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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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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만가(屋上輓歌)
2009년 06월 01일 13시 56분  조회:3442  추천:33  작성자: 김혁


. 단편소설 .


옥 상 만 가 (屋上輓歌)

-  중국조선족문제테마소설계렬


   김 혁
 


* 이 한 부의 작은 소설을

 1990년대 중기 3만여명의 한국초청사기피해자들에게 삼가 드린다. 

- 저자



...옥상에서 본 낮달은 그렇듯 가까웠다. 손을 펼치면 잡힐듯한 달은 가까스로 안색을 쓰며 한낮의 빨래줄에 걸린 구접스런 아낙네의 속곳마냥 훤한 중천에 대중없이 걸려있었다. 달은 만궁이 된 활같기도 했고 옻칠이 매끄러운 경대의 서랍속에 들어있는 엘레빗같기도 했다.
사내는 옥상에 말뚝처럼 뻗쳐서서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빗에 생각이 미치자 사내의 잡초처럼 무정한 눈섭이 움씰했다. 며칠전엔가 무심코 체경을 들여다보다 놀랍게도 흰 머리 몇대를 발견했다. 논밭의 돌피를 가려내듯 흰 머리칼을 악지스럽게 뽑아내쳤다. 그결에 검은 머리칼도 함께 뽑혔고 사내는 그만 빗살 몇가치를 분질러 먹고말았다. 이빠진 빗은 합죽이 할망구처러 불썽사나워보였다. 사내는 덴겁히 경대우에 놓여진 화장품설명서로 빗을 덮어버렸다. 그러다 다시 화장대서랍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다 다시 쓰레기통에 슬그머니 던져버렸다. 그런데 제수가 어느결에 그 빗을 쓰레기더미속에서 귀신같이 뚜져내였다.

《이 빗이 그저 빗인줄 아세요.한국산이야요. 한국산!》
제수는 빗을 물증처럼 쳐들고 사금파리 긁듯 변형된 소리로 말했다. 물론 제 남편과하는 말이였지만 그 소리는 옆칸에 있는 사내가 들을수 있을 정도로 높았고 분명했다.한국제라면 빗마저 좋을가? 그 빗을 쓰면 뭐 염색 안하고 약 안써도 흰머리가 검은 머리 될가? 사내는 이렇게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리고 해종일 남의 집 장독대 깬 애가 훈장의 눈길 피하듯 제수를 감히 정시하지 못했다. 그만큼 맞아서 부어오르기라도 한듯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 많은 제수의 눈빛은 마냥 장마철 하늘처럼 흐렸고 도무지 개일줄 몰랏다. 기실 제수에게는 빗이 많았다. 쥐이발처럼 빗살이 촘촘한 앙증맞는 빗이 있는가 하면 회자수의 칼처럼 무지스레 큰 빗도 잇었고 고대무사의 랑아봉처럼 괴상하게 생긴 빗도 잇었다. 그렇게 많은 빗중에서 빗살 몇가치를 분지른 일이 사내에게는 칠거지악을 범하기라도 한듯 두고두고 단죄할 일로 치부되였다. 조카애가 연필 깎다가 필촉을 분지르자 제수가 필요 이상으로 악청을 질렀다.
《그래 잘헌다. 잘해! 다 꺾어먹어라, 먹어! 연필도 꺾어먹고 집안기둥뿌리도 꺾어먹어.》 

그 말속에 분명 자기를 향한 가시가 섞여있음을 잘 알고있었지만 사내는 항변거리를 잃고있었다. 이제 제수앞에서의 아주버님의 도고함 같은것은 사내에게 없었다. 아침엔 모두부,

점심엔 두부볶음, 저녁엔 두부장을 대충 응부해 던져주다싶이 하는 메뉴가 단조롭기 짝이없는 음식도 그릇소리 낼세라 눈치를 봐가며 먹어야 하는 처경이였다. 일일이 여삼추같았지만 동생네 집에 얹힌지도 어언 넉달째 가까워온다. 사내는 자기가 저서편으로 짜부라져가고있는 낮달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도 때도 모르는듯하지만 체념한듯 모두들앞에 무기력하게 떠있는 창백한 낮달이...
 
겨울탈곡장처럼 호젓한 이 옥상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것은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 많은 제수의 눈빛이 점점 빙점아래로 추락해내리던 어느날이였다. 집에서 빈둥한둥 놀고있지만 왕모처럼 리유없이 당당햇고 또 자기에 대해 한입 가득 떼문 과일속에 옹송그리고있는 벌레처럼 질색하는 제수와 한공간에 있기 어려워 일없이도 집을 나서군 했다. 오늘은 어데로 가서 씨나락처럼 자잘하게 널린 시간을 까먹을가 궁리하던중 랑하에 낸 비상구를 발견했고 움덮개같은 그 비상구문을 따고 올라서보니 생각보다 훌륭한 옥상의 공간이 펼쳐져있었던것이다.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뚜껑을 열어젖힌 솔같은 안테나 열두개가 부착되여있었고 널직한 헛간이 없는 아빠트단지에서 분명 어느 늙은네가 부득부득 우겨서 가져왔을 김치독(혹은 장독?)세개가 설둥한 기분으로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어울리지 않게 자전거 한대도 있었다. 안장의 해면도 다벗겨지고 바퀴의 김도 빠진 헐망한 자전거는 해부실의 골조표본처럼 앙상한 모습으로 옥상우의 한 귀퉁이에 넘어져있었다. 분명 안테나 부품을 담아왔을 종이박스 한개도 있었고 안장공들이 마시고 버렸음직한 빈깡통콜라병 네개도 뒹굴고 있었다. 어중간한 뙈기논만큼 면적이 넓은 광고판이 옥상의 이마우에 죽쳐앉아잇었다. 아래에서 그 광고판을 한동안 쳐다본덕 있었다.

광고판에는 수기를 건뜩 쳐들고 하늘로 날아가는 비행기 한대가 그려져있었고 그 아래쪽에는 비행기보다 엄청 더 큰 한복차림의 아가씨가 극속의 요정처럼 찬란한 웃음을 지으며 안내자인듯 한손을 쳐들고있었다. 그리고 광고판에는 이런 글발도 큼직히 씌여있었다

  한국행 비행기표판매(서울특별할인)
  본 판매처에서 비행기표를 구입한 분들은 무료로 공항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광고판에는 네온싸인이 둘레를 치고있어 밤에도 엄청 큰 그 아가씨는 의연히 엄청난 유혹의 웃음을 발산하고있었다. 광고판이 던져주는 그늘밑에 종이박스를 펴고 누우니 제법 아늑한 휴식터가 됐다. 옥상평면에 콜타르를 칠했기에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제수가 쓰는 야릇한 향수내가 밀도 짙게 배인 집안보다 좋았고 시공중인 가까운곳의 공터에서 울려오는 신음으로 시끌시끌 했지만 제수의 밑도끝도 없는 투덜거림에 비하면 오히려 듣기에 편했다.

