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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2017년 03월 26일 15시 13분  조회:1716  추천:11  작성자: 김혁
 

 . 독서칼럼 .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혁

 


민족영웅 안중근에 대한 책자는 많이 나왔고 나의 서가에도 적지않게 꽂혀 있다.
지난 1980년대 장춘의 송정환 선생이 집필한 인물전기 “안중근”, 조선족 시인 김파의 장편서사시 “천추의 충혼 안중근”으로부터 한국의 유명작가 리문렬이 안중근의 일대기를 소설화 한 장편소설 “불멸”에 이르기까지 안중근 관련전기물들을 픽션과 논픽션물로 여러권 소장하고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접하는 순간 제목부터 강렬하게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고 감질난 독서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책은 짧은 단편 력사소설로 포켓(袖珍)용으로 발간되였다. 몇해전 한국행차에서 이 책을 접했고 귀국하는 비행기내에서 단숨에 독파해버렸다. 몇십분내에 읽을수 있는 분량이였지만 읽고난뒤 그 느낌은 강렬했다.
책은 한국의 력사학자 리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와 안중근의 모친 조마리아의 후손인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집필했다. 력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소설형식을 빌었다.

 


안중근 의사


안중근의 할빈 거사 30년 후인 1939년 10월 16일.
안중근의 둘째 아들 안준생은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 남산 장충단에 지은 절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죄의 머리를 숙인다.
이튿날 일본과 한국 전체가 발칵 뒤집힌다. 각 신문들은  톱소식으로 "안중근의 아들이 아비 대신 용서를 구했다!"라고 전했다. 안중근의 거사에 두손 번쩍 쳐들었던 전체 민족의 환성이 탄식으로 바뀌는 순간이였다.
안중근은 민족의 이름으로 조선침탈의 괴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이토는 죽었고 그로서 안중근은 나라 잃은 조국과 민족에 불세출의 영웅으로 남았고 력사에 큰 획을 그으며 잠들었다.
그런데 한국 근현대사 최고의 영웅의 아들은 대체 왜 이런 력사를 거꾸로 뒤집는 선택, 터무니없는 행각을 벌렸을가?

 

안중근이 중국 려순의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뒤 일제치하에 남겨진 가족의 생은 분명 곤고했다. 큰 아들은 일곱살 어린 나이에 일제의 끄나불이 넘겨준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죽었고 안중근 일가족이 김구선생을 찾아 상해로 가지만 림시정부가 일제의 추적을 받게 되자 급히 철퇴하면서 안중근의 유가족을 챙기지 못해서 둘째아들 안준생은 타지에 버려졌다.
책은 바로 그 둘째 아들 준생의 힘겨운 성장과정을 극화시켜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있다.
가족은 돌보지 못하고 오로지 조국과 민족만 생각했던 아버지, 영웅 아버지를 둔 덕에 그는 평화와 행복도 누리지 못하고 일제의 탄압과 감시속에 촌보난행의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버지 안중근의 아들로 태여나 형은 피살당하고 일제의 방해와 횡포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근근득식하면서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간 그다.
그런 안준생을 향해 일제가 손을 내민다. 그 배후에는 력사를 기만하려는 일제의 야욕이 숨어있었다. 일제는 안준생이 다름 아닌 안중근의 아들이기에 “내선일체”에 리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 민족말살정책에 안준생을 끌어들이고자 악랄한 수법을 꾸몄던 것이다.
그만큼 안준생의 고뇌는 깊었다. 일제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그 자신은 물론 어머니와 누이까지 죽이겠다는 협박이 그의 잔등을 윽박질렀다. 무릎을 꿇으면 일시 안정된 삶이 주어질터지만 그때로부터 친일파, 변절자라는 오명이 따라 붙을것이였다.
그러다 모진 세월을 견디다 못해 그만 아버지가 단죄한 그 민족의 원쑤의 후예에게 사죄의 머리를 숙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과 우리 민족을 향해 복수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앞자리 맨 왼쪽 안준생, 오른 쪽이 이토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


호부견자(虎父犬子: 호랑이 아비에 개 같은 자식). 안준생에 쏟아진 가장 큰 비난이다.
영웅 안중근의 삶과 그 뒤에 가려져 고난의 삶을 살아야했던 영웅의 아들의 엇갈린 간극을 보여준 소설, 하지만 책은 그에 대해 단죄하고 묻어버리기 보다 그를 그렇게 만든 어두웠던 과거에 대해 묻고 그 심연에 대해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책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겨레를 더럽히는 선택을 강요받는 극단적인 비극에 던져져야 했던 한 심약한 령혼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근년래 문체혁신에 고민하는 소설가들에 의해 대체력사(代替历史, Alternate History)물이라는 새로운 쟝르가 나왔다. "실제 력사가 다른게 전개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하에 그 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가상소설의 한 기법이다.
제목만 보면 대체력사소설처럼 보일 소설, 하지만 그런 현학적인 문체로 쓰지않고 담담히 내려간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외려 더 강한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
요즘들어 섬나라의 몰지각한 지도자들에 의해 우경화의 행보가 더 우심화되고 중국 할빈의 역두에 드디여 안중근 기념관이 설치된 시점에서 다시 읽은 책, 작은 책자가 주는 울림은 그래서 더욱 강했다.

“길림신문” 2014년 2월 15일

안중근의 의거를 재현한 유화(김봉학 그림).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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