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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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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연변문학"상 수상작품- "뼈"
2014년 10월 23일 10시 26분  조회:3087  추천:11  작성자: 김혁


제33회 "연변문학"상 수상작품


. 중편소설 .

 


- “중국조선족테마소설” 계렬

 

김 혁

 

[그림: 미국화가 조지아 오키스의  "붉은 산과 뼈" ]

 

 

수요일: 랭면과 도적

 

주문한 국수가 나왔다.
그윽한 육수물에 반쯤 담겨진 찰진 국수발, 그우에  소고기 육편, 닭고기 완자, 절반 베인 삶은 달걀, 사과배 조각으로 곱게 고명을 얹은 국수가 나왔다. 국수는 그 무슨 음식이 아니라 한점의 정교한 조각품을 방불케 했다.
그 국수를 수근은 멀거니 내려다 보았다.
임금님전에 올리는 수라상을 먼저 점검하는 내시처럼 조심스레 면발을 입에 넣었고 잣과 깨가 동동 뜨는 육수물 한모금 떠서 맛보았다.
쫄깃했고 시원달콤했다.
몇해만에 먹어보는 고향 랭면인가! 입안 그득 고여드는 흥그러운 이 맛…
국수 한 그릇이 순간에 굽이 났다.
멸치를 우려 양파를 넣고 계란을 풀어 만든 육수물에 부추와 호박나물을 잔뜩 넣은 물국수며, 썬 김치와 참기름, 고추장으로 비빔한 비빔국수도 고향의 랭면맛보다 못했다.
또 한그릇 주문했다. 풍성한 면발을 다시 한번 허겁지겁 입에 넣던 수근은 국수발을 입에 가득 문 채 그만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먹고픈 국수를 마음대로 먹던 나날들과 국수를 함께 먹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수근은 기어이 눈물을 보이고야 만것이다.
눈물의 육수를 밑굽까지 비우고 수근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유명세를 떨쳐 온 랭면집이 신축공사중이여서 림시 개설한 분점임에도 화장실에까지 사람들로 붐비였다. 온 세상 사람들이 작심하고 랭면만 먹으러 모여 온듯했다. 하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한철이라 그럴법도 했다.
수근이네 마을 사람들도 한때는 시내행차를 하면 남정네고 아낙네고 할것없이 랭면부를 찾아서는 기어이 랭면 한그릇씩 맛보군 했다. 랭면 맛보기는 시골사람들이 시내구경에서의 그무슨 통과의례처럼 되여 있었다.
   화장실에 걸린 대형 거울앞에서 저마다 포장수저에 딸려 온 이쑤시개를 꼬나든 사람들이 허연 이를 드러내고 이발청소를 하고 옷무새와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그들처럼 화장실 거울앞에 마주서던 수근은 홀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짧은 비명을 흘리며 후다닥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금방 앉았던 자리, 국수 두 그릇을 허겁지겁 비웠던 그 식탁곁에 놓았던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 쥐색 바탕에 긴 손잡이와 바퀴달린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렸다. 흥분할때나 급할때면 저도모르게 나오는 반사적인 습관이다.
트렁크, 여게 놨던 트, 트렁트를 못봤나요?
급한나머지 수근은 말까지 더듬었다.
지진이라도 인듯 비명을 동반한 수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입에 문 국수발을 끊치도 못한채 곁자리의 아낙이 머리를 저었다.
선머슴아이의 서투른 빗질처럼 주위를 마구 훑던 수근의 눈길이 랭면집의 창문밖을 향했다.
랭면부 맞은켠의 뻐스정류소에서 막 떠나려는 공공뻐스가 보였다. 또 한번 기급한 비명을 지르면서 수근은 랭면부를 뛰쳐나갔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죽기살기로 뻐스를 쫓아갔다. 금방 출발한 뻐스라 속도를 내지않았기에 수근은 단박에 뻐스를 추월할수 있었다. 뻐스앞에서 두손을 쫘악 벌리며 차를 가로막았다.
끼익! 쇠갈기소리를 내며 뻐스가 멈춰섰고 운전기사에게서 앙칼진 욕설이 터져나왔다. 뻐스문을 원쑤처럼 쿵쾅 두드려대는 얼나간 사람같은 그에게 대체 무슨 영문이냐고 기사는 욕설과 함께 문을 열어주었다. 뻐스기사가 퍼붓는 욕설에도 술렁이는 차객들의 소리에도 개의치않고 수근은 땀냄새와 열기로 랑자한 사람들 틈바구니를 뚫고 들어가 대번에 쥐색 트렁크를 끌고있는 20대의 남자를 짚어냈다. 깡마른 몸에 메밀눈을 한 그 남자의 멱살을 와락 잡아쥐면서 감때 사납게 웨쳤다.
도둑이야! 이 놈이 내 가방을 훔쳤소.
도적으로 지명된 사내가 몸부림치며 항변했다. 그런데 사내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말은 하지않고 가을밭 참새라도 쫓는듯 으아! 으아!하고 새된 고음을 지르며 손발을 휘저었다.
아마 벙어리인가보오.
설마 벙어리가 그런짓 했을까!
한편의 단막극이라도 보듯 호기심에 흥미를 동반한 눈길들이 수근이와 도적사이의 실랑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파출소로 갑시다! 운전사량반 파출소로 가주시오!
수근이가 운전석쪽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는 사람처럼 웨쳤다. 그 소리에 차객들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가뜩이나 더워서 귀찮은 날씨에 재수없는 일에 휘말려 시간을 빼앗긴다며 불평불만들이 터져나왔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서로 확인해 보면 될거 아니오. 맞추는 사람이 임자고 못맞추는 사람이 도적인게 확실하지.
기사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가와 제안했다. 사람들중에서 중년남자 하나가 원주필을 뽑아 내밀었다. 벙어리가 말을 못하니 안에 뭐가 들었는지 자기 오른 손바닥에 쓰라고 했다. 수근이는 자기 왼 손바닥에 쓰라고 했다.
억울하다는듯한 표정만 짓고있던 벙어리가 손짓발짓 해가며 차에서 내리겠다고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는 그의 손목을 중년남자의 우악진 손이 단단히 감쳐쥐였다. 마지못해 벙어리가 그 중년사내의 손에 뭔가 적었다.
기사가 손바닥을 펴들고 들여다 보았다. 벙어리가 쓴것은 “의복”이라는 두 글자였다.
원주필을 받아들고 수근이도 적었다. 힘주어 커다랗게 적었다. 손바닥에 적혀진 글자를 헤아려 보던 중년사내의 두눈이 휘둥그래 졌다. 땀에 흥건한 사내의 손바닥에 적혀진 글자는 한 글자였다. 그 글자를 운전기사며 차객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의 눈동자 역시 순간에 영화감독의 큐!사인을 받은 어설픈 엑스트라의 과장된 연기처럼 일제히 휘둥그래졌다. 땀에 젖어 글자의 획들이 이니셜 대문자처럼 굵어진 글자가 사내의 커다란 손바닥에 넘쳐날듯 씌여져 있었다.
뼈.

당신 정신 온전한 사람 맞소? 정신을 한국에 두고 왔나? 선진국 가서 11년이나 구을다왔다는 사람이 이 정도밖에 안되오?  아니 무슨 사람이 벌건 대낮에 사람 뼈덩이를 싸들고 시내 복판을 활주하는가 말이요? 엉!
파출소에서 수근은 당직 경찰에게 보리쌀 닦이듯 하고있었다. 경찰들이 우루루 모여들어 못볼 괴물이라도 보듯 수근이를 지켜보았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리며 무어라 적당한 변명의 말을 찾지 못해 했다.
벙어리 도적과 어딘가 심상치않는 도적맞힌 사람을 싣고 뻐스는 부근의 파출소로 왔다. 경찰들이 대번에 그 벙어리 도적을 알아보았다. 전과범인데 그 말고도 무리를 지어 소매치기를 다니는 벙어리도적들이 더 있어 수사망을 펼치고 있는 중이였다.
그런데 도적맞혔다는 물건을 확인하며 트렁크를 여는 순간 담당 경찰은 매일 흉악범을 상대로 하는 경찰답지않게 초풍할지경으로 놀라했다.
트렁크안에 두개의 비닐주머니가 들어 있었는데 그 비닐 주머니에 나뉘여 담겨져있는것은 뼈였다. 텅 빈 눈구멍이 선연하고 이발이 들쭉날쭉한 해골바가지며, 굽이 나간 접시같은 골반, 길다란 정갱이 뼈… 분명 사람의 뼈였다.
내 아부지 어무니 뼙니다.
수근이가 서둘러 설명했다. 한국에서 일하다가 부모님의 산소가 모셔져있는 산소의 이장통지를 접하고 서둘러 귀국했다고 했다. 왕복티켓을 끊었는데 급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서둘러 화장하려다가 그 뼈를 하마트면 도적맞힐뻔했다는것이다.
묘를 이장하고 뼈를 화장할려면 민정국 사무소의 증명서류가 있어얀다는것도 모르오? 이 사람이 이거 크게 경을 칠 사람이구만.
별의별 사건을 다 겪지만 이런 해괴한 일은 처음이라는듯 담당경찰은 부아통이 터져있었다.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해서야 수근은 파출소에서 놓여 나왔다. 수근의 신분증이며 려권 그리고 연고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등 신상명세며 장황한 설명, 그리고 뼈들의 오래 된 상태를 보아 상황파악은 되였다. 반양머리에 흙빛 피부, 황소처럼 둥글고 구순한 눈길을 한 그의 목소리에서, 표정에서 그리고 온몸에서는 진솔한 사람의 냄새가 났다. 더욱이 수근이네 고향의 묘지 이장통지도 신문사에 물어 확인했다. 그제야 경찰은 수근이를 믿는 눈치였다.
온 오후를 닥달질 당하고 나니 울컥 야속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법도 했다. 백주에 다른 물건도 아닌 사람의 뼈를 들고 시가지 곳곳을 쏘다녔으니 오해를 살만도 했다.
고향마을으로 가는 마지막 뻐스가 있으려나 생각하며 트렁크를 달달 끌고 어스름이 내리는 도로변을 따라 수근은 뻐스역으로 향했다. 그런 수근의 어깨를 누군가 가볍게 건드렸다. 누구냐고 돌아서는 순간 코잔등에 주먹 하나가 날아 들었다.
두손으로 코를 부여잡는데 이번에는 옆구리에 발길이 날아들었다. 얼굴이며 잔등에도 주먹과 발길질의 란타가 날아들었다. 한 두사람이 아니였다. 느닷없는 타작매에 수근은 도로변 하수구에 뒹굴었다. 폭행을 감행한 괴한들은 재빨리 어둠에 스며들듯 도망쳐버렸다.
수근은 몸부림치며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서는 수백개의 불나방이 날아다니는듯하고 코에서는 뜨거운것이 쏟아져 내렸다.
괜찮아요?
채소구럭을 든 할머니 하나가 다가와 코피를 쏟고있는 그에게 휴지를 내밀었다. 휴지를 돌돌 말아 코속에 쑤셔넣으며 경황속에서도 수근은 트렁크를 찾았다. 다행이 트렁크는 있었다. 트렁크도 온하루 불운함에 치대고있는 주인장처럼 길녘에 뒹굴고 있었다. 트렁크를 끌고 도로변의 화단에 걸터앉아 엉망이 된 몸과 마음을 수습했다.  
그들이 누군지 알것같았다. 시가지에 벙어리도적떼들이 출몰한다던 파출소 경찰의 말이 떠올랐다. 틀림없이 그들이라고 수근은 단정했다. 무작정 구타를 날리는 그들은 한결같이 수근이가 한낮 뻐스우에서 들었던 그 벙어리도적과도 같은 으아으아하는 특유의 괴음을 지르고 있었던것이다.
그야말로 수선하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고향가는 막차를 놓칠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던 수근이가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옆구리에 송곳으로 쑤시는듯한 통증이 왔다. 트렁크의 손잡이에 의지한채 수근은 아픔을 삭이느라 몸부림쳤다.
아마 뼈라도 다친 모양이다.

