. 이는 일찍 해양생활을 한데서 기인된것일수 있다. 사람과 바다포유동물에게는 피하지방이 있지만 원숭이에게는 없다… 이런 허다한 연구로부터 인류의 선조는 수중이 모종 령장동물로 가능성연구를 할수 있다. 우리 시에서 발견한 기이한 생물체가 이 가설을 증명해줄 유력한 사체표본일는지 모른다….”
   … 얼마전 그 문제의 기이한 생명체에 대한 연구회가 발족되였고 따라서 연구학가들이 각종 가설을 들고 나와서 갑론을박의 쟁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철인은 또 한번 수동적인 자세가 되여 연구회 회장 한구석에 자리지킴을 하고있었다. 생명체 발견에 대한 보도에 열성을 보이지 않은데서 주필로부터 단단히 신칙을 받았던 그였다. 연구회는 시적으로도 손꼽히게 호화의 극으로 달리고있는 료리집에서 열리고있었다. 식탁우에서 과학적 가설과 그에 따른 수치가 여태 먹어 못본 료리처럼 오르내리고있는것이다. 몇몇이 점액질 같이 끈적한 가설을 지루하게 늘여놓는 외 모두는 감질난 눈매로 하회— 풍성한 만찬을 기다리고있었다. 연구회 후원인과 곁을 묻어선 허드레들이 진짜 연구원들보다 더 많았던것이다. 로임족들이 들어서기엔 이슬람교도들의 메카의 성지로 들어서기처럼 어마어마한 이곳 행차를 철인은 해본 적 있었다.
   바로 몇 달전 방황이와 함께였다. 한 구석에서 소형악대가 울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음식의 맛보다 호화로움과 마른 호기를 맛보았었다. 친구를 대동해왔던 방황은 얼마안되여 흠뻑 취해버렸다. 손이 떨리면 바이올린 켜는데 지장이 된다며 술을 끊었던 방황이가 요사이 술을 다시 붙였고 또한 평소와는 달리 빨리 취하군 했다. 마냥 진한 독백같던 소리도 햇내기 배우가 대사외우듯 더듬거렸고 그 억양도 시르죽어있었다. 게 다리 한짝을 입에 물고 그 속의 들큼한 속살을 빨아내느라 량볼에 기승스레 홈을 파던 방황이가 느닷없이 악대쪽을 바라고 식혜먹은 상을 지었다. 요염하나 내용 없게 생긴 얼굴을 한 녀가수가 까닭없는 애수를 쥐여짜며 류행가요를 부르고있었다.
   “그만 집어쳐!”
    방황이가 필요이상으로 격동돼 하며 그쪽을 바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 괴성에 가까운 소리에 곡이 뚝 멎었다. 식객들의 눈길이 한결같이 그를 바라고 몰부어졌다.
   “왜 이래? 취했나.”
   철인이 덴겁하여 친구의 팔뚝을 부여잡았다. 그 손을 뿌려치고 방황은 비칠거리며 악대쪽으로 다가갔다. 쟈즈북, 쌕스폰, 기타, 바이올린… 악사들을 하나하나 참빗질하면서 눈꼴 사납게 내려다보았다.
   “쇠통 이렇게 염소 감기앓는 소리밖에 없어?”
   방황이 방게 다리로 쟈즈북에 달린 쟁쟁이를 후려갈겼다.
때애앵- 듣그럽고 아츠러운 소리가 울렸다. 정장차림의 악사들은 눈앞의 이 주정뱅이를 일순 어떻게 주체할 길 없어 멍하나 당하고만 있었다. 젊은 식객 하나가 기분 잡친듯 씩씩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철인이 황급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허리를 굽석여보였다.
 “죄송합니다. 이거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취한것같구만요.”
 철인의 진실에 사죄에 막힌듯 그 사람은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한면 방황의 취기는 여전히 곰삭을줄 모르고 외려 충천해있었다. 바이올린수앞으로 바싹 다가들었다.
 “나무통을 켜고있는거야 지금?”
 사람좋아보이는 바이올린수는 방황의 실태에 그저 웃어주고만 있었다. 방황은 그에게서 바이올린을 앗아들었다.
 “나 가르쳐줄 테니 어디 좀 봐라.”
 방황이 바이올린 활로 흘러내리는 안경테를 추어올렸다.
 “바이올린연주가란 투우사의 진정, 나이트클럽 마담의 활력, 불교도의 경건함을 갖추어야 하는거야.”
 방황이 바이올린을 턱에 가져다대고 활대를 추켜들었다. 주정뱅이의 손에서 흘러나온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차분하고 음악감있는 곡조가 울려나왔다. 식객들의 아니꼬움에 비틀렸던 눈길이 풀리고 점점 흠상의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웬 변고냐며 주방으로부터 달려나왔던 마담이 걱정을 해소한듯 한켠에 서버렸고 악사들도 저마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취기에 자기를 주체할길 없어하던 방황은 곡상에 빠져버린듯했다.
