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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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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笛)
2009년 03월 29일 10시 05분  조회:3971  추천:39  작성자: 김혁
 

 


.중편소설.



(笛)
 

                        김   혁

 

                

1


  ...운무(云霧)가 흐르고 있었다. 운무와의 혼빈속에 그 지층을 꿰지르고 따라서 개여울이 흐르고있었다. 암바위뒤에는 로송 하나가 서있는데 우거진 잎새가 정자를 이루고있었다. 바위밑 둘레에는 꽃 몇송이가 피여있었다. 자주빛을 머금은 꽃은 여울이 주는 자그마한 한기에도 이파리를 하르르 떨고있었다.


  발자국 소리 하나가 새벽의 끈적한 고요를 찢었다. 분명 길섶에 기장차게 자라난 풀잎을 차며 오는 소리였다. 허나 그 소리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온곱게 간헐적으로 들려오고있었다. 운무를 엷은 문발처럼 열고 그 발자국소리의 임자가 륜곽을 드러냈다.


   그 사람은 흰 빛갈의 바탕에 검은 헝겊으로 가녁을 넓게 꾸민 학창의를 입고있었다. 관골은 높이 솟았고 인중이 깊었다. 눈확에는 검은 테가 둘레를 치고있었다. 허나 그에 반해 검은 자위는 짙고 또렷했고 흰자위는 밝았다. 잘 쪽찌잖은 상투머리에서 머리칼 몇오리가 흩어져내려 야윈 뺨을 치고있었는데 그로 해서 무표정한 얼굴에 별다른 내용과 기품을 첨가해주는상싶었다.

 

여울께까지 와서 그 사람은 질척한 물녘을 가볍게 저며딛고 쭈크리고 앉았다. 품너른 소매를 접어올렸다. 좀 작은편, 허나 기름한 손가락이 드러났다. 그 사람은 서서히 손을 물에 담갔다. 새벽물은 뼈를 찔렀다. 그 사람은 손을 맞비비며 오래도록 씻었다. 다음 두손을 소쿠리지어 물을 담뿍 떠서 입에 넣었다. 목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우러러 두볼을 풀무잣듯 자았다. 이어 혼탁한 물을 한켠에 뿜어냈다. 이러기를 한동안...다음 손을 펴들고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손등에 얼기설기 긁힌 생채기가 보였다. 바위틈새에 돋은 약재를 뽑아내려면 손에는 생채기가 자꾸 나군 했다. 그 생채기에 물을 다시 몇번 끼얹었다. 다음 풀대가지 하나를 꺾어들었다. 손톱사이에 밀어넣고 각질에 집요히 엉켜붙은 때를 말끔히 후벼냈다. 왼쪽 무명지의 손톱이 키를 돋구고있는듯했다. 그 손톱을 바위의 꺼끌한 표피에 대고 잦게 문질렀다. 세세한 절차가 끝나자 그 사람은 바위로 올라가 정좌하고 앉았다. 한기가 우로 치받쳤지만 그는 전혀 무감각한 표정이였다. 품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생초비단에 길죽한것이 돌돌 감겨져있었다. 그 사람 숨을 꺽 죽이고 생초비단을 한겹한겨 풀어내렸다. 드디여 물건이 드러났다. 두뽐 남짓한 그것은...피리엿다! 순간 여직껏 돌의 표피처럼 딱딱해있던 그 사람의 얼굴이 놀랍웁게 변조되여갔다. 코방울이 벌름거렸고 입술이 떨렸다. 그 사람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적셨다. 숨을 흡 들이마시고나서 피리를 집어들었다. 눈시울이 스르륵 깔려졌다.

 

그 무슨 진기품을 다루듯 손가락들이 조심스레 피리의 혈(穴)을 하나하나 눌러짚었다. 소리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밀집히 앙금져있는 새벽의 운무를 모난 칼끝처럼 금그으며 소리는 그물그물 기여올랐다. 반공중에 기여올라서는 추락했다가는 다시 튕겨오르면서 빈 공간에 은빛이 소리물을 짜고있엇다. 피리소리와 함께 산자락아래에 널린 농가들의 아침이 시작되였다. 아낙들이 동이 이고 고무신을 자박자박 끌며 우물가로 모여들었고 남정들은 하품을 삼키며 외양간에 찾아들어 마소를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깝치동이들이 잠기가 대롱대롱 묻은  눈시울을 집어뜯으며 마당가녁에서 바지춤을 까고 밤새도록 참았던 장난끼 같은것을 쫘악 내 쏘았다.
  산자락에서 우켠으로 치우쳐들어가면 계곡이 입을 벌리고 있다. 아름드리 분비나무, 황철나무, 자작나무, 떡갈나무 우듬지들이 하늘변으 ㄹ가리우며 들어섰는데 계곡 그 입구에 이제는 퇴락해버린 구름집(중들이 수도하는 집)하나가 있었다. 새벽기운이 다하고 저자거리로 나가는 우마들의 목에 걸린 방울소리가 산자락아래로 난 자드락길에서 구을 때면 피리부는 사람은 잠간 구름집으로 들어가군했다. 보리가루를 빻아 만든 떡에 산나물무침 등으로 조반을 치르고는 다시 그 바위께로 나오군 했다. 이어 피리소리는 그칠줄 모르고 다시 울렸다. 높이 쳐든 두팔이 시큰둥해나고 열성껏 오무렸던 입술이 자주빛이 되면 피리소리는 잠간 멎군 했다. 그때면 그 사람은 손가는대로  풀대를 꺾어 입에 집어넣고 지근지근 씹군 햇다. 싱그러운 풀의 원액(原液)이 온 입안에 엉켜들고 식도를 따라 혈관을 따라 온몸에 잦아들면 그의 몸은 풀잎새처럼 다시 일어섰고 신들린 피리소리는 다시 이어지군 했다. 그러다가도 그 어떤 관능같이 유발되는 깨도의 밀착에 구름집으로 달려들어가 이미 벼루에 담가놓은 붓을 들어 마지(麻紙)에 대고 무언가 정신없이 적군했다.


  누군가 악사의 피리소리는 홰치는 닭소리보다 준확하다고 말했다. 또 누군가는 악사의 피리소리는 읍내의 파루(새벽을 알리는 북소리)소리처럼 어김없다고 말했다. 여하튼 악사는 해마다 여름이 늦드는 이 산을 찾았고 이 산을 찾았고 이맘때면 어김없이 산자락에 앚아 피리를 불군했다.



                            