 

화요일: 수몰지(水沒地)의 사람들

 

오랜만에 귀국한 수근은 바로 고향마을을 찾았다. 부모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직도 마을에서 맨 마지막 사람으로 거짓말처럼 살아있는 팔순의 조막령감을 등에 업고 고향의 뒤산으로 올랐다.
뒤로는 11년만에 만나는 소꿉친구 병태가 다리를 잘숙잘숙 절며 따라섰다. 어쩌면 이제 겨우 40대중반의 나이에 풍을 맞아 손이 곱아들고 다리를 끌었다. 그런 성찮은 몸으로도 병태는 친구를 돕겠다며 기어이 따라 나선것이다.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고향사람들도 모두 마을을 떠나버렸다. 백여호를 웃돌던 동네에 겨우 여섯호가 남았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다섯호는 관내에서 온 한족들, 마을 원주민이라고는 병태와 그의 할아버지뿐이였다.
말(마을)에 남은 사람이라곤 벵신(병신) 꼬라지된 나와 꼬부랗게 늙은 우리 할배밖에 없다. 못생긴 낭기(나무) 선산 지킨다더니…
병태는 십여년만에 나타난 친구를 향해 씁쓸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주름이 찾아든 얼굴에서 세월여류(岁月如流)를 확인하면서 서글프게 웃었다. 지난 한밤을 간소한 술상이라도 벌려놓고 잔에 잔을 비우며 얘기 꼭지를 거듭 틀었다.
수근의 등에 업힌 조막령감은 다름아닌 병태의 할아버지다. 그 뒤로 쟁기를 챙겨들고 마을의 장씨성을 가진 한족나그네가 묻어 섰다. 병태가 “장보톨”이라 칭하는 그는 수근이가 한국으로 로무를 나간뒤 마을에 들어온데서 처음 보는 사람이다. 묘 이장을 위해 하루삯 300원을 주기로 하고 데리고 나섰다. 이장을 전문 하는 사람을 찾아 쓸려니 천원돈 아니면 안한다고 배포를 부렸다. 요즘 세월에 이장과 같은 장례절차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적었고 또 일 자체가 부정타는 일이라며 “겨울 딸기”격으로 부르는것이 값이였다.
그래서 생각다못해 년로한 병태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선것이다. 난장이를 겨우 면한듯 작고 왜소해서 조막령감이라 불리는 병태할아버지는 마을의 년장자격이다. 왜정때 글도 읽었고 마을에서 회계노릇도 오래 해오면서 일찍부터 마을의 대소사에 빠지지 않았던 몸이였다. 그러니 이장도 할줄 안다고 했다. 더우기 수근의 아버지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몸소 참가했던 령감이였다.
이장도 이장이려거니와 수근은 부모의 묘소를 어디에 모셨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수근이가 네살적엔가 세상떴으니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형님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쩌면 수근이가 한국으로 나간지 두달만에 갑작스레 세상떴다. 어머니의 비보를 듣고도 금방 출국한 몸이라 돌아와 장례에도 참가하지 못했던 수근이였다.
마른 사과처럼 쪼글쪼글 늙은 조막령감은 이제 죽기전에 고향의 뒤산에 한번 오르고 싶다며 뜨락에도 겨우 나서던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도 오래전에 중풍에 쓰러졌던 몸이다. 병태네 가족병력사에서 풍이 래력이다. 아버지도 풍을 맞고 돌아가셨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산수의 나이를 넘긴 몸이지만 많은 차도를 보여 다행이였다.
마을의 고샅길을 가로질러 뒤산으로 올랐다. 산은 옆구리를 조금 틔워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온 사람에게 길을 내주었다.
지질한 잡목과 잡풀이 발에 채였다.처음에 업고보니 령감은 바짝 여위여 빈 벼가마니처럼 가벼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팔막진 산길을 업고 오르려니 점점 더해지는 무게가 수근의 등짝을 압박해 왔다.
게다가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정수리가 잉걸불을 인듯 뜨거웠다. 직수굿이 입 다물고 걷는데 땀이 등판을 적셨다. 그렇다고 몸이 온전치 못한 병태와 바꿀수도 없는 일이였다.
도시의 수원(水源)과 발전(发电)을 위한 저수지 확장공사를 하면서 묘지는 물론 수근이네 마을 전체는 이제 수몰지(收沒地)로 물에 잠기게 된다. 그러면 부모의 분골을 두만강에 뿌리기로 수근은 마음먹었다. 원체 마을 뒤산에는 묘들이 수십 기가 있었지만 고향을 뜨면서 이장해 나가고 또 방치해두어 찾는이가 거의 없는 마을묘지는 버려진거나 다름없었다.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헐레벌레 찾아왔는데 그 묘소들을 이장할 시간이 이제 겨우 하루가 남았다.
 산자락에서는 벌써 불도젤이며 포크레인들이 부릉부릉 쇠이빨을 맹렬하게 갈아대듯 굉음을 울리며 작업이 시작이다. 무쇠팔로 나무들을 중둥을 쳐 쓰러뜨리고 바위돌을 밀어내고 흙을 깎아낸다. 거대한 쇠스랑에 찍혀 청청한 솔이 흰뼈를 드러내며 툭툭 분질러지고 있었다. 불도젤은 납작 엎드렸으나 미처 몸을 다 숨기지 못한 임자없는 봉분들을 마구 밀어제끼고 있다.
불도젤이며 포크레인, 트럭들이 뿜어내는 성마른 소음과 매콤한 연기가 산마루의 새소리와 풀냄새를 뒤덮어버리고 있었다. 산이 낮아지고 숲이 사라져가고 있다.
조(저)기 조(저)쪽 같아 뵈는데… 조기 늘근(늙은) 솔낭기 지(제) 혼자 서있는데, 응, 조기 조쪽으로 가보지무… 내 짐작이 틀림없을게다
조막령감의 조막손이 느릅나무, 가문비나무, 사시나무숲을 지나 홀로 허허롭게 섰는 늙은 소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산등성이의 확 트인 양지 바른 곳, 그 곳에 동그랗게 몸을 웅크린 봉분이 하나보였다. 비석도 상석도 없고 묵은 풀이 우묵한 봉분은 조금 내려앉아 보였다. 무덤앞에 령감을 내려놓자 령감이 조그많고 험한 손으로 봉분을 투덕투덕 두드렸다.
맞따! 이 뫼짜리(자리) 맞따. 여기서 조기 렬사비 아래쪽으로 꼳꼬지(곧게) 내려다 봐라. 과수밭 아래쪽 조기가 딸내미 셋이 몽땅 싸이판 나간 양봉재(쟁이) 강서방네 집이고 강서방네 곁집이 쏘련 나갔다 죽은 박서방네 집, 그 집 곁이 바루 수근이 너네 집이 아니고 뭐냐.
령감의 조막손이 가리키며 확인하는 산자락아래에 수근의 집 그리고 강서방네 집, 박서방네 집은 꿈 꾼듯이 사라지고 없다. 살던이들이 죽거나 떠나버린데서 언녕 주저앉아 오간데 형체조차 없고 빈 집터에는 쑥부쟁이, 능쟁이같은 잡초의 춤만이 무성하다. 그 거뭇한 빈자리들이 수근의 가슴을 저릿하게 했다.
용하게 찾아낸 오래된 봉분앞에 신문 몇장을 펴고 고량주와 명태포, 사과배 그리고 소시지나 과자들로 간략하게나마 제상을 차렸다. 조막령감이 시키는대로 배워가며 례를 치렀다.
종이컵에 술을 부어 무덤에 올렸다. 무릎꿇 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아부지 어무이! 더 좋은데 모실려고 집을 허무니  놀라지 맙소!
따른 술을 봉분우에 끼얹었다. 묘주위를 돌며 세번 크게 웨쳤다.
파묘(破墓)! 파묘! 파묘!
그제야 드디여 봉분에 삽을 박았다.
시간이 오래된 봉분이다. 아버지는 40여년전에 어머니도 11년전에 돌아가신지라 봉분은 풀뿌리로 얽혀 무척 단단했다. 곡괭이를 꽂고 앞뒤로 몇번씩 흔들어야 겨우 촘촘하게 쩔은 떼장을 한 뼘씩 벗겨낼수 있었다. 겉흙을 한꺼풀 벗겨내고 삽날을 힘들게 박아넣으면서 수근은 일이 쉽지않음을 알아챘다. 흙이 생각보다 단단했고 거치적거리는 돌멩이들도 심심찮게 나왔다.
  굳은 흙이 삽날끝을 구부러뜨리자 “장보톨”은 씨부렁거리며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로 상한 날끝을 두드려 폈다.
철겅철겅 삽질소리가 황량한 산의 정적을 깼다. 쟁기소리와 더불어 조근조근 조막령감의 이야기도 끼여들었다.
-원래는 이 축축한 땅에 내 먼저 묻힌 조상량반들께 때맞춰 공양을 드려야 그게사람 된 도리가 아니겠냐? 그리구 저 고향땅에서 쌀이고 풀이고 그만큼 뜯어먹고 훑어먹었음 묌(몸)이라두 죽어 저 땅에 묻혀 비료(거름)돼서 그 값이라도 하는게 옳이 된 도리지.
그런데 요쌔(요즘)는 모두 로문 (늙은) 한 어시고 이뿐 처자고 막 버리고 훌훌 떠나버리니 나 원참, 돈이 좋아 그런다마는 사실은 그 돈이 웬쑤(원쑤)인게다. 웬쑤!
조막령감이 한가슴 가득한 울기(鬱气)를 토해내며 짐짐하게 짓무른 눈꼬리로 수근이를 쳐다보았다. 자기에게 채문하고 확답을 구하는듯한 그 눈길에 수근은 눈길을 돌렸다. 고개를 수긋하고 그저 부지런히 일에만 몰두했다.
한국에서 일에 절은 몸이라지만 삼복염천에 땅을 파자니 쉽지가 않았다.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는건 물론 허리가 아프고 오랜 막일에서 얻은 관절통에 손목 인대가 끊어질듯 했다.
“장보톨”도 힘겨웠던지 중국말로 무어라 욕을 섞어가며 거칠게 곡괭이질을 해댄다.
수근은 한숨 쉬고 하자며 호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병태에게 뿌려주었다.
이거 한국담배꾸마
병태가 담배 한개비를 할아버지 입에 물려주었다.
남조선 골련(권연)이라니 어디 한대 먹어보자.
한국꺼라해서 다 조은건 아니겠지우. 담배하문 그래도 여기 화건종 담배가 최곱지
장보톨”에게도 권했다. “장보톨”은 담배를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더니 불을 붙여물고는 그늘을 찾아 쪼그리고 앉았다. 엄지와 검지로 끝을 잡고 필터밑까지 알뜰히 태워댔다.
금방 붙여 물었던 담배의 불똥을 끊어내며 이번에는 병태가 그로서의 울기를 뿜어댔다.
그쪽은 뭐 달도 여기보다 더 크다 그러덤둥? 더 밝다 그러덤둥? 그래서 다 말벌에 쐰 사람처럼 달아나 거기로 가버린담둥?
담배연기가 몽환처럼 묘소주위에 굼닐었다.
신코에 속흙을 잔뜩 묻힌채 삽자루에 손을 걸치고 수근은 산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농익고 꽉찬 여름이 들에서 일렁이고 있다. 풍성한 여름은 왔건만 마을은 텅 비여 보였다.
대부분 밭은 중국사람들에게 헐값으로 양도해 버렸고 더 많이는 버려졌다. 논의 한 가운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고압선 송전탑이 우뚝우뚝 마을을 침노(侵擄)한 괴물처럼 서있다.
집과 집의 노란 이영들끼리 접붙어 있던 다정한 모습은 오간데 없고 모두가 떠나버려 주저앉았거나 주저앉으려는 집들은 괴물에 쫓겨 비여진 흉가를 방불케했다.
왕년에 정답기만 하던 마을길도 형언하기 어렵게 더러웠다. 길복판에 말똥이며 버려진 농기계의 내연기관 부속품이 뒹굴었고 죽어서 털인형처럼 된 강아지 시체도 보였다.
뒤산 자락에는 과수밭이 펼쳐졌는데 과수에 경험이 적은 외지사람들이 되는대로 다루었던지 사과배가 불다 만 풍선처럼 조그많게 달려 있다.
