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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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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모션으로 넘는 삶의 릉선
2014년 09월 02일 08시 57분  조회:3040  추천:11  작성자: 김혁
. 영화평 .
 
슬로우모션으로 넘는 삶의 릉선
장률의 신작 경주
 
김 혁 (소설가, 영화수집가)



영화 포스터
 
장률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슬로우 모션이라는 단어를 배우게 됐다.
슬로우 모션(slow motion), 촬영에서 영상의 효과를 실제보다 느린 속도로 재생하는 기법을 말한다.
장감독의 거의 모든 영화는 그야말로 슬로우 모션을 보는듯한 느림과 여유가 있다. 이번의 신작 “경주”에서도 그 “느림”의 미학은 계속된다.
천천히 우려내는 차, 주인공이 진지하게 한수 펼치는 태극권, 밤길을 천천히 달리는 자전거, 지어 비가 내려 마당에 널어 말리던 차잎을 거두어 들이는 녀주인공의 동작마저 느리다. 그만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신작들속에서 속도를 거부한 감독만의 여유와 개성이 보인다.
“경주”는 중국조선족 출신 장률감독의 열번째 작품이다. 서른여덟 살의 데뷔작 단편 “11세”부터, 장편 “당시(唐詩)”, “망종”, “경계”, “중경”, “이리”, “두만강”, “풍경”까지 그는 경계에 선 사람들의 모습을 특유의 영상언어로 그려냈다. 시대와 지역을 관통하는 통찰력과 그만의 영상언어는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하여 전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속되는 주목속에 그가 내놓은 이번의 신작 “경주”는 충동적으로 떠난 짧은 경주 려행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인연과 사연들에 대해 보여준 영화이다.
 
 
 

영화의 한 장면
 
북경대학에서 동북아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 최현은 절친한 선배의 장례식에 참가하려 한국을 찾는다.
장례식을 마친 그는 7년 전 그 죽은 선배와 함께 갔던 차집이 생각나 충동적으로 경주로 향한다. 차집을 찾은 최현은 차집의 주인 공윤희를 만나게 된다. 최현은 자전거를 한 대 빌려서는 경주의 곳곳을 돌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제날 아련한 추억을 다시 불러낸다. 추억을 담고 있는 하나의 매개체 때문에 이곳을 다시 찾게 되였고 그 일로 경주에서 뜻깊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영화는 최현의 시선을 통해 흡사 관광가이드처럼 경주를 관광한다. 관객들은 그의 여정을 2시간이 넘게 따라가며 그가 겪게 되는 모든 일에 동참 한다.
영화에는 신민아나 박해일과 같은 한국의 유명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신민아는 상큼한 이미지로 신세대가 좋아하는 배우요, 박해일은 소설로 알려진 “국화꽃 향기”에서 년상녀와 죽음을 넘어선 열애로 중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배우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남선녀같은 배우들을 기용했다고 하여도 영화 “경주”는 관객들이 기대했던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그저 추상적이면서도 평범한 일상의 공간을 담담한 영상언어로 이야기해 나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인연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장감독은 느리고 절제된 시각으로 우리들의 삶을 정의하고 일상의 발견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박한 색조를 지니고 있는 신작을 우리앞에 선물했다. 

 
 
영화 포스터
 
절주가 빠르고 컴퓨터그래픽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출연하는 상업영화에 길들여져 있는 관객들에게 있어서 “경주”는 마냥 지겹기만 한 영화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시간30분이라는 단편영화로는 굉장히 긴 시간 내내 느릿느릿 여유로운 호흡으로 진행되는 “경주”, 영화속 주인공의 려정은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임에도 그속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상당히 느린 템포로 전개되기 때문에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정적인 화면, 느린 화면을 통한 관찰자적 시점에서 려행지를 바라보는 과정은 장르적 재미를 원했던 일반 관객들에게는 지루할수 밖에 없는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타포(은유와 상징)들을 발견해 내고 시시콜콜 보여주는 이러한 정적인 순간을 우리의 익숙한 일상과 대입해서 본다면 신선한 재미를 발견할수 있을것이다
 

서두름을 삼가하고 감상해 본다면 영화 “경주”의 매력은 다양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에피소트, 우연같지만 자연스러운 상황설정, 순간순간에서 삽입해 넣은 코믹함, 인물들의 작은 심경변화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감성 묘사, 절제되고 여백이 풍부한 대사, 아름다운 도시의 경관을 누비면서 보여주는 영상미… 그속에서 짙게 배여나오는 장률감독의 삶의 철학을 들 수 있다.
영화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에피소트들로 다양한 관중을 향해 작품을 열어놓았다. 때문에 다양한 추론이 가능할것이다.
 
   1박2일 동안 주인공의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인연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일상 개그로 양념해 펼쳐내고 있는 영화 “경주”는 어찌보면 한 지식인의 일탈이다. 일탈이란 흔히급박한법인데 그 일탈마저도 잔잔하게 담아낸다. 커다란 일탈은 없지만 아슬아슬 일탈을 꿈꾸는 사람의 심리를 담았다고 할까.
북경에서 온 주인공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처럼 특이하고 유별난 행동으로 사람들로부터 핀잔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영화의 전반 흐름처럼 주인공도 역시 그 특유의 느림을 보인다. 선하면서 살짝 멍한 외모에 소처럼 느릿느릿움직이면서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많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주인공의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복잡하기도 하고 애매하기도 한 캐릭터가 장감독의 메가폰아래에서 립체적으로 그려진것이다.
 

