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작수필 .
동주를 위한 3개의 공책(空册)
김혁
공책 둘
간(肝)의 노래
남자들끼리 앉으면 간에 대한 화제가 많이 떠오른다.
세계적으로 남성들이 녀성들 보다 간암 발병 위험이 7배나 높다고 하니 잦은 음주로 인한 간 질병에 대한 걱정으로 남성들 화제의 일순위에 오르는때가 많은것이다.
인체에서 가장 큰 장기인 간은 복부의 오른쪽 웃쪽에 위치하는 내장기관으로 입을 통해 섭취돼 위장관에서 소화, 흡수되는 대부분의 물질들을 걸러낸다. 갑옷 떨쳐입고 칼과 창을 비껴들고 성문이나 궁문을 지키던 옛날의 무관들처럼 우리 몸의 “수문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것이다. 뿐만아니라 영양분의 대사와 저장, 단백질과 지질의 합성, 면역 조절 등 정상적인 신체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생화학적 대사 기능을 대부분 담당하고 있다.
우리 몸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고 저장하며 인체의 해로운 물질을 해독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고마운 장기이다.
여기 간에 대해 읊은 시인이 있다. 윤동주,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되는 시가 바로 “간”이다.
바다가 해빛 바른 바위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여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룡궁(龙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매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경성의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시기에 쓴 작품으로 알려진 이 시는 두 개의 이질적인 설화를 결합하여 형상화하고있다.
시는 거북이의 꾀임에 빠져 간(肝)을 잃을뻔했던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졌다는 우리민족의 “구토지설(龟兎之说)”과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어 신의 저주를 받고 매일 재생되는 간을 독수리로부터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의 희랍신화를 적절히 변용하면서 작품속에 투영시키고 있다.
윤동주는 궁지에 몰려서도 슬기롭게 자기의 “간”을 지킨 토끼와 죄 아닌 죄를 짓고서 속죄양이 될수밖에 없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처지를자신과 동일시하며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한국 연세대 설성경교수가 윤동주의 시 “간”에 대해 저항시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구운몽”을 새롭게 해석하는 등 한국 고전소설의 난제를 해결해 온 전문가인 설교수는 "윤동주의 “간(肝)”에 형상화된 “프로메테우스 연구"를 출간하면서 이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윤동주의 ‘간’이 저항시임을 외면한 채 그간의 연구자들은 시인이 희생적 모습을 묘사한것으로 오판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시 “간”은 윤동주 시인이 프로메테우스에 자신을 빗대여 식민지 시절 손상을 입은 량심의 회복 의지를 노래한 것으로 해석돼 왔다. 하지만 설교수는 “오히려 “간”은 일제시대의 가장 저항적인 시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심판시”라는 새로운 해석을 가한다.
설교수에 따르면 그동안 학계는 “간”의 핵심 시어인 “프로메테우스”를 희랍 신화의 영웅의 오기로 간주해 왔고 이를 토대로 마광수등 기존 학자들은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를 시적 자아인 윤동주의 상징으로 봤다. 순수성(불)을 상실(도적)한 시인 자신에 대한 비탄으로 해석한것이다.
그러나 설교수는 “프로메테우스의 의도적 변형을 통해 윤동주가 ‘가짜 영웅’ 일제의 패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인은 나라(불)를 빼앗고 착취(도적)한 일제에게 “목에 매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 설 교수는 “이 표현은 기독교에서 지옥과 사탄을 이야기할때 사용했다”며 “시의 바탕에 기독교주의적인 민족주의가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설교수는 특히 윤동주의 시가 다른 저항시보다 한수 우의 경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리륙사, 한용운등의 시에 등장한 저항은 아래에서 우로의 저항이고 세계문학의 모든 저항시들이 택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며 “하지만 이 시는 력사의 이름을 빌려 가짜 영웅을 내치는 심판시이자 동서양 신화의 접목이라는 측면에서도 탁월한 시”라고 평가했다.
윤동주의 시가 추구한 핵심적 문제는 현실적 존재의 슬픔이 어디로부터 나온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의 련속이라고 할수 있다. 그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우리의 말과 글과 얼이 사라져 가는데 대해 내장이 상할만큼 맹독(猛毒)의 아픔을 느끼며 몸부림을 거듭했다. 그의 시편들은 비록 조용하고 어딘가 소극적으로 보기기도 하지만 실은 부끄러운 자아의 응시로부터 력사와 민족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성찰을 그 기저에 깊이 깔고 있다. 때문에 그에 대해 “저항시인”이라는 평가를 가능하게 해 준다. 시 “간”에 대한 새로운 해제 또한 이를 뒤받침해준는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속출하고있는 민족 공동체의 아픔과 그 위기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한채 신상의 작은 질병에 대한 걱정에나 전전긍긍하며 무사안일의 나날에 버릇된 현대인들에게 윤동주의 시 “간”을 한번 읊어보라 권장하고 싶다.
"도라지" 2017년 제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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