원체 곡창이라 불리던 마을이였다. 과수가 잘되고 자식농사가 잘되는 곳이라 린근에 소문이 자자한 마을이였다. 하지만 오늘의 고향의 풍경은 장수가 맞지않아 버려진 낡은 화투장같이 진부하고 초라했다. 그 진부한 풍경도 이제 물에 수장되여 말끔히 사라져버릴 판이다.
선조들이 이 곳에 터를 마련하면서 심은 벼와 사과배나무, 그 척박하던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픈 간절한 념원과 종내는 주렁주렁 열매를 달았던 나날들에 대한 기원을 망가뜨린건 수근이만이 아니였다.
과수밭 언덕배기에 세워진 렬사비가 유독 눈을 찌른다. 비바람에 지워지고 오래동안 먹을 넣지않아 비명이며 렬사들의 이름조차 말끔히 지워지고 하얀 몸체만 남았다. 항일에 몸을 던져 마을을 지켰던 사람들의 기념비는 이제는 괴괴한 무덤같은 마을을 위해 세워진 커다란 비석처럼 보인다.
고향마을을 내려다보며 넋놓고 섰는 수근이를 보고 병태가 말했다. 
뭘 볼게 있다고 자꾸만 내려다 보고 그러냐. 없다, 싹 다 가버리고 아무도 없어. 그래도 수근이 니는 지금 이렇게 면례(이장)라도 하니 다 꽃이라 생각해라. 이제 말(마을)이 물에 잠기면 부모님 효도해 묻을 곳도 없다.
후유, 처박혔다 물밑에서 밖으로 솟아나온 사람처럼 수근은 거칠게 한모금 한숨을 내뿜었다.
두자 반 정도 파 내려가자 흙 색깔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 드디여 관이 드러났다. 관널은 아직도 형태 그대로 보존되여 있었다. 홍송으로 만든 관은 십여년 잘가고 백송으로 잘 만들어진 관은 50년까지도 간다고 조막령감이 말했다. 관덮개사이에 삽날을 끼워넣고 힘주어 제꼈다. 덮개가 부서졌다. 관덮개가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열렸다. 벌건 황토속에 허연 뼈들이 드러났고 시지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왔꼬나. 뻬(뼈), 뻬 나왔다아!"
조막령감이 울음같은  환성을 질렀다.
오랜 시간이 흐른지라 육탈이 된 뼈는 비교적 완정하게 남아있었다. 색깔이 누렇고 새까맣게 변색한 뼈들이 수근이를 올려보고 있었다. 좌남우녀로 합장한다니 왼켠의 더 시커멓게 삭은 유골이 아버지, 오른켠의 아직도 흰빛을 잃지않고 있는 유골이 어머니임이 틀림없다.
수근은 툭툭 주먹으로 제 이마를 때렸다. 수근의 눈시울이 자우룩히 젖어들었다. 조막령감이 일렀다.
호미깽이 가져왔냐? 이제부턴 광차이(삽) 치우고 호미깽이로 긁어라. 살살 긁어얀다.
“장보톨”을 묘혈에서 내보내고 수근은 혼자서 유골을 수습했다. 호미를 들고 조심조심 바닥을 긁었다.
수근이 니 아부지 상새날때(세상뜰때) 니들 지끔 나이보다도 더 아랠땐데  니 아부지가 하필이문 해토머리에 상새났거든. 뫼짜리를 잡겠는데 땅이 안 풀려서 쇠처럼 땅땅한게 당최 팔수 있어야지. 그래서 막 빵포(남포)질 해서 언땅 파헤치고 그랬지.
그래도 그때는 온 동네가 다 나와서 제집일처럼 애고대고 울어주는데 제사 한번 제대로 했지.
령감은 망자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꺼내들었다.
수근이 호미로 굵은 흙알갱이를 헤치고 흙속에서 뽑아낸 뼈들을 몽당비자루로 흙을 말끔히 털어내고는 또 술로 씻어 신문지우에 하나 하나 펴놓았다.
에궁, 귀하신 뻬를 모시는데 신문찌라니. 요짐(즈음)은 참 벱(법)도 업는 세월이다.
처음부터 소나무아래 잔디둔덕을 등판 삼아 비스듬히 기대여 앉아서 조막령감은 끝간데없이 잔소리를 했다. 그만큼 수근이가 서툴렀던것도 사실이다.
원체는 한지(韩紙) 나 삼베를 페(펴) 재이문 하다못해 봇낭기 껍질이라두 쫘악 벳겨서 그우에다가 뻬를 올려 놓는게 벱인데
담배때문에 기침이 터져나와 멈추었다가 그것도 잠간, 령감의 사설은 계속되였다.
수근이 급히 오다보니 한지를 살 새가 없어 그랬소꼬마. 또 요쌔는 어디가서 베천같은거 구할데두 없구. 그래두 서울에서 이렇게 한번 온다는게 간단치 않스꼬마, 남들은 뫼를 막 밀어버려두 모르는체 하는 판인데…
병태가 친구랍시고 수근이 편을 들었다. 하지만 조막령감은 유감천만을 감추지못해 했다.
원체는 한지에 뻬를 모셔 놓는고 말고도 죽은 사람 명정(銘旌)도 쓰는게 벱이다. 이장도 장례인데 명정을 써야지. 칠성판에 뻬를 다 주어놓고 마지막에 뻬에 명정을 덮어 내가는게지.
글고(그리고) 옛날엔 멜레(면례)하기 하루전에 미리 파묘할 뫼짜리에 가서 술과 과실을 차려놓코 멜레한다는 축문을 외운다. 요쌔는 뉘기두 축문같은거 쓸줄을 모르지만.
하기사(물론) 옛날 벱이 너무 다사(번잡)한것도 탈이겠지만 또 낡았다고 그 벱을 넘 안지케(켜)도 탈 난다. 낡았다고 함부로 막 던지고 그러는데 사실 낡은 겔(것일)수록 금처럼 빛이 더 난다는 고 간단한 도리를 요쌔 사람들은 왜 모르는지... 요쌔 젊은이들은 너무 벱을 모르는게 탈이다. 하기사 사람이라 생겨 먹은것은 몽땅 혼궁기(구멍) 열렸는지 밖으로 나가지 못해 매삼질(안절부절 못하다) 해대니. 집안 꼴, 동네 꼴이 초상난 집처럼 저 줏쌀(꼴)이지…
축문에다 쓰는 그게 무슨 뜻임둥?
곁에서 삽에 묻은 흙을 모난돌로 긁어내며 잔일일망정 도와주던 병태가 물었다.
꼬치꼬치 묻긴 어째 묻냐? 네가 후날 멜레라도 하겠다는게냐? 이 말(마을) 당장 물에 잠길건데…
하면서도 조막령감은 오늘의 제주(祭主)인 수근에게는 이장절차를 소상하게 계수(继受)해 주었다.
유세차(维岁次) 감소고우(敢昭告于)… 그 축문이 무너 뜻인고 하니 오늘 뫼를 열어 옮겨 갈게니 토지신 아바이 좀 도와줍쏘사!하는 그런 말이지
수근은 밭은 기침소리에 뒤섞인 조막령감의 민속특강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우로 쏟아지는 령감의지청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뼈들을 열심히 줏고있었다. 호미로 긁고 비질을 하고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유골에 묻은 흙과 달라붙는 벌레들을 제거하고 뼈조각들을 퍼즐이라도 맞추듯 빠치지않고 맞추었다.
이장 하재코(하지않고) 불에 태워 날릴게면 뻬를 한데 막 모아놔도 일(상관)없다.
다시 매장을 하게꺼든 손가락뻬 발가락뻬 한 도막이래두 섞지말구 순서있게 맞춰야지. 뿌서졌거나 토막이 난 뻬는 흩어지지 않게스리 가는 낭기 가지에 실로 묶어둬야고…
조막령감이 그렇게 말했지만 수근은 뼈 한조각 흘릴세라 낱낱이 주어 맞추어놓았다.
뼈를 들어내는 수근의 손이 저으기 떨렸다. 하나씩 들어낼 때마다 흙바닥에 숨 죽여있던 오래된 먼지와 냄새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나같이 해빛을 싣고 바람에 실려 가벼운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그것은 선친들이 흘린 삶의 비늘이였고 숨결이였다.
하긴 그렇키도 하다. 세상 어데없는 길지를 골라 왕릉 부럽잖케 꾸메(며)본들 어쩌겠노? 썩어 문드러진 묌이 이승에 구불러 댕기는 개똥보다 못하이 다시 생각해 봄(보면) 후날 이러케 멜레고 뭐고 하누라 애 먹지 말고 뻬를 싹 태워서 날레(려) 보내는것도 옳타.
뫼짜리 만들어 논들 또 어쩌겠냐. 선산을 모시긴 고사하고(커녕) 싹 다 달아나 버려 한식이나 추석이 돼도 흙 덮어줄 사람, 풀 베줄 사람도 없는데.
앙가슴에 걸린 기침을 삭이느라 쌔근거리며 말하는 조막령감의 목소리가 축축히 젖어들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다 줏고 이제 어머니가 남았다.
어마이 내 왔소꼬마, 수근이 인제사 왔소꼬마
중얼거리며 수근은 두개골을 두손에 받쳐들고 찬히 뜯어보았다.
마을 목재가공소에서 함부로 기계를 만지다가 사고로 요절한 형님때문에 수근이는 늦둥이로 이 세상에 올수 있었다. 하지만 늦자식을 본 기쁨도 잠시, 아버지도 가슴에 묻었던 자식을 잊지못한듯 인차 뒤따라 갔다. 시름시름 앓다가 병명도 모른채 어느 날 숨을 놓아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형님은 물론 아버지의 형상은 수근에게 있어서 어디에 흘렸던지 떠오르지않는 가족사진앨범처럼 흐릿한 기억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슬픔보다는 죽은 아버지때문에 잘 차려진 제밥이 더 신나고 탐난 철부지 나이였던 수근이였다.
모두들은 형님보다도 수근이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스스로도 등그런 턱뼈 부근이 어머니의 턱선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다. 햇감자색의 얼굴에 얼굴모양도 감자처럼 둥글은 감자장을 잘 끓여주던 어머니, 한국으로 떠나는 그의 손을 잡고 꼭 떠나야만 하겠냐며 눈시울을 확 붉히던 어머니, 미처 제사에도 오지 못해 제주 한잔 올리지못한 불효를 떠올리니 속에서 왈칵 뜨거운 것이 치솟았다.
한낮의 열기를 받아 안은 두개골은 따듯했다. 두 손으로 보듬은 그 두개골에 낯을 붙이고 수근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어무이, 어무이… 철 모르고 울어대는 뻐꾹의 소리같이 울음소리가 느닷없었고 그 느닷없는 오열은 깊었다.
병태가 묘혈속으로 손을 뻗쳐 수근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놔 둬라, 실컷 울게 놔 둬… 울고나면 명치끝에 박혔던 어열이 쑥 빠져 시원할게다.
그렇게 말하는 조막령감의 목소리도 축축히 젖어있다.
령감이 백태가 낀 눈동자를 조막손으로 훔치더니 간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로회한 안면근을 실룩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제 오늘 성튼 몸이
북망산이 웬 말이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초록같은 우리 인생
장생불사를 어이하리
새빠지게 일만하다
그냥 가니 너무 섧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우리부모 날 낳고서
애간장을 녹였는데
천지신명 몰라보고
부모은공 내 몰랐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가도가도 끝도 없네
한이 없네 인생살이
너도가고 나도 가고
저승에서 반기세나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여가는 오래된 김치처럼 삭아 있었다. 느지럭 느지럭한 소리가 여름 새벽 달팽이 기여가듯 하면서 나오다가 후렴구에 가서는 소(沼)를 만난 폭포처럼 빨라진다, 시름 한숨과 설음이 한 움큼 담긴 상여가는 수근의 울음과 함께 했다.
내 어릴적에 말(마을)서 죽은 사람 상디(상여) 나갈때 하던 소리(곡)인데 원래는 이 보다 더 길다. 오랜만에 할라이(려니) 가사가 당최 기억이 나질 않네.
령감이 이 하나 없는 합죽한 입을 벌리며 처량하게 웃었다.
노래의 울림에 붙들려있던 수근은 눈물을 닦고 묘혈에서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은 한지나 삼베가 아닐망정  신문지 넉장우에 나란히, 고히 모셔졌다.