상당히 느슨한 영화이자 은유가 가득한 영화로서 “경주”는 삶의 불확실성, 인연의 신비함과 소중함, 사랑과 욕정, 분노와 그리움 인간의 본성등에대해 세세하게 렬거하며 다양한 메시지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 속에 흐르는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의 기류들을 놀랍도록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한 “경주”는 과거와 현재, 추억과 현실, 오해와 사실등을 버무리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와중에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가미해 영화에 웃음을 준다.
동북아정세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교수에게 똥이라 답변하는 주인공, 주인공을 한국영화 스타로 생각하는 일본아줌마 관광객들, 어설픈 태극권 시범을 보이는 남자, 차집벽에 붙어있는 해학적인 춘화.
여러 개의 비유적 코드를 숨겨두고있지만 장감독은 그속에서 무엇보다 기억과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성기게 엮어서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느린 분위기속에서도 끝없이 자살을 비롯한 죽음을 급박하게 거론한다. 영화는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친한 선배의 죽음, 이어 옛 사랑이 말해주는 락태, 공항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 귀띔을 주던 모녀의 자살, 오토바이를 타고 주인공의 앞을 스치던 폭주족들이 사고, 녀주인공 남편의 자살, 언젠가 찾았던 길녘 점쟁이 할아버지도 죽고 없다...
또 천년도 훨씬 지난 옛 신라 왕족들이 잠들어 있는 왕릉이 이곳 저곳에 널려있는데 영화에서는 그 거대한 무덤 옆에서 련인들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또 그 곁에서 천진란만한 꼬마들과 견학 온 아이들이 즐겁게 그 무슨 유원지처럼 뛰여 놀고 있다. 그들과 왕릉을 배치시키면서 삶과 죽음이 그렇게 언제나 맞닿아 있는 것임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영화는 이렇게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공간 경주에서 엇갈리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열번째 작품을 내놓은 장률감독
 
“중경”, “두만강”, “이리”, 그리고 “경주”까지 장률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만한 이 네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지명을 작품의 제목으로 정해 달았다. 장률 감독은 어느한 인터뷰에서 "나는 공간에 어떤 느낌이 있어야 이야기가 나온다. 더불어 그 공간에 어울리는 인물도 떠올리게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한적 있다.
그런 의미에서 촬영공간을 경주를 선택한것은 현명해 보인다. 경주는 천년의 력사를 지닌 신라의 수도로 유서깊은 력사적 공간이다. 경주는 도심 한 가운데 왕릉이 있고 그 옆에는 고분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온 도시에 도합 155개의 거대한 릉이 자리잡고 있다고한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소, 다시 말해 경주를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독특한 공간으로 감독은 설정하고있는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주인공들은 속도를 거부하는 공간, 고대의 흔적이 도시를 점령한 경주라는 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여 그에 걸맞는 이야기들을 펼채내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녀주인공 공윤희의 집은 창을 열면 눈앞에 초록색의 거대한 릉이 보인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릉이 보여요”라는 녀주인공의 대사는 그녀 역시 죽음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한다.
취한 녀주인공은 그 무덤에 엎드려 말한다.
"나 들어가도 돼요" 
윤희는 자신의 고통을 숨기면서 사는 녀자이다. 홀로 작은 차집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리별의 아픔과 그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모습은 바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경주와 닮아있다. 창문을 열면 바로 거대한 왕릉이라는 무덤이 보이는 곳에 사는 윤희에게는 죽음이 바로 곁에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것이다.
영화의 곳곳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장감독은 그렇다고 그 죽음을 어둡고 고통스러운 모습으로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그 무슨 하나의 안식처인듯 무덤우에 편하게 엎드리고 무덤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무덤을 가까이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죽음을 좀 더 관조적이고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죽음의 일상화와 성찰에 관해 이야기한다. 고분의 부드러운 릉선처럼 커다란 명제를 절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참 부드럽다.
 
장률감독의 해학과 영화 도입부의 계기를 보여준 영화속 춘화
 
“경주”는 호불호가 크게 갈릴수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정말 천천히 가는 영화인데 그때문에 이런 스타일의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무척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고 상당한 이질감을 느낄수도 있을것이다.
반면 작품속에 담겨져 있는 은유와 상징들을 읽고 해석할수 있는 영화적 년륜과 안목을 지닌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영화가 끝난후에도 진한 여운을 남겨주는 그런 작품으로 될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혹자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저 그런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고 혹자는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보았다며 훈훈해 질수도 있는 극과 극의 반응을 기대할수 있는 영화, 유려한 영상, 배우들의 호연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 가운데 느린 호흡속에 삶에 대한 짙은 련민을 부드럽게 보여준 “경주”이다.

"예술세계" 4월호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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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김혁팬,장율팬
날자:2014-09-05 14:22:44
역시 김혁선생, 영화광이라고 소문있더니 금방 나온 영화에 평을 달았군요. 근데 이 영화 어데서 구하죠? 장률의 영화는 보고싶은데 겨우 '두만강'밖에 못밨습니다. 영화에서 장례식에서 제비아매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좀 해학적이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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