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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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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쿠라 겐, 천국의 강을 건너다
2014년 11월 19일 14시 47분  조회:6311  추천:46  작성자: 김혁

 

. 칼 럼 .
 

다카쿠라 겐(高仓健), 천국의 강을 건너다
 

김혁

 1,​

80년대 최고의 우상으로 몇세대 중국인들에 두꺼운 팬층을 확보했던 일본의 국민배우 다카쿠라 켄이 타계했다.
지난 10일 오전 악성 림파암으로 도꾜의 한 병원에서 숨졌으며, 이 같은 사실을 아사히신문이 뒤늦게 보도했다. 향년 83세.
아사히신문은 이례적으로 호외까지 발행하며 그의 죽음을 기렸고 관방장관은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계 대스타였다며 하나의 큰 시대가 그와 함께 막을 내렸다"고 애도했다.
"가는 길은 정진하고, 끝나면 후회는 없다."고 하면서 천명을 완수한 편안한 미소를 띄고 가셨다고한다.
이 말은 어느 사찰의 유명 주지스님이 일찍 다카쿠라 켄에게 보내온것으로 다카쿠라 씨의 평생의 좌우명이였다.

불과 몇달전 일본의 전설적인 톱스타 야마구찌 모모에의 아버지역을 맡아 중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따도모(大岛茂)”-유키티나리의 타계소식을 접하고 비감에 잠겨 추모수필을 썼었는데 또 한분의 영화거장의 타계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서재의 일본영화코너에서 골라보니 내가 소장한 다카쿠라 켄의 영화 DVD가 십여장도 더 되였다. 창작스케줄이 빼곡하고 편집부의 청탁재촉이 아우성이였지만 해조처럼 밀려드는 비감함에 집필을 해나갈수 없었다. 컴퓨터를 끄고 스크린앞에 마주앉아 하루 종일 그가 열연한 영화들을 하나하나 다시 보아 내려 갔다.
“행복의 노란 손수건”, “철도원”, “역”, “먼산의 부름”, “추격” 어쩌면 하나같이 정직과 진지함과 의리의 화신같은 남성상을 보여준 외골수 캐릭터로 열연한 영화들이였다.​

내가 소장한 다카쿠라 켄의 영화들

중국의 유명한 장예모감독 역시 다카쿠라 켄의 열성 팬이라 몇해전 굳이 고령의 그를 중국의 스크린으로 불러내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를 제작, 영화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주인공과 그 아들간의 갈등과 부자애를 감동적으로 다루었다.
다카쿠라 켄은 지난 2008년에는 북경올림픽 총감독을 맡았던 장예모에게 일본 전통의 무사도를 선물하는 등 그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영화인생을 다시 돌이켜 보았다.
다카쿠라 켄은 1931년 2월 16일 후쿠오카에서 태여났다.
메이지대학 상학과(商学科)를 다녔다. 졸업하고 가업을 돕다가 1955년 상경, 예능 프로 제작에 관심이 있어 면접을 봤는데 그 자리에 있던 영화사 “도에이”의 간부에게 스카웃 돼 배우로 활동하게 됐다.
1955년 배우 모집에 합격하면서 영화계에 입문, 1956년 “전광공수치기 电光空手打”에서 주연을 맡아 스크린에 데뷔했다. 애초에는 ”미야모토 무사시 (宮本武藏)”, “일본협객전” 등의 무협영화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1970년 다카쿠라 겐 프로모션을 설립했고1976년 제22회 아시아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77년 “행복의 노란 손수건”과 “핫코다산(八甲田山)”으로 제51회 키네마 준보 주연남우상, 제32회 마이니치 콩클 남우연기상, 제1회 일본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두번째로 제24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또 1999년 몬트리올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지난해엔 상기 영화제로부터 문화 훈장을 수상했다.
이후 “철도원”으로 제23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일본아카데미 최우수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영화배우로는 처음으로 정부 주관 문화공로자에 선정됐으며, 작년에는 문화 발전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는 문화훈장까지 받았다.
2012년 마지막 영화 “당신에게”로 그해 일본 호치(報知)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는 등 생애 마지막까지 현역으로 뛰였다. 이번에도 차기작 준비 도중 갑자기 입원했던것으로 전해졌다.
데뷔 이후 총 200여 편의 영화에서 구김없는 그 모습 그대로 열연, 뛰여난 연기력과 인품을 갖춰 일본 팬들에게 “겐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다.
 