 

 

목요일: 명태포 그리고 사랑

 

병태가 가물가물 알려준 회사는 시가지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명태포를 만드는 회사라고 했다. 이름은 유한회사라고 달았지만 실은 페교된 학교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철제대문우에 떠인 간판이 제법 컸다. 제품의 자호와 가공소의 전화번호가 아이들 머리통보다 더 커다랗게 씌여져있다.
회사의 경기는 그런대로 괜찮은듯 했다. 마당에는 제품 운수용으로 쓰이는듯한,차체에 제품 자호를 새긴 봉고차가 주차되여 있고 건물벽에는 제품의 자호가 새겨진 포장박스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는 술안주로 명태포가 류행이였다. 생맥주에 곁들이면 그 맛이 일품이였다. 옛적에는 골목길의 작은 잡화점들에서 생맥주와 명태포를 곁들어 팔았는데 그 맛이 지금까지 전해내려와 다방, 차집, 까페, 지어 레스토랑에서 까지도 아직도 명태포는 맥주안주 일순위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명태포 가공소들의 운영경기가 좋았다.
한국에서는 왠지 명태로 국을 끓여먹지 포를 뜨는 경우가 적었다. 그래서 주말에 간혹 한잔으로 일독을 풀때면 고향의 명태포생각이 간절해지곤했다. 그 수요를 헤아려 가리봉동의 어느 연변에서 온 사람이 차린 식당에서 명태포를 들여다 팔고 있다지만 그곳까지 찾아가 비싼쪽으로 찾아 먹을 게제가 못되여 그동안 고향의 맛을 잊고 살아온 수근이였다.
통증이 호주머니속 이물질처럼 그냥 의식되는 옆구리를 지긋이 누르고 수근은 이곳까지 찾아왔다.  고향에서만 볼수있는 고약딱지 “호골고”를 옆구리에 붙혔다. 애초에 한국으로 보따리장사를 나갔던 사람들은 우환청심환이며 “호골고”따위를 들고 나갔었다. 하지만 이런 약은 지금 출국뿐만아니라 시중에서도 판매가 금지되여있었다. 병태가 집구석에 고히 감추어두었던 그렇게 효험있는 고약을 찾아내 붙여 주었지만 통증은 막을수 없었다. 아마 뼈를 다친것 같으니 한번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라고 병태가 권했다. 하지만 수근은 그럴 기분이 없었고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저 운나쁘게 당한 자신을 원망할뿐이였다. 한국에서 일하다 다쳐도 웬만한 상처는 견디며 악착같이 일해 온 그 관습이 못 견딜 아픔을 견디게 해주고있었다.
마치 듬성듬성한 징검다리를 건너듯 수근은 조심스럽게 회사마당으로 들어섰다. 가공소라고 패말이 달린 곳에서 인기척이 났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유리창너머로 들여다본 가공소안의 풍경은 분주했다. 작업대에 마주앉아 수십명의 녀공들이 마른 명태의 대가리며 지느러미며 꼬리들을 가위로 자르고 비닐 포장지에 담고 있다. 머리에 위생모자를 얹고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팔에 토시를 두른채 가위며 손칼로 명태의 몸퉁이를 분리하는 녀공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쭈볏거리다가 용기를 내여 가공소의 문을 노크했다. 노크소리가 낮았던지 동정이 없다. 다시 한번 힘주어 노크를 했다. 이번에야 들었던지 녀공 하나가 나왔다.
혹시 여기 명월이라고 있습니까? 과수마을에서 온…
그말에 일본새대로 나왔던 녀자가 수근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스크속 녀자의 안면 근육이 얇게 일그러졌다. 녀자가 휘청거리는듯 벽에 어깨를 기대며 섰다. 다가오는 정오의 해빛을 수직으로 받아서였던지 녀자는 몹시 지친듯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다듬다가 만 마른 명태가 그대로 쥐여져 있었다. 야윈 몸체에 비해 손마디가 부은 듯 굵어보였다.
녀자가 위생모자를 쓴 이마 아래로 야생초처럼 듬성듬성 흘러내린 잔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렸다. 피로에 쌍꺼풀 진듯한 눈우로 순간에 흘러 넘치는 눈물을 수근은 놀랍게 지켜보았다. 귀바퀴의 연골을 타고 흘러 내린 머리를 헤치며 녀자가 마스크를 벗었다.
수근의 입으로 헛바람같은 비명이 새여나왔다. 눈앞에 선 녀공이 다름아닌 수근이가 찾고저하는 명월이, 바로 그의 전처 명월이였다.
꼭 11년만에 보는 명월이는 보름달같던 어제의 얼굴을 잃고 있었다. 사위인 초승달같이 뺨이 훌쩍 패였고 풍만하던 몸매의 곡선도 허물어져 보였다. 더우기 푹꺼지고 언저리가 거뭇해진 우묵눈이 그 어떤 고충을 보여주는듯 했다.
명월은 아무말도 없이 우묵눈을 들어 수근이를 쳐다만 보았다. 눈동자는 깊었다. 그것은 마른 우물처럼 한없이 텅 비여 보였다. 녀자의 말없는 입술이 움찔움찔 울음을 품고있었다.
그 눈길의 고문이 두려워 수근이는 다급히 다음 말을 이었다. 아들애를 한번 보고싶다고 했다. 혀아래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욱이, 우리 욱이를 한번만 보고싶어서…
순간 녀자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솟아올랐고 손이 수근이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뭐? 욱이?
그 드센 손길에 수근은 볼을 감싼채 어정쩡해 있었다. 명태로 후려갈긴지라 수근의 뺨에 벌거죽죽한 얼룩이 지나갔다.
명월의 안면이 우그러지더기 급기야 울음이 터져나왔다. 명월이는 무너지듯 그자리에 쭈그리고 앉더니 두팔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톱질하듯 어깨를 들썩이며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서러운 울음에 한마디만 잘라내 복창하싶이 담아냈다.
당신이 욱이를 볼 면목이 있어? 당신이 욱이를 볼 면목이 있냐고, 당신이…
깊은 오열이였다. 그 오열이 너무 깊어서 수근은 그녀를 달래지도 못했다
울음소리에 녀공들이 우르르 달려나왔다. 일부는 명월이를 달래고 일부는 수근이를 에워쌌다.
누굽니까? 당신?
녀공들이 세괃게 따져 물었다. 불량배 보듯한 수십쌍의 눈길들이 수근의 전신을 더듬었다. 그녀들의 눈길에 어려있는 적의에 수근은 어쩔바를 몰라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밝힐지 몰라 땀을 흘렸다. 내가 저 울고있는 녀자의 전남편이요.하고 밝히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이때 녀공들의 틈새를 비집고 남정네 하나가 나왔다.
됐쏘. 쭝우(中午) 다 됐쏘, 모두 들가서 밥이 먹쏘.
거쿨진 몸매에 목소리가 우렁찬, 매우 적극적인 인상을 한 그 남자의 말에 모두가 수근이를 에워쌌던 울바자를 풀었다. 녀공들의 부축임을 받으며 명월이도 가공소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는 그녀의 어깨가 아직도 딸국질하듯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 여기 책임이 맡은 경리라 했쏘. 어째 밍웨(明月) 찾았쏘? 밍웨 찾아 무슨 일이 있어 했쏘?
웃자란 보리밭처럼 무성한 구레나룻 사이에서 내비치는 치아가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한족남자는 조선말을 제법 구사하고 있었다.
수근은 뭐라고 운두를 뗄지 여전히 머뭇거렸다. 옷깃을 매만지며 머뭇거리는데 호주머니속 담배가 만지워 졌다. 담배를 꺼내 경리라는 그 사람에게 권했다. 남자가 머리를 젓더니 호주머니에서 자기 담배를 꺼냈다. 벌건 포장지의 담배갑에서 한대 뽑아 수근에게 권했다. 수근이 그 담배를 받아 들었다. 쩔꺽하고 라이터가 코앞에 다가왔다. 불을 붙여 몇모금 련이어 빨았다. 그러다 독한 담배연기에 수근이 밭은 기침을 토해냈다.
두 사람은 봉고차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유난히도 거쿨진 몸매를 한 사내는 용건이 뭐냐고 자꾸 따져 물었고 하필이면 이 한족사람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수근은 허둥거렸다. 자신이 뱉어낸 담배연기가 허공에서 묽어지고 희박해지더니 정오의 해살속으로 사라지는것을 수근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 십년세월 허위단심 헤쳐온 연무같이 앞길이 보이지않던 나날들은 수근에게는 다시 떠올리기에도 힘든 시간이였다.
애초에는 안해 명월이가 먼저 가짜결혼으로 출국하기로 했다. 지금보다는 더 광분에 넘쳐, 출국이라는 좁은 소로에서 농약먹은 송사리떼처럼 몸부림쳤던 당시 가짜결혼을 빙자한 출국은 흔히 볼수있는 놀랄것 없는 풍경이였다.
그런데 리혼수속까지 하면서 감행했던 출국은 브로커에게 돈만 떼운채 무산되고 말았고 대신 크게 기대를 안했던 수근이 쪽이 먼저 그 어려운 출국의 겹대문을 열어젖혔다.
