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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지는 “뼈”들의 이야기
2014년 11월 02일 18시 51분  조회:2100  추천:12  작성자: 김혁

. 평론 .

 

닳아지는 “뼈”들의 이야기
―김혁의 중편소설 “뼈”를 두고

 장하도

 

1. 문제제기
《연변문학》 지난 5호에 실린 김혁의 중편소설 “뼈”는 당대 중국조선족의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고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진지한 작가적사고와 깊은 사명감에 의한 주제의식으로 잘 그려낸, 심각한 사회적의미를 지닌 소설이다.
따라서 우리 조선족의 삶이 갈수록 많은 문제점을 산출하고있는 요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대담한 표현수단으로 주목을 받고있는 김혁의 이번 작품을 진지하게 의론하는것은 작가뿐만아니라 조선족소설의 전반적인 변화를 위해서라도 아주 가치 있는 작업이 아닐가 생각한다.
아래에 구조적인 측면에서부터 착수하여 “뼈”에 내재된 작가의식을 중점적으로 분석해보자.

2. “랭면”―음식에서 령혼까지
중편소설 “뼈”는 관속에 누운 “뼈”에 관한 시로부터 시작된다. 즉 이 소설은 제목과 함께 작품의 시작부터 “뼈”에 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할것임을 암시하고있는데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주된 이야기는 “뼈”를 둘러싼 여러가지 사건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뼈”의 이야기는 여러개의 작은 이야기로 무어져있고 요일의 전개에 따라 펼쳐지는 일종의 순차적이면서도 단계적인 구조를 취하고있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장소는 랭면집이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먹는 랭면을 앞에 두고 주인공은 눈물을 쏟아내지만 어이없게도 화장실에 간 사이에 그의 트렁크가 도적맞힌다. 어렵게 도적을 잡기는 했으나 트렁크속에 든 “뼈”는 경찰의 의심을 잔뜩 자아내는 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의 “뼈”였던것이다.

... 트렁크안에 두개의 비닐주머니가 들어있었는데 그 비닐주머니에 나뉘여 담겨져있는것은 뼈였다. 텅 빈 눈구멍이 선연하고 이발이 들쭉날쭉한 해골바가지며 굽이 나간 접시 같은 골반, 길다란 정갱이뼈… 분명 사람의 뼈였다.

랭면이 조선족의 대표음식중 하나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귀국해서 랭면부터 찾고 랭면을 먹으면서 눈물을 쏟는다는것은 고향에 대한 뿌리의식이 아직 남아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랭면집은 주인공이 민족적인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장소로 되는데 이러한 사건의 발단과 함께 랭면집이 헐리고 공터만 남았다는 소설의 결말은 그러한 민족적인 정체성을 확인할 장소나 기회마저 상실되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랭면은 단순한 음식문화뿐만아닌 민족의 정체성과 이어진 령혼의 존재감과도 직결된다 하겠다.

3. “묘소”―사람마저 매몰되다
원래 “묘소”란 죽은자를 묻는 장소이다. 그곳에 묻힌 사람은 산자에 의해 기리게 되고 정신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화를 통해 일종의 문화적인 전통이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 “묘소”가 헐리고 두번다시 매몰된다면 어떤 상황이겠는가?
중편소설 “뼈”에서 주인공이 부모님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 찾아간 고향은 사람들이 거의다 떠나고난 텅 빈 마을이다. 원래 백여호가 넘던 동네에는 겨우 여섯호만 남아있고 그마저도 다섯호는 관내에서 온 한족들이다. 게다가 도시의 수원을 위한 저수지확장공사때문에 마을 전체가 수몰지(水没地)로 물에 잠기게 될 운명에 처해있다.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묘소조차 임자를 잃게 되였는데 이처럼 묘소의 부재는 곧 그 마을의 력사와 뿌리가 사라지게 됨을 의미한다. 작품에서 조막령감의 말은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와닿는 가시와 같은 충격을 준다.

...그런데 요쌔(요즘)는 모두 로문(늙은)한 어시고 이쁜 처자고 막 버리고 훌훌 떠나버리니 나 원 참, 돈이 좋아 그런다마는 사실은 그 돈이 웬쑤(원쑤)인게다, 웬쑤!

조막령감은 이 마을을 대표하는 세대이다. 따라서 수근이와 병태 등 몇몇이서만 조용히 이장을 하는 모습은 조막령감이 말하는 그 옛날 “온 동네가 다 나와서 제 집 일처럼 애고대고 울어줬던” 때와는 너무나 달라 마을이 피페 그 자체로 화하고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람도 그전의 사람들이 아닌데 설상가상으로 마을마저 수몰지가 되여 묘소까지 위태롭게 된 고향, 고향은 말 그대로 황페하고 버려진 삶의 공간이요,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삶의 자취라 하겠다.