비오는 날을 제하고는 사내는 꼭꼭 옥상우로 오르군했다. 그 무슨 선경속에 지어진 다락방처럼 옥상이 사내에게는 둘도 없는 보금자리였다. 때론 해종일 옥상에 누워 까딱치 않았고 어느 한번인가는 옥상에서 밤을 지낸적도 잇었다. 동생과 제수가 말세처럼 싸움을 벌렸는데 그 내용인즉 또 한번 구실못하는 아주버니의 존재로 인기된 설전이라 피해서 옥상으로 올랐다가 그만 잠이 깜빡 들었던거였다. 한여름이라지만 열기가 식혀진 새벽녘에는 은근히 추워 잠을 깨였고 그 시간에 다시 들어가기도 무엇해 옹송그리고 앉아버렸다. 추위와 서러움을 잊어보련듯 깜박깜박 사라져가는 새벽별을 구명선을 쫓아가듯 집요히 세고 또 세였다.

이렇게 사내는 옥상의 환경에 차츰 습관이 되였고 높은 옥상에서 작은 몸에 담긴 버거운 근심걱정을 해소하는것이 사내의 일상의 전부로 되였다.
                                


 
사내는 화장실의 거울속에 비친 자기를 남보듯 유심히 뜯어보았다. 눈자위가 어쩐지 맑지 못하고 흐릿했고 수염터기는 중등을 꺾은 돌피처럼 다시 집요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그 볼썽사나운 모습을 선들한 면도칼로 박박 밀어버렸으면 시원하련만 동생네 집에 면도칼은 없고 대신 전동면도기를 사용하고있었다. 전동면도기를 쓰니 어쩐지 시원치 못한데다가《면도기 함께 쓰면 피부병 옮는답니다.》는 제수의 지론에 제수가 자리를 비운다음 도적면도를 겨우 하다보니 사내의 턱주가리는 마냥 불효자식을 둔 아비의 산소마냥 그닥 깨끗치 못했다. 거울속에서 사내는 또 틈사리를 비집는 흰머리 몇대를 보아냈다. 이제 그것을 뽑기마저 귀찮아졌다.

제수가 집을 비운뒤면 사내는 살초제가 비에 씻긴 풀처럼 잠시나마의 생기라도 찾은듯하였다. 공밥먹는것이 안쓰러워 일이나마 좀 찾아하려 해도 완벽함에 가깝게 깔밋하게 꾸며진 현대화한 아빠트에서 무지렁이 농촌사내가 찾아할 일은 보이지 않았다. 구들장 뜨끈뜨끈하게 불이라도 때맞추 때주려해도 스팀시설이 있는 집이였고 간혹 무거운 액화가스통이나 바꾸어주려 해도 액화가스까지 들어와잇었다. 제수가 하는 본을 내여 진공청소기로 집안청소를 하려 했으나 흡진기를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 눈가까이에 쳐들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허우적거렸다. 마침 그 모습을 제수가 보고《그거 청소기야요. 장난감 아닙니다.》고 조소를 흘리는 바람에 그 일조차 찾아할수 없었다. 다행히 소학교에 다니는 조카애를 아침저녁으로 데려다주고 맞아주는 일이나마 그에게 차려졌다. 그 일조차 없었더라면 사내는 아마 옥상에서 더는 내려오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그일말고도 사내가 하는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제수는 결벽증세처럼 집안을 닦고 털고 또 닦았다. 화장실의 욕조며 세면대도 매일같이 시악에 가깝게 박박 닦았다. 허나 수세식 변기통만은 부시기 싫어했다. 공연히 코를 싸쥐였고 그저 소랭이에 물을 듬뿍 담아서는 불끄는 사람처럼 와락와락 끼얹군했다. 그것을 보아내고 사내가 변기통을 부셔주었다. 그런 구접스런 일을 사내는 명심했고 열심히 했다. 순간에는 더러웠고 야속했지만 하고난 뒤면 웬지 속이 편했다. 아무렇거나 일거리만 접하면 한가슴 꽉 미여지게 실렸는 근심과 걱정과 한을 잊고 덜어낼수 있을것 같았다.
 
여느때처럼 사내는 수세식변기의 물을 틀었다. 물은 변기속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꿀꺽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변기통을 멀거니 들여다보며 사내는 자기의 행복이며 희망이며를 이렇게 흔적도 없이 꿀꺽 삼켜버린 장본인을 생각햇다. 또 한번 코김 섞인 한숨을 하앟게 내쉬고나서 사내는 걸레를 집어들었다. 닦지 않아도 관찮을 변기통속에 세척액을 뿌렸다. 끈적한 세척액은 변기통속에서 송진처럼 눅진히 흘러내렸다. 사내의 가슴속에서 그렇게 피고름이 흘러내리고잇었다.
 
딩동!초인종이 울렸다. 제수가 왔냐부다고 사내는 덴겁히 달려나가 문을 열어제끼느라 부시럭거렸다. 안전장치가 여러겹으로 된 방범문을 사내는 어쩐지 열기 어려워했다. 그저 문설주에 박은 못에 문고리끈을 돌돌 감쳐매였다가 다시 돌돌 풀어내던 고항집의 사립문과 달리 도깨비주문을 외워야 열리는 전설속의 동굴문처럼 문을 열기가 지극히 어려웠다. 제수의 내놓은 야유속에 소학생계집애인 조카가 문을 손쉽게 따는것을 희한한 눈길로 지켜보았던 그였다.

간신히 문을 열어젖히고보니 낯모를 아낙네가 문켠에 서있다 껴안고잇던 보따리를 내밀며  《김밥 사십소.속 많이 넣고 참기름 많이 바른 김밥인디용.》하고 홍두깨 내미는 소리를 한다. 집에 온 하루 박혀잇노라면 이런 불청객을 만나는 수가 많다. 바닥에 깔쪽무이판을 팔러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연기 청소를 하겠느냐며 찾아오는 사람도 잇고 어느 한번은 식칼 파는 장사군마저 찾아온적 있었다.
《안삽니다.》

덜 좋은 기색으로 밀치며 문을 닫으려는데 아낙이 문고리를 잡아쥐였다. 애원처럼 간청한다.


《사십소. 한토막에 1원50전씩 하는걸 1원씩 드릴께용, 이거 한국김으로 만든건디.》


《안산다는데 왜 이럼둥? 정말 이상한 아줌마네.》


증을 버럭 내며 체면에 철판을 깐 장사군을 흘려보던 사내의 눈빛이 일순 일상한 빛으로 번져나갓다. 이윽고 사내의 입에서 반가운 음성이 신음처럼 튕겨나갓다.