2


   산자락아래로 난 자드락길은 개암나무에 가리워 토막이 나 보였다. 그 길로 수레바퀴 구으는 소리가 들렸다. 피리가락에 혼신을 쏟고잇던 악사의 귀바퀴가 움찍했다. 그 소리는 한간에서 흔히 듣는 우마차의 구름소리와는 조금 이색적인데가 있엇던것이다. 소리에 익숙해진이라만이 미세한 파장의 변화에서 대상무을 준확히 가려낼수 있는것이였다.
  소리의 도(道)를 깨치려 고심했던 악사는 그 누구에 비해 귀가 밝았다. 소리의 환몽속에 잠길 때면 온갖 만물의 동(動)적인것은 물론 정(靜)적인것조차 소리의 의미로 그의 뇌리에 락인되군 하였다. 그는 지어 해가 빛을 발산하는 소리를 들을수 있엇으며 그름이 청공을 떠가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며 연기가 허공을 톱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으며 꽃잎이 물에 떠가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의 인상에 있어서 해빛의 소리는 싸르락싸르락 이남박의 흠을 스치는 백옥미 이는 소리였고 구름의 소리는 바가지를 물에 엎어놓고 물매기 장단을 치는 소리엿으며 연기의 소리는 서까래를 기여가는 작은 벌레의 소리였으며 곷잎의 소리는 거문고의 약선을 섬섬옥수로 쪽 훑어내는 소리였다. 하기에 그 어떤 소리도 그에게는 무심히 들리오지 않앗으며 그만큼 그의 귀는 소리를 포박하는데 버릇되여온것이였다.
  이어 악사느느 분명 자기쪽으로 다가오는 발자욱소리를 들었다. 그 자욱소리도 여느 사람들보다 달랐다. 걷다가는 돌부리도 차고 기품없이 털썩털썩 되는대로 내치는 소리가 아니였다. 한마리로 시골무지랭이들의 그 무지스러운 발자욱소리와는 동이 다른 소리였다. 악사는 적어도 마을사람이 아닌 읍내사람,혹은 귀골높은 길손임을 단졍했다. 발자욱소리가 가까와왔고 곁에 와 뚝 멎은 때까지 악사는 피리에서 입과 손을 떼지 않앗고 그 불청객의 도래로 하여 피리가락의 음조 역시 풀리지 않고있었다.
  《여보시오 거사님(벼슬을 마다하고 심산에 붙박혀 지내는 사람)!》     그 사람은 낮은 소리로 불렀다. 차분한 그 소리의 밑바닥에는 공경한 비슷한것이 깔려있는듯했다. 허나 악사는 여전히 반쯤 내리뜬 눈도 치뜨지 않고있었다.
  《거사님이 지금 불고잇는것은 향가(鄕歌)가락이 아니십니까?》
  악사의 피리소리는 여전히 끊기지 않고잇엇다. 그 사람 한수 더 떴다.
  《지법(指法)은 옳바른것 같습니다. 헌데...호흡의 절주가 좀 빠르다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향가라면 구선짐에 그 격조를 두고잇으나 향촌에 대한 사념의 정을 일관시켜 면면한 애수도 가끔 끼여넣음이 좋을듯합니다. 하기에 이럴 땐 지법도 느슨히 호흡도 빠름속에 늦음이, 늦음속에 빠름이 있게 혼반시켜야 하지 않을가요?》
  악사의 피리가락 음조가 삐익-외곬으로 나갔다. 장장 30여년간을 피리와 벗해온 그의 취기(吹技)에 대해 진맥해낼 사람은 이 세상에 한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던 그였다. 그 사람은 재너머에 있었다. 재너머 양지바른 명소에 목비 하나를 앞세우고 진토를 뒤집어쓴채 한줌의 재로 사위여 누워있엇다. 그는 악사의 스승이였다. 그런데 오늘 누군가 언감 그의 앞에서 감놓아라 배놓아라 수선을 똘고있는것이였다. 한가닥의 염오가 솟아올랐으나 그와 함께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벌떡 한귀를 쳐들었다. 필경은 산속애ㅔ서 사람이 그리웠던 그였다. 악사는 번쩍 눈을 치떴다. 미목이 청수하고 옷차림도 화려한 남아 하나가 그의 앞에 서있엇다. 말그대로 옥골선풍이였다.
  《뉘시오?》
  악사 그 사람한테서 어떤 기품을 느끼며 따져물었다.
  《지나가던 빈객이 거사의 피리소리에 환혹해 이렇게 찾아들었습니다. 거사의 경지를 깨뜨린것 같은데 하다면 죄송하기 짝 없구려.》
  그 사람 흔연히 대꾸하며 악사곁으로 다가왔다.
  《빈객도 악리(樂理)를 깨치려다 성사 못한 사람인데 오늘 거사의 피리소리에 촉동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성근한 빛이 갈마들고있었다.
  《초야에 묻혀서 해종일 피리와 짓거리하는 사람에게서 뭘 느껴받을거 잇다고 그러오?》
   악사 그 사람의 공경을 무질러버렸다.
  《아니올시다. 이런 시구가 있지요.
   창생은 한낮에도 조으려만
   산속의 로자(老者)는 밤에도 깨여있네.》
   악사 빙그레 웃음지었다.
  《그렇다면 나를 로자에 은유한거구만. 세속을 간파한 로자가 되려면 동이 뜨오. 기어코 나를 은유하련다면 이런 시구를 읊음이 지당할듯하오.
   아침에도 귀뚜라미처럼 중얼거리고
   저녁에도 부엉이처럼 중얼거리는
   너 쓸개빠진 로자여!》
  《훗하하하-》
  두사람 함께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어 손에 들려진 피리를 응시하더니 악사 웃음기를 거두며 정색한 낯빛으로 입을 열엇다.
  《선인들은 음악을 가르치는것으로 사람들의 심성을 바로 잡고 나라를 다스리려 했소. 헌데 지금 그러한 악성(樂聖)이 적어졌고 따라서 악리를 써내려는 사람조차 없어지고 말았구려.》
  그 사람 악사의 말에 흥심을 느끼며 귀담아듣고 있었다.
 《사람이란 본시 칠정 육욕이 마음속에 엇갈려 잇음으로 하여 너나의 심성은 하나같이 바르게 간직되기 어렵소. 심사가 좋지 못하면 자연히 몸도 그에 따라 균형이 깨지고 행위도 절차를 잃어버리게 되지. 음악이 사람들의 귀에 익도록 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젖도록 하면 혈맥은 항상 조화롭게 되고 온고운 심성을 항상 가질수 잇는것 아니겠소.》     악사 저으기 흥분되며 바위에서 내려 그 사람 가까이로 다가갔다.    《예로부터 가무승평한 나라는 모두가 태평성세를 누려올수 있었던거요! 그로써 백성을 안무하고 나라를 안정케 하여야 하오. 여기에 악의 현모와 공리가 있지 않을가.》
  그 사람 연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야말로 귀밝은 리치입니다. 거사의 재주와 애기에 흠뻑 취했네그려!》
  홀연 그 사람 청구 하나 내들었다.
 《거사의 피리소린 실로 벽계수처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청쾌한 소리군요. 저...청컨대 거사께서 한곡조 더 불어줄수 없을가요. 도원곡(桃園曲)이라든가...》
  악사의 안색이 순간에 엎어졌다. 악사 옆눈으로 그 사람을 흘려보았다. 이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곡이라면 활량들이 저자거리에 나서 돈냥이나 끌기 위한 곡이 아니겠소. 난, 그런 곡을 불 심경은 못되는가 보오.》
  그 사람의 얼굴에 약간 아쉬운 표정이 얼비쳤다. 그 사람 악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거사의 수련을 깨쳐 미안하고 좋은 깨도를 받아 고맙습니다.그럼 빈객은 이만 자리를 뜨려 합니다.》악사 따라서 읍하고 나서 다시 바위우에 올라 정좌하고 앉았다.  떠있는 기분을 곰삭이고나서 다시 피리를 집어들엇다. 길목까지 나갔던 그 사람 다시금 터진 청아한 피리소리에 귀 기울여 말뚝모양으로 섰다가 가재걸음치며 사라져버렸다.



                            