내라도 먼저 들어갈께 인차 따라오오. 하면서 먼저 나갔지만 안해는 또 한번의 출국시도에서 가짜 비자가 들통나 인천공항에서 발목 묶였고 그렇게 문전에도 못가 닿고 여러번의 축객령을 받고나니 종시 출국의 대문을 열어젖히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근이는 수근이 대로 한국에서의 고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막상 서울땅을 밟고나면 무릎아래 지페장이 지천으로 널려있으려니 했지만 막상 무릎팍만 멍들고 깨졌을뿐 그들의 앞길에는 가시밭길만이 펼쳐져 있었다.
나도 그렇게 무지개 꽃밭만은 아니였다오!
아까 명월이의 울음섞인 타매에 이렇게 목울대를 타고 넘어오는 말을 수근은 꿀꺽 삼켰었다. 친지들 눈에 수근은 이미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왜곡되여 있었다. 그들은 수근이를 마치 비극의 원흉이기나 한듯이 끔찍하게 바라보고있었다.
서울에서의 나날은 수근에게서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 두 얼굴의 시간대였다.
11 년 여를 보낸 꽉 막혀 있던 세월. 춥고 배고프고, 고달팠던 극한의 나날들이여다.
애초 일을 시작했을무렵에는 고된 일은 그런대로 견딜수 있었지만 참기 어려운건 동족지간에도 꺼리낌없이 행해지는 몰리해와 멸시였다. 공사장에서 사장님은 물론 다같이 노가다에 혹사하는 같은 직종일지라도 한국이들은 고국을 찾아 허위단심 찾아온 그들에게 “똥포”놈들이라 폭언을 퍼부었다.
마흔살 되도록 그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온갖 욕설을 삼태기로 퍼부으면서도 사장님은 나의 욕이 니들 시골닭들에게는 인생에서 비타민이 될거야!라고 비죽거리며 말했다.
그 비굴과 모멸의 “비타민”을 매일처럼 삼키며 오로지 고향에 남겨둔 가족을 위해 일했다. 불도가니속에서 세멘트포대를 숙명처럼 짐져나르고 벽돌과 타일을 희망처럼 쌓고 붙혔다.
그러던 어느날, 십여층 높이에 결어 만든 비계우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매달려 타일을 붙이던 중국에서 온 로무자 둘이 추락사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비극이 일자“비타민”사장이 그날밤으로 잠적해 버렸다. 
동포모임과 서울의 교회들에서 적극 나서 해결하려 했지만 시간만 끌다가 미해결, 결국은 그동안 손톱 벗겨지게 일해온 로임은 한강에 띄워보낸격이 되고 말았다. 몰지각한 한국 사장님들에 의해 로임체불은 그후로도 여러번 되풀이 되였다.  
왜 유독 나만 바라고 번개치고 소낙비는 쏟아지냐! 개탄하며 수근은 술독에 자맥질해 들었다.
막판 뒤집기로 목돈 한번 뽑아볼양으로 여기저기서 꾸어대여 스크린 경마도박에 붙었다가 그만 감당못할 천문수자같은 빚에 깔렸다. 빚재촉을 피해 강원도 치악산자락에까지 숨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알콜중독 기미를 보였고 교회에서 꾸리는 자선단체에서 하루이틀 연명하다가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슬리고 다시 일에 열심을 보인것도 겨우 몇해전, 그렇게 걸채이고, 넘어지고, 기고, 일어나기까지 십여년 세월이 경마장의 종자말처럼 눈깜짝 할사이에 눈앞에서 달려지나갔다.
밭문서, 집문서 들이대고 여기저기 꾸어서는 빚짐 내여 로무의 길을 열었던 집에서는 통화할때마다 빚에 졸려 울상이였지만 그 동안 수근은 어쩌면 땡전 한푼 집에 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조금만 기다려! 일자리 바꿨는데 이번엔 자리 잘 잡은거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봐! 하고 판에 박은 말만을 낡은 축음기처럼 되풀이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그 락언이 번마다 거짓말로 끝나버리곤 했다. 들들 볶던 소리는 나중에는 원망으로 번졌고 절규로 이어졌다. 매번 전화저쪽에서 찌르륵거리는 교신음에 섞여 터져나오는 안해의 목갈린 절규가 무서웠고 귀찮아져 나중에는 전화를 받지조차 않았다.
그러다 종내는 가짜 리혼이 진짜 리혼이 되여버렸다. 안해와 련계가 끊긴지 7년째 되던 해, 로무차로 한국에 나온 고향사람에게서 안해가 개가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것이다. 비록 련계를 끊은건 그 자기쪽이였지만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수근은 자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사람처럼 얼빠져 버렸다.  좌절과 렬패감같은것에 사로잡혀 포장마차를 찾았고 날이 새도록 알콜로 몸과 맘을 마취시켰다.
어쩌면 잡을 만한 지푸라기 한 오라기도 없이 끝 모를 절망의 물너울에서 허우적거렸던 나날들, 그 나날들을 누가 알아줄가!
그렇게 입밖에 내기조차 싫었던 그동안의 힘겨운 나날에 대해 수근은 처음보는 한족사내에게 낱낱이 털어놓았다. 하고싶지않은 이야기였지만 변명처럼 하고나니 외려 속이 후련했다.
수근의 말을 들어주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말도 없이 가공소로 들어갔다. 이어 다시 나온 그의 손에 고량주 한병과 명태포 두개가 쥐여져 있었다. 사내가 건네는 명태포를 받아들었다. 부욱 찍어 입에 넣었다. 구수했고 들척지근했다. 역시 고향의 음식은 설명으로는 불가한 그런 맛이 있었다. 사내가 유리컵에 술을 반쯤 부어 수근에게 권했다.
코생이 많이 했쏘.
수근은 그 반컵의 술을 단숨에 비웠다. 명태포를 안주로 수근은 연신 잔을 비웠다. 몇잔을 더 거치자 독한 술에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구레나룻을 한번 쓸어내리며 한족사내가 수근이를 찬히 지켜보았다.
내 한마디 말이 하까?
스스로 컵에 술을 부어 한모금 마시고나서 한족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엔 당신들 정말이 꽈이(怪)하다 했쏘. 우리 중국말 속담에 “급하면 따뜻한 두부는 먹을수 없다”는 말이 있쏘. 당신들은 어째 누구나 다 그리 쪼우지(着急)해 했쏘? 뭐가 그리 쪼우지해서 밭이 뿌요(不要), 집이 뿌요, 애들이 뿌요, 푸무(父母) 뿌요하고  가뻐리고 해쏘? 써울(首尔)이다 르을번(日本)이다 가고 그리 했쏘.
돈이 잘 벌어오오 좋쏘. 돈이 좋긴 했쏘.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마니 벌어쏘 그담엔 쩐머빤(怎么办)? 팡즈(房子) 메이라(沒了), 밭이 메이라, 로우퍼(老波) 메이라, 푸무 쓰(死)라, 위쓰왕퍼(鱼死网破) 그리 됐쏘 했는데. 우리 중국말 속담에  “새는 먹이에 죽고 사람은 돈에 죽는다”는 말이 있쏘.
요즘부터 산이 밭이 카이파(开发)하면서 보상이 많이 해주는데 조선족들이 눅거리해서 밭이 다 넘겨주구 이제 와서 땅 치며 후회해쏘. 후회 한들 소용없다 해쏘. 완라(晩了). 세상에는 후회약이라는거 없다 해쏘.
난 당신들이 “호로박에 무슨 약이 담갔는지(葫芦里装什么药)?” 부즈또(不知道)해쏘. 정말 부즈또 해쏘…
수근이는 술때문에 아닌 다른 갈증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어쩐지 할말이 몽땅 증발된것 같았다. 한족사내의 일장 훈화를 들으며 수근은 아무런 항변도 할수없는 자신을 의식했다. 그의 말처럼 스스로도 호로박에 무슨 약을 담그어 왔는지 담그려는지 알수 없을때가 있었다. 고된 로무에 혹사하는 와중에 자신도 시시때때 생각했던 문제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누구도 그에 명쾌한 확답을 줄수 없어 했다. 눈앞의 리익에만 근시안이 충혈되여 아예 답 같은것을 생각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아무말도 못하고 수근은 그저 명태포만 체념처럼 울근울근 씹어 댔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밍웨는 지금 헌씽푸(很幸福), 헌씽푸하니까 근심이 아니해도 됐쏘.
수근이 멍하니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런 수근의 눈길을 마주보며 사내가 말했고 그 입에서 튀여나온 말의 파편이 수근의 귀속을 아프게 관통했다.
밍웨는 지금 내 로우퍼(老波)니까!
머리속에서 하얀 새떼가 화르르 날개를 펴며 날아갔다. 잠간동안이나마 수근은 아득해질수 밖에 없었다. 금방 마신 소주의 취기가 그제서야 뭉게뭉게 올라왔다.  
톱니바퀴처럼 세상은 여전히 이가 물려 돌아가는데 자신을 감고 도는 피대줄은 이미 제거되고 없었다.
왠지 아주 오래 전에 앓았던 치통처럼 불쑥 치밀어 오른 통증이 수근의 가슴을 훒었고 부지중 비명을 흘리며 수근은 고약딱지를 잔뜩 붙인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금요일: 스케트 보드