《아니, 이거 <부산댁>아니시오?》


《부산댁!》,고향에서 인기가 유포했던 녀자. 산재지역에서 이사를 온데서 말투가 함경북도투성인 이 지여과는 달랏고 남편이 마을에서 맨 처음으로 부산으로 로무를 가게 된데서 지어졌던 별명이였다. 빚을 져서 나간 그남편이《노가다》판에서 사고로 비명에 죽은데서 손해배상비를 받느라 변호사를 청한다,북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찾는다 하며 진동한동 뛰여다니다 끝내는 손해비 못받고 죽는다며 농약을 마셨다가 되살아나는 험고를 치르며 동네 부산히 굴어 쌍증의 이미지로 별명을 굳힌《부산댁》이였다.

상대에서도 사내를 알아보고 환음을 질렀다. 사내는 저도모르게 서둘러 아낙을 집안으로 청해들였다.


《우와~, 삐까뻔쩍 잘 해놓구 사는구만 용,잉.》

얼음에 자빠진 소처럼 지릅뜬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던《부산댁》의 감탄이 자지러졌다.    

《끝내 성공했시용잉.목돈 잡아온다구 헐랑 떠난지 몇해 자알 되더니만용. 와-이거 학교 운동장같습니다. 이만치로 집장만할라면 돈냥 많이 부셨지용 잉.》
《부산댁》의 경탄이 발에 발을 잇는 바람에 사내는 미처 해석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제집이 아니라 동생네 집이라 까밝히기도 어려웠다.
《날래 앉으시쥬.》
  그저 자리만 거듭 권했다.《부산댁》은 권하는 쏘파가 아니라 주단을 깐 땅바닥에 훌렁 앉아버렷다.
《그동안 어떻게 지웠습니까?실루 오래간만인데유.》
  사내는 오랜만에 만나는 동네 사람에게서 고향소식이나마 귀동냥해 들으련듯 다잡아 물엇다.《부산댁》이 사내를 힐끗 쳐다보았다. 눈망울에서 벼락불처럼 스쳐지나가는 착잡한 심경을 사내는 순간이였지만 분명 보았다. 《부산댁》은 공연히 그릇을 감싼 보자기를 꽁꽁 비끄러맸다가 풀었다 다시 비끄러맸다. 코를 훌쩍 치걷고나서 방금 전과는 달리 힘겹게 한마디를 짜냇다.
《말마시용. 말두 마시라구용. 미친년 오밤중에 소탄다드니만 나가 꼭 그 꼴인디용》...

                                      

사내는 아스팔트와 황토길이 린접된 곳에서 뻐스에서 내렸다. 시교에서도 한참 떨어진 고향까지 곧바로 대여가는 뻐스가 있긴 했지만 그러자면 차표가 좀 비싼편이였다. 예전 같으면 외식뒤끝에 호기스레 받지 않을수도 있을 거스름돈값이였지만 지금에 와선 땡전마저 금쪽같게 여겨지는 처경이였다.

이마가 익어번질듯한 땡볕을 이고 사내는 먼지가 풀썩이는 황토길을 따라 스적스적 걷기 시작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마음의 묵달밭에 비해 그런대로 길량켠에 펼쳐진 논밭에서 벼의 자람새는 좋은 편이였다. 오래만에 맡아보는 순수한 물내음 땅내음에 사내는 연신 코방울을 벌름거렸다. 느닷없이 만난《부산댁》의 출현은 사내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못이겨 사내는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고향길에 발을 들여 놓은것이였다.

곰바지런히 다리를 놀려 사내는 드디여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있는 촌소학교까지 닿았다.원체 학생래원이 적어 조용하던 학교운동장에는 이상할만치 사람 하나없었다. 교학중이나보다고 사내는 토담아래에 쭈크리고 앉아 기다렸다. 그러던 사내가 홀연 스스로 머리통을 철썩 때렸다. 방학중이라는 생각이 무딘 더듬에 뒤늦에 잡혔던것이다.

토담곁에서 사내는 엄마치마꼬리를 잃어버린 미아처럼 한동안 서성거렸다. 교정가까이에 있는 물가에서 애들이 왁자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막무가내로 그곳으로 향했다. 마을길로 자전거 몇대가 달려 오고있었다. 사내는 덴겁히 강가의 버드나무에 몸을 숨겼다. 사내애 몇몇이 자전거를 타고 어데론가 신나게 달려가고있었다. 탈옥한 죄수처럼 나무뒤에 숨어서 사내는 낯익으면서도 낯설은 애들의 모습을 헤아려보았다. 이 몇년간 애들이 물오이 크듯한데서 마을의 누구네 집 애들이라는것을 겨우 알아볼수 잇었다. 자전거가 멀리 사라져서야 사내는 나무뒤에서 몸을 일으켜 강으로 다가갔다.

깝치동이 사내애 몇이 옅은 물목에서 송사리떼처럼 어우러져 놀고있었다. 사내가 애들을 불렀다. 물장구치던 애들이 일순 손을 멈추고 일제히 사내쪽으로 머리를 돌렷다. 그중 한 애가 발가벗은 몸으로 고추를 달랑이며 부끄럼없이 뛰여왔다. 해볕에 그을려 오지독같아뵈는 애에게 딸애 이름을 대며 아느냐고 물었다.

《예- 그<술깡치>녀자앨 그럽니까?》
 
잘 안다는듯 소리질러놓고 애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술깡치》계집애라니??사내는 연유를 따져물었다.

애는 남의 별명을 부른것이 안됐다는듯 박박 깎은 머리를 싹싹 긁으며 어줍게 해석해주었다. 그 녀자애의 할머니가 돼지를 치는데 그 애와 함께 작은 밀차를 밀고 향에서 꾸리는 술공장에가서 술깡치를 받아오군 한다고 한다. 할머니를 도와나선 녀자애의 몸에 술깡치냄새가 배여 반급애들로부터 그런 별명으로 불린다는것이였다. 오지독같아뵈는 애의 말을 들으며 사내는 스프링처럼 튕겨오르는 흥건한 울음덩이를 울대뼈를 덜걱이며 연신 삼키고 있었다. 애가 볼가봐 얼른 머리를 돌렸으나 밤이슬같은 눈물방울이 그만 눈귀로 꾸역 배여나오고 말앗다.
《근데...손님은 누굽니까?》

애의 이상한 눈매가 사내를 향해 찔러왔다. 사내는 엄지로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찍어내였다.그리고 신문지에 싸서 겨드랑이에 꼭 끼고왔던 물건을 애에게 내밀었다. 딸애에게 전해달라고 백당부를 했다. 그 속에는 사내가 딸에게 주는 선물이 들어있었다. 선물이란...조카애가 쓰다 버린 연필꽁다리와 크레용 몇개 과일냄새나는 고무 지우개, 주물다가 싫증나 버린 고무떡, 얼룩 곰모양으로 만들어졌으나 곰의 한쪽귀가 떨어진 연필깎개 그리고 때가 좀오른 인형하나였다. 가정조건이 윤택한지라 조카애는 연필도 몇번안쓰고 버렷고 인형도 새로운 양식이 나오면 산지 얼마 안되는곳도 던지군했다. 그런걸 주어모았다가 다시 주려니 제수가 쓰레기 장사군이냐며 질색했다. 하여 딸애에게 주려고 꿍져두엇던것이엿다. 조카애보다 두살가량 우였지만 여직 향마을을 벗어못보고 할머니를 도울수 있게끔 웃자라있는 딸애에게는 남의 퇴물림일망정 하늘이 내린 복음처럼 반가운 례품일것이였다.