3


  날이 저물었다. 별이 하나 둘씩 들추어 나오고있었다. 기름을 아끼려 등을 켜지 않은 구름집에서 사제향(사향으로 만든향)한대가 타오르고있었다. 그 한점의 불은 아무런 조명작용도 하지 못하고있었지만 어둠을 누비는 향내음은 어둠의 농도를 묽혀주고있는듯했다. 률리 맑은 피리소리가 향내음과 뒤엉켜 방의 구석구석에 밝음 못지 않은 생기를 돋쳐주고있었다. 수수깡으로 결은 천정에는 거미줄이 흐늘흐늘 수없이 드리우고있엇다. 향내음의 촉동에 적막에 감겨들려는 신심을 부추겨 세우며 구름깔개 (참나무를 엷게 밀어 곁은 자리)우에 앚아 악사는 피리를 불고있는것이였다.
  문뜩 요란한 발자국소리가 울리더니 누군가의 왁살스런 손짓에 문이 벌컥 열어젖혀졌다.
 《어이구 깜깜이야. 이거 코 베먹어두 모르겠군 그래.》
  구리종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둠에 익숙한 악사 얼른 부시에 깃을 달아 등에 불을 붙였다. 방은 삽시간에 어둠의 포박에서 풀렸다. 악사 눈이 새그러워 눈시울을 좁혔다. 그의 앞에는 거쿨진 몸매를 한 사내 하나가 서있었다. 그 사내의 한손에는 술항아리, 다른 한손에는 보자기가 들려있었다. 악사는 그 사람이 계곡의 입구에 닿기전에 벌써 누군가 자기의 거소쪽으로 오고있고 그 발걸음소리에서  그 사람이 다름아닌 자신과 함께 악리를 익혔던 사형(師兄)임을 기수챌수 있었다.
  《여봐 동생. 그렇게 도닦는 스님모양만 꾸미지 말고 우리 한잔 먹어보자꾸나. 자, 이제 고만 피린 걷어장지구. 뭐니뭐니 해도 사내 생겨서 술생긴것 아니겠냐.》
  사형은 손수 구석쪽에서 대접이며 간새가 들어있는 그릇이며를 찾아내여 벌려놓았다. 닷새배보자기를 풀어헤치니 잘 삶겨져 구수한 내가 코를 푹쑤시는 소갈비 한짝이 드러났다. 일면 요란통을 벌리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괜스레 악(樂)에 미쳐가지고 멀쩡한 사람 다 버려놓았네. 차암. 성정이 모질지 못해 그런지 난 차마 못보아내겠다.》
  소매깃으로 대접을 닦아내고서 사형 항아리의 술을 철철부어 악사앞으로 내밀었다.
 《나 근자에 약주를 들지 않는걸 사형도 알고있지 않습니까.》
  악사 벙시레 웃으며 밀막았다.
 《그 좋은 술도 끈고. 너 정말로 극락갈려구 그러잖아. 》
 《적적한대로 혼자 드세요. 제가 지켜보고있으리다. 》
  사형 기분 접질려하며 혼자서 술대접을 기울였다. 악사 그저 갈비 한토막을 집어들고 조용히 뜯기만 했다.
  《네가 술을 입에 대지 않을줄 번히 알면서두 말동무나 해주러 왔다.》
  사형 혼자서 부어라 마셔라 했다. 입과 손을 닦고나서 악사 또다시 피리를 집어들었다.
 《허참, 이거 짜장 상감마마나 된 기분인걸. 술마시는데 한켠에서 풍악까지 잡혀주고 좋다! 나 취도록 마일거니 너 그 염병할 피리나 계속 빨고있어.》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사형의 눈길에는 측은한 빛이 갈마들고있엇다. 다시 올리는 피리가락을 타고 악사의 몸은 환몽의 돌계단을 밟기 시작햇다.
  그들은 원체 셋이였다. 초동머리적 악사가 첨거해있는 이산자락을 감도는 강에서 송사리, 메기를 반두질해서는 방아간에서 쌀훔치고 찬장에서 된장, 고추장 후무려내고 울바자틈사이로 애호박, 풋고추를 따서는 강녘에 솥단지 걸고 천렵을 즐기며 어우러져 놀던 셋이였다.
  서늘한 물에 발잠그고 발가락으로 강바닥의 조약돌 굴리며 풀피리 꺾어 불기도 했다. 셋은 풀피리도 제법 잘 불었다. 그 간단하기 그지없는 자연의 《악기》였지만 신묘한 입놀림, 손놀림으로 어른네들이 늘 부르는 향가를 제법 옮겨냇고 술상머리에서의 권주가며 툽상스러운 육담가의 음조까지 죄다 섭렵해들이며 그 조그만 입으로 뿜어내군 했다. 그 광경에 환혹해 길 지나가던 싱거운 령감 하나가 기어코 자청해내서 그들에게 악리를 가르치고 피리를 배워줬다. 그 령감은 원체 궁악에 조예깊었으나 벼슬을 마다하고 음악의 현모를 찾아 입산하던 왕궁의 악공이였다. 령감은 이 마을의 뒤산에 있는 퇴락한 구름집에서 자신의 평생의 재간을 집대성하여 《악론》을 펴내기 시작했고 자기 희마응ㄹ 세 제자에게 기탁하여싿. 허나 악론을 절반도 못써내고 령감은 지쳐눕고말았다. 각혈하면서도 령감은 피리를 놓지 않고있엇다. 때로 그 적의 일곱구멍으로 피의 분수가 치솟기도 했다. 그 혈혼의 아픔을 딛고 범인들로서는 깨칠수 없는 악리가 씌여졌고 범인들이 낼수 없는 현묘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연을 그렇게 사랑햇던 령감은 자연에서 자신의 생의 소리를 마감했다. 강가에서 돌베개를 베고 피리를 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림종시 세 제자는 령감의 두리에 개벙하게 둘러앉아 령감의 마지막 소원대로 피리를 불었다. 눈물을 씹으며 장단곡(腸斷曲)가락에 스승의 혼을 실은 꼭 상여를 태워 멀리멀리 바랬다.
  세 제자가운데서 둘째엿던 악사는 악기다루는 재주가 제일 밭은편이였다. 맏이의 소리는 음조가 데퉁스러울망정 구성졌고 셋째의 소리는 음조가 높을 망정 격앙이 있엇다. 허나 둘째의 소리만은 마냥 한본새로 진척이 없었다. 허나 그에게는 남다른 성정미가 잇엇다. 빛나는 진주를 빚기 위한 조개의 몸부림같은 그것-그것은 바로 인고(忍苦)의 성정미였다. 이 한점을 엿보아낸 스승은 맏이와 셋째의 재주를 격찬하였지만 둘째의 둔감에 대해서도 도를 넘은 타매의 언동 같은것은 따로 없엇다. 셋은 스승의 묘소앞에서 다 꼬지 못하고 간 악론의 률을 마저 꼬기로 서약하였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그네들의 아직 옅은 재주로는 스승이 이미 자욱을 뗀 심오한 리론의 명맥을 이어내려갈수 없었다. 그러던중 셋째가 맨처음으로 서약을 파기하고 피리를 버리기로 하였다. 셋째가 혀아래소리로 그 의사를 내비쳐보이자 맏이는 하늘이 낮다하게 길길이 날뛰엿다.
 《뭐라구? 스승의 성묘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네가 배신하려 들다니 짜식, 한주먹에 평토제르 ㄹ차려줄가보다. 》
  악사 광분하는 맏이를 겨우 밀막아내였다.
 《좋아. 네가 기어코 스승의 뜻을 기이련다면 그 속죄로 스승의 묘앞에서 피리를 불어얀다. 동류석별곡(同類惜別曲)을 불어! 하루낮 하루밤을 내처 불어얀다.》
  셋째는 아무 말도 없이 피리를 들고 스승의 묘소를 찾았다. 목비앞에 앉아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동류들아 석별가 들어보소
   동류정애 자별하나
   리별하면 다 잊나니
   한오백년 노니자던 인정
   일조에 끊는단 말인가...》
  셋째는 한루낮 하루밤을 내처 그렇게 한곡조를 되풀이하여 불고 또 불었다. 맏이는 그만 가슴이 질려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비지숨만 몰아쉴뿐이였다. 기력을 탕징해버린 셋째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스승의 묘소와 사형들을 휘둘러보고나서 아무 말도 없이 산을 내렸다. 그러는 그의 손에서 피리가 미끌어떨어져 돌서덜밭에 뒹굴었다.
  셋째의 탈적(脫籍)에 그렇듯 유감천만해하던 맏이도 종내는 피리를 내려놓고 말았다. 둘째는 아무 말도 못했다. 쓴 약 마시듯 체념을 삼키고있었다.
 《내가 못난이야. 난 셋째와 한바리에 처실어야 할놈이다. 둘째야! 그렇게 말없이 서만 있지 말고 날 욕해다오. 때려다오. 둘째... 둘째야 이럴 땐 좀 모질게 구박줘야 하는거다. 으흐흑...》
  악사 창연한 기색으로 굳어져 자기 무릎가에 머리를 처박고있는 사형을 내려다보앗다. 이윽고 낮은 소리로 불렀다.
 《사형...》
  맏이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쳐들었다.
 《형도 스승의 묘소앞으로 갑시다. 가서 <동류석별곡>을 불러봐요.》   《그래그래. 내 불지 불어... 난 항렬로 맏이니깐 너희들 세곱되게 사흗날 사흘밤을 불면서 속죄하련다.》
  허나 하루밤도 채 못불고 맏이는 묘소앞에서 고부라져 코를 골고있엇다. 악사가 스승의 묘소를 찾아 산자락에 치달아올랐을 때 인기척에 잠을 깬 맏이는 피리를 주어들고 부는 생색을 내려 햇다. 악사 다가가 피리를 앗아들었다. 두손으로 량끝을 잡아 무릎뼈에 대였다. 뚝 분질러버렸다. 참대의 파편이 허공에 튕겼다.
  지금에 와서 재기 발랄했던 셋째는 읍내사람들이 우러르는 현령(縣令)이 되였고 품성이 돈후했던 맏이는 육포 하나를 차려 마을에서 꽤 유족한 갑부로 탈바꿈하였다...
 《후-》부지중 한숨이 섞여들어 피리의 음조가 탁음으로 변조되였다. 악사 피리에서 입을 떼엿다. 맏이 홀연 흥심한 표정으로 악사의 앞에 손을 내밀엇다.
 《자, 그 피리를 인다오.》
 《왜요?》
 《이 백정의 손으로 나도 한곡조 불어보련다.》
  악사 마지못해 피리를 넘겨주었다. 넌들한 코물을 훌쩍 치걷고나서 맏이 기름방울이 대롱히 달린 다박솔수염틈바구니에 피리를 처박았다. 이어 소방두같은 손으로 피리의 혈을 더듬어 짚었다. 마디마디 순대토막을 이어놓은듯이 풍대해진 손은 이정의 그것 같지 않았고 그 동작도 매우 서툴렀다. 헛바람소리에 섞여 곡조가 울렸다. 허나 그 곡조는 고르롭지 못한 호흡에 의해 자주 끊기군햇다. 문뜩 곡조가 뚝 끊기더니 터진 보뚝처럼 갑자지른 기침이 한무더기 터져나왔다.
 《안... 안되겠어. 쿨룩쿨룩, 술에 절고 쿨룩...육븉이에 절고 해서 이젠 심기르 ㄹ바로잡지 못하겠단 말이야. 일전에 내가 피리불면 그 소리에 동네계집들이 삭신이 오그라들어하며 질질 묻어다니잖앗나, 쿨룩쿨룩...》
  맏이는 방금전의 곡조, 일전에는 그렇듯 신들리게 다루었던 악기의 실패에 대해 완연 무감각해잇었다. 현실에 배부른 표정으로부터 그 실패를 일상중의 허드레 실수거리로 여겨 괘념하지 않고 어덴가 만족어린 표정만을 짓고잇다는데서 악사는 어지간히 놀랏다. 슬며시 그의 손에서 피리를 잡아빼였다. 피리에는 술내음과 기름기에 엉겨진 걸직한 타액이 발려져있었다. 악사 질색을 하며 옥소매로 피리를 문질럿다. 악사의 기분전환을 시수채지 못한채 맏이는 소갈비에 엷게 붙으 ㄴ고기발을 이발로 긁기에 열심하고있엇다. 기분나쁜 이질감이 가슴에 흘러들었다. 악사 그만 고개를 틀고말았다. 누우런 메돼지기름이 담겨진 등에서 불심지가 뿌지직 신음을 지르고잇엇다. 그아픈 연소를 이윽토록 지켜보던 악사 응어리진 한숨을 토하고 나서 머리를 들었다.
 《형,나도 한잔주오.》
  악사 피리를 내려놓고 술대접을 집어들었다.


                            
                             