 그때 수석바이올린수였던 그에게는 그렇다 할만한 바이올린조차 없었다. 도회지의 경기가 불황에 처한 조그마한 악기공장에서 대강 만들어낸 그런 바이올린밖에 없었다. 질좋은 수입제 바이올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안면을 몰수하고 퇴근하면 유치원생들의 가정음악교사를 맡아보았었다. 돈후한 정미의 안해 역시 그를 도와 학교에서 퇴근하며 부업거리를 맡아했다. 부근의 술공장을 찾아 술상표를 붙여주는 일이였다. 경기가 호황이였던 “명월”표 딸기술공장에는 림시공들이 많이 수요되였고 하여 포장직장의 흐름식작업대곁에는 8시간외 부업거리를 찾아나선 도회지의 소시민들이 많았다. 그러는 안해를 맞으러 방황이가 녀공장장 황금전의 눈에 들었다. 우리 민족타입의 용모와는 이색적인데가 있는 고수머리, 운두높은 코와 음악가의 독특한 제슈체어가 마음에 들었던것이다. 방황은 인차 TV광고화면에 올랐다. 슈베르트의 곡 한곡조를 연주해보이고나서 황금빛의 술이 담긴 굽높은 술잔을 들어보이면서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명월>표딸기술에서 당신은 음악과 같은 차분함과 격정을 맛보게 될것입니다.” 그저 그런 한대목이였다. 그런데 “그저 내린 한대목”에서 방황은 자기가 목청 쉬게 가정교사를 맡아본 보수와 안해가 손금 다슬게 벌어온 푼돈보다 곱으로 되는 광고비를 받을수 있었다. 여느 녀사업가들의 이미지가 그러하듯 가정의 비운을 여러 차례 겪고 단신으로 지내던 녀공장장과 도회지 음악권내에서 큰 기침을 할만했던 방황은 재빨리 의기투합이 되였다. 조강지처와 아홉살난 아들애를 버렸다는 자격지심이 한동안 방황이를 못견디게 괴롭혔으나 새로운 세계가 주는 유혹에 인차 그한 자책을 잊어버린듯 했다. 진짜바이올린의 꿈을, 음악대가의 기품에 맞는 생활을 인제야 이루게 되였다고 그는 생각는듯 했다.…
 곡이 끝나자 악사와 식객들은 넓은 아량으로 주정뱅이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방금전까지도 술량이 많은 것 같다고 막던 철인은 술컵에 맥주를 가득 따라 내밀었다.
 “멋졌어! 정말이야. 이 알코올량반.”
 안경을 벗어들고 넥타이끝으로 안경알을 닦아내는 방황이의 손이 사뭇 떨리였다.
 “4년말이야. 꼭 4년만에 바이올린을 다시 만져보는것이였어. 그런데…”
 철인의 술을 받아 단숨에 굽내고는 방황은 탈진한듯한 눈길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염세, 권태와 소외가 혼반죽된 표정이 그의 얼굴에 지어지고있었다.
 “그런데… 너희들 음악떨거지들 듣기엔 비슷한 것 같애도 엉망이였다. 그저 흉내에 지나지 않아. 이 손으로…”
 방황이 술기운에 떨리는 손을 쳐들어 눈가까이에 대였다.
 “이 천재의 손으로 이제는 누룩이나 주무르고 술집녀자나 주무를수밖에 없게 됐단 말이요.”
 탕갈된 자존을 찾을길 없어하며 방황은 주먹으로 식탁을 탕! 내리쳤다. 빈 접시들이 반자 높이로 떴고 금방 온화함을 찾았던 식객들에 다시 의문과 적의가 서려들었다…….
 기이한 생명체 연구회에서 철인은 내내 아교풀처럼 뇌리속에 끈끈히 도배된 친구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방황이의 행적에 대한 여러가지 방정식을 풀고있었다.
 외로운자의 침실
 초인종의 버튼이 시한탄의 점화단추처럼 보였다. 허나 철인은 그 단추를 누르고야말았다. 둔중한 방문이 열리며 집주인이 몸을 반쯤 내밀었다.
 “어머? 철인씨 아니세요? 한밤중에 어찌된 행차죠?”
 황금전이 문고리를 잡은채 물었다.
 “긴히… 여쭐 말 있어서요.”
 “무슨 급한 일이기에 이렇게 오밤중에 찾아요셨죠? 래일로 미루든지 하실걸… 나… 사무에 바쁜 몸인데…”
 황금전은 마지못해 문을 열고 들어오라는 기미를 보였다. 덜 반가운 눈매였다. 집안에서 질식할듯한 담배연기가 운무처럼 떠돌고있었다. 안방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일었다. 마작쪽 벌걱이는 소리였다.
 (원체 사무를 보고있었군!)
 철인은 의미있는 눈길로 황금전을 건너다보았다. 황금전은 손에 든 마작쪽을 만지작거리며 막무가내라는듯 웃어보였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지금 막 끝내는 중이얘요. 공상은행서 친구들이 오는 바람에 …”
 철인은 객실의 쏘파에 눌러앉아버렸고 황금전은 안방으로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마작 씻는 소리가 다시 듣그럽게 울려왔다. 불명체연구회끝에 친구의 행적에 대한 념과로 수삽해나는 마음을 무마하련듯 술을 많이 마셨고 지나치던 걸음에 술기운을 빌어 황금전을 찾은것이였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되여버린 철인은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마작 씻는 소리의 회수만 세고있었다.
 “요빙(一瓶)”… “빠완(八万)”…”펑(风)”…”차(叉)”…얼완(二万)…”후라(胡라)”… 좌르륵- 좌르륵
지금 마작에 여념없는 녀공장장은 철인이와 방황이네 촌마을을 끼고있는 도회지의 사람이였다. 철인이네 마을은 린근에 소문난 딸기촌이였다. 120호에서 90여호나 딸기재배를 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에 영양단지모까지 했으며 지면비닐박막피복재배를 도입해 마을사람들의 수입이 짭짤했다. 그러던중 이 순발력 있고 손탁이 세기로 소문난 녀인이 마을에 나타났다. 술공장의 원료로 이 마을의 딸기를 독점해 사들였다. 번거롭게 뙤약볕에 나앉아 싸구려를 부르던 절차를 생략해버린 마을의 딸기재배호들은 모두 그에게 쏠렸다. 새로 내놓은 술품종에 마을이름을 따서 “명월표”라 하였다. 그런데 조선족을 포함한 동북지역사람들의 호방한 성격에는 과일술보다 배갈쪽이 더 도타운편이였다. 하여 연해지구로 진출했고 공장장의 새남편 방황이가 ㄷ시 도매부의 경리라는 생광스러운 직을 가지고 출두하게 되였다. 그런데 이것이 호황이였던 술공장이 불황의 습지로 향해 내디딘 첫발자욱일줄은 그들도 생각지 못했다. 황금전이 배후에서 법도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원격조종을 하고 방황이 열심히 뛰였지만 무지랭이의 샘처럼 일은 꼬여만 갔다. 소비수준이 껑충 높은 연해도시에서 루이십삼이요, 나뽈레옹코냑이요, 인두마요, 금돛배요, 훤니스요 하고 명표술에 익숙해지는 그들에게서 “명월”표는 봉황발치의 촌닭이나 다름없었다. 포장에도 신경쓰고 광고전략에도 땀을 빼보이며 방황이는 진동한동 달아다녔으나 원체 아름다운 음부로 채워져야 할 예술가의 머리에 금전의 수치가 오르내리니 기량발휘가 뜻대로 되여주지 않았다. 제품이 적치된데다가 딸기재배호들의 적극성과 후사를 고려하여 울며 겨자먹기로 사들인 그 딸기마저 썩어나가다보니 “명월표”술공장은 완연 병사(病死)직전의 상태에서 대들보가 무너지는듯한 퇴력감을 느끼고있었다. 그한 상계의 풍진변화에 동조하지 못한 책임이 방황으로 해서 인기되기나 한듯 녀공장장은 모든 체증을 방황에게 내뿜었다. 그제야 방황은 “명월”표가 음악같이 차분하고 정감에 배인 미주인 것이 아니라 쓰디쓴 고배임을 감득할수 있었다…
 “사무”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철인은 용케도 그때까지 눌러앉아있었다. 친구에 대한 근념과 감정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주고있었다.