누가 볼가봐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인차 자리를 뜨면서 사내는 연신 고개를 꺾어 마을쪽으로 눈길을 돌렷다. 몇몇 지붕너머로 텔레비죤 안텐나가 넘어질듯 찌그러져있는 자기집쪽에 시선을 박았다.

죄송하꾸마,어마이!죄송하꾸마, 죄송하꾸마...

사내는 혼 나간 사람처럼 입속말로 자꾸만 중얼거렸다.

...옥상의 장독대우에 진 콜라병이 놓였다. 사내는 돌덩이 하나를 주어들고 콜라병을 향해 던졌다. 콜라병을 맞히지 못했다. 다시 한번뿌렸다. 콜라병은 여전히 넘어지지 않았다. 까닭없이 울화가 치민 사내는 가까이 다가가며 돌멩이를 힘껏 내쳤다. 쩔그렁! 파렬음이 울렸고 콜라병대신 장독대가 그만 깨여져버렸다. 그와 함께 사내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와지끈 깨여지는 소리를 분명듣고 잇었다. 장독대처럼 으깨진 마음을 사내는 어떻게 수습햇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옥상의 변저리로 다가가 바닥을 짚고 골만 내민채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꿈길인양 거리가 아득히 보였다. 거리에선 둥지털린 개미떼처럼 사람과 차량들이 오글거리고있다.그 어떤 이질감으로 사내는 아래쪽을 향해 흥건한 침덩이를 뱉았다. 침은 높은 곳의 실족자처럼 오래도록 떨어져내렸다. 그 침에 집요한 시선을 달고 사내느 키들키들 영문 모를 웃음을 혼자서 웃었다.
                      


 

1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돌돌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2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돌돌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3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돌돌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자질구레하기 짝이 없고 해종일 층계를 오르내려야 했으며 게다가 사람들의 눈총을 덤으로 얹어야 하는 일이였기에 너나가 꺼려했지만 사내는 이 일을 선뜻 접했다. 동생의 주선으로 어느 광고회사의 허드레 광고원으로 잠간이나마 취직을 한것이다. 옛날급진 인사들이 네거리를 삐라를 살포하듯이 거리와 골목, 가가호호를 돌며 광고문을 내붙였다. 가련할 정도로 적은 박봉에 또 언제 어디서 쫓겨날지 모를 직업이였지만 사내는 일에 신명을 바쳤다.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 많은 제수에게 생활비라 이름지어 받쳐 올리고싶엇고 조카에게 필갑 한통이라도 사주고 싶엇다. 그래야만 아무일에라도 자기를 혹사해야만 위구로 쭉쪽린 마음을 위무할수 있을것 같았다. 전위선질병에 대한 치료며 유방 살리는 크림이며 포경수술이며 치질근치며 툽상스런 문구가 적혀진 광고문들을 한아름 꿍져안고 사내는 땀에 눈알까지 젖어서 층계를 오르고 층계를 내렸다.
 
농가에서 자라 뼈를 굳혔기에 사내는 원체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사지가 욱신거려 못배기는 성미엿다. 가래질,후치질...농사일에 막힘이 없었고 이불장 짜고 유선 방송을 놓을줄도 알았으며 종자 다른 흑태(검정콩)도 심었고 병아리도 까고 물고기도 키우고 한데서 가근방에 이름이 자자한 감농군이였다. 그렇게 흙에 묻혀 살면서도 항상 달긋한 미소만 휘뿌리며 지내왔던 사내의 얼굴에 무거운 암운이 서리게 된것은 요몇년사이의 일이였다.
 
할수무가내로 동생네 집에 얹혔던 애초에 사내는 어느 골목길에 자전거 수리점포 하나를 차렸다. 원체 손부리 탐탁한데다가 마음씨 허랑해서 손님들이 많이 들었다. 더우기 도회지에는 자전거를 교통용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수자를 셀수 없는 별처럼 많았고 거의 모두가 의표는 그런대로 보아줄만 했지만 잔손질 같은데는 전혀 숙맥인 량반 타입들이여서 수입이 짤짤했다. 눈두덩이에 살이 유난히 많은 제수에게 고기,채소값을 내줄수 있었고 조카애의 군입질먹이도 도맡아 사주었다. 그러던 사내의 점포에 어느날인가 염마전의 사자같은 녀석이 나타났다. 엄랑이 모지락스럽게 크고 살벌해보이는 녀석은 사내가 일껏 형체라도 일구어놓은 점포를 산산이 짓부수었다.
 
녀석은 사내의 고향에서 강을 하나 사이둔 한족마을의《쑹개》라는 자였다.사내는 쑹개네 집에서 5푼리자로 거금을 빌렸다. 사내네 마을에서 이렇게 한족마을에 가서 변놓이돈을 맡는 조선족들이 많았다. 태반을 넘겼다. 한족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이 내버린 밭을 헐값으로 맡아 부쳤고 그렇게 번 돈으로 쌓아올린 밑천을 다시 조선사람들에게 변놓이를 했다. 년이 지나도록 사내네 집에서는 원금을 물지 못했을뿐만아니라 리자가 원금을 훨씬 넘겼다. 리자도 싫으니 원금이라도 돌려달라고 극성부렸지만 그렇게 농부일생 다 바쳐도 만져못볼 거금을 물어내는수가 없었다. 하는수없이 빚으로 처분해 밭을 내주었고 소를 팔았다. 그래도 안되니 집마저 팔았다. 허나 산같은 빚짐에서 겨우 돌멩이 몇개를 덜어내는 시늉에 지나지 않았다. 원체 마을에서 싸움질에 지릅났고 구치소에도 들렸다 온적 있는《쑹개》의 인내가 드디여 한계를 넘었다. 사내를 잡아다 자기집 김치움에 가두었다. 물 한모금 주지 않았다. 그렇게 돼도 불모로 잡힌 사내를 구해줄 사람이 없었다. 빚군의 다닥질에 더는 못배기고 안해는 집이고 딸년이고를 버리고 가출해버렸다. 어느 한번 발신주소도 없이 돈 몇천소시를 부치고는 지금껏 종무소식이다. 청도의 어느 한국합자기업에서 한국사람들을 상대로 밥을 해준다는 애기를 들었다. 또 누군가는 서울지하철에서 봤다고 했다.

이젠 동생의 손을 더 바란다는것도 참 어려운 일이였다. 동생에게서 언녕 적잖은 액수의 돈을 꾸었던것이다. 기실 동생과는 동부이모의 사이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버린 뒤 맏이인 사내는 어머니를 모셨고 동생은 창졸한 결혼과 함께 분가를 하였기에 어쩐지 동생과의 사이가 서름서름 해젔다.