 4


  ...무명필,피물, 패물함, 쌀자루가 악사의 앞에 놓여잇엇다.
 《뭐요? 그날 그 사람... 그 사람이 상감마마였다고???》
  악사 경악해마지않으며 자리에서 몸을 후닥닥 일으켯다.
 《그렇소이다. 다름아닌 임금님이였지유.》
  악사와 무르을 마주한 셋째사제-현령이 기름진 목소리를 뽑으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수수한 복색차림으로 자신에게 존대어를 괴여올리면서 그렇듯 진지하게 악론에 대해 귀담아듣던이가 다름아닌 만민의 군주인 임금이였다는 느닷없는 사연에 악사 그만 설둥해지고말았다.
 《임금은 사형의 악기다루는 재주와 그 악론설에 그만 감복했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내여 이렇게 많은 물목을 하사했는데 내가 그 사람들을 대동해가지고 예까지 왔지요.》
 《이거, 이거 웬 감투끈인지... 나 아직도 오밤중이군 그래.》
  악사 어쩔바를 모르며 손에 들려진 피리만 연신 매만졌다.
 《그날 임금께서는 비복을 하고 사냥하러 갔다오는 길에 마침 이곳을 지나치다 사형의 피리소리를 듣게 되였소이다. 원체 악기를 즐기셨던 까닭에 하늘같은 존재를 잊으시고 평민의 신분이 되여 사형과 만난거지요.》
 《그런줄 모르고 난 방약무인하게 놀면서 혀가는대로 지껄여댔지 않고 뭐요.》
 《아니올시다. 임금은 사형의 매 한마디를 곱새겨두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구 궁궐에 허다한 악공들이 있다 하지만 사형의 재주와 비하면 어설프기 짝없다고 하더랍니다. 》
  악사 여직도 어리친 기색이 되여 구름집이 다하게 올망졸망 놓인 물목들을 눈빗질하였다.
 《그런데...나같이 악기나 말아먹는 비천한 놈에게 이렇게 많은 귀품을 내려주시다니.》
 《그뿐이 아니옵니다.》
  현령 한보 다가앉았다. 열기 가득한 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형같은 인재들을 널리 섭렵하고저 보름내로 궁궐로 입시하라는 분부도 내리셨습니다.》
  악사의 피리를 틀어잡은 손이 부지중 떨리고있엇다. 그의 두눈에서 면면한 감동이 출렁거렸다.
 《둘째사형의 처경을 두고 맏형과 저는 여간만 간집을 달구지 않았더랫는데...사형에게도 해볕이 드는 날이 종내는 왔구려. 하늘의 뜻인가 봅니다.》
  현령 악사보다도 더 흥분한 기색이였다. 악사 이윽토록 아무 말도 못했다. 구름집 구석의 무더기로 쌓아놓은 악론에 관한 저서들이며, 이빠진 벼루며, 몽당붓이며를 자기의것 같지 않게 새삼스런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궁궐에 입시하면 탁월한 악공들과 접촉할수 잇고 악리에 정통한 바다건너의 외인, 그리고 체계적인 악론저서도 접촉할수 있을거요. 그 정수에서 깨도를 받는다면 스승의 평생추구를 마무리하는데 큰 조력이 될것 아니겠소.》
 《악론도 악론이거니와 여직껏 불운하게 지내신 사형께서 부귀의 진미도 좀 맛보셔야지요.》
  악사 서글프게 웃어보이고나서 몸을 일으켰다. 현령과 함께 구름집을 나섰다. 구름집 문전에는 물목을 지니고 왔던 관차들과 현령의 뒤를 묻어온 청지기 몇명이 공손히 대기하고있었다. 악사 그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산중턱으로 치달아올랐다. 자그만한 목비가 세워진 묘소앞에 꿇어앉아 피리를 꺼내 들었다.
  읍내로 향한 길, 들춤질하는 가마우에 앉은 현령은 산자락을 타고 내려와 환청같이 들려오는 그 피리소리에서 사형이 어데로 가있는지 짐작해낼수 잇엇다. 피리의 음률에 따라 현령의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률동하였고 입가로 곡조가 흥얼거리며 새여나왔다. 허나 그 흥얼거림은 얼마 못가서 곡조의 음부 몇개를 홀라당 까먹고 끊어지고말았다. 완연 다른 줄기의 곡조가 현령의 입에서 이어져나왔다. 그것은 간밤 자기의 거소에서 읍내서 장가락 꼽히는 명기가 타던 거문고곡조였다. 허나 그 곡조의 흥얼거림 역시 썩 개운치 못했다. 희한과 내구심 등으로 혼반이 되여 사제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지어지고잇엇다.

 



                           