 “방황씨의 일 때문에 왔죠. 맞죠?”
 마작상대들을 바래고나서 황금전이 객실로 들어와 팔짱을 끼고 섰다. 워낙 그런 녀자여서 례절을 기대할 게제가 못된다고 철인은 생각해왔었다. 황금전은 탁자우에 담배갑을 집어들고 한개비 뽑아 내밀었다.
 “알고있겠지만 전 원체 담배를 대지 않습니다.”
 “언제보나 철인씬 고정하셔… 지푸래기 같은 친구에 대해 이렇게 걱정하는것 봐도 그렇고.”
 황금전은 담배에 불을 당겨 입에 물었다.
 “그런 얘긴 삼가해주십쇼. 그녘에서 남편되는분이라면 저한텐 둘도 없는 소꿉친구의 립장이니깐.”
 철인의 인내가 스프링처럼 조약하며 목청이 한옥타브 올랐다.
 황금전은 담배연기를 훅 내뿜었다. 겨우 두어모금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틀어박았다. 철인은 또다시 랭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죄다 털어놓아야겠어요. 언제든 다른 사람은 아닌 가까운 친구한테는 말하려던 참이였어요. 우리는…”
 황금전은 손끝에 묻은 담뱃재를 뽀드득 소리나게 문질렀다.
 “우린 일년째나 별거한 사이였어요.”
 철인은 고개를 번쩍 쳐들며 그녀의 입을 지켜보았다. 그 놀라움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은채 황금전은 말을 계속했다.
 “이번에 내가 이곳으로 온것도 그 사람 찾으러 온 것이 아니예요. 이곳 도매부가 파국이 돼버리니 수습해보려고 온 참이였죠.”
 “그렇다고 해서 어디 박혀있는지 행적조차 묻지 않아 될일입니까?”
 철인은 또 한번 격해지며 물었다. 황금전이 침실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보세요. 보면 알게 될거예요.”
 침실, 방황의 침실이라 일컫는 그곳에 들어선 철인은 다른 시대의 다른 곳에 온듯한 표정을 짓고말았다. 수족관에 잘못 들어서지 않았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일전에 함께 잠자군 했던 친구의 침실은 엉뚱하게 변모되여있었다. 온 벽에는 수위의 깊이로 본 해양동물분포도가 붙어있었고 침실바닥에는 어물가게점의 그것처럼 네모지고 둥근 어항들이 가득 놓여져있었다. 창의 카텐에는 풍어기의 도안이 찍혀있었고 창턱에는 조가비며 바다돌들이 무둑히 쌓여있었다. 책궤속의 악보책이며 음악리론저서들은 사라지고 대신 줄느베르의 “바다송”, “해양생물학”, “잠수기법”, “돌고래의 이야기”… 등으로 죄다 해양과 관련된 서적들이 빼곡히 꽂혀져있었다. 침대우에 소책자 하나가 펼쳐져있었다. 안데르쎈의 동화 “인어공주”였다. 벽에는 또 락서처럼 무언가 씌여져 있었다. 근자에 문예지에 심심찮게 글을 퍼내고있는 어느 한 청년시인의 “바다의 환상”이라는 제명의 시였다.
 “손바닥을 펴들고
 이랑짓는 실파도 같은 손금을 본다.
 창을 뚫고 금시 갯내음의 향이 풍겨오는듯
 때로 나는 찬란한 어족이 되여
 무양히 굼닐 바다를 환상해본다.”
 어덴가 불안한 충동감으로 갈긴듯 글체는 매우 란잡했다.
 “그 사람… 변태얘요.”
 황금전은 침을 뱉듯 입가로 내뱉었다.
 “종일 목욕통에서 그짓하려고 들어요.”
 황금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사마저 꺼내들었다.
 “제가 물고기료리 좋아한다구 손찌검까지 하려 들어요. 물고기가 우리 선조요 뭐요 미친 사람 같은 소릴 하면서. 또 잠자기전 나보구 꼭 <인어공주>라는 동화를 읽어달라구 해요. 몇십번이나 읽어줘도 계속 그 본새얘요. 꼭마치 유치원신입생같아요. 예술가들의 개성이 독특해서 그런지는 알수 없지만 전 참을수 없어요.ㅇ”
 철인은 일순 자기를 어떻게 주체했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어느때인가 맥주를 마시다가 방황이 건명태를 맛나게 뜯고있는 자기를 보고 “너희들은 지금 생명을 참살하고있어!” 하고 버럭 소리지르며 명태를 앗아내던 일이 문뜩 떠올랐다. 그때 취한줄로만 알고 그런대로 방치해두었던 철인이였다.
