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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꽃(夜來香), 지다
2015년 01월 03일 09시 41분  조회:4401  추천:15  작성자: 김혁

. 칼럼 .
 
달맞이 꽃(夜來香), 지다
 

김 혁

 
1,
 
남풍은 쓸쓸하게 불어오고
꾀꼬리 구슬피 우옵니다.
달아래 꽃들은 모두 꿈에 젖는데
오직 달맞이꽃만이 향기를 뿜네요.

망망한 어둠속에
꾀꼬리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그 꽃같은 꿈을 난 더더욱 사랑합니다.
꽃을 품에 안고 꽃잎에 입맞춤하며
달맞이꽃
나 그대를 위해 노래하고
그대를 그리워합니다
 
주옥같은 노래로 억만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중가수 등려군의 대표작 “야래향” 전문이다.
야래향(夜來香)은 밤에 피는 꽃이다. 야래향을 일명 월하향(月下香), 월견초(月见草), 기생화(妓生花)라 부른다. 낮에는 꽃술이 오므라들었다가 달뜨는 밤이 되면 활짝 벌어지기 때문에 일명 “달맞이꽃”이라고도 한다. 해외에서는 나이트자스민(night scented jasmine)이라 부르는데 역시 밤이라는 “나이트”가 따라 붙는다.
 
바늘꽃과에 속하는 2년생 식물로 학명은 Oenothera odorata라고 한다. 키는 50~90㎝, 꽃은 지름이 3㎝ 정도 노란색이며 7월부터 가을까지 가늘고 긴 통꽃이 피는데 남아메리카의 칠레가 원산지이며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귀화식물로 자란다.

그러면 달맞이꽃은 왜 밤에만 피여나는 것일까?
그 해답은 달맞이꽃의 수정을 도와주는 곤충에 있다. 바로 박각시나방이 그 주인공인데 이 나비는 꽃잎이 벌어지는 박꽃을 찾아가 꿀을 얻는데서  신랑인 박을 찾아온 각시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박각시 나방”이라고 불린다. 박각시 나방이 밤에만 다니며 수정을 도와주기에 달맞이꽃이 밤에만 그 수술을 벌려 나비를 맞이하는것이다. 서로 경쟁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밤을 택한 참 지혜로운 식물이요, 곤충이다.

달맞이꽃은 우리에게 유용한 식물이기도 하다. 달맞이꽃의 종자에서 짜낸 기름에는 “감마리놀린산”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여 있어 혈액순환과 콜레스테롤 개선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천연화장품의 원료로도 리용된다고 한다.

희랍신화속에도 야래향이 나온다.
별을 사랑하는 님프들속에서 홀로 달을 사랑하던 님프가 모함을 받아 달이 없는 곳으로 추방된다.
이를 본 올림포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가 그를 쌍히 여겨 그 령혼을 달맞이꽃으로 환생시켜 달이 뜨는 밤이면 꽃을 피우게 해주었다고 한다.

 
2,
 
밤에만 조용히 향기를 뿜는 달맞이 꽃처럼 애타는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한 등려군의 “야래향”은 개혁개방을 맞은 중국에서 카세트테프로나마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다. 또한 광동어, 일본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어, 한국어 등으로 동남아지역의 베스트 가요로 떠올랐다. 등려군 외에도 중국과 일본의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번안해 불렀다.
하지만 막상 이 노래의 원창자는 등려군이 아니다.

영화의 주제곡으로 맨 처음 이 노래를 세상에 선 보인 사람은 리향란(李香兰)이란 이름의 가수이다. 그리고 그는 이름자와는 달리 중국인이나 한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다. 그의 본명은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  

요시코의 아버지는 로일전쟁후 중국 동북으로 왔고 이어 1920년 요시코가 태여났다. 요시코는 당시 중국과 일본,  로씨야인들이 모여 살고 있던 만주에서 일본어 중국어 로씨야어등 다국 언어를 자연스레 익혔다. 그후 아버지의 중국친구인 퇴역장군 리계춘이 야마구치 요시꼬를 양녀로 삼았고 향란이라는 중국이름을 붙여줬다고한다.

야마구치 요시코는 소녀 시절 폐병을 치료하려고 성악을 배웠는데 1933년 봉천(奉天, 지금의 심양시)방송국이 중국인청중을 끌기 위해 기획한 프로- “만주 신가곡”에 발탁되여전문가수가 되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친구가 지어준 이름인 리향란이라는 이름을 예명을 썼다.