  5


  붓을 연적에 내려놓으며 악사 당혹감을 금치 못해하였다. 어스름이 내리는데 분명 구름집쪽을 향해 다가온느 발자국소리...늘 찾아주던 사형의 자욱소리는 완연 아니였고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꼭 몇점이라도 집어다주던 마음씨 허랑한 돌배집할매의 발자국소리도 아니였다. 쓰던 글을 중둥무이하고 다시한번 귀를 도사리던 악사 부지중 몸을 부르르떨고말았다. 돌밭을 달그락달그락 즈려 밟으며 오는 소리, 그것은 분명 녀자의 발자국소리였다.
  사형과 사제가 련이어 서약을 파기한 마음의 상처를 채 씻기전에 새로운 아픔들이 스승의 《악론》답습에 불면 불휴하고있는 악사에게 언거번거 덧놓여졌다.
  사금이 아끼듯해오던 하나밖에 없는 아들애를 잃었던것이다. 애녀석들끼리 술래잡이를 하였는데 덴겁이 숨을 곳을 용뇌하던 그 자식이 드레박줄에 매달려 우물속에 곤두박혀버렸다. 물은 깊지 안앗으나 우물벽체로 둘쑹날쑹 내민 모난 돌에 머리를 박았던것이다. 그를 찾지 못한 애녀석들은 그의 존재를 가맣게 잊고 놀음에 싫증나자 뿔뿔이 헤여져 집으로 가버렸고 악사는 한밤을 패며 애를 찾아 산곬을 누볐다. 이튿날아침 마을의 한 아낙이 맨처음으로 물길러 나와 드레박을 당겨보니 즐벅한 피물이 담겨져 올라왔다. 그날로 산자락에는 작은 봉분 하나가 생겨났다. 악사는 울음조차 울지 못하였다. 그날 밤 마을사람들으느 산쪽에서 울려오는 피리소리를 들을수있었다. 가슴을 찢는 그 곡조에 온 마을이 잠을 잃었다.
  다음 안해, 조강지처로 알았떤 그의 안해가 그를 버리고 야밤도주를 해버렷다. 마을로 가끔 찾아들던 읍내의 소금장사와 눈이 맞고 배가 맞았떤것이다. 투전놀이에도 이름있고 발달목침도 이마빡으로 받아 쪼갠다는 보통분수는 넘는자였다. 악사는 안해를 찾을양으로 읍내에 있느 ㄴ그자의 집을 찾았다. 결국 도척같은 그 놈의 골받이에 타작마당의 북데기처럼 늘어지고 말았다. 허나 악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자네 울바자곁에 쭈크리고 앉아 피리를 뽑아들었다. 터진 입술로 쭈크리고 앉아 피리를 더듬었다. 향가도 아니고 별곡도 아닌 무질서한 잡음, 늙은네들의 한숨같기도, 사금파리쪼박을 맞비비는것 같기도 한 불규칙적스러운 음조가 야음을 찢었다. 그것은 깊은 통한과 허망스러움이 스민 소리였다. 발길질로 내쫓으면 다시 기여와 불고...그러기를 몇번이나 거듭하자 그자 역시 맥이 진했던지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북두칠성이 앵돌아질무렵, 삽짝문이 조용히 열렸다. 익숙한 몸매 하나가 머리를 기웃이 내밀었고 이어 악사의 앞으로 와서 털썩 끓어앉았다.
 《죽여주세요...》
  악사 피리에서 입을 떼였다. 흐트러져 내려온 머리카락새로 안해, 지금은 남의 안해로 된 그 안해를 째려보았다. 안해는 겁기에 질린 눈길로 남편의 처참한 궁상을 곁눈질해보고있었다.
 《가자...돌아가자...여직껏 같이 지낸 정분을 봐서라도.》
  안해 머리를 쳐들어 악사를 바라보다 그의 눈길과 맞부딤하자 덴겁히 눈을 아래로 깔았다.
 《가자!돌아가-》
  악사 급기야 안해의 손목을 감쳐쥐였다. 안해 왼고개를 탈며 손을 뺐다. 집요한 당김에 비해 그녀이 거부 역시 강했다.
 《더러운 년!》
  악사 피리를 들어 그녀의 볼을 힘껏 후려갈겼다. 그녀는 피할념도 않았고 신음성도 지르지 않았다. 얼굴에 대뜸 시뻐걱ㄴ 멍자욱이 줄을 그은것이 희음스레한 별빛이 보였다. 안해의 눈확에 그들먹히 고였던 눈물이 드디여 주르르 넘쳐흘렀다. 어깨를 달싹이던 안해 울음기섞인 소리로 입을 열었다.
 《쓸개빠진 년인줄을, 미친년인줄을 저도 아옵니다. 조련찮은 가군님을 둔것도 아옵니다. 허나, 허나...》
  안해 머리를 쳐들어 악사를 정시하였다.
 《...그 피리에서 그 <악론>이라는데서 쌀이 나옵니까? 무명이 나옵니까? 부끄런 애기지만도 마을서 촛손꼽히는녀잘 색시로 맞아들이구 저한테 은비녀를 꽂아주어보았습니까? 금팔찌를 끼워 주어보았습니까? 애녀석이...그 다 못가고만 애녀석에게 엿가락이라도 뻐끈히 녹이게 해주었댔습니까? 사형처럼 넉넉한 재물이 있습니까? 사제처럼 높은 귀골이 있습니까?》
  련달은 물음의 홍수앞에서 악사 그만 아연해 지고말았다. 답변을 잃고  았다. 그 물음물음에 한마디 대답조차 줄수 없는 자신을 놀랍게 의식하였다. 한생을 유한히 살게 해주마하고 호기에 넘쳐 맞아들였던 안해, 그 안해에게 자기가 준것이 뭣이며 그 안해를 위하여 자기가 한 일이 무엇인가는 자문이 새삼스레 들었다. 남들의 광이 나는 살림에 부러운 눈매를 짓는 안해를 보고 머리는 길지만 세치보기 소견이라고 까박을 주었고 빈궁에 시달려 바가지를 긁을때면 제쪽에서 외려 증을 버럭내였던 그였다. 오늘에 와서야 가정이란 존재를 뇌리에 떠올려보게 되엿고 사내의 손에서가 아니라 안해의 가녀린 손에 의하여 한가정의 명맥이 여직껏 이어져왔음을 숙지(熟知)할수 있었다. 이한 상념에 악사 멍청한 꼴이 되여 점도록 그 자리에 뿌리내려있엇다. 여직껏 청고했던 그의 심신을 휩싸며 자격지심이 엄한처럼 밀착해왔다. 진득한 한숨을 한번 짓고나서 악사 다시 한번 눈앞의 낯익은듯하면서도 낯선 안해를 소상히 뜯어보았다. 다음 악사는 몸을 돌렸다. 휘청거리며 몇걸음 가다가 겨우 한마디를 힘아리없이 내던졌다.
 《잘살아봐...》
  며칠후 악사는 입산을 해버렸다.
  ...발자국 소리는 가까와지고있엇다. 그 소리는 혼자뿐망의 소리가 아니였다. 나귀의 자국소리, 투레질소리 그리고 분명 견마잡이인듯한 남성의 저력있는 걸음소리와 뒤섞여 들려오고 있엇다. 발자국소리는 구름집에 와 뚝 멎었다.
 《어서 들어오도록 해라.》
  분명 어줍게 서잇는 녀자의 심기를 헤아려 악사 피리에서 입을 떼며 그녀를 불러들였다. 조용히 문이 열렸다. 치마자락을 사뿐 쳐들며 그녀 문을 넘어섰다. 하얀 코신의 앞코숭이가 얼핏 드러났다. 사라졌다. 그녀 살며시 머리우로 감쳐썼던 남바위를 벗었다. 곧은 가리마, 땀이 함씬 배인 반듯한 아니, 반쯤 내리감은 눈, 안존한 코마루, 꽃잎을 문듯한 입술... 구름집안이 삽시에 훤히 밝아졌다. 악사가 권하는대로 그녀 깔개우에 몸을 틀고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루추한 곳으로...그것도 밤길에 대여 왔소?》
  악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그녀 어줍은 기색이 되여 입을 열었다.
 《악사님의 피리소릴 듣고 넋을 놓고 그 소릴 따라왔나이다. 》
  악사 참지 못하고 웃었다.
 《예서 읍내까지 몇리더냐?》
 《아니, 분명 들었사옵니다.》
  그녀 두손을 가슴앞에 모아쥐였다.
 《마음으로 듣고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추월가(秋月歌)의 곡조였습니다.》
  악사 몸을 흠칫 떨었다. 방금전 그는 진짜로 추월가 한곡조를 불었던것이였다. 악사 어리친 표정으로 눈앞의 그녀를 다시금 새삼스레 뜯어보았다...
  이 녀를 만난것은 해포전의 일이였다. 어느 한번 읍내로 갔다가 사제인 현령의 손에 이끌려 기녀들이 운집해있는 춘향루로 갔다.
《음악을 깨친다는 사람이 녀자를 모르고서야 어이 되겠습니까? 한번 만나보십쇼. 웬간한 녀자가 아닙니다. 이 현령의 수청도 감히 거절하는 녀잡니다. 천금일소(千金一笑)라고 여느 청루녀자들과는 완연 다를겁니다...》
  춘향루 앞골목까지 와서 낯꽃을 확 붉히며 주자를 놓으려는 악사의 옷자락을 현령은 기어이 잡아쥐였다...두사람 실랭이를 벌리는중에 악사 홀연 몸을 흠칫했다. 춘향루에서 들리고 있는 웃음소리, 노래소리, 거문고소리...그중에서 유독 한가락의 싱그러운 거문고소리만을 악사는 가려듣고있엇다. 그저 유홍자의 처경에서 멏곡조 뜯을줄 아는 그만한 재주가 아니였다. 분먕 악에 대해 어느 정도의 수련을 쌓은 그런 솜씨였다.
 《저 거문골 타는 녀자를 뵙고싶다.》
  악사 밀막던 방금전과는 완연 다르게 웨치다싶이 말했다. 이렇게 만난것이 바로 이 녀자였다...
 《한곡조 듣고싶습니다...다문 한곡조라도 듣고퍼서 예까지 외람되게 찾아온것입니다.》
  그녀 청구의 눈매로 악사를 쳐다보았다.
 《밖에 같이 온 사람 있잖느냐? 먼길을 배동해온 사람을 저러헥 내쳐둘순 없지.》
 《자리가 협착하여 들어오지 말라고 했삽니다. 춘향루에 있는 부목(땔나무 해들이고 불때는 머슴)이옵니다. 쇤네가 하도 지청구를 해서 나귀를 몰고서 밤길을 대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진한 청구의 눈빛에 밀려 악사는 피리를 입에 가져다대였고 그녀는 곰상궃게 악사의 곁에 앉아 곡조 가락에 말려들었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악에 미친 사람이였다. 왕궁의 악공으로까지 발탁되였댔으나 그 탁월한 재주를 시기하여 곁에서 간계를 놓는 바람에 파면당하고 귀향하였다. 청빈을 못이겨 어머니는 오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녀는 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녀 역시 음악에 현혹했으나 현금같은 악기 하나 변변히 갖출수 없는 찌든 처경이였다. 하여 아버지는 삼실 여섯가락을 나무판대기우에 매고 잎으로 소리가락을 흥얼거리며 그녀에게 현금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악에 대해 배웠고 사람사는 도리를 배웠다. 악기 아닌 악기에 매달려 삼실을 튕겨대며 악경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딸애의 모습, 그것은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살같이 아픈 육감의 밀착이였다. 그 모습으 ㄹ보다 못해 아버지는 아래입술을 지그시 악물었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어느날 저녁, 아버지는 야음을 타서 읍내의 한 부호네 집으로 잠입해들었다. 간거하게 현금 하나를 흠쳐내였다. 돌각담을 뛰여넘다가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현금을 담안에 떨구어버렷다. 현금의 가락이 듣그러운 악음으로 울엇다. 그 소리는 고요한 밤대기속에서 여느적보다도 높이 울렸다. 아버지는 그때 뛰여야 했다. 허나 그 현금으 ㄹ다시 주으러 들어갔고 그만 가노(家奴)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도적으로 치부되여 감나무에 거꾸로 달리웠다. 날샐녘까지 혹독하게 물매를 맞았다. 그것이 빌미로 되여 아버지는 드러눕고 말았는데 생명이 경각에 달했다. 그녀의 길쌈으로 아버지에게 약을 갈아대기가 어려웠다. 약점 바로 곁에 춘향루라는 기생집이 있었다. 매일 약점으로 드나드는 청초한 소녀, 그 수심에 잠긴 얼굴에서 불운한 처경을 엿보아내고 춘향루의 주인이 연거번거 약값을 선불해주었다. 결국 아버지는 구해내지 못했고 그 엄청난 빚을 치르지 못해 그녀는 청루에 륜략된 몸이 되였다. 춘향루주인의 흉산(凶算)에 들었던것이였다.
  이한 뼈저린 연고가 있음으로 하여 그녀와 악사는 첫만남으로부터 의기투합될수 있었다. 더우기 음악이라는 이 하나가 그들의 공감을 유발시켰으며 끈끈한 동아줄처럼 그들을 한데 얽동여 떨어질수 없게 하였다...
 《호-어쩜.》
  악사가 한곡조를 끝내자 그녀는 두손을 가슴앞에 사려쥐며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그 재주에 너무나 감복한 나머지 감탄이 그만 한숨으로 변용되여 나온것이였다. 그녀는 넋을 놓고 악사를 바라보았다. 그 빛나는 눈길에서 점직함을 느낀 나머지 악사는 고개 돌려 그 눈길을 피해버렸다.
 《오늘이,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계시옵니까?》
  그녀 은근한 소리로 물었다. 악사 설둥한 기색을 지으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칠울 초엿새날, 분명 악사님과 처음 만났던 날이엿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감미로움에 젖어있었다. 악사 그 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그 기간 청루에서 벌어들인 한푼 두푼의 뼈돈으로 지묵도 사주고 묵달밭같던 가슴에 정도 심어주면서 악사를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왔던 그녀였다. 또 일개 청류녀자였지만 그녀에게서만 《악론》을 계속 펴나갈 내조의 힘을 얻었던것이다. 악사 고개를 돌려 그녀를 정시하였다. 그녀 악사의 눈길을 정차게 받아들이였다. 면면한 감회와 애모쁨에 출렁이고있는 눈길, 그 눈길속에 진한 사랑의 색조도 어울려잇음을 악사는 감득할수 있었다. 악사 덴겁히 눈을 돌려버렸다. 그녀 한걸음 다가앉았다.
 《악사님...》
  불러놓고는 이윽토롯 멈칫이다가 그녀 드디여 입을 열었다.
 《청추에서 사는 몸이라 쇤네를 얕보고있지 않사옵니까?》
 《아니, 아니다 절대루.》
  악사 덴겁히 소리를 높여 말했다. 접품이나 언행이 퍽 유하고 숙성한 그녀에게서 비천을 느껴본적이 없는 악사였다. 또 청루의 녀자지만 그녀의 삐여난 미모에서 별다른 잡념도 가지지 못했던 그엿다. 접촉이 잦았지만 그들사이엔 이성적인 친교는 없었다. 기실 그들은 악(樂)을 위한 사형사매(師兄師妹)의 역으로 어우러지고있는것이였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시온다면 오늘 저녁...》
  그녀 악사의 손을 당겨 잡았다. 여유있고 애정어린 눈으로 악사를 지켜보다가 혀아래소리로 말했다.
 《쇤네를 드리고싶습니다.》
  낮고 자닝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악사에게는 돌사태같은 진동음이였다. 악사 덴겁히 손을 당겨 뽑았다. 허나 이번에는 몸 전체가 품으로 콕 실려들었다.
 《악사님을 만난 그 이후로부터 기(技)만 팔고 몸은 팔지 않았더랫씁니다. 비록 이미 더럽혀진 몸이지만두 다시한번 가꾸고 싶어졌습니다. 꺼리지만 않는다면 악사님께만...단 악사님에게만 드리고싶었습니다. 너무나 불운하게 지내오신 악사님에게 녀자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행복을 드리고싶었습니다.》
  그녀 축축히 젖은 소리로 말하며 악사의 목을 끈끈히 삼쳐안았다. 그 서슬에 악사 뒤로 벌렁 넘어졌고 그녀 홍칠로 달아오른 볼을 악사의 마른 볼에 맞부벼댔다.
 《임금의 부름을 받은 애기를 들어삽니다. 그렇게 되면 악사님과의 지란지교(之蘭之交)도 일약 진대가지 부러지듯 마는구나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앗삽니다. 청루의 몸인지라 떠나는 악사님에게 드릴만한것이 없는것이 마음이 걸려와요. 이 몸을 드리고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한몸은 작열하는 불덩이 같이 정염에 불타고있었다. 밀착해오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육체, 그 현란한 육향에 악사 부지중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른 손으로 피리를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뿌지직-피리, 그 참대의 표피와 손바닥의 마찰음이 요란히 울렸다.
 《안돼... 이, 이럼 안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의 차분하고 섬세한 손더듬에 악사는 여직껏 고독만 반초해오며 잠자고있던 남성이 서서히 일어섬을 거부할 길 없었다. 그녀 옷고름을 풀어내렷다. 반라체가 된 무르익은 몸매, 순백의 눈부신 육체가 드러났다. 등잔 불빛의 광환에 어려 그녀의 뽀얀 살결은 진한 색조를 머금고 있엇다. 타령의 음조처럼 늘차게 어깨우로 흘러내린 머리발, 전주곡처럼 조용히 뻗어내린 목줄기를 타고 뉘연히 선을 긋다가 휑가래쳐오르는 곡조의 높이처럼 너무나도 급작스레 부풀어오른 곤혹적인 젖가슴. 그 묵직한 유방의 가녁에 차분한 곡조처럼 비껴 머물은 아름다운 그림자...그녀는 짜장 응고된 한수의 음악이였다. 그녀 수줍게 치마폭을 올리고 생활에 대한 묘연하나 필연의 희마응로 솟구고잇는 악사의 커다란 집념에 자신의 애모쁜 정감을 밀어붙였다.
 《아흐흑...》현금의 선을 훑어내리듯 그녀의 입에서 감창이 터져나왔다. 대보름날 떵방아 찧듯이, 한가위날 그네판 구르듯이, 타작마당 씨를 까불리듯이 그녀는 춤굿의 변화많은 춤사위먀냥 신들린듯 악사를 탐닉하고들었다. 거부의 몸짓을 힘아리없이 버리며 악사 격정에 끊어질듯 비틀리고있는 그녀의 허리를 두손으로 꼭 잡아주었다.
  홀연 바깥으로부터 어험! 하는 마른 기침소리와 무료한듯 발끝으로 자갈을 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곡이 바뀌는 소절사이의 쉼표처럼 그녀 무춤 동작을 멈추었다. 허나 집요한 정감의 소요에서 헤여나오지 못했다. 그녀 눈시울을 내리깔고 머리를 뒤로 한껏 젖혀버렸다. 반쯤 열린 그녀의 붉은 노래소리로 나마 부끄러움을 위장해보려는 알큰 심사에서였다. 아래우로 요분질하면서 그녀 소리를 뽑았다.
 