 (그러면 이 친구가 정신질환을 앓고있었단 말인가?)
 황금전이 광고팜플렛 하나를 안색이 어두워지고있는 철인앞에 내밀었다.
 “언젠가부턴 이 계집년하고 놀아나고있어요. KTV녀자라나요. 이번에도 아마 이 년을 끼고 어데론가 꺼져버린 것 같아야ㅛ.”
 팜플렛 겉가위에는 “명월표”술병을 들고 선정적인 웃음을 짓고있는 광고모델 하나가 찍혀있었다. 어데선가 꼭 본듯한 모습이였다.
팜플렛속의 녀자
 언젠가 와본적 있는 KTV를 철인은 어렵게 찾아내였다. 문전에서 한동안 멈칫거리다가 흔들이문을 들이밀었다. 채광이 들어올수 없게 밀페식으로 만든 안은 어두웠다. 한낮에도 색등을 켜고있있었다. 일순 들이닥친 어둠 때문에 철인은 눈시울을 좁혔다. 카운터에서 복부원하나가 뒤늦게 철인을 보아내고 몸을 일으켰다. “오셨어요.” 하면서 귀에서 무언가 끄집어내였다. 레시바였다. 잘칵하고 휴대폰록음기를 끄면서 그녀는 또 한번 물음을 던져왔다.
 “노래하러 오셨어요? 몇분이죠?”
 철인은 어데서부터 착수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호주머니에서 광고팜플렛을 꺼내들었다. 겉가위의 모델을 식지로 그루박았다.
“이 아가씰 찾아보려고 합니다.”
 카운터속 그녀의 눈꼬리가 이상하다는듯 쳐들리고있었다. 팜플렛을 받아들던 그녀가 저도 모르게 경아성을 질렀다.
 “어머- 얘가 이런데 다 나왔어. 인물값을 하긴 하는가봐. 그런데…”
 아가씨는 철인이한테로 다시한번 의문에 쳐들린 눈매를 보내왔다.
 “예하곤 어떻게 되는 사이죠?”
 “잘 아는 사이입니다. 요긴한 일 있어 그러니 불러주십시오.”
 도수안경의 점잖은 타입과 박진하게 청구하는 진솔한 철인의 태도에 아가씨는 경계의 눈빛을 거두고있는듯했다.
 “금방 손님들과 노래하러 들어갔어요. 좀 기다려주실래요.”
 철인은 카운터 맞은켠의 쏘파에 눌러앉았다. 그 아가씨가 해바라기 한접시를 가져다주었다. 심심찮게 까라며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귀에 레시바를 걸었다. 음악에 맞춰 가볍게 머리를 저어댔다.
 이곳으로 철인은 방황과 같이 온적 있었다. 이전과 달리 시간에 매이고 공리에 매여있는 방황에게는 철인이를 만나는 것이 가장 즐거운 시간인듯했다. 하여 스트레스를 풀 곳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철인을 동반하군 했다. 많은 유흥업소들의 경쟁중에서 일부 KTV들은 술좌석배동녀들을 두고 그로써 손님을 끌었기에 이런 곳은 양지를 멀리한 뒤안길로 사람들의 인상속에 메모되여있는터였다. 그런 행렬속에 조선족아가씨들이 많이 끼인데서 가슴아픈 나머지 철인은 “연해도시의 조선족 탈선녀”들이라는 보도를 쓴 일도 있었다. 그날 방황은 글쓰는 사람이면 체험이 많아얀다며 안면 가려워하는 그를 부득부득 KTV로 잡아끌었다. 한꺼번에 아가씨 넷을 불러들였다. 방황의 경리신분을 알고있는듯 넷은 살이라도 베여줄 듯 다가들며 간친스레 해롱거렸다. 한증막같이 더운 밀페식방, 노래반주기로 흐르는 애상적인 곡조, 팔굽에 물컹 맞혀오는 아가씨의 거대한 젖가슴… 철인은 자꾸만 부자연스러워지는 자신을 주체할길 없어하였다. 허나 방황은 이런 곳에 절어온듯한 모습이였다. 악기다루듯 그녀들을 능숙하게 다루어냈다. 부어주는 술도 쭉쭉 굽을 내고 까서 디밀어주는 해바라기도 넙적넙적 받아먹고나서는 아가씨의 궁둥이를 잔뜩 그러안고 볼과 볼을 딱 붙인채 춤을 추기도 했다. 잠간사이 방황은 취기가 력력했다. 그한 은밀한 짓거리에도 생증이 났던지 지갑에서 벌건 지페 한묶음을 꺼내들었다. 꽤 큰 수목의 돈이였다. 돈을 본 아가씨들의 눈이 맹수의 그것처럼 빛났다.
 “오늘 저녁 이 종이장이 엷어질 때까지 해보는거야.”
 그 액수의 부피감에 정비례되여 아가씨들은 환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만큼 우리 열싸게 노는거야. 자, 우리 수수께끼 풀이를 해볼가? 우선 저 반주기 끄고 …”
 필경은 예술에 투혼했던 피는 속일수 없는법, 방황은 격에 틀리게 그네들과 명곡 알아맞추기 유희를 벌려나갔다. 작곡가 이름이나 주어내면 상으로 지페 한장 뽑아 아가씨의 앞가슴에 쑤셔박아주고 맞추지 못할 때엔 가차없이 궁둥이를 철썩 갈기고 벌주를 들이대기도 했다.
 “모자라트 운명교향곡도 몰라!” 철썩!
 “뭐 넌 그래도 베토벤님은 알고있구나. 옜다!”
 “야, 넌 그저 한국노래밖에 몰라. 부옇게 남자한테 떼우고 징징 우는 소리밖에 없는거. 너 <카르멩>이란 사랑의 교향곡 못들어봤니?”