한낱 촌녀자인 어머니와 소학교에 다니는 딸애로서는 빚군들의 횡포에 그저 떨고 있을뿐이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빛 한불기 없고 습기가 지근거리는 어둠속에 쥐새끼 울음소리만이 찍찍 섬찍하게 들려오던 그 김치움에서의 시간을 사내는 영영 잊을수가 없을것 같았다. 다행히 《쑹개》의 로모가 가만히 김치움을 열어주어 이튿날엔가 사흩날엔가 몸을 뺄수가 있었다. 숨어있다가 또《쑹개》의 눈에 띄였고 광분하는《쑹개》의 삽날에 잔등을 찍혔다. 향위생소에서 응급처치를 대충하고는 그날로 사내는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파출소에 신고하라고 곁에서 권유를 했으나 스스로 자초한 일이였고 바꾸어 처경을 따져보면 자기도 그렇게 많은 돈을 남에게 떼우고 온곱게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을것 같았다. 그렇게 꿈에 보기마저 두려웠던《쑹개》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점포에서 만났던것이다. 한낮의 아닌 횡포에 길가는 사람들이 나서서 시비를 따졌고 누군가는 110방폭경찰대대에 신고전화를 넣었다. 그 란리통에 사내는 자전거수리기구고 뭐고 팽개치고 사람들의 틈바구니속에서 다시 한번 행적을 감추었다. 그리고는 여직껏 내내 눈두덩이에 살이 유난히 많은 제수의 수모를 감내하며 깁에만 붙박혀있었던것이다. 그러면서 한사람을 찾았다. 함께 흑태를 심어 가꾸던 《검정콩》이라 불리는 검정콩처럼 얼굴이 검실검실한 이웃을 감질나게 찾았다. 촌에서 맨먼저 치부를 했고 맨먼저 도회지로 나온 순발력있는 친구였다...
 
  4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둘둘 말아 꽂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였다.
  5층집 문 손잡이에 벼룩신문 한장을 둘둘 말아 꼭고 어느 곽밥집의 광고를 붙이...려던 사내는 등뒤에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섰다. 늙수그레한 로파 하나가 어느결에 등뒤에까지 와 서있었다. 이어 또 한명의 로파가 헐씨금이며 층계로 올라왔다. 로파들의 짓물린 눈확에서 사내는 적의를 읽었고 이어 두 로파의 팔에 죄다 붉은 완장이 둘러져있음을 보아낼수 있었다.
 
《무슨 짓거릴 하고있소, 지금?》

먼저 올라온 로파가 카랑카랑한 소리로 따져물었다.


  《광,광고원인뎁쇼?》


  로파들의 느닷없는 위세에 질려 사내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그게 제집 문창이라고 아무데나 바르고 붙여유?》


  뒤미처 올라온 로파가 더 큰 소리로 채무했다. 로파들이 소리소리 지르는 바람에 굳게 닫혔던 방범문들이 열렸고 집주인들이 하나 둘 뛰쳐나왔다.


《할마이들 잘 붙들었어요. 그렇찮아도 이런 얌치없는 광고쟁이들 만나면 단단히 혼뜨검 줄려 했는데. 이 문짝 좀 보세요, 마마투성이 만들어놓은걸.》


《이건 시용을 흐리우는 행위입니다.》


《이런 사람 처치하는 법규가 나와야는건데...》


《요즘 잔 물건이 자꾸만 잃어지는데 이런 사람들 꿀꺽한것이 틀림없어요.》
 
사각 지대로만 알았던 아빠트층계에 어디에서 왔는지 순식간에 숱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문에 더덕더덕 나붙은 광고딱지를 두고 중구난방 의분을 토해냈다. 사내는 일순 자기를 어떻게 주체했으면 좋을지 몰라 쩔쩔 매였다. 천하죄를 혼자 지은듯 묶인 사람처럼 서서 말매를 맞기만 했다. 완장을 낀 로파 둘이 전체 거주민들을 대표하여 사내에게서 벼룩신문과 광고문들을 압수했다. 그리고 벌금을 하라고 했다. 저그만치 200원을 내라고 했다. 사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호주머니 구석에서 땡전 몇푼만 달그락거릴뿐 어중간한 액면의 지페장을 만져본지도 아주 오래되였다. 그 무표정한 기색을 거역으로 알고 사람들의 분노가 바람을 맞은 불씨처럼 더 크게 살아올랐다. 완장을 찬 로파 둘이 다시 한번 거주민들을 대표하여 사내의 호주머니를 들추었다. 겨우1원50전을 들추어냈다. 그러자 이번엔 벌로 문에 붙인 광고문들을 청소해내라고 했다. 누군가 물 한바께쯔를 가져왔다. 또 솔까지 가져왔다. 사람들의 분노는 이제 조금 사라진듯했고 대신 막간극을 보듯 흥미에 절은 눈길들이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있었다.

사내는 지령을 받은 로보트처럼 솔을 넘겨받았다.머리속은 해빛에 드러난 사진종이처럼 하얗게 비여있었다. 사람들의 살같은 시선을 뒤통수에 따갑게 느끼며 솔에 물을 뭍혀 기게적으로 문짝을 박박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의 틈바구니속에서 김밥보자기를 든《부산댁》이 환영처럼 보였다.

...《부산댁》은 달팽이집같은 세방에서 살고있었다. 생활의 틈바구니에 찡긴 사람들의 피여날줄 모르는 메마르고 야윈 흔적이 처처에서 보이는 집이였다.


  《나 이런데서 살아용, 그 집에 비함 허청간 같지유,잉.》


   부산댁은 지저분하게 널린 옷가지들을 치우며 자기네 루추한 모습을 보이는것이 무안한듯 연신 토를 달았다.
   컵술 두개를 놓고 김밥을 만들다 남은 끄트머리를 안주로 하여 둘은 낮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내는 접용당한 마음을 잊으련듯 덧없이 술을 들이켰고 《부산댁》은 그 마음을 무마해주련듯 곁들어서 함께 마셨다.《부산댁》은 독한 소주도 남정네 못잖게 잘했다.


  《속창이 타서 재가 될 땐 그래도 이 빼갈이  젤이지용.》


   남편을 해외에서 잃었고 그 손해배상비를 받아낼려고 소갈데 말갈데 헤매다보니 집안이 쑥밭이 돼버렸다. 외지서 시집온지라 함께 아파해줄 사람,속시원히 기대여 울 사람도 없는데 그런 와중에 고맙게도 딸년이 총기가 있어 음악쪽에 큰 기량을 보이는지라 그것이 살아나갈 계기가 됐다. 딸애를 위해 집 팔고 저건이 좋은 도회지로 단연 이사를 하고보니 지금 이꼴이란다. 김밥장사도 애초에는 돈냥 될만하더니 여사인 한국주방장까지 모신 전문 김밥집이 서는 바람에 그저 입심이나 하기에 족하단다.