《사랑 사랑 사랑이야
  봄바람에 넘노나니 꽃을 물고 즐긴 사랑
  원앙처럼...짝을 지어
  마주 둥실 떠노는 사랑
  어화, 어화둥둥
  연연히...고운, 고운...사랑
  네가 모두...사...랑...이로구나》


  악사 자신의 령혼을 그 곡조에의 음률에 붙들어매였다. 음률의 사래긴 밭우에서 두사람 짜장 한개의 음부로 화하여 뒹굴었다. 숨가삐 울리는 음조에 끌려 여직껏 경직되엿던 그의 정감은 깊은 늪으로 자꾸만 자꾸만 빠져들어갔다. 그 곡조에 따라 너울거리는 불빛이 그네들의 찬연한 정사를 비쳐보고있었다.
                             

6


  셋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악사의 입궁을 앞두고 사형이 풍성한 주연을 차렸던것이였다. 악사는 억병으로 여느때보다도 술을 많이 마셨다. 주기에 구시월 단풍처럼 불깃해진 얼굴에 그로서는 보기 힘들던 기쁨의 웃음이 어려 열기의 빛을 더해주고있었다.
 《내 그럴줄 알았지. 그럴줄 알았어. 나 비록 락수가 처마밑의 돌절구를 구멍뚫는 심오한 리치까지는 채 깨쳐알지 못하지만 사제의 끈기에서 그 앞날의  룩이 아슴히 안겨오더군 그래. 매지구름이 쫘악 끼였던 우리 동생의 하늘에도 훤한 별이 쭈욱 비집고 드는 날도 있구만 그래.》
  맏이가 술, 기름에 얼룩진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감개에 젖어 너스레를 떨었다. 악사 사형과 사제의 잔에 술을 듬뿍 부었다. 다음 자신도 한잔 따라들고나서 그들을 둘러보았다.
 《형, 그리구 동생 이 못난이때문에 그 기간 로고가 많았소. 여하튼간에 나의 입궁이 스승의 평생의 소망을 이루는데 유조한것 같아 기쁘기 한량없구만. 자, 그런 뜻에서 이 술을 기꺼이 받아주오.》
 《그래. 묵자, 묵어, 이 아니 기쁜 일손가 묵어야지. 취토록 묵고 마시면서 우리 셋이서 만단정회를 풀어보자.》
  맏이가 맨먼저 굽을 내였다. 그런데 셋째는 어쩐지 묵연한 기색이였다. 술잔을 멀거니 내려다보는 셋째의 거동에서 그제야 여직껏 색다른 기분으로 죽쳐앉아잇는 그를 맏이는 기수챌수 있었다.
 《웬 일이냐? 우리 현령어르신님은...》
  졸다가 불리운 사람처럼 현령은 바삐 응수하며 술잔을 쳐들었다.     《어디 말짼거나 아니냐?》
  술잔을 만지작이다가 현령은 이윽해서야 입을 열었다.
 《이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쁜 마음들에 동침을 꽃는것 같아서...》
  악사 입가까지 가져다댔던 술잔을 되내려놓았다.
 《우리들지가넹 무슨 넘지 못할 마음의 벽이라도 있느냐?》
 《그러기에 더 말치 못하는겁니다.》
 《아하. 툭 깨놓고 말해라, 사내눔들이 갑자지르긴?》
  맏이가 증을 버럭 냈다.
 《그럼 나 툭 깨쳐 말하리다.》
  악사를 바라보던 셋째가 술잔을 쭉 굽내였다. 그리고는 잠겨든 어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형이 임금의 신변으로까지 발탁되였다니 나도 애초엔 기뻐했더랫습니다. 헌데 사형은 지금 너무나 좋은 꿈을 꾸고 계십니다. 그곳에 가서 악론을 계속 펴보려는 사형의 심성이 얼마나...짧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는 말이지?》
  셋째는 악사의 질러오는 눈길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접때 임금이 하사한 문물을 지니고 온 관차중에 사제와 천교가 밭은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의 말에 좇아보면 임금이 사형을 부른것은 그 무슨 악리를 깨치려는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니라면?》
 《소문이 나면 재미적을 일이지만두 그 관차가 취중에 토파합디다요. 임금님은 매번 내시들의 거들음을 받으며 궁녀들을 점지하여 침상에 오르군 하는데...》
  현령이 악사를 힐끈 곁눈질해 보았다.
 《...그때마다... 그때마다 침전어구에서 악공 하나가 유연한 피리곡조를 내야 그 일을... 행하는데 버릇됐다고 합더이다.》
  짤그랑! 악사의 손에서 술잔이 미끌어떨어지며 조각이 났다. 악사의 불깃하던 얼굴이 삽시에 험악하게 변조되여갓다. 몸을 부르르 떨던 악사 자리르 차고 일어났다. 문을 콱 떠박질러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형! 사형-》
  셋째가 붙쫓아나섰다. 뜰의 담께까지 달려가서 악사는 한손으로 돌각담을 짚고서 몸을 옹송그렸다. 어깨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방금전까지만도 앞길이 소연히 밝게 보이는것 같아 기뻐마지 않았던 악사였다. 그런데 그한 마음에 세찬 작달비가 한무더기 쏟아져내리며 미진하게 그려보던 감몽에 사정없이 길고 깊은 균렬을 준것이였다. 이윽고 악사는 머리를 쳐들었다. 별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에 눈물자욱이 얼룩져있었다. 별빛에 드러난 그의 얼굴에 눈물자욱이 얼룩져있었다. 하늘을 바라고 악사는 넋을 놓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일월성신이여, 진세를 굽어보고 살피는 일월성신이시여, 나 둔감한 머리와 미달한 재주로나마 악리의 절정에 오르려고 로심초사해왔는데 어이, 어이 남의 유흥이나 보태주는 활량이 역애만 그치겠나이까?이 비천한 악기쟁이로 말하면 크게 욕될 일이 아닐는지도 모르나 우리 스승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받들어왓던 그 악(樂)으로 놓고 말하면 심한 치욕이 아니겠나이까? 신성한 악을 더럽히는것이 아니겠나이까?》    현령이 다가가 악사의 어개에 손을 얹었다. 악사 으깨진 심정을 수습해들이며 소매자락으로 눈굽을 닦았다. 셋째를 뒤돌아보며 이사이로 말을 내뱉었다.
 《나 입궁 안한다!》
 《안될 일이옵니다. 사형!》
  셋째가 필요이상으로 펄쩍 뛰였다.
 《임금의 칙지온데 어떻게 언감 거역한다구 그러십니까?》
 《아무리 자존한 임금이기로서니 그래 내 악사의 자존이고 뭐고를 하루밤 궁녀처럼 마음대로 주물리우란 말이냐?》
 《경치게 엄턱스런 소릴 하지 마십쇼. 사형, 일국의 군주로서 자기 뜻을 어긴자에 대해서 무슨 엄벌이든 행하지 못하겠습니까? 큰 변고를 치르자고 이러십니까?》
  셋짼느 악사의 팔뚝을 부여잡으며 당황망조해마지않았다.
 《나 비록 미천한 백정이긴 해두 한마디 삐쳐보자.》
  어느새 맏이도 따라나와있었다.
 《심산 초야에 묻혀 여뀌풀로 썩느니보다 그런대로 화려한 궁전에서 수긍하고있는편이 더 낮지를 않겠느냐?》
  맏이가 상냥조로 나왔다. 악사 그들을 둘러보며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스승의 뜻을 너무나 잘 알지 못하고있소. 사형도 그렇구 사제두...》    악사 머리를 쳐들었다. 구름집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뼈무는 그였다. 비록 한마리의 나비가 남기고 떠난 빈 고치나 다름없는 한산한 구름집이였다. 허나 그곳에는 그를 맞아주는 석굴이 있고 산초가 있고 산화가 있고 계곡이 있고 절벽이 있고 송(松)이 있었다. 산의 그 유원한 맛에 흠뻑 심취해버린 악사였다.
 《작달비속을 내처 가더라도 낮은 처마밑에 목을 꺾고 싶지 않소!》    악사 대문을 박차고는 계곡쪽을 향한 길로 사라져 버렸다. 왜소하나 그 어떤 결의로 깎아내린듯한 그 작은 체구를 맏이와 셋째는 멍하니 지켜보고있었다.