 철인은 그러는 방황의 짓거리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저도 몰래 무대우에서 열련하던 그전날의 모습과 오늘날 KTV방에서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고있는 방황의 모습을 견주어보았다. 다른 공식의 삶을 살고있는 지금의 방황에게서 철인은 한마리의 화려한 나비가 남기고 떠나버린 빈 고치나 다름없는 허무를 느끼고있었다. 철인은 그 어떤 반감과 실의에 빠진듯한 눈길로 한동안 그를 건너다보고있었다. 그 내내 고쳐짓지 못한 랭철한 눈빛이 방황의 눈과 맞부딤 했다. 방황은 질린듯 시선을 거두었다.
 “왜 그래? 선생은? 술도 마시잖고.”
 낯꽃을 붉히며 방황이 물었다.
 “나 지금 웬 소년 하날 생각코있는중이요.”
 철인은 여전히 사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채 혼자말처럼 말했다.
 “뉜데?”
 “화장실에서도 바이올린련습을 해왔던 어떤 남자앨.”
 녀급을 조여안았던 방황의 팔이 스스르 풀렸다. 덫을 맞은듯 방금전의 안색을 험상궂게 바꾸며 곁에 바싹 다가앉은 아가씨의 어깨를 데퉁스레 밀어냈다.
 “받쳐주는 녀자도 못따먹고 너 왜 그런 말만 하고 앉았어? 에익, 김 샌다- 술이나 따라아!”
 순간 빙점으로 내려간 기분전환에 시끌벅적하던 방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암울해진 표정으로 거품이 느긋이 흘러내리는 맥주 한컵을 단숨에 굽낸 방황은 그때까지 한손에 잔뜩 거머쥔 지페한장을 수습할 길 없어하다가 허공에 홱 내쳐버렸다. 돈나비가 너울너울 란무했다. 방황은 맥죽거품이 게발려진 안경너머로 그 돈의 란무를 바보처럼 지켜보았다. 그러다 곁에 앉은 아가씨의 무릎에 무너져내렸다. 피난처를 찾는 장꿩처럼 그 무릎에 머리를 한껏 처박았다. 그러는 그의 두어깨가 톱질하고있었다. 나중에 그는 괴상한 곡성으로 울기 시작했다….
 드디여 저쪽 밀페식방의 문이 열리며 취기에 불깃불깃 색을 먹은 남정 몇몇이 나오고 그뒤에 농염한 술좌석 배동녀들이 줄레줄레 나와 손님을 문께까지 바래주었다.
 “춘매, 손님 오셨다- “
 카운터의 아가씨가 손님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나른히 돌아서는 아가씨들중의 하나를 불렀다.
“나한테로? 손님이?”
 달달 볶은 머리를 한, 눈이 유난히 큰 아가씨가 반문하며 다가왔다. 철인 식지로 안경테를 추어올렸다. 춘매. 그날 방황이 낸 명곡제목을 많이 맞추어 팁을 제일 많이 탔던 그녀를, 팜플렛속에 찍혀진 그녀를 철인은 대번에 알아낼수 있었다.
 “뉘신데요?”
 기억에 없다는듯 아가씨는 철인을 바라고 눈갓을 치켜올렸다. 매일마다 기계적으로 손님을 치러내는지라 모를법도 했다.
 “모르겠어요? 그럼 나를 알아 못본다쳐도 명월술 도매부의 방경리는 알고있겠지요.”
 철인 다급함을  참지 못해 본문을 내들었다. 순간, 아가씨의 안색이 해갈하게 질리고있음을 철인은 희미한 불빛에서도 보아낼수 있었다. 아가씨의 포만한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있었다. 그 입술을 옥물며 춘매아가씨는 고개를 틀었다.
 “나 그런 사람 몰라요.”
 “왜 회피하려 드는겁니까?”
 “나 그런 사람 몰라욧!”
 발작적인 투명한 고음을 내지르며 그녀는 몸을 홱 돌려 휴게실로 들어가려 하였다.
 “춘매아가씨!”
 그러는 그녀의 발목을 철인이 저력감있는 부름이 휘감아 당겼다.
 “그럼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죠?”
 철인은 팜플렛을 그녀앞에 펼쳐들었다. 그녀는 질린듯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철인은 그녀의 경계의 마음을 해소하련듯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난 이런 사람입니다. 방겨일와 가까운 사이면 혹시 이 이름을 들어본적 있을겁니다.’
 … 둘은 KTV의 빈방에 마주앉았다. 잠자버린 TV화면과 희미한 불빛아래에 가라앉은 주홍빛주단이 방안의 괴적함을 더해주고있었다. 철인은 방황과의 도타운 관계사며 그의 실종이며에 대해 우선 간추려 이야기해주었다.
 “담배 있나요?”
 여직 곰상히 들어주고만 있던 춘매가 물어왔다.
 “사내란 놈이 담배를 몰라놔서. 저 한갑 요구하지요. 내가 한턱 내는 세치고.”
 카운터의 아가씨가 “힐톤” 한갑을 가져왔다. 수상쩍은듯한 눈으로 둘이를 훔쳐보았다.
 “그 사람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많은 애들중에 날 특별히 좋아했어요. 내가 다른 애들보다 노래기량이 좀 삐여난편이였거든요.”
 담배를 몇모금 맛나게 빨고나서 실눈을 지으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리구, 돈 많다고 녀자와 지분거리는걸 업으루 삼고있는 그런 사람 같지도 않았어요. 여직 제 몸 한번 만져보지 않았더랬어요.”
 아치를 틀며 피여오르는 담배연기를 지켜보며 느릿한 어투로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갔다.
 “광고사진을 찍고 돈도 많이 줬어요. 그리구… 내가 고향에 돌아가 유치원 꾸리는걸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네도 있고 회전목마도 있는 유아원 … 유치원교양원이 되는 것이 저에게는 둘도 없는 소원이였어요. 지금 이런 일을 하게까지 되였습니다만…”
 자조의 그늘이 드리운 어조로 말하며 그녀는 씁쓸하니 웃었다.