2,

다카쿠라 켄의 타계에 대해 중국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각 사이트와 개인 블로그가 그의 타계소식으로 메인을 장식했고 중국의 톱스타들이 분분히 그의 사망을 애도하는 한편, 정부차원에서도 즉각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홍뢰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어제 정례회견에서 "다카쿠라 겐 선생은 중국 인민에게 널리 알려진 예술가라며, 중·일 량국 문화 교류 추진에 중요한 공헌을 했던 그의 별세에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중일 관계가 외교적으로 껄끄러운 상황에서 일본 배우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애도 성명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다카쿠라 켄을 중국에 알린 영화는 바로 “추격”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그대여 비분의 강을 건느라”이며 사실 다카쿠라 켄의 영화생애에서 그닥 중요한 위치를 갖지 못하는 영화이다. 지어 다카쿠라 켄의 영화출연목록에서 이 영화를 찾아 보기 힘들며, 지금 영화의 전성시대를 펼치고있는 한국에서는 이 영화가 상영되지조차 않았다고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이 영화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흥행가도를 달렸다.
당시 중국의 영화작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물이라는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주역 다카쿠라 켄의 공로가 과반으로 컸다. 의리와 과묵함으로 대변되는 특유의 선 굵은 연기를 펼친 다카쿠라 켄의 이미지는 대번에 당시 중국인들의 심성을 사로잡았다. 거리와 골목에서는 이 영화의 주제가가 스피카로 싫증을 모르고 반복되여 울려퍼졌다. 가사는 단 한마디도 없이 “라야, 라” 하는 후렴구같은 두마디만 복창하는 그 주제가의 중독성있는 선률이 어쩌면 당시 모든이들의 마음과 귀를 그렇듯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고 늘 바바리 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다니는 영화 주인공 모리오카(杜丘)의 형상때문에 중국에서는 바바리 코트 복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류행되였다. 당시 젊은이고 보면 너나가 코트 한벌 갖추기를 원했다. 거리에 나서면 모두가 꼭 같은 형태의 코트를 입고 바람도 없는 날에도 하필이면 옷깃을 세우고 어깨를 살리고 다녔다. “다카쿠라 켄”효과였다.​


문혁이라는 십년동란을 거친 중국은 오래동안 좌적인 멍에와 교리(敎理)의 가쇄(枷鎖)에 옥죄여 있었다. 그러다 80년대 초, 조금 원활해진 풍토에 힘입어 엄격한 검열의 관문을 뚫고 간신히 대륙에 상륙한 해외의 문화는 영화로부터 시작, 그중에서도 일본영화가 압권이였다. 야마구치 모모에가 출연한 드라마 “의심스러운 혈형”이 안방극장을 사로잡았고 다카쿠라 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추격”, “먼산의 부름”, “행복의 노란 손수건”등이 영화관의 모든 객석을 점하면서 상상 그 이상의 인기몰이를 하였다. 그 와중에 다카쿠라 겐은 중국 관객들의 최고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중국 여러 계층의 관객들은 천편일률적인 “본보기극”이라는 몇종의 경극으로만 간신히 문화욕구를 해결해야 했던 암울한 시기를 지내왔었다. 문화 콘텐츠의 공백을 허무한 눈으로 장장 십여년간 봐야했고 수억명을 헤아리는 신세대들의 다양한 문화 욕구는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맨 처음 외부 세계에 눈뜨기 시작한것이 일본영화였고, 다카쿠라 켄이였다. 때문에 그 화약같은 강렬한 인상은 오랜시간이 흘러도 그 세대의 심방 깊은곳에 깊숙히 각인되여 있는것이였다. 옹근 80년대 중국은 일종의 일본문화의 돌풍을 경험하고있었다.
콘텐츠의 빈한함에 질려있는 상태였던 당시 상황속에서 들어왔던 일본 영화들이 중국사회에 던진 파문은 결코 가벼운것이 아니였다. 이러한 문화적 쇼크는 그동안 “정치적 이데아(인간이 감각하는 현실적 사물의 원형으로서,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것)에 갇혀졌던 중국문화의 틀을 조금씩 깨는데 이바지하게 되여서 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되고있다.
 

3,

다카쿠라 겐은 그 화려한 정평중에서도 “일본의 잃어버린 전통적 남성상을 보여준 스타”로 평가되고 있다.
옛부터 군자를 리상적인 남성상으로 삼아 온 우리 민족에게는 대범함, 강직함, 신중함, 과묵함 등이 남성다움의 덕목이라는 의식이 깊이 뿌리 내려 있다.
하지만 근년들어 세상은 어쩌구려 남성상실의 시대를 맞아왔다. 가부장적인 남성스러움을 잃어버린 현대 남성들이 늘어나면서 남성들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 회의를 가진지 오래다.
하여 기존의 남성다움을 어필하지 않고 녀성화 된 남성들이 최근 사회에서 버젓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여있는 현실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남성들은 홀로 선술집의 구석쪽에서 독한 자조의 술을 마시며 자기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있다.
강한 남성에 대한 향수는 남성으로서 원초적인 본능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강한 남자, 시대를 이끌어가고 가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중심추적인 역할을 하는 그런 남자에 대한 환상은 남성들이 공유하고저하는, 어쩌면 이 시대가 잃어버린 향수 일듯하다.
우리가 수십년전 80년대에 우리에게 다가왔던 일본의 한 배우를 내내 잊지못하고 그의 타계에 대해 남다르게 애닯아 하는 또 다른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가?
 

2014년 11월 19일
“청우재”에서 
 

 
  •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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