                          

7

 


  춘향루의 그녀에 대한 비보를 접한것은 그로부터 며칠후였다. 읍내에서 갑부줄에 꼽히는 한자가 춘향루로 찾아와 거금을 내치고 그녀에게 수청을 요했다. 그녀 기(技)만 팔지 몸은 팔지 않는다고 거부했다. 취기에 절은 그자 수욕이 발작하여 야수처럼 그녀에게 덮쳤다. 그녀 광분하는 그자의 귀때기를 물고 늘어졌다. 더러운 욕구를 달성치 못한 그자 짜장 리지를 잃고 말았고 그녀를 주먹으로 쳐눕히고 실랭이를 벌리는통에 깨여진 그릇쪼각으로 그녀의 얼굴이며 몸매를 성한 곳 없이 째여놓았다.
  악사 악연히 놀라며 그녀를 찾아 읍내로 달려왔다. 춘향루로 치달아올랐을 때 탕개풀려 누워있던 그녀 시위에 놀란 새처럼 후딱 몸을 일으키더니 벽쪽을 향해 돌아앉으며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제발.》
  악사 그녀의 두손을 잡아떼려 햇으나 그녀의 거부는 집요했고 강했다.
 《보지 말아요. 제발 물러가주세요.》
  이어 그녀는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그의 드러난 손, 손목과 목덜미에  얼기설기 버얼건 상처자욱이 깊숙이 배여있음을 악사는 보아낼수 있었다. 분노가 갈퀴발처럼 일어 악사의 가슴을 허비였다.     《개놈새끼! 짐승같은 놈새끼!》
  악사 악에 받쳐 부르짓고나서 몸을 훌쩍 일으켰다.
  악사 단걸음에 읍내 북판에 위치하고있는 관청으로까지 뛰여왔다. 관청의 높다란 널대문곁에 백성들의 설분을 관청내에 전갈하기 위한 커다란 북-신원고(伸 鼓)가 세워져있었다. 북채가 보이지 않자 악사는 피리로 북을 힘껏 두드렸다. 둥!둥!두웅-드디여 대문이 삐걱 열리더니 가암른 몸집을 한자가 머리를 쑥 내밀엇다.
 《웬 놈이 이렇게 성가스레 구는거냐?》
 《나 현령을 만나 긴히 여쭐 말이 있소.》
  포졸같아뵈는 그자는 파의파립이 악사의 복색을 가려보자 입을 삐쭉이며 눈알을 굴렸다.
 《현령께서 심기가 좋지 못해서 오늘 일체 면회 거절이다.》
 《나 현령의 사형이니 어서 현령과 만나도록 알현케 해주오.》
  포졸 동공을 키웠다.
 《네가 엄감 현령의 사형이라면 난 현령의 아비쯤은 될거다.》
  대문이 쾅하고 닫혀졌다.
 《여보시오!여보시오-》
  악사 목청 깨져라고 소리지르며 연해연방 대문을 두드려 댔다. 허나 더는 응대조차 없엇다. 커다란 실의를 느끼며 돌아서려던 악사 대문앞에 쭈크리고 앉았다. 피리를 뽑아들엇다. 깊은 통한에 절은 피리소리가 관청의 대문을 두드리며 흘러나왔다. 대문이 다시 열렸다. 허나 이번에는 포졸의 야윈 낯짝이 아니라 낯익은 사제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니, 사형께서 어찌하여? 오실거면 미리 전갈해둘것이지?》
  현령 황급히 그를 대문안으로 모셔들였다. 그 모양에 방금전의 포졸이 한켠에서 어리친 기색이 되여 멍하니 악사를 바라보고있었다.
 《춘향루 녀자의 일은 어떻게 할 작정이냐?》
  동헌(곤청의 대청)에서 악사 정곡을 찌르며 대번에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 우선 안채로 들어가 숨이나 돌리고 애기해봅시다.》
 《아니, 예서 먼저 정답해봐라.》
  셋째는 낯살을 찡그렸다. 이윽토록 말을 꺼내지 못하고있었다.
 《현령이란 한개 읍내의 부모맞잡이다. 그러한 처신으로 비록 기녀라 하지만 그 역시 하늘이 낸 몸인데 그들의 아픔과 재화를 못본척할수 있겠느냐. 흉범을 잡아 오라를 지워야지!》
  악사가 설분에 길길이 뛰는데 비해 현령은 담담한 표정이였다. 딱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사형도 아다싶이 그자는 읍내에서 엄지로 꼽히는 부잡니다. 그자의 재력으로나 위세로는 읍내에서 큰 기침 할만허죠. 우로는 왕궁 아래로는 시골나부랭이에 이르기까지 세도가 커서 광청에서마저 용빼는수가 없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래도 비뚤어진 권도는 용인할수 없다. 그만한 의리조차 잡지 못한다면 그 관모부터 벗어던져라.》
  악사 증을 버럭 내였다. 한동안의 혈기가 곰삭은 뒤 악사 또다시 따져물었다.
 《춘향루 주인들은 어떻게 할예정이더나...기녀들을 치고 있는 그네들이...》
 《그들에게 이미 사죄금을 보내왔더랍니다.》
 《사죄금...흥! 아무리 옆채기가 불룩한 갑부라 하더라도 금액이 얼마면 그 설분을 풀수 있다더냐?》
  셋째 한결 음밀해진 소리로 말했다.
 《대단합더이다. 사죄금으로 춘향루를 죄다 살수 있게끔 맞먹을 돈을 보내왔다 하더이다. 그러게 이쪽에서도 잠자코 있는거죠. 참, 사형도 지금 세월엔 한쪽눈을 질끔 감고 사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악사 부지중 허무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사제의 뉘연히 군살이 오르기 시작한 허연 얼글을 건늬여보았다. 웬지 사제의 얼굴이 퍽 낯설어보였다. 일전보다 행실이 퍽 오활해진 사제를 두고 그 어떤 염요감 비슷한것이 욱 치밀었다.
 《그래 종내는 주체할 길 없단 말이지.》
  현령이 켕긴 표정으로 머리를 가로 저었다. 천착할듯한 눈길로 사제를 쏘아보던 악사 피리를 으스러지게 쥐고 불쑥 한마디 했다.
 《나 생각을 고쳐 왕궁으로 갈 예정이다.》



                             