 “그러다 그 집 사람한테 들통이 나버렸지요. 그 녀공장장… 사람잡게 생긴 광대뼈를 가진 녀자 있잖아요. 우린 한동안 사이가 뜸해졌댔어요. 그러다 어느날 … 넉달전이니깐… 6월중순쯤이였죠? 그 사람이 문득 찾아왔어요. 몸도 쉬울 겸 마음도 쉬울 겸 멀리 놀러 가자는것이였어요. 바이올린 하나만 달랑 들고서 말이예요. 우린 해변료양소로 내려갔더랬어요.”
 “네에??? 해변료양소로요?”
 철인 몸을 후딱 일으키며 웨지다싶이 물었다. 왜서 그렇게 온몸으로 경악했는지 자신도 알길 없었다. 그저 순간 무언가 뇌리에서 번개처럼 번쩍 톱날을 긋는 것이 있었다. 그의 반응을 느끼지 못한채 낡은 레코드처럼 춘매는 추억의 연장작업에 열심하고있었다.
 “그날 밤, 주숙을 잡고서 시종 들뜬 마음이였어요. 비록 버려진 몸이지마는 그렇게 신분있고 인격좋은 사람한테 모든걸 주고싶었어요. 그런데… 목욕실에 들어간 그 사람이 … 종내… 나올줄을 몰랐어요…”
 그녀의 어조가 흐릿하게 변조되여갔다.
 “…나는 더는 기다려내지 못하고…목욕실 문틈으로… 아!’
 당시처럼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새여나갔다.
 “그런 피부를 가진 사람 처음 봤어요. 신다리로부터 온통 고기비늘같은 것이… 모든게… 모든게… 악몽이였어요… 대체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겠어요.”
 두손에 얼굴을 묻으며 그녀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울기 시작했다. 철인은 느닷없이 부르르 진저리가 쳐짐을 금할수 없었다. 이어 그녀는 산발한 머리를 쳐들었다. 코물을 흡 들이마시고나서 축축히 젖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윽해서야… 목욕수건으로 몸을 꽁꽁 여미고 그 사람은 침실로 나왔어요… 그 사람 아무 말 없이 나를 오래도록 쏘아보다가… 창가에 앉아 술응ㄹ 마시기 시작했어요. 나란 사람이 있다는걸 잊기라도 한것처럼… 난 한구석에 쪼크리고 앉아 떨고만 있었구요…”
 그녀는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집어삼키며 이야기를 꼬아내려가고있었다. 그에 따라 철인의 신경말초는 튀도록 만궁이 되여있었다.
 “한밤중에 그 사람은… 바다가로 나갔어요… 바이올린을 안고서… 그날 밤, 료양소의 사람들은 장밤내내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후로… 그 사람은 돌아오지를 않았어요…”
 철인은 거칠어지는 호흡을 애써 곰삭이였다. 놀라운 충격이 달군 인두처럼 그의 가슴을 지지고있었다. 땀에 흥건해진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문지르며 다시 담배갑을 집어들고있는 그녀를 바라고 한마디 했다.
 “나 담배 한대 주십시오.”
 토템의 그늘
 노래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 이야기하는 사람, 까닭없이 홍소를 터뜨리는 사람… 못봤던 그림책을 보는 설동한 눈매를 하고 철인은 혼돈의 이상세계를 찾아왔었다. 정신병원 정원의벤취우에 철인은 원장님과 마주앉았다. 조선족으로서 이방족들 못잖게 정신학연구계에서 권위인물로 지목되고있는 원장을 취재하려 온것이였다. 그들은 벤치에서 해바라기하러 나온 정신질환환자들의 군상을 이윽토록 지켜보고있었다.
 “아름다운 에스빠냐 아가씨
 사람들은 모두다 그녀를 좋아한다네.”
 화단곁에서 온 얼굴에 덕지덕지 연지곤지를 바른 녀환자가 두손을 사려잡고 목청 깨져라고 노래부르고있었다.
 “뛰뛰- 빵빵- “하얀 장갑을 낀 젊은 총각환자가 입으로 연신 자동차 경적소리를 내며 화단을 에워싸고 달리고있었다.
 “… 통계로 보면 전국의 정신질환환자는 해마다 붇고 있는 급증세를 보이고있습니다. 그 발병률은 11.7프로입니다. 말하자면 1억이나 넘는 사람이 이러저러한 정신질환을 가지고있다는 겁니다. 놀라웁지요. 이는 10년전에 비해…”
 배가 불룩한 녀환자 하나가 다가왔다. 원장을 바라보고 못나게 웃었다.
 “원장선생님, 구토가 나고 시쿤 음식이 당겨요. 나 아마 임신한 것 같아요.”
 “정말… 그 사람 어릴적 엉뎅이를 개에게 물린적 있습니다.”
 물빛고인 눈으로 철인은 쳐다보고나서 단심이 다른 교실로 걸어들어갔다. 둔중한 손풍금에 눌려진 갸냘픈 어깨, 허나 불행을 디딤돌로 삼고 그 어떤 결의에 각인된듯 높이 솟은 그 어깨를  철인은 한동안 지켜보았다. 이어 교실에서 다시 싱그러운 악기소리 울리기 시작했다.