 

조붓한 수로를 비집는 물고기떼처럼 교문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밀려나왔다. 학교 문앞은 삽시에 시끌벅적해 졌다. 갑작스레 비좁아진 학교 앞길로 자동차들과 사람들이 곡예를 하듯 서로 비켜갔다. 교문을 나선 아이들은 곧장 학교 근처에 올망졸망 들어앉은 문방구에 들어가거나 김밥집, 운남 쌀국수집, 오징어 꼬치집으로 들어갔다. 더러는 핫도그나 오징어 꼬치, 붕어빵을 입에 물고 길거리에서 먹는 아이들도 있다.
교문곁에서 수근은 수위아저씨마냥 두눈을 지릅뜨고 많은 수효의 아이들을 낱낱이 헤아렸다. 수근은 지금 오전내내 아들애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중간체조 시간에 아이를 잠간 만났었다.
아침 첫뻐스로 시가지로 나와 명태가공소의 한족경리가 일러준대로 학교를 찾았고 학교수위에게 애의 이름과 반급을 댔다. 수위가 안된다고 잡아뗐다. 한국에서 십여년만에 돌아와 아이를 찾는다고 간곡히 요청을 들었다. 그의 간청이 통했던지 수위는 지금은 수업중이니 기다리라고했다.
그렇게 두어시간 꼬박 기다려 중간체조시간이 되였다. 수위가 반급 선생에게 일렀고 반급 녀선생이 아이 하나를 렬을 지은 아이들속에서 점명해 내더니 교문쪽을 향해 어깨를 떠밀었다.
아이가 쭈볏거리며 다가왔다.
니가 욱이구나.
아이를 반기는 수근의 목소리가 마른 저수지처럼 갈라졌다.
누가 구태여 알려주지 않아도 단박에 가려볼수 있을만큼 아이는 수근을 판박이로 꼭 떼닮고 있었다. 반양머리에 얼굴 구멍새가 큼직큼직했다. 게다가 피부도 수근이를 닮아 옻칠을 한것처럼 검었다. 네살때 두고 떠난 녀석은 가을 맨드라미처럼 키도 훌쩍 자라 수근이의 머리높이를 넘었다. 턱아래 울대뼈가 도발적으로 도드라졌고 코밑도 제법 감실했다.
어쩌면 애비없이도 잘 자라준 아들이 고마웠고 한편 그동안 아비로서 빈자리를 보여준 자괴감으로 수근은 숙제못하고 선생앞에 불리워 나간 학생처럼 어깨가 숙어졌다.
   안해의 이름은 달이고 아들의 이름은 욱(旭)이, 솟는 해였다. 하지만 그 달과 해의 궤적에 수근은 자신의 행보를 맞추지 못했다.
누구져?
애가 이마살을 모으며 물어왔다.
내가, 내가 니 애비다.
부끄러워 뱉을수도, 그렇다고 넘길수도 없는 수박씨의 딱딱한 감촉처럼  입안에 따글따글 굴러다니던 말을 수근은 한 옥타브 낮은 소리로 내뱉았다.
급기야 말까지 더듬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을때 아이의 주먹이 자기 이마로 올라갔다. 어쩌면 제수체어도 수근이와 꼭 같았다.
아이는 이마를 자근자근 두드리며 휴일의 단맛을 깨뜨리며 함부로 남의 집 초인종을 울리고 낡은 신문 있소?하고 묻는 페품수거꾼을 보듯이 수근이를 쳐다보았다. 명월이가 집에 돌아가 얘기하지 않았던지 아이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예기치 않은 아버지의 등장이 놀라웠고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것인지하는 뜨악한 기색이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이마에 주먹을 얹은채 아무말도 못했다. 굳게 닫힌 입매로 인해 둘의 분위기는 어정쩡했다. 아이가 불현듯 몸을 휙 돌렸다.
체조해야죠. 체조시간인데…
아이는 한마디 뱉고는 체조대오를 향해 뛰여갔다.
중간체조가 끝났지만 아이는 아버지앞에 나타나지않았다. 그래서 수근은 점심시간까지 꼬박 교문앞에서 기다린것이다.
아이들속에서도 훌쩍 큰 키로 맨드라미 홀씨처럼 홀홀히 떠가는 아이를 수근은 보았다. 수근이 다급히 달려가 애의 애의 손을 잡았다. 정오의 해볕이 머물러 반짝이던 애의 얼굴이 금세 흐려졌다.
왜요? 여기서 뭘하세요? 아직도 가지 않고?
애가 짜증을 드러내며 물었다.
널 기다렸다!
애가 또 왜요?고 물었다. 어쩌면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애의 어투는 감격어린 느낌표가 아니라 도전적인 물음표뿐이였다. 아들애를 만나면 하고픈, 생각해둔 말이 많았지만 막상에 애가 반문하자 순간에 잊어져 그저 점심이라도 맛있는 쪽으로 사주고 싶다고 했다.
나 친구들과 먹을건데요.
아들은 한켠에서 기다리고있는 애들을 턱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말을 뱉기와 바쁘게 몸을 돌리는 아들의 손을 수근이 다시 한번 잡았다. 애가 손을 뿌리쳤다. 그 뿌리침이 생각보다 드세여 수근은 잠간동안 멍해졌다.
애의 거부는 드세였고 그 눈에서 적의같은것이 번쩍이는것을 수근은 놀라웁게 볼수 있었다. 손을 빼려고 몸을 틀려는 애의 손을 수근이가 부득부득 잡았다. 그 무슨 몸싸움이라도 하듯 빨판처럼 잡은 그 손을 잡아떼던 애가 몸부림을 멈추었다. 막무가내라는듯 한 표정이 애의 볼에 머물렀다. 입술을 욱신거리며 씹어대던 애가 물음 하나 꺼내들었다.
점심은 됐고… 나 뭘 하나 사줄수 있어요?
그말이 수근에게는 복음처럼 들렸다. 수근이 바짝 마른 입술을 벌려 웃으며 말했다.
그래그래 사줄게! 하나가 아니라 열개라도 말해봐. 사고픈게 뭔데
아들애가 학교앞 광장에서 놀고있는 애들쪽을 가리켰다.
챙 모자에 통 넓은 바지 차림의 애들 몇몇이 로라스케이트인지 발구인지 같은것을 밟고 몸을 날리고 있었다. 애들은 얼음강판을 지치듯 날렵하게 맴을 돌거나 비상하는 새처럼 훌쩍 몸을 날리며 반공중에 뜨기도 했다.
나도 저런거 하나 사줘요. 스케트 보드(滑板)요.
학교부근에 대형체육용품전문점도 있었다. 애의 뒤를 묻어 그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애는 단박에 스케트 보드 매장으로 다가갔다. 요즘 애들중에서 스케트 보드놀이가 가장 류행이라고했다.
좀 위험해 보이는데…
수근이가 매장의 광고판에서 하늘향해 날고 있는 진짜 사람만한 크기의 스케트보드맨을 보면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애는 듣는둥 마는둥 온통 스케트 보드에 정신 팔려 있었다.
요즘 이런거 류행인데 부모가 한국 간 애들은 사고 못 간 애들은 못사요. 이거 꽤 비싸거든요.
애가 동문서답을 했다. 수근이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안 사줄래요?
아니 뭐 그런뜻이 아니고…
수근은 급히 지갑을 꺼냈다. 애가 원하는것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털었다.
출국한 부모가 한국서 돈 잘 부쳐주는 애들은 수입제 쪽으로 사고 그렇지 못한 애들은 그저 국산제를 사요.
아이가 여러가지 가격대의 보드를 들고 점원보다 더 상세하게 그 성능의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그 알둥말둥한 보드에 대한 설명보다 출국한 부모와 출국하지 못한 부모로 등급이 지어지는 아이들의 판단방식에 놀라웠다.
가격이 저렴한 국산이 아니라 수입산쪽으로 사주었고 애가 만만치 않은 가격에 차마 입을 떼지못하는 보드 헬멧, 보드 의복, 장갑까지 세트로 큰 돈을 깨서 사주었다. 팔꿈치며 무릎보호대를 사는것도 잊지않았다.
아들애에게 난생 처음 뭔가 사주는 아버지였다. 수백,수천이 아니라 그동안 벌어온 뼈돈 모두를 통째로 달라고 손을 내밀어도 수근은 껌값 내주듯이 선뜻 아들애에게 내줄수 있을것 같았다.
아버지가 맞긴 맞나 보네요. 이렇게 사달라는 걸 다 사주는걸 보니.
그제야 아들녀석의 얼굴에 그늘이 벗겨져 있었지만 잇달아 내뱉는 말은 맹랑하기 그지없는것이였다. 
나 니애비 맞다!
조심스레 그말을 뱉으면서 또다시 커다란 회한에 사로잡혀 수근은 아들애를 껴안으려 했다. 아들애가 몸을 훌쩍 피했다. 선물을 아름벌게 안고 체육용품전문점을 나서던 아들애의 입에서 또 한번 물음이 흘러나왔다.
왜 인제야 왔어요.? 어디서? 뭘 하다가요?
반양머리우에 헬멧을 얹은 애는 락하산을 타고 핼리곱터에서 날아내려 현상범 앞에 총부리를 겨눈 특공전사같은 모습으로 수근에게 따져 물었다. 아이는 보드에 몸을 실었다. 저만치 미끄러져 갔다가 카메라줌으로 끌어당긴듯 순식간에 다시 수근이 앞으로 돌아와 물었다.
엄마와는 왜 갈라졌죠? 둘 다 좋은 사람 같은데?
아들애는 아버지의 확답같은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진듯 했다. 수근이가대답할 사이도 없이 나래 펼친 새처럼 두 팔 휘저으며 저만치 미끄러져 갔다. 새로 산 스케트 보드는 애의 발에 접착테프로 붙인듯 했다. 눈앞이 현란하도록 몇가지 묘기를 보이고나서 애는 학교앞 골목길로 흡수되듯 사라져 버렸다.
욱아!
수근은 터져나오는 부름소리를 입안에서 갈무리했다. 아들애가 련속 던진 몇개의 물음덩이가 돌팔매처럼 그의 신상 곳곳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 물음들에 신빙성있는 확답을 주지못하는 자신이 놀라웠고 스스로 야속하기까지 했다. 가슴 한복판으로 쏴르르르, 한 줄기 찬 바람이 소리를 내며 스쳐간다.
서울의 어느 재한조선족 모임이 꾸리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고향의 이장통지뉴스를 보고 수근은귀향을 생각했다. 여태껏 고향을 잊고있었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왠지 출처불명의 다금침이 수근이를 흔들어댔다. 망설임은 드디여 결심으로 굳어지고 일종의 의무감으로 번졌다. 그래서 강산도 한번 돌아눕는다는 10여년만에 잊고있던 고향으로 왔다.
하지만 고향이란 가슴에 품고있을때는 따뜻하지만 실제 대하는 순간 그 온기가 식어갔다. 그 온도는 시간의 길이와 정비례하나 싶었다. 더불어 살과 웃음과 땀을 나눈 인물과 풍경들이 알량하고 뜨악하게 인멸되고 개조된것이 탓일가? 아니면 돈에만 매여 그 따뜻함을 잊고 찬피로 살아 온 무심함이 탓일가?
주먹을 이마에 올린채 수근은 학교앞에서 폭염에 달구어진 아스팔트길우에 당혹에 잠긴 모습으로 그렇게 서있었다.