1931년 “9.18사변”을 일으켜 위만주국을 세운 일본은 겨우 열세살난 요시코를 방송국 전속가수를 시켜 제국주의를 선전하기 시작했다. 만주영화협회는 1937년 “위만주국”정부와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满洲铁道株式会社)가 50%씩 투자하여 “만주국수도” 신경(新京, 지금의 장춘)에 설립했는데 만주인들에게 보여줄 영화를 만주인들이 찍는다고 표방했으나 실지로는 일본인들이 조종했고, 목적은 “오족협화”, “일만친선”을 국책으로 하는 문화정책추진이였다.
이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음악영화를 기획했는데, 중국녀배우들이 노래를 부를 줄 모르고 대역도 찾지 못해 골치를 앓던 차에 제작자가 우연히 신경방송국이 방송하는 “만주신가곡”을 듣고 리향란이라는 인물을 기용하려 마음먹었다. 섹시하고 이국적인 용모와 뛰여난 가창력. 여기에 중국어와 일본어를 모두 구사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배우로도 활동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리향란은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면서 영화의 주제곡으로 “야래향” “소주야곡(苏州夜曲)” 등을 불렸다. 일석에서는 이 “야래향”을 민족적 울분이 함축된 노래라고 본다.
이후 셜리 야마구치라는 이름으로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야마구치 요시코는 미군 장병들과 사랑에 빠진, 동양에서 온 신비한 녀인을 연기했다. 순종적이고 사랑스러운 녀인으로 분한 리향란은 대중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했고 중국과 일본 나아가 할리우드에서까지 사랑받을수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중국정부는 친일, 친미 행위를 한 반역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리향란 역시 처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시킨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선동한 죄로 법정에 서게 된 리향란은 결국 사형을 선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리향란의 진짜 정체가 밝혀졌다. 그녀는 자신이 일본의 선전도구로 리용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리향란이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의 부모가  가까스로 호적등본을 찾아내 일본인임을 립증했고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그후 리향란은 중국에서 추방됐고 중국에서는 그의 영화와 노래가 금지됐다. 따라서 “야래향”이라는 노래도 40여년간 중국땅에서 사라지게 된것이다.


 
3,
 
일본인 신분을 속인 완벽한 중국인 녀배우로 격동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일본 녀배우 야마구치 요시코씨는 지난 가을, 도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향년 94세.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전에 있은 정례브리핑에서 야마구치 씨의 사망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리향란녀사는 전후 적극적으로 중일 우호 평화사업을 추진하며 적극적인 공헌을 했다"며 "우리는 그의 서거에 애도를 표시한다"고 론평했다. 야마구치씨가 비록 일제제국주의를 선전하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 행위가 그녀의 예술적 성취등을 모두 부정하지는 못한다는 평가를 내린것이다.
 
중국에서 강제 추방당한뒤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야마구치 요시코라는 본명으로 배우 활동을 재개했다.
1950년 유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영화 “추문”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1950년대에는 미국 영화와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했다.
1951년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와 결혼했다가 4년 뒤 헤여지고 1958년 일본인 외교관과 결혼하면서 영화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팬들의 부름에 떠밀려1969년 TV 토크쇼 진행자로 복귀했고 국민적 인기를 배경으로 1974년부터 1992년까지 근 20년동안 자민당 참의원을 지냈다. 국회의원 시절 환경성 정무차관까지 지내기도 했다.
연예계 생활 은퇴 후에는 윁남전과 중동전쟁 등에 현장 취재기자로 뛰여다녔고 당시 베일에 쌓여있던 조선의 김일성 수상을 사상최초로 단독 인터뷰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김일성은 언론 로출을 꺼리는 인물이지만 리향란의 팬이라 결국 인터뷰를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야마구치는 만년에 자서전 “李香蘭私の半生”을 펴냈다. 중국인이다, 혼혈아다, 간첩이다, 뭐다 등등 끈질기게 따라붙던 여러 가지 설들을 해명하기 위한 의도가 다분한 그 책을 길림문사(吉林文史)출판사가 1990년 4월에 번역출판했는데 자서전에서 그녀는 “리향란으로 출연했던 영화를 다시 보니 정말 부끄럽다”며 선전영화에 출연했던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 스타”라는 타이틀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야마구치 요시코는 두 권의 자서전과 인터뷰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 행각을 반성했다. 또 “아시아녀성기금” 부리사장을 지내며 전쟁 피해자와 종군 위안부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할것을 일본정부에 촉구하는 활동에 적극 참여 했다. 2005년에는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도 반대해 나섰다.
 
력사의 증인 한명이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나마 안위되는것은 그가 보여준 만년의 행보가 어제를 회고하고 반성하는 로인네의 웅숭깊고 착한 자세를 보여줬기때문이다.
 
“만주국”의 실력자로서 “만주오인방(滿洲五人幇)”의 하나였고 전후 일본정계를 주물렀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신죠 일본총리처럼 죄책감이 없는 자들이 스스로 마련한 작은 무대에서 력사를 위배한 광대극을 놀고있것이 작금의 일본이다. 이러한 상황에 요시코의 반성과 노력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리향란, 아니 요시코라는 인물의 서거에 대중이 눈길을 모으며 그녀의 노래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리유라면 리유다.
야래향은 이제 아름답게 졌다.
 
2014년 9월 18일
“청우재(听雨斋)”에서

 

 

김혁 문학블로그: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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