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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초상화
- “윤동주 평전”을 읽다
“위편삼절(韋编三绝)”이라는 일화가 있다.
“사기(史记)”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나오는데 공자가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번 끊어지도록 “주역”을 탐독했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내게서 “위편삼절”의 책이 있다면 바로 “윤동주 평전”일것이다.
80년대 윤동주가 뒤늦게나마 고향 연변에 알려지면서 “문학과 예술”지에서 윤동주라는 이름을 맨 먼저 접했다. 그의 시비가 다른곳도 아닌 나의 모교인 룡정중학에 세워졌을때의 놀라움, 저 유명한 “서시”를 처음 읽었을때의 그 전률, 지금도 내 심방(心房) 깊은 곳에 화인처럼 남아 잊을수 없다. 문학도시절인 1988년 열음사판으로 나온 “윤동주 평전”을 선배문학인에게서 빌려 읽었고 윤동주의 생애를 장편으로 소설화하면서 다시금 증보판, 개정판들을 거의 모조리 사들여 거듭 읽었다.
윤동주의 생애 읽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시도되여 독자들과 만났다. 한국에서만도 그의 시세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 석사학위를 받은 이가 무려 50여명이라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이 압권중의 압권이요, 경전중의 경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전에는 그의 맑은 령혼이 준미(俊美)하게 담겨져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학사모를 쓰고 순수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그 졸업사진처럼.
력사학에 천착하면서도 원체 소설가라 뛰여난 작가적 감수성으로 송우혜는10여년을 갈고 닦은끝에 윤동주 생애에 대해 황홀하게 복원해 내였다.
친지와 친우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하고 빈틈없는 현장답사와 풍부한 자료를 섭렵, 룡정광명중학의 학적부, 일경의 극비취조문서, 판결문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들을 동원하고 그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분석을 가했다. 그저 단순한 책상물림의 상상력 연 띄우기 방식이 아니라 치밀한 작업으로 실존적 고뇌와 준엄한 륜리적 태도를 지니고있는 한 고절한 시인의 마음의 행보를 샅샅이 더듬으면서 그 생생한 숨소리까지 평전은 들려주고있다.
평전을 읽노라면 반일의 책원지인 북간도 명동에서 태여나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보내온 간행물을 읽으며 문학의 꿈을 키워온 윤동주, 일본야수들의 민족말살의 잔학한 술책에 학교를 이리저리 옮겨야 하는 수모를 겪는 윤동주, 경성의 연희전문에 입학하여 구지욕을 불태우던 윤동주, 참회를 읊조리며 일본으로 류학길에 올랐던 윤동주, 일본형사들의 마수에 떨어져 후쿠오카 감옥에 갇혀서 생체실험의 의혹을 남긴채 민족의 해방을 불과 몇달 앞두고 비명에 간 윤동주…의 삶과 문학의 려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외에도 평전을 통해 그 시대를 올곧게 살아내려고 애썼던 이들의 삶의 궤적을 우리는 만날수 있다.
민족을 위해 혼신을 던지면서 윤동주라는 고고한 별이 창공에 빛나기까지 깊은 영향을 주었던 스승, 친지, 친구, 은사, 문호들인 김약연, 송몽규, 명의조, 최현배, 문익환, 정병욱등 주변인물들의 다채로운 삶의 자취, 윤동주라는 별자리에 주위에 모여 함께 빛을 내는 다른 별들의 공전과 밝음에 대해서도 더불어 료해할수가 있었다.
작가는 시인의 생의 순간순간에 현미경을 들이댔는데 대상에 대한 장악력으로 그 일거수 일투족을 묘사하는 치밀성에 엄지를 빼들지 않을수 없다. 과시 “윤동주라는 인물연구의 결정체요, 평전문학의 진수”라는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처럼 인물전기의 진수를 보여준 평전이였다.
고향사람인 우리도 미처 몰랐던 연변지역의 당시 시대상과 풍토가 평전의 초반에 오렷이 그려지는데 이 또한 작가가 우리에게 선물한 또 하나의 경이로움이였다.
명동지역에서 재배한 콩이 2차세계대전시기에 벌써 구라파에 까지 수출되였다는 당시의 경제상황도 흥미롭고 특히 작가가 진지하게 풀이한 함경북도 사투리에 대한 진지한 해석도 재미있다. 어딘가 툽상스럽다고 우리 스스로 생각되였던 이 사투리는 사실 “경음화하지 않은 '순하고 은근하고 아름다운' 말”이며 “윤동주의 시는 그런 언어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고 작가는 깊은 의미를 덧대여 해제를 달고있다.
사건들을 추적하여 그 력사를 따라가면서도 다시 시의 궤적을 따라 시를 통해 력사를 읽고 인물의 생애를 다시 읽는 기법을 쓰고 있어서 문학인으로서는 인물전기외에도 시집, 작품론평을 읽는것처럼 “일석다조”의 감흥으로 읽혔다.
고향의 산하와 인간의 존엄이 야수들의 잔학한 마수에 짓밟혔던 한민족 근세사의 가장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그 짙은 어둠으로 점철된 공간에서도 시대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그에 대해 고민한 지식인 청년이 바로 윤동주였다. 그런 고민을 글로 풀어내고 그 진지한 자세와 성품이 일신에 배여있어 그의 사람살이에도 속된 잡티가 없다.
스물아홉 짧은 생의 그의 삶은 또한 그의 시와 너무도 닮았다..
그는 닥쳐오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면서 순수한 마음과 투명한 감수성으로 한 시대를 갈파하고 량심을 노래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깊은 바다속 조개가 진통을 견뎌내며 진주를 품듯이.
천형처럼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온 문학적 열망과 민족애로하여 북간도 오지의 한 문학지망생이 민족 최고의 시인으로 떠올랐으며 그렇게 엮여진 그의 작품은 알알이 진주처럼 값지고 빛나오르는 것이다.
조선족문단에서도 뒤미처 인물전기가 각광받는 풍토가 일고있다. 작가들 저마다 전기문학에 매이고 책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 하지만 그 작품수, 더우기 수작(秀作)의 미량(微量)으로 우리의 전기문학은 아직도 걸음마타기이며 그 저변이 아직도 척박하다. 이렇게 볼때 “윤동주평전”은 우리의 전기문학장르를 꿈꾸는 작가들에게는 범문이요, 독자들에게는 애장서격이라고 말해도 지나침이 없을것이다.
작가의 설명처럼 “자기 몸을 던져서 사람의 삶이 업보처럼 지니게 마련인 근원적인 부끄럼과 마주 선 존재”인 드높은 격조와 기품을 갖춘 윤동주, 고향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한 시인의 이야기를 그의 탄생 95주년을 맞아 다시금 필사(笔写)로 남기며 밑줄 그어가며 읽는다.
“연변일보” 2012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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