“도- 레- 미- 화- 쏠- 라-씨- 도- ”
“도- 씨- 라- 쏠- 화- 미- 레- 도- ”
 
찬란한 미지수
 
 △ㄷ시 해변료양소 구역에서 발견된 불명의 생명체에 대한 가설 D---
 “… 우리는 이를 극비밀적인 새로운 령역의 연구제품이 류기된것으로 볼수 있다. 근년래 유전학에 대한 연구는 비약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단단한 유전정보를 다른 동물의 수정란에 주입하여 개량품종을 얻을수 있다. 즉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낼수 있는것이다. 이는 드 무슨 과학환상영화나 소설책에서만 보아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닭의 성숙된 란세포내에 정보핵산을 분리시킨 다음 그것을 게사니의 수정란에 주입시켜 게사니닭이란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적 있다… “
 이른바 불명체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있었다. 그에 따라 관광국 려행사들에서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불명체의 이름으로 유람선명을 명명하고 불명체의 이름으로 청량제품의 상표를 달고 불명체가 발견된 곳을 관광명소로 지정하고… 모든것은 돈벌이를 위해 용뇌하고있는 이들에 의해 이런저런 해괴한 제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오고있었다. 고향에서 돌아온 철인은 한동안 무슨 일엔가 열심하더니 이어 불명체연구장소를 찾았다. 어느 한 발언자의 흥감스런 가설이 끝나기 바쁘게 연단으로 뛰여올랐다. 연구회 주최인이 발언목록을 쳐들고 순서표에 명단 없는 철인을 제지시키려 했지만 그러는 그를 밀치다싶이 하고 연단으로 올랐다. 철인은 잠시동안 번들거리는 이마와 번뜩이는 안경들을 휘둘러보았다. 달력에는 언녕 가을이 깃들었고 회의실엔 에어컨까지 켜놓았지만 그는 까닭없는 열기를 느끼고있었다.
“… 제 친구 방황이는 원체 수석바이올린수였습니다.”
 철인이 잠겨드는 목청을 살리며 입을 열었다.
 “… 파크니니만큼은 못되여도 그렇게 되려고 애를 쓰던 바이올린수였습니다. 그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였습니다. 겨울날 학교 화장실에서마저 기량련습을 해오며 성장했던 그에게는 예술이 꿈이였고 전부였으며 희망이였습니다.”
 모두들 의문에 눈확을 지릅뜨고 철인을 올려다보았다. “무덤앞에서 유세차. ”하고 축문을 읽지 않나. 처가집 번지수를 잘못 찾지나 않았나 하는듯한 눈길이였다. 연구회 장소에서 외곬으로 나가고 아주 틀리게 나간 웬 동닿잖는 소리나는듯 얼빠진 눈매를 하고있었다. 그러건말건 철인은 제나름대로의 격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 물론 그는 천부적인 이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불안하고 가난한 예술가였습니다. 수석바이올린수에게 변변한 바이올린 하나 없었습니다. 그 꿈을 이룩하기 위해 그는 가정교사역도 해봤고 그의 안해는 퇴근길이면 술공장을 찾아 잡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상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목숨으로 여겼던 바이올린을 버린거지요.”
 모두들 저도 모르게 그 “동닿지 않은 이야기”에 끌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주최인도 최면된듯 한켠에서 잠자코 들어주기만 했다.
 “바이올린을 다루었던 손으로 그는 누룩을 주물러야 했습니다. 술공장을 경영하게 되였던것이죠. 허나 세상돌림을 아름다운 곡조로만 파악해왔던 그에게 있어서 상계란 너무나 생소한 곳이였으며 지어 가혹한 곳이였습니다. 권세욕, 물욕, 명예욕, 도전, 암투, 질투, 음모… 리상과 괴리된 풍진세상에서 오도된 심리로 하여 그는 무서운 대가를 자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영의 실책으로 빚어낸 거액의 손실이 큰 대가였지만 그보다도 더 큰 것은 처자의 사랑을 잃었고 나아가서는 음악을 잃은 것이였습니다. 곤혹스러운 나머지 그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였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하해>에서 실패한 몸과 마음으로 진정한 바다를 찾아가게 되였습니다. 우리 시의 해변료양소앞바다에 몸을 던지고말았지요. 바이올린을… 안고서 말입니다.”
 장내가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터져나오려는 오열을 삼키려 철인은 한동안 뜸을 들었다.
 “그 친구의 왼손 약지에 파렬상이 생긴 허물이 있습니다. 왼편 귀쪽에는 무사마귀 하나가 있구요. 그리고 오른쪽 치골에서 웃쪽 방향으로 부채형이 되게 개에게 물린 이발자욱이 있습니다. 문치 두대는 5년전에 해넣은것인데 당시 썩 선진적이 못되는 비닐재료로 만든것이여서 지금은 도태품종입니다.”
 철인은 문건가방에서 증실재료 한묶음을 꺼내여 무겁게 쳐들었다.
“이것은 의학원의 몇몇 사생들과 제가 이런저런 가설로 그 정체를 해명코저 하는 불명생명체의 몸에서 증실해낸 상처자욱, 사마귀와 인공이에 대한 도편자료들입니다.”
 장내는 비등점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럴수 없어!- ”
 누군가 웨치다싶이 말했고 누군가는 눈알을 꼬집었다. 철인은 장내의 반응를 완연 무시한채 여태껏 사색해왔던 문제를 연구제안처럼 내들었다.
 “물질문명의 전성시대는 장기간 응고되였던 사화결구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있습니다. 그 기존질서가 허물어지면서부터 사람들의 가치관, 도덕관 지어 인생관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변화가 모든이들에게 준 곤혹은 컸지요. 더욱이 그 변화에 당착한이들이 남보다 감성이 빼여난 지성인들이라할 때 그 곤혹의 중하는 더욱더 무거운것이였습니다.
 제 친구 방황이는 그 중하에 부대끼면서 방황해온 허다한 사람들중의 하나였습니다. 시대가 배태한 둘도 없는 희생품으로 되고말았지요… 친구는 <한 예술가의 생애>라는 비극적인 교향악을 가장 즐겨들었더랬습니다. 지금 보면 그의 숙명적인 예감은 적중한것이였습니다…”
 철인은 단숨에 오랫동안 체중되였던 것을 뿜어내버렸다. 폭넓은 달변을 쏟아내고는 그 자리를 뛰여나오고말았다. 엘레베터도 타지 않고 27층의 과학기술청사마천루의 계단을 달아내렸다. 그러는 그의 볼로 땀과 주체할길 없는 눈물이 발을 잇고있었다.