  《나 한국 갈꺼애용. 뼈를 부시든 피를 바치든 한국 나갈꺼애용.》


   지금의 곤경에서 벗어나고 태깔을 벗으려면 그래도 한국으로 나가얀다고《부산댁》은 추병을 뒤에 바싹 달고 벼랑까지 이른 소장처럼 결연히 말했다.


  《빛깔나진 못해도 남부럽진 않게 자알-살던 우리가 왜 이런 험지에 빠졌는지 쇠통 모르겠습니더.》


  《부산댁》의 락담에 옮아들어 사내도 술 한잔에 탄식 한번 뱉아냈다. 그리고 대창이나 하듯이 이번엔 자기 신세담을 풀었다. 김치움에 갇히던 얘기며 녀편네를 찾아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산동에서 헤매던 얘기며 눈두덩이에 살이 많은 제수가 어려워 잔기침도 소리 죽여가며 해야하는 처경이며...사내가 애기를 하는동안《부산댁》은 코방을을 잡고 찬 바람을 들이키며 내내 울었다.


  《나가용! 우리 꼭 한국 나갑시다용. 나갔다와서 잘 살아봅시다용!》

차마 더 들어 내기 어려운듯 사내의 말을 중등 자르며《부산댁》이 또 한번 철규처럼 부르짖었다.


  《가야지 가! 근데 그게 어디 동네마실 가는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인감...》
 
《부산댁》의 류황불처럼 황황 피여오르는 눈길을 피하며 사내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컵술 두개를 더 가져다 마셨고 두사람은 취기에 흠씬 젖어들었다. 술기운에 발가우리해진《부산댁》의 도화볼에 언뜻 눈길이 미치는 순간 사내는 부지중 녀자를 머리속에 의식했다.

그동안 빚에 물려 음지쪽에서만 허우적이다보니 따스한 녀자의 몸을 가까이 한지도 까마득한 어제로 잊혀졌다. 동생네 집에 얹혀있으면서 무의식간에 두사람이 방사를 치르는 소리를 들은적 있었다. 생활이 윤택하니 마음도 편했고 마음이 편하면 향락을 탐하는 법.동생네 부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짓에 탐닉하고 있는것같았다. 그때마다 사내는 자기가 외려 덜미를 붉히며 덴겁히 자리를 피하군했다. 자리를 피해 옥상에 올랐고 하늘과 맞닿을듯한 옥상에서 맞은편 마천루꼭대기에 부착된 광고판에 그려진 금발머리 녀자를 보며 자위를 했다. 주리고 억눌린 몸과 마음을 간신히 달랬다. 허무같이 진묽은것이 한처럼 뿜겨나와 빛광이 란무하는 거리로 후둑후둑 떨어져내리는것을 실의에 빠져 지켜보군했다.
 
《부산댁》의 얄쌍한 얼굴에서도 사내는 분명 혼자사는 녀인의 허망함과 갈구 같은것을 단 취기가 아닌 다른 흔적으로 보아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엉켜졌다.

접때 남편을 잃고는 농악을 마시고 쓰러진 부산댁을 사내가 손잡이뜨락또르에 싣고 시가지 병원까지 호송했다. 그때 본 풀꽃초럼 싱싱한 부산댁에 비해 지금의 부산댁은 많이 시들어있었다. 탄력 잃은 육체라도 주린듯 탐하던 사내는 끝내는 부산댁의 귀전에 굵다란 눈물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사내는 지은지 시간이 꽤 오래된 시교쪽의 어느 구식 아빠트단지에서 문칫거리고 있었다.꼬깃꼬깃 접은 종이쪽지를 펴들고 다시 한번 번지수를 확인한 뒤 페갱같은 시커먼 복도로 들어섰다.세멘트가 다 떡어져 벽돌장이 벌겋게 보이는 층계로 올랐다. 그러는 사내의 손에  《고량주》두병이 들려있었다.

사내는 지금《검정콩》이라 불리우는 고향의 이웃을 찾고있는중이였다.《검정콩》은 항구의 《사두》들과 친교가 있어 가만히 밀항을 조직하고있었다. 절차가 엄격한 정상적인 로무로 한국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 위장결혼,가짜비자가 들통난 사람들은 모두가 《검정콩》에게 밀항을 의뢰했다. 배의 밀창에 숨어 사흘이고 나흘이고 큰숨 바로 못쉬며 해상순라대의 눈을 피해야 하는 잠입이였지만 사람들은 너나가 요행수를 바라고《검정콩》을 찾았다.《쑹개》에게 점포가 박살이 난 그날에 사내는《검정콩》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은 모두부 점심은 두부볶음, 저녁은 두부장을 겨우 먹으면서도 눈두덩이에 유난히 살이많은 제수의 랭대를 받아야하니. 그럴때마다 결심을 더굳혔다. 남 다 자는 밤에 옥상에서 왕별을 바라보며 오직 이길밖에  없다고 속마음을 뼈물어 먹었다.
 
자꾸만 거처를 옮겼기에 콩크리트숲속에서 《검정콩》을 찾기란 바다속의 바느찾기로 어려웠다. 추수가 좋은 흑태밭을 버린채 도회지로 나온뒤 《검정콩》은 조강지처와 리혼을 했다. 도회 에서 딸라암거래를 하고있는 녀자와 눈이 맞았고 배가 맞아버렸다. 풍대한 몸집의 그 녀바를 《검정콩》의 소개로 한번 만나본적 있었다.《부산댁》에게서 요행 《검정콩》의 거처를 알아내고 시한탄의 점화단추를 누르듯 조심스레 그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바로 언젠가 본적 있는 그 풍대한 몸집의 녀자가 머리를 내밀었다.

은근히 공경스런 표정을 지으며 사내는 《검정콩》을 찾는 다고 했다.녀자는  사내의 아래우를  못볼 풍경을 보는듯한 눈길로 어보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 돈냥깨나 벌더니 마른 위세를 부리나보다고 사내는 한숨 한번 지었다.술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이웃을 위해 술까지 사들고 왔는데...아침나절에 조용히  동생에게서 술 살 돈을 질렸다. 동생은 안해의 눈을 피해 지하공작이라도 하듯 형의 손아귀에 50원짜리 한장을 잽싸게 쥐여주었다.  그렇게 어렵게 한 걸음인데 꼭 만나고 가야지 하고 사내는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눌렀다. 응대가 없다. 이번에는 이웃이며 친구사이라 밝혀야겠다고 생각하며 길게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왁살스레 열렸다. 스리퍼를 끌고 나온 녀자는 사내앞에 두팔을 가새지르고 우뚝 뻗쳐섰다.
 
《어쩌자는거예요?용건이 뭐예요?》


  돌처럼 딱딱한 기색을 짓고 녀자가 채중기 잔뜩 담은 소리로 물었다. 그 소리에는 란폭한 적의가 섞여있었다.