4. “명월”―이지러진 사랑
주인공 수근이가 이장에 이어 찾고싶은 사람은 오래동안 보지 못했던 전처와 아들이였다. 하지만 어렵사리 찾은 전처는 “사윈 초승달 같이 뺨이 훌쩍 패였고 풍만하던 몸매의 곡선도 허물어져보였다”. 한마디로 그 이름에 걸맞는 “명월”이 아니라 난데없는 초승달을 마주하게 된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초승달은 그가 일하는 명태가공소의 한족인 경리와 새살림을 꾸린터였다. 보름달이 초승달이 되고 초승달이 민족을 달리하는 가정을 꾸렸다는 사건은 주인공의 전처의 일이라 해도 민족적인 삶의 피페화뿐만아니라 이질화가 가속화되고있는 현실적인 모순을 잘 드러낸다 하겠다.
좀더 잘살아보려고 외국에 가는것이라고 한다. 그것때문에 “가짜리혼”을 하면서까지 모험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모험의 대가는 너무나 처참한것이였다. 조선족들의 경우 이런 일들은 이제 비일비재하다싶이 되여 거의 오래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타민족들한테는 충격 그 자체일수 밖에 없다. “명월”의 두번째남편의 아래와 같은 말은 그래서 우리의 정곡을 따끔하게 찌른다.

...내 생각엔 당신들 정말이 꽈이(怪)하다 했쏘. (중략) 뭐가 그리 쪼우지해서 밭이 뿌요(不要), 집이 뿌요, 애들이 뿌요, 푸무(父母) 뿌요하고 가뻐리고 했쏘?
돈이 잘 벌어오오 좋쏘. 돈이 좋긴 했쏘.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마니 벌어쏘. 그담엔 쩐머빤(怎么办)? 팡즈(房子) 메이라(沒了), 밭이 메이라, 로우퍼(老婆) 메이라, 위쓰왕퍼(鱼死网破) 그리 됐쏘 했는데.

당연히 경리의 말은 수근이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고 부상을 입은 옆구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물론 이 장면에서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독자라면 민족적인 삶의 위기나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자책감 비슷한것을 느낄것이다.

5. “스케트보드”―아이마저 잃다
주인공 수근이는 전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렵사리 하나뿐인 아들애 욱이와 상봉한다. 하지만 오래된 나날을 두고 부자간에는 이름 못할 차디찬 강물이 벽처럼 가로막혀있고 이들은 제대로 된 대화를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다. 오히려 아이의 요구에 의해 세트로 사준 스케트보드는 아이를 순식간에 학교앞에서 사라지게 만들뿐이다.

...“왜 인제야 왔어요? 어디서 뭘 하다가요?”
“엄마와는 왜 갈라졌죠? 둘 다 좋은 사람 같은데?”

아들애는 아버지의 확답 같은것을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진듯했다. 수근이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나래 펼친 새처럼 두팔을 휘저으며 저만치 미끄러져갔다.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아버지의 감회가 얼마나 컸으랴마는, 그것도 돈벌이하느라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한 자책감 또한 얼마나 컸으랴마는 아들애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깊고깊은 상처자욱으로 남았고 그 자욱을 메우기 위한 기회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흔히 아버지의 형상으로부터 아들은 남성으로서의 초기 모델을 형성하는데 그 모델의 성격여하는 곧바로 장차 아들애의 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그러한 모델을 상실한 아들애가 아버지와의 상봉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아들과의 그러한 소통장애는 주인공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한다는데 있다. 즉 주인공의 삶의 미래적인 추이는 아들과의 그러한 장애때문에 매우 암울하게 비쳐진다는것이다.

6. 수장의 뒤끝은 상실
부모를 수장한 주인공은 다시 기약 없는 출국길에 올랐다가 아들 욱이가 크게 다쳤다는 련락을 받게 된다. 그가 사준 스케트보드를 타다가 아들이 크게 골절상을 입은것이다. 아버지가 어쩌다 사준 선물때문에 아들의 생명이 위험할번했다는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가? 이는 아래의 한 단락에서 찾아볼수 있다.

코날이 왈칵 시큰해지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뚤렁뚤렁 아이의 얼굴에 떨어져내렸다. 부모님의 유골을 고향의 강에 안치하고 발길을 돌렸지만 아직도 뭔가 묘연하고 암담하기만 한 응어리가 발걸음을 자꾸 옥죄였는데 그 응어리가 바로 아이였음을 수근이는 다시금 느낄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어렵지만 어쩔수 없는 한국행을 해야 하는 주인공의 발을 굳게 묶어두는 아들의 부상은 바로 주인공의 삶의 뿌리가 어디에 있고 삶의 의미와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하나의 장치였을것이다.
또한 마감을 장식하는 “월요일: 상실”이라는 부분은 그렇기때문에 뿌리를 잃고 헤매이는 수많은 조선족들의 현재적인 삶의 이모저모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사색을 엿보이게 한다.
지금의 시대광장 동쪽에 위치한 랭면집―복무청사가 사라지고 텅 빈 공터만이 남았다는것은 랭면에 담그다싶이 했던 마음들이 모조리 공터에 버려졌음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즉 랭면집의 부재는 이 소설의 경우 주인공의 특수한 삶의 경험과 더불어 랭면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었던 수근이네들―우리의 삶의 공간이 일시적이나마 사라졌음을 상징하며 뿌리를 잃어가는 우리의 삶의 모순된 현장을 상징적으로 꼬집는것이라 할수 있다.
이처럼 김혁의 중편소설 “뼈”는 우리한테 마땅히 있어야 할 “뼈”가 도대체 어떤것이여야 하는지를 흥미로우면서도 상징적인 여러가지 소설적장치로 잘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라 하겠다. 앞으로 보다 더 가치 있는 작품을 기대해마지않는다.

“연변문학” 2013년 10월호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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