 
열반의 바이올린
 
 … 억겁으로 마냥 그러하듯이 바다는 설레임을 그칠줄 모르고있었다. 오성(悟性)을 깨치려는 독실한 신교자와도 같이 끊임없는 번민과 방황속에 거구를 뒤척이고있는것이다.
 철인은 해변료양소앞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서있었다. 잠망경을 끼고 고무발을 한 잠수인 2명이 잠수작업을 거듭하고있었다. 바다는 연신 두사람을 삼켰다가 토해내군 한다. 신비한 무저동같이 그 깊이와 내용을 알길 없는 바다를 철안은 착잡한 심경으로 지쳐보았다. 여러 번 수확없이 숨돌리러 나온 잠수인들은 바람이 세다느니 물이 차다느니 게두덜거리면서도 철인의 진지한 청구의 눈매에 밀려 다시 바다에 자맥질해들어가군 했다. 흡수되듯 잠겼다가는 튕겨나듯 솟구쳐 나온는 단조로움만 거듭하던중에 잠수인 하나가 숭어마냥 풀떡 몸을 솟구치더니 환음을 질렀다.
 “건졌다!- ”
 잠수인의 손끝에 걸려나온 것은 와이샤쯔였다. 방황이가 선호해입던 “한립표”와이샤쯔였다. 다른 한 잠수인은 도수안경하나를 쳐들고 나왔다. 철인은 그 안경을 받아 물기를 닦아내였다. 분명 방황의 호기스럽고 운두높은 코끝에 위태스레 걸려있던 도수안경, 자기와 꼭 같은 도수의 450도짜리 안경이였다.
 “건졌다아!- ”
 또 한번 환음이 터져나왔다. 허나 이번의 소리는 방금전보다 훨씬 더 높고 배가 된 기쁨에 부풀어있었다. 바이올린이였다. 잠수인의 물에 잠긴 몸우로 불쑥 쳐들린 황금의 바이올린이였다. 잠수인의 물에 잠긴 몸우로 불쑥 쳐들린 황금의 바이올린은 검푸른 바다빛에 대조되여 무척이나 정감적인 색채를 발산하고있었다. 철인은 엎어지듯 달려가 빼앗다싶이 그 바이올린을 받아안았다. 바이올린의 선에는 푸른 해초가 추억처럼 엉켜붙어있었다. 철인은 떨리는 손으로 그 풀들을 말끔히 뜯어냈다. 바이올린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바이올린의 공명함은 말없이 우멍눈 같은 외눈으로 철인은 바이올린이 뿜어내고저 하는 곡조를 분명 들을수 있었다. 베이료쯔의 “어느 예술가의 생애”며 파그니니의 “24수 수상곡”이며 언제나 진한 독백 같던 친구의 한옥타브 높은 말소리며… 환청같이 울리는 그 주술적인 음악소리에 철인은 참월한 감개에 빠져들었다. 철인은 바이올린에 볼을 꼭 대였다. 백사장에 무릎을 털썩 꿇고는 소리죽여 울었다.
 어느새인가 모두들은 가버리고 노호하고있는 바다가에는 철인이 혼자뿐이였다. 철인은 호주머니에서 무언가 끄집어냈다. 책이였다. 방황이가 가장 즐겨듣던 안데르쎈 동화 “인어공주”였다. 철인은 책을 펼쳐들고 바다와 마주한채 조용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상대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듯 열심히 읽고 있는 그의 어깨너머 황혼의 잔영이 슬프게 보였다.
 “… 깊음 바다속의 물은 아릿다운 수레국화의 꽃잎마냥 푸르고 환히 꿰뚫어보이는 수정구마냥 맑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깊고도 깊어 닻줄을 아무리 길게 풀어놓아도 닿지 못한답니다. 바다밑에서 바다우까지 닿자면 수없이 많은 교회당의 높은 뾰족탑을 하나 또 하나 올리쌓아야 합니다. 그렇게 깊숙한 바다밑에 인어들이 살고있었습니다…”
 안주하지 못한 바다혼들의 마음을 무마해주었던지 차분한 이야기에 바다는 셀레임을 멈추기 시작했다. 철인은 무아경에 빠진채 계속 동화를 읽어내려갔다.
 “… 해가 바다우에 떠올랐습니다. 해빛이 부드럽고 따사롭게 차디찬 바다의 거품우에 비쳤으므로 인어공주는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보았고 머리우로 아름답고 투명한 생물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의 흰 돛과 구름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어데로 가고있나?>
 인어공주가 물었습니다.
 <하늘나라로.>
 다른 목소리가 대답하였습니다.
 <인어공주에게는 불멸의 령혼이 없답니다. 하늘나라 사람들에게도 불멸의 령혼은 없지만 그들은 착한 행동으로 령혼을 창조한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로 날아가고있지요. 우리는 꽃향기를 뿌리며 건강하고 즐거운 정신을 뿌립니다. 이렇게 3백년동안 우리가 할수 있는 온갖 착한 일을 한다면 우리는 불멸의 령혼을 얻게 되고 인간이 되여 그 행복을 영원히 누릴수 있지요.>
 인어공주는 팔을 쳐들고 하늘의 태양을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은 눈에 가득히 넘쳐나고있었습니다… “
 신들린듯했던 책읽기가 끝났다. 철인은 책을 바다멀리로 힘껏 뿌리쳤다. 친구 방황의 호흡이 서린 바다에 전해보냈다. 책은 긴 호를 긋다가 바다의 품에 떨어져안겼다. 바이올린을 꼭 껴안고 썰물에 몸을 싣고 가는 “인어공주”를 친구에게 보내는 진지한 명복을 철인은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아스라한 허허바다 청자빛 그 한끝을 충혈시키며 비장한 오페라극의 종장에 막이 내리듯 주홍빛 저녁노을이 내리고있었다…
 
 
도라지” 1996 5월호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14. 산들 바람 Op.30 No.5-휴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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