8


  방에는 끈적한 침묵이 흐르고있었다. 벽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있던 그녀 갸냘픈 소리로 그 침묵을 찢었다.
 《미천한 쇤네를 위해서 그 높은 지조를 버리고 입궁하려 한다면 악사님의 생각은 틀린겁니다.》
 《아니요!》
  악사 그텨쪽으로 몸을 내밀며 말한다.
 《나 이제 입궁한 뒤 임금의 위풍을 빌어 그 귀축같은짓을 서슴없이 지르는 놈들을 주멸하려오. 왕궁의 명의원들을 불러 임자의 모습도 환원시켜드리고...그렇게만 될수 있다면 내가 좀 곤욕을 참아보지.》
 《아니올시다!》
  그녀 덴겁히 내뿜었다.
 《쇤네는 이미 버린 몸이옵니다. 제가 밥먹고 있는 일은...바로 이 얼굴 한장입니다. 그것을 쇤네는 잃었습니다. 쇤네는...단념했습니다...》     그녀의 소리가 울먹이는 소리로 변조되여갔다.
 《...쇤네는 아버지 만나러 가겠습니다. 황천의 주막에서 그이와 만나...현그을 켜겠습니다.》
 《그런말 마라! 살아야 해! 나처럼 이렇게 산속에서 짐승처럼 구을면서두 살아야 해!》
  악사 천둥같이 소리질렀다.그녀 탄력잃고 습하게 변해있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아니옵니다.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옵니다. 이 모습으로... 쇤네는 도저히 이 세상을 살아갈수 없삽니다.》
  그녀 서서히 몸을 돌렸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던 손을 천천히 내리웠다.
 《아!!!》악사 저도 모르게 비명을 뽑고말았다. 주먹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그것은 깨뜨러진 하나의 도자기였다. 완만한 질감과 현요한 무늬로 장식되여 광채를 뿜던 도자기에 어설기 금실린듯한 그런 형국이였다. 그녀의 얼굴은 성한 곳이 라곤 없었다. 일전의 청초한 미모를 뽐내던 그 얼굴이 지금은 꿈속에서나 보았던 악귀의 그 얼굴 같은 형상으로 악사의 눈앞에 놓여있는것이였다. 눈물이 깊숙이 배인 그녀의 상처자국을 따라 여러곬으로 어지러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궁할 생각은...단념해주십시오.》
  악사의 앞에 처참한 몰골 그대로 체념하고 앉아 그녀는 잠겨든 소리로 입을 열었다.
 《악사의 스승님도 그렇고 쇤네의 부친도 그렇고 악리의 현묘를 깨치려다 성사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였습니다. 그 크나큰 장거를 악사님이 맡아가고있습니다. 악사님은 큰일 할 사람입니다. 그런 중임을 깨치지 못하고 사사로운 정분에 매워 입궁하고 남의 유홍받이나 돼서는 완됩니다. 이러는것을 황천계신 스승님께서도 알고계신다면 결코 수락해들이지 않을겁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길 없어 그녀의 말은 자주 동강이 났다.
 《원체 쇤네가 그렇게 장한 일을 하시고있는 악사님을 내내 받들려 했는데 이제 더는 그렇게 할것 같지 못하옵니다. 하늘은 언녕 쇤네의 운명을 점지했나봅니다. 가탈만 자꾸 지는 운수사나는 팔자를요. 그저 단 하나...악사님을 더는 받들지 못하는것이 가슴저리울뿐...》
 《자꾸 그런 신수 불길한 소릴 하지 마라.》
  악사 그녀의 말을 주웅 잘랐다.
 《저의 이 몰골로 악사님을 받들수 없습니다. 깨끗한 모습으로 꾸며져야 할 악사님의 곡상이 저의 흉측스러운 모습으로 해서 그 맑은 률리가 깨여져선 안되는것이옵니다.》
 《내가 입궁해서 명의원을 보낸다잖아!》
 《입궁, 그 입궁만은 단념해주십시오. 범은 주려도 풀은 뜯지 않습니다. 입궁하는건 악사님의 본의와 어긋난 일입니다. 악사님은 구름집으로 돌아가셔얍니다. 그 집으로 가서 피리를 들어얍니다.》
  악사 눈을 습벅거리며 저도 모르게 배여나온 물멀기를 지웠다. 그녀는 진정 악사를 악리의 반석우에 올려주기 위해 주추와 서까래를다듬는 역할을 해왔던것이였다. 그러한 그녀를 위해서라면 악사는 섶을 지고 불속에라도 뛰여들수 있을것 같았다.
 《나 꼭 입궁하고말거야!》
  악사 용단을 내리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녀 엎어지며 악사의 발목을 부둥켜안았다. 추연한 눈빛으로 악사를 올려다보았다.
 《악사님의 소견이 그렇게 얕으시면 안됩니다. 그건 피리를 버리는것과 같삽니다! 그건 피리를 모독하는 처신이옵니다!》
  악사 그녀의 몸을 부추켜 일으켰다. 그 력력한 상처자욱들을 에모삐 어루쓸고나서 몸을 홱 돌렸다.
 《기다려줘. 1년이든 10년이든...》
 《안되옵니다-》등뒤에서 그녀의 다급한 부름이 들렸으나 악사 개의치 않고 춘향루를 내렸다. 아래층의 문을 빠져 몇걸음을 내쳤을 때였다. 루각에서 피타는 부름성이 울려나왔다.
 《악사님-》그녀가 루각우에 나타났다. 봉두란발에 하얀 소복차림인 그녀는 그 어떤 가상스러운 각오를 한듯한 모습이였다.
 《추월가를 불어주세요. 제 생각 날때면.》
  루각아래를 향해 그녀는 목청 다해 웨쳤다.
 《피리에 미안한 처신을 해선 안됩니다.-》
  말을 맺음과 함께 그녀 루각우에서 몸을 훌쩍 날렸다.
 《안돼!!!》
  악사 울부짖으며 두팔을 펼치고 그녀를 받아안으려 미친듯이 뛰여갔다. 허나 때는 늦었다. 스러진 한점의 락화처럼 그녀는 치마폭을 날리며 곧추 추락해내려 루각아래의 돌계단에 머리를 박았다. 현금의 굵은 선을 튕기는듯한 질타성이 악징의 종지곡처럼 들려왔다.
                         

 9


 《...거사의 재주를 어여삐 살피시사 입궁시켜 악공으로 삼을 지어니 즉일로 행하라!》
  관차 하나가 한무릎을 꺾고 앉아 어필을 쳐들고 높이 읽었다. 악사 부복하고 머리를 땅에 대이고있었다. 구름집아래로 난 자드락길에 말탄이들이 두줄로 늘어섰는데 빈 가마 하나가 대기하고있었다. 왕궁에서 보낸 관차들이 대각소리 높이 울리며 악사의 입궁을 맞으러 온것이였다. 그들속에는 그들을 대동하고 온 사제-현령의 얼굴도 보였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 악사 현령을 한켠으로 잡아끌었다. 관차들이 보이잖는 곳까지 와선 입을 열었다.
 《나 간밤에 야밤도주를 해버릴것 그랬네.》
 《사형, 환장한거나 아닙니까? 입궁을 하랍시고 행차마저 들이닥쳤는데 웬 지각머리없는 소릴 하고있습니까? 지금...》
  악사 들숨 한번 길게 그었다.
 《그래 나더러 악론의 편찬을 버리고 한생을 남의 노리개로나 륜략하란 말이냐?》
 《소릴 죽이십쇼. 사형 이 대목에 와서 웬 망령이십니까? 언감 군주의 청을 거부했다가 가차하면 목을 낮출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형께서 주자를 놓아 모면한다손쳐도 온 마을 온 읍내의 관련된이들이 그로 해서 재화를 입을것 아니겠습니까?》
  현령 구름집쪽을 힐끗힐끗 보며 어성을 낯추어 말했다. 그러는 그 소리는 몹시 떨리고있엇다.
 《일개 청루의 아녀자 마저도 절개를 굽히지 않으려고 육골이 스러짐을 마다치 않았는데 여직껏 악리의 탑을 쌓아왔다는 내가 부귀와영달을 바라 허리를 꺾는단 말인고?》
  악사 진득한 한숨을 내쉬였다. 품속에서 피리를 꺼내들었다. 자신의 체취와 손때가 올라 반들거리는 그 피리를 처음 보느 ㄴ물건처럼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그 혈(穴)들마다는 꼭 마치 하나하나의 눈이 되여 악사를 쳐다보는것 같았다. 눈을 깜박이며 악사와 힐문하는듯했다.
  (정녕 입궁하시려는겁니까?)
  순간 깡그리 참살돼버리나 다름없던 리성의 한귀가 엄혹한 현실의 부하를 밀쳐내며 고개를 번쩍쳐들었다. 악사 한숨처럼 한마디 내뱉었다.
 《먼저 가서 준비를 서두르게나. 나 인차 따라설테니.》
 《왜 그러십니까?》
 《나 마지막으로 이 구름집앞에서 한곡조 뽑고싶어 그래.》
  악사 피리를 쳐들어보였다. 그러는 악사의 얼굴로 그 어떤 비장한 결의 같은것이 비쳐보이고있었다.
 《입궁을 거를 생각같은건 아예단념해주십쇼.》
  현령 한마디 력점찍어 이르고는 연신 뒤를 돌아다보며 물러갔다.


  악사 피리를 들고 아침마다 수련하군 하던 그 개여울앞의 바위께로 다가왔다. 손을 깨끗이 씻고 입을 가셔낸 뒤 바위우에 정좌하고 앉았다. 피리를 불기 시작햇다. 무애곡(无碍曲)의 선률이 흘러나왔다. 여느때보다도 혼신을 다해 불었다. 눈확으로 넘쳐흐르는 눈물이 볼으 ㄹ타고 내렸고 손짬으로 스며 피리의 혈마다에 흘러들었다. 짜거운 눈물을 씹으며 악사는 음울한 선률의 곡조를 불고 또 불었다. 이윽해서야 곡이 끊었다. 악사 피리에 얼룩진 눈물을 옷자락에 문질러 깨끗이 닦았다. 다음 자신의 기름한 왼손을 이윽토록 내려다보았다. 오른손 하나면 악론을 편찬하는 붓대를 잡기엔 족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들숨을 길게 긋고나서 악사 여울가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어들었다. 그 돌이 작아보여 조금 더 큰 돌을 찾았다. 그 돌이 유연해보여 모난 돌을 찾아들었다. 묵직한 돌의 중량을 한동안 가늠해보았다. 떨리는 왼손을 펼쳐 바위우에 놓았다. 그러는 악사의 눈에 뱀의 그것 같이 무서운 발광체가 번뜩이고있었다. 눈을 질끈 감으며 악사 돌을 추겨들어 왼손가락을 힘껏 짓찧었다. 피가 얼굴에 튕겼다.

악사 짧고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돌멩이를 떨구어버렸다. 전신이 부르를 떨렸다. 비지숨을 몰아쉬던 악사 다시한번 돌멩이를 주어들었다.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입귀로 물며 돌멩이를 주어들었다. 뺨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입귀로 물며 돌멩이를 추켜들었다.

한번...두번...세번...극심한 동통이 뼈짬으로 스며들었고 그 아픔은 또 흥건한 땀 방울로 화해서 일신의 모공으로 배여나왔다. 미친듯한 자학에 악사의 손, 범인(凡人)들로서는 도저히 낼수 없는 곡조를 더듬어내던 그 손가락이, 그 범상치 않은것들이 악사의 신체의 한부분같지 않게 떨어져나갔다. 악사의 학창의 앞자락이 피칠갑이 되였다. 드디여 피로 얼룩진 돌멩이를 떨어뜨리며 피가 샘솟듯 하는 손, 그 페해버린 조막손을 움켜잡고 악사 그자리에 무너져내렸다.

피리! 바위우에 정히 놓아둔 피리가 보였다. 피투성이 된 손을 떨며 악사 피리를 집어들었다. 아픈 육체,아픈 마음,아픈 눈길로 그 피리를 멀리로 힘껏 내쳤다. 반공중에서 호를 그리며 날던 피리는 개여울에 가서 철렁하고 떨어졌다. 여울에서 빙그르르 맴을 돌다가  피리는 서서히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들쑹 날쑹 박힌 돌에 부딪치기도 하고 급류에서 몸부림치기도 하다가 피리는 드디여 저멀리 시야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쏴,쏴아- 솔에 불리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따각!따각! 딱따구리가 단단한 각질부리로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돌돌돌돌...여울이 자갈을 핥으며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후꿍,후꿍,후유휴꿍! 시뻑건 울음을 토해내는 소쩍새의 소리가 드렸다.
  맴, 매-앰 독새풀짙은 논뚝에서 풀뜯는 소의 파장음이 들렸다.
  악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어떤 정물처럼 고착되여있었다.
  그는 짜장 자연의 소리속에 화해버리고있는것이였다....                                                 

 

도라지 9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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