  《급히..급히 만날 일 좀 있어서...》


  녀자의 덜충함과 위악적인 자세에 사내는 조금 당황해지고있었다.


  《몰라서 그래요? 아니면 빚진거라도 잇어 그러세요?》


  사내는 그만 오리무중에 빠지고말았다.


  《우...우린 친구지간인데...이...이웃사이였다구요.》


  사내의 진지한 모습에 녀자는 그제야 표정을 조금 풀었다. 웬 일인지 정체불명의 한숨을 쉬였다. 입술새로 어눌하게 한마디 내뱉았다.


  《그 사람...죽었어요.》

 

...옥상의 장독대우에 빈《고량주》술병이 놓였다. 사내의 흐릿한 눈길에 술병이 둘로 보였다. 사나운 개를 쫓기라도 하는듯 병을 향해 돌맹이를 던졌다. 병을 맞히지 못하고 대신 또 하나의 장독대가 깨져버렸다.
 
사내가 감좋게 키워오던 희망은 또 한번 장독대처럼 산산히 박산나고말았다. 하늘처럼 지체 높이 믿고 찾던《검정콩》이 죽었다. 밀입국자들을 싣고 또 한번 모험의 파도를 탔다가 그만 해상순라대와 마주치게 되였는데 조직자의 신분이 무서워 바다에 뛰여들어 도망가려다 빠져죽고말았단다.강을 낀 마을에서 자랐다지만 단숨에 헤염쳐 넘을수 있는 강에 살던 작은 《송사리》가무변의 바다에서 용빼는수가 없었던것이다. 이튿날에 시신이 발견되였고 해상순라대에 의해 신원이 확인되였다. 이 참사는 밀입국단 속조치에 단호히 나서고있는 형국에서 해외의 매스컴들에게까지 대서특필로 보도되였다고 한다. 그 장안의 화제를 빚군들의 독아를 피해 동생네 집에 몯혀살던 사내는 아는수가 없었다.
 
사내는 옥상의 대형광고판이 만들어낸 그늘속에 해종일 앉아있었다. 《검정콩》에게 선사하려 들고갔던 《고량주》를 자기가 다 마셔버렸다. 취기와 울화가 화염이는듯 타올랐으나 어떻게 해소할길이 없었다.

소태같은 입을 다시던 사내의 충혈된 눈길에 깔고 앉은 신문중의 소식기사 한편이 잡혀들었다. 《서울 첫 직항이 드디여 이루어져》라는 표제의 톱기사였다. 사내는 엉뎅이에서 신문을 뽑아내였다. 반나마 찢어진 신문을 눈가까이에 쳐들고 보았다. 술트림을 섞어가며 식자본 떼는 애들처럼 소리내여 읽기 시작했다.
 
《조선족들의 관심사였던 서울직항이...꺼억...드디여 이루어져 첫 취항식을 가졌다.MD90려객기는... 아침 7시50분...꺽...50분에 떠나 오전 10시 50분에 서,서울에...꺽...도착하게 된다. 전세기 형식으로 비준이 내렷지만 실상은...꺽...전국매표망을 통해 티,티켓을 팔고있는바 153개 좌석이 몽땅 팔렸다고 한다.》


  트림으로 쓰려나는 가슴을 문지르며 사내는 신문을 접었다.


  (세시간이면 서울 갈수 있다아?)


  본능적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서편하늘에 가슴이 섬찟하게 피빛노을이 번져가고 있었다.

사내의 손에서 신문이 짓이겨졌다. 신문을 뭉그려 커다랗게 덩이를 만들었다. 비칠거리며 옥상의 변저리로 다가갔다. 신문덩이를 층집아래로 뿌려던졌다. 신뭉덩이느느 풍력을 빌어 빙글거리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떨어져내렸다. 옥상에 엎드려 골만 내민채 사내는 그 가벼운 실추를 무겁게 내려다보았다.
                              


가려마 하는 사람은 가고야 만다더니 부산댁이 서울로 떠난다고 했다. 대구에서 사는 어떤 령감태기와 결혼의향이 오갔는데 드디여 비자가 내려왓던것이다.

떠나도 바래줄 사람조차 없는지라 사내와 둘이서 어느 괜찮아보이는 음식점에서 송별찬삼아 마주 앉았다. 사내는 손에 쥐고있던 구슬을 털린듯한 허전하기 짝이 없는 마음이였다. 동병상련의 처경에서 그동안 어설프게나마 마음도 주고 정도 주면서 서로서로 자꾸만 오금 꺾이는 신심을 부추겨주었는데...원체 근심걱정으로 구겨졌던 사내의 마음에 이 소식은 더 킁 응달을 만들어주었다. 엊저녁 동생이 그를 랑하로 불러내였다. 불도 켜지 않은 랑하에서 형의 손에 돈 500원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랑하에 서서 형제간은 참으로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수의 동생이 명년에 대학입시를 볼 나이인데 더 좋은 환경을 위해 누님네 집에 와 묵으면서 공부를 하게 된다고 했다. 느닷없이 그로 말하면 엄청 많은 액수의 돈을 넘겨받고 일순 어정쩡해졌던 사내의 무딘 더듬에 그제야 무언가 어둠속의 륜곽처럼 잡혀들었다. 진한 어둠속에서 그 표정을 읽을수는 없었지만 사내는 난감한 기색으로 변형되여있는 동생의 얼굴모양을 감득할수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 무언의 축객령이였다.

동생이 집으로 들어간 뒤에도 사내는 어둠의 동아줄에 얽동인듯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있었다. 그러다 몽유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말없이 옥상으로 올라갔다...그렇게 한푼 동냥마저 거절당한 거지같은 참담한 기분을 단말마로 지탱하고있는데 《부산댁》마저 떠난단다.

 

떠나는《부산댁》은 일희일비에 혼반죽된 착잡한 모습이였다. 두고 가는 딸애에 대한 걱정담을 많이도 했다. 항간에 전문 출국부모들의 자식을 위해 꾸린 기숙방이 많앗는데 그곳에 애를 맡기고 떠난다고 했다. 그런 기숙방도 많고 그런곳에 기거하고있는 애들이 엄청 많은것을 보고 놀랐다는《부산댁》이엿다.
 
《그 맘보가 여리디 여린것이 애들틈새에 찡겨 밥한술 나물 한점이라도 제대로 얻어먹을런지》하고 부산댁은 희색이 도는 얼굴로 말하다가도 지절해지는 눈시울을 하고 사이사이 코를 훌떡거리기도 했다. 덤덤한 기색으로 그런《부산댁》과 마주 앉은 사내는 실어증환자마냥 말을 잃고있었다. 혼자생각에 빠졌다가도 부산댁이 소리를 높이면 흠칫 놀라 깨서는 술잔만 기계적으로 들었다. 그리고 사내는 다급한 뇨의를 느꼈다. 급격한 정서파동이 있을 때면 마냥 있게 되는 괴의쩍은 버릇이였다.
 