 

 

토요일: 수장(水葬)

 

온 몸을 끌어당길듯 잠잠하게 하지만 두터운 몸짓으로 유영하는 저 푸른 강줄기, 예나 지금이나 고향의 그 강은 그곳에서 그렇게 흐르고있다.
고향산의 아래도리를 완만하게 감싸안으며 흐르는 강은 무심한 세월의 속내를 알아버린듯 무심하게 떠났다가 잠간 돌아온 사람에게도 젖은 몸을 오롯이 내맡긴채 무심한척 흐르고있다.
수근은 강녘의 너누룩한 돌바위를 마주하고 앉았다.
화장터에 가서 2차화장을 하련다면 인차 뼈들을 화장해 준다지만 이틀채 찾은 화장터는 천국행의 티켓을 먼저 끊은 망자들로 초만원이였다. 어쩌면 우리가 무심히 대했던 그렇게 많은 죽음에 대해 장의관 홀에 서서 수근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아마 월요일쯤 돼야 순번이 차례질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래일 일요일이면 수근이가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장의사에게 매달리며 사정이야기를 거듭했지만 무가내였다. 세멘트독이 오른 손바닥을 맞부비며 초조함에 몸을 떨던 수근은 드디여 하나의 용단을 내렸다.
그리고 출국을 하루 앞두고 고향의 강으로, 두만강가로 나온것이다.
우선 물을 끼얹어 너누룩한 바위를 깨끗이 닦았다.
이 며칠을 분신처럼 함께 했던 트렁크를 열었다.
뼈들을 꺼내 깨끗해진 바위우에 하나 하나 올려 놓았다.
뼈들은 은근히 깊어가는 오전나절의 해빛에 옥양목처럼 하얗게 빛났다.
그 뼈들을 한겻이나 지켜보다 수근은 손아귀에 품을만한 돌멩이 하나 골라들었다.
들숨 한번 긋고나서 수근은 돌멩이로 뼈들을 짓찧기 시작했다.
어떤 제물을 빻는 사람처럼 열심히 뼈들을 가루내였다.
강가에는 조화(弔花)라도 단듯 하얀 억새꽃들의 춤이 무성하다. 가끔 물새의 울음소리가 강가의 고요에 작은 구멍을 낼뿐 강가는 적연했다. 물새소리에는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면서 구슬피 두드리는 각별한 정조가 깃들어있다. 그 소리때문이였던지 수근은 당금 울음이 터질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다.
오른쪽 옆구리에 통증을 느껴 왼손으로 하다보니 오전나절을 수근은 강의 흐름을 마주하고 있었다.
열심히 육탈된 뼈를 빻았고 축축한 슬픔을 널어 말렸다.
가루가 된 그 뼈들을 손아귀에 담았다. 한웅큼 모래나 자갈돌보다 묵직한, 허망한 질감이 손바닥을 가득 채웠다.
그 뼈가루를 지켜보노라니 가슴이 각진 소금을 뿌린것 같이 따갑고 쓰라렸다. 쓰라림은 뼈를 다친 옆구리의 통증보다 더 진한 아픔으로 수근이의 전신을 휩쓸었다.
짜디짠 눈물을 촛농처럼 뜨겁게 흘리며 한 웅큼 가득 움켜쥔 손을 스르르 풀었다.
뼈의 조각들이 별찌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슬픔과 추억과 허무로 화석질이 된 덩어리들을 한 웅큼 한 웅큼 물에 흘려 보냈다.
물살에 휩쓸리는 뼈의 파편들은 직사하는 해볓을 받아 물속에서 조가비처럼 빛났다. 그 뼈들이, 빛쪼가리들이 물살에 빨려드는것을 수근은 낱낱이 지켜보았다.
수천, 수만개의 물비늘이 산란하게 시야를 어지럽히며 흘러가고있는 그 와중에도 수근의 눈길은 침점하면서 물과 한몸이 되는 뼈들의 마지막 길을 뒤쫓고 있다.
   잊어버린것들, 잃어버린것들, 버림받은것들, 상처 받은것들, 용서를 바라는것들… 세상만사 모든것들이 저 강물처럼 흘러간다.
수근의 마음속에 응어리졌던것들이 강물의 흐름에 실려 뭉텅 뭉텅 흘러갔다.
옆구리를 잡고 수근은 몸을 일으켰다. 물새 한마리가 강가까지 나와 물에 부리를 박다말고 푸르르 갈대속으로 도망쳐갔다.
강의 흐름을 쫓던 눈길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시근시근한 눈을 씀벅거렸다. 하늘 모퉁이를 나풀나풀하게 장식한 하얀 깃털구름을 바람이 밀어내고 있었다. 구름은 비좁은 마을길을 빠져나가는 상여처럼 느릿느릿 떠가고 있었다.
며칠전 조막령감이 부르던 상여가가 생각났다. 사무치던 그 가사말이 또렷이 생각 나 수근은 나지막이 상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초록같은 우리 인생
장생불사를 어이하리
새빠지게 일만하다
그냥 가니 너무 섧네

우리부모 날 낳고서
애간장을 녹였는데
천지신명 몰라보고
부모은공 내 몰랐네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아이공 상사디여 상사디여 상사디여

 

 

일요일: 뼈와 뼈끼리

 