화장실의 변기앞에 섰는데 어쩐지 일을 치러낼수 없었다. 한가슴 가득 청태처럼 낀것을 시원한 오줌발로 씻어내리고싶었다. 사내는 두눈을 느스름히감고 모지름을 썼다. 겉에 누군가 다가와서 변기앞에 마주섰다. 기분좋게 일을 보며 그러는 사내를 이상한 눈매로 지켜보았다. 그 사람에게 눈길이 미치는 순간 사내의 얼굴이 낮도깨비를 본듯 경련을 일으켰고 입으로는 헛바람 섞인 이상한 비명이 새여나갔다. 이발쑤시개를 물고 지근지근 씹으며 변기앞에 마주선 그 사람은 사내가 이 세상 가장 무서워하는 두억시니 같은 존재인《쑹개》였던것이다. 사내는 혁대도 조르지 못하고 바지궤춤을 쥔채로 후닥닥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허허벌판에서 단신으로 맹수떼에 쫓기는 사람처럼 뛰고 또 뛰였다. 음식점을 멀리한 어느 뒤안길에 접어들어서야 뛰기를 멈췄다. 전주대를 짚고 서서 깊은 수심에서 수면우로 금방 떠오른 사람처럼 학학거렸다.한식경이 지나서야 사내는 파충류의 촉수처럼 뒤잔등에 달라붙은 공포를 물리치고 마음을 수습할수가 있었다. 무거운 위안의 매돌로 신경줄의 떨림을 누르고나니 그제야 혼자 두고 온《부산댁》에게 생각이 미쳤다.

허나 다시 그 음식점으로 돌아갈 용기가 사내에게는 없었다. 오도가도 못하고 길녘에 그렇게 섰는 사내의 눈앞으로 뻐스 한대가 느릿느릿 지나가고있었다. 차체에 어느 려행사의 자호를 큼직히 박아넣은 관광뻐스였다. 뻐스에서는 밝고 들뜬 표정을 한 이국관광객들이 창밖으로 흥미로운 눈길을 던지고있었다. 그 너무나도 행복해보이는 무리를 쳐다보는 사내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조되여갔다.

막무가내로 서있던 사내는 순간에 행위의 좌표를 정한듯햇다.

사내는 길의 화단에서 반토막 남은 벽돌 한장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사내는 잰걸음으로 관광뻐스를 뒤쫓아갓다.

뻐스 뒤면의 차창을 향해 벽돌장을 힘껏 내쳤다...                             


 

집중광이 사내의 얼굴을 향해 쏟아져내렸다. 수천만개의 동침처럼 얼굴을 찌르는 그 강렬한 빛줄기에 사내는 눈도 바로 뜰수 없었다. 빛의 열기때문이였던지 얼굴로 팥죽땀이 골을 지으며 흘러내렸다.


  《당신 정신이 온전한 사람 맞어? 술에 취하지도 않았다는 사람이 퍼런 대낮에 미친소같이 객기는 왜 부려? 객기는??멀쩡한 뻐스에 돌은 왜 던지냐말이야. 그게 어떤 찬지 알어?한국유람객들을 실은 차였다구.사람이 상하지 않았기에 다행이지 ,큰 코 다칠본했어. 이 사람 국제망신 혼자서 다 시키는구먼...》


  한입에 물어 삼킬듯 으르렁이는 채문소리가 사내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뒤로 탈린 손목에 채인 수쇠에만 온 정신이 쏠려있었다. 처음 실감해보는것이였기에 그 감수는 살갗을 칼로 에이듯 강렬한것이였다. 두리모자 몇몇이 번갈아가며 따졌으나 사내는 줄곧 입을 열지 않았다. 기왕 내쳐진 몸이니 체념을 방패로 하고있는 사내였다. 심문실의 문이 덜크렁 열리면 또 두리모자 하나가 들어섰다. 그사람을 향해 모두다 공경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해바쳤다.


《이 허수룩한 나그네가 쇠통 불지 않네요.》


  유난히도 넓은 어깨를 가진 그 사람이 사내곁으로 다가왔다. 바싹 다가서며 사내를 불렀다.


《이봐요-아저씨...》
 
사내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빛에 질린 눈을 좁히며 상대를 헤아려보려햇다. 살벌한 장소에서 저으기 부드러운 호칭을 듣고 설등해진 사내의 얼울고 순간에 손바닥이 짝 날아들어 귀뺨을 호되게 후려쳤다. 목이 한바퀴 돌아가는듯했고 눈앞에서 별무리가 쏟아져내렸다. 미처 정신을 수습하기도전에 한번 두번 세번 네번...우악진 손바닥이 숨쉴사이 없이 뺨을 강타했다. 이대로 죽고마는가보다 하고 숨넘어가는 신음을 억억 토해내는데 매질이 멈추어졌다.

사내의 바른편 볼이 삽이에 찐빵처럼 벌겋게 부풀어올랐다. 두리모자는 손바닥을 털어대더니 거친 숨을 삭이며 담배 한개비를 뽑아 물었다. 사내의 얼굴이 한껏 비틀어짠 걸레처럼 처참히 일그러져갔다. 볼에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발가벗기우고 네거리에 내쳐진듯 해일같은 수모감이 사내를 형체도 없이 삼켜버렸다. 목줄기를 죄인 사람처럼 몸부림치다 사내는 급기야 울음과 함께 피고름에 덩이진 말마디를 뱉아냈다.


《...한국사람들에게...한국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햇으꾸마...가산 박박 끌어모은 돈에다가 5푼리자 내고 맡은 돈을 몽땅 사기 당했으꾸마... 한번두 아니구 세번이나 세번이나 말입꾸마... 가산 털어 모은 돈을 리자내고 빌린돈을... 어흐흐흑...》
                           


 
꿈결처럼 밤비가 내리고있다. 그리고 비에 젖은 도시에서는 경제 무역박람회가 한창이였다. 곳곳에서 한국산제품전시회가 열리고있었다. 거리는 숫제 명절분위기였다. 하늘에는 애드벌룬이 떠있고 마천루마다는 네온싸인으로 령롱했으며 광고현수 막이 칠색무지개처럼 드리워져있었다.


  행인 몇몇이 길복판에 멈추어서 웅성이며 웃쪽을 쳐다보고 있었다.떨어져내리는 비방울에 눈시울을 좁히며 쳐다보는 그 시선들이 머무는 곳에 광고판 하나가 있었다.

옥상의 이마전에 세워진 그 대형의 광고판에는 하늘 향해 수기를 건뜩 쳐든 비행기가 그려져있었고 그 아래쪽은 비행기보다 엄청 더 큰 아가씨가 극속의 요정처럼 유혹으로 덩이진 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안내하듯 한손을 쳐들고있는 모습이였다.

그리고...

네온싸인으로 둘레를 친 그 불밝은 광고판앞에 웬 사내 하나가 두팔을 드린채 뻗쳐서서 비내리는 거리를 멍하니 내려다보고있었다...


"도라지" 1997년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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