공항 터미널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씨줄이 마르건만 오늘도 공항에는 여전히 고향을 뜨는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그들의 얼굴마다는 그 어떤 기대감, 불안감으로 혼효(混淆)되여 설레임의 파장이 홍조처럼 머물고 있었다.
수근이도 떠날 시간이 되였다.
그날 이장을 마치고 텅빈 묘혈을 내려다 보면서 수근은 이장하는것은 죽음을 수습하는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 두니 또 한번 떠나는 자신에 대해 용서가 되는듯 했다. 
병태가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불편한 몸으로 나오지 말라고 만류해도 이제 보고 언제 또 보려나 하면서 소경 매질하듯 후둘거리며 굳이 나왔다.
텅 빈 들판에 버려진 허수아비같은 몸으로 고향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가는것을 혼자서 지켜보았을 친구가 수근은 안쓰럽기만 했다. 수근은 맨 웃쪽 단추를 잃어버리고 실밥만 남아 깃이 벌어진 친구의 와이셔츠 앞섶을 자꾸만 여며주었다.
명월이 고깝게 생각하지 마라, 그래도 네 어머니의 병간수를 도맡아 했고 세상뜬 다음 장례도 명월이가 혼자 손으로 다 치렀다. 물론 욱이도 명월이 혼자 힘으로 키운거지. 궁여지책으로 한족남자에게 얹혔다만 잘 살고있으니 그나마 잘 된 일이 아니겠냐.
친구의 위안의 말에 오히려 수삽해 나는 기분을 주체할수 없어 수근은 말머리를 돌렸다
확장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는감? 그 저수지…
기성 사실로 다가왔지만 이제 곧 물에 잠길 마을이 수근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그 물음에는 나는 이대로 또 떠난다만 넌 어쩔거니 하는 괘념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걱정이 가시지않은 눈길로 수근은 친구를 지켜보았다.
괜찮타, 우리집 논이 그대로 있어 개발이 시작되면 꽤 보상받을거니 그 돈으로 흥떵거리며 잘 살거다. 모른다 수근이 니보다 내가 더 잘 살지도.
그래 제발 잘 살아라. 친구야.
그러지뭐, 그 돈으로 좋은약도 쓰고
그래그래.
시내가까이 자그만 집도 한채 마련하고
그래그래
몽달귀신이 되기전 늦으막 이 몸이 처녀장가갈지도 모르지
그래그래.
세상물정 밝으신 우리 조막할배 모시고 오래오래 살거다
그래그래
두사람은 짛고 박고 말장난을 주고받았다. 서로 자꾸만 위로의 말을 갖다붙였지만 스스로 듣기에도 어딘가 시원치 않았다. 때지난 구닥다리 유모어같은 말에 서로가 객적은 웃음을 짓고말았다.
갑자기 병태의 핸드폰이 울며 두사람의 석연찮은 리별을 깨뜨렸다. 핸드폰을 받는 병태의 얼굴이 어두워 졌다. 핸드폰을 다급히 수근에게 넘기며 병태가 말했다.
어떡하니 수근아? 욱이가 크게 다쳤대.

골과병원의 병실에 아이는 링게를 꽂은채 누워 있었다. 목에 깁스를 하고 미동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다.
공항에서 헐레벌레 달려 온 수근이를 명월이가 놀란 눈길로 쳐다보았다.
수근이는 고향에 있는동안 련계를 위해 가공소 경리에게 남긴 병태의 전화로 아들애의 부상소식을 접한것이다.
수근은 병상으로 덮치듯 다가가 아이를 들여다 보았다. 링게를 맞으며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통증이 느껴지는듯 잠결에도 끙끙 신음소리를 냈다.
오늘이 떠나는 날 아니던가요? 아무말도 없었지만 침대가에 걸터앉은 명월이의 표정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요. 어딜 다쳤는데?
명월은 말없이 엑스레이 필림과 처방지를 내밀었다.
목뼈와 갈비뼈에 골절상을 입었는데 목뼈에 금이 가고 갈비 석대가 골절되였다고 적혀 있었다.
타지말라는 보드인지 뭔지 하는거 기예 타다가 저렇게 된거죠.
명월이가 원망조로 말했다.
수근은 잠시나마 정신이 아득해 질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자기가 처음 사준 선물때문에 아이가 크게 락상(落伤)을 당한것이다.
아이를 마주한채 두 사람은 그렇게 침대를 사이두고 앉아 있었다. 명월이는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술을 달싹였다가 결국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각자 자신의 생각 속을 헤매는 표정이다. 견고한 침묵이 어색해 수근은 엑스레이 필림을 쳐들고 다시 들여다 보았다.
필림에는 앙상한 겨울나무와도 같은 뼈들이 목판화처럼 각인되여 있었다. 그 겨울나무사이로 명월의 얼굴이 보였다. 필림너머로 본 명월의 얼굴은 흑백으로 바래져 있었다. 수근은 새삼 색바랜 어제를 돌이켜 보았다.
그때는 가난했으되 얼마나 행복했던가. 서로를 껴안고 보듬으며 더 나은 래일을 깊이깊이 희구(希求)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어제는 마치 감광제(感光剂)가 고루 발리지 않은 필림과도 같다. 어느 부분은 환히 빛나며 뚜렷이 떠오르고 어느 부분은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날 지칫지칫 가공소를 나서면서 수근은 저도모르게 뒤를 돌아다 보았다.그냥 그렇게 돌아나오기엔 무언가 설명 못할 미진함 같은것이 발목을 잡아채는 끈끈한 느낌때문이였다.
   명월이가 마당에 나와있었다 수근이를 눈바램하는 명월이는 벽에 기대여 상체의 자세를 놓아버린 모습이였다. 그 모습은  슬픔같은 물컹거리는것들을 딛고 있는듯 휘청이여 보였다.
모든 파탄 나버린 관계들의 복원과 재가동은 이제 불가능했다. 이제는 과거형을 쓰게 된, 한 때라는 시간으로 한정지어야 하는 전처라는 관계에 새삼스런 서글픔이 느껴졌다.
어제는 함께 키워왔으나 이제는 너무도 멀리 사라져버린 꿈과 그것의 실현 불가능에 대한 인식때문에 수근은 갑작스레 고향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오래전에 떠나버린 고향을 다시 찾는다는것은 고향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또한 도전이였다. 어차피 그곳에 남겨놓은 막연한 시간과 심상들을 구체적으로 만나야하기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에 가 있든 고향의 비릿한 살 냄새가 그를 괴롭게 했다. 도무지 정이 다시  붙을것 같지 않던 가난한 고향은 그 냄새로 인해 때때로 그리웠다.
그래서 역마살을 달래듯 고향으로 돌아왔고 회귀성 어류처럼 그 옛날 자신이 걸었던 삶을 되짚어서 나가며 그 망각속 깊이에 묻었던 추억의 뼈를 기어이 파내여 뼈를 줏고 뼈를 나르고 뼈를 다시 영영 수장(水葬)했는지도 모른다. 
명월의 가르마에 벌써 새치가 희끗희끗하다. 수근은 다만 지난한 삶의 마지막 고샅에 선 그녀에게 더 이상의 불행이 없기를 빌고 빌었다.
아이가 뒤척이더니 잠에서 깨였다. 몽롱한듯 수근이를 쳐다보던 아이가 비죽비죽 울기시작했다.
아파?
아이의 땀방울이 돋은 이마전을 쓸어주며 수근이가 물었다. 아이가 더욱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울면서 말했다.
다 당신때문이야. 당신때문…
수근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깁스를 하여 미동도 할수 없는 몸이지만 아이의 얼굴표정만은 살아 있었다. 그 표정이 보여주는 아이의 원망은 깊었다. 그렇게 자식에게 미움을 주고 원망을 키운 자신의 어제가 통감되였다.
미안하다. 이 애비가 미안하다.
어눌하게, 그렇게 수근은 말했다. 이 일주일간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이 말이였다.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로는 설명이 모자랐지만 또 그말밖에 할말이 따로 없어 이 생애 다 해야할 말을 미리 당겨다 쓰듯 그 말만을 복창에 복창을 거듭했다.
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미안하다….
콧날이 왈칵 시큰해지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뚤렁뚤렁 아이의 얼굴에 떨어져내렸다. 이장도 끝내 부모님의 육골을 고향의 강에 안치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는데 그 응어리가 바로 아이였음을 수근은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몸을 숙여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몸을 숙이자 가슴이 구겨진 은박지같이 조여 왔고 통증이 송곳처럼 옆구리를 쑤셨다.
 아픔을 참으며 수근은 아이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옆구리의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이, 형언길없는 아픔이 수근의 전신을 훑고 있었다. 몸 한 귀퉁이가 이지러지는것 같은 통렬한 아픔이 전신을 휩쌌다. 하지만 놓칠세라 수근은 아이를 꼭 보듬어 안았다.
뼈아픈 사람들끼리 뼈 아픈 몸을 껴안고 뼈 아픈 울음을 울었다.

 

월요일: 상 실

 

비행기는 두시간만에 떠난지 11년이 되여 고향생각에 멀미하는 사람을 고향역에까지 실어다 주었다.
아직 스모그에 오염되지 않은 고향의 공기를 수근은 걸탐스레 들이마셨다.
공항에서 44선뻐스를 타고 장도뻐스역으로 향하던 수근은 생각을 고쳐 신문사역에서 내렸다.
허위단심 달려온 고향, 겨불내나는 가슴을 달래줄 무언가가 필요했던것이다. 바로 랭면이였다. 그저 복무청사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 하나, 알뜰한 상표가 없이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랭면이라는 대명사로 자리매김 된 그 청사의 랭면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복무청사 랭면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는 수근은 건너마을의 만월처럼 둥근 얼굴의 처녀와 첫 대면도 랭면집에서 가졌었다. 첫 대면에서 두 사람은 렴치를 내려놓고 국수그릇을 깡그리 비웠다. 어쩌면 식성도 맞았다.
아이를 배였을때 남들은 시쿤것이 먹고싶다했지만 그녀는 시원한 랭면이 먹고푸다고 했다. 그래서 무거운 배를 안고 뻐스를 타고 와서 곱배기로 먹었던 그들이였다.
 한국으로 나가면서도 마지막 날 랭면을 먹었다. 이제 이렇게 맛나는 고향의 음식을 언제면 먹어보랴는 심정에서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부터 수근은 왠지 참을수 없는 공복을 느꼈다. 기내식을 먹었지만 왠지 소리치며 달려드는 공복감을 달랠수 없었다. 고향에 당금 닿게 된다는 달 뜬 상념에 고향의 음식이 못견디게 그리워 졌다. 타향에서 내내 마음의 공복을 키운 탓이리라. 고향으로 돌아와서 첫 일과를 무엇부터 시작할가 생각이 많았던 그는 이제야 행동반경을 구한듯 랭면집으로 찾아나선것이였다.
마치 길 잃은 강아지 밟아 온 자기 냄새를 맡듯 수근은 익숙한듯 낯설은 이 시가지를 기억으로 헤맸다.
트렁크를 끌면서 묻고 찾고한끝에 도심의 광장에까지 대여 왔다.
광장 동쪽켠에 오래 된 랭면집이 있었다.
광장에서 동녘을 향한 순간 수근의 입에서 헛비명이 새여나갔다.
수근은 망창한 기색으로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수근이가 찾고저 하는 랭면집이 보이지 않았다.
랭면집으로 이름높던 그 건물이 오간데 없었다.
마술사의 주술에 걸린듯 건물은 사라져 보이지않고 아픈 몸체의 내장에 생긴 공동(空洞)처럼 텅 빈 공터만이 그를 맞아주었다.
공터는 새로운 기초를 다지느라 성마른 기계들의 소음만이 무성할뿐이였다.
수근은 공터를 마주하고 얼음기둥처럼 그렇게 서버렸다…

 

 

“연변문학” 2013년 5월호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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