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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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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독서만필 11] 차갑고 정밀한 기록
2009년 07월 01일 20시 48분  조회:2141  추천:44  작성자: 김혁



김혁 독서만필 11




차갑고 정밀한 기록


유미리(柳美里)의 “명”(命/남해출판사)을 읽다.

알다싶이 유미리는 재일교포 작가이다. 때문에 이작가에 대해 특별히 주목하게 되였다. (그의 문명을 알린 출세작 “가족 시네마(家族电影)”는 영화로 제작되였는데 DVD로 소장하면서 처음 유미리의 작품을 접했다. 인민출판사 출간으로 그의 수필집 “사적인 사전(私语词典)”도 얼마전에 나왔다. 역시 그의 소설 못지않은 모난 감수성을 지닌 작품이였다.)




유미리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그 분위기를 파악한듯 중국에서 만든 “명”의 표지는 침침하고 어딘가 섬뜩하기 까지 하다.
검은 판을 배경으로 작가 유미리 본인이 금방 태여난 아기를 품에 안고 서로 망연하게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보는 모습, 그 사진우에 명이라는 홀자가 커다랗게 씌여있다.

책 표지가 풍기는 범상치 않는 기분처럼 《명》은 작가 자신을 자기가 각본을 쓴 비극의 무대복판에 주역으로 사정없이 떠밀어 세우고있다.
느닷없이 원치않던 임신소식을 알게된 유미리, 아이를 지울까말까 고민하고 있을때 이전에 그녀와 10여년간 동거했던 히가시 유타카가 식도암에 걸려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히가시는 유미리가 배우생활을 하던 시절 극단의 스승이다.
치렬한 마음의 공방을 거쳐 “생명”이 태여나고 죽어가는 엄정한 순환의 방식을 유미리는 단연 받아들이기로 한다. 유미리는 만삭의 몸으로 히가시를 곁에서 돌봐주고 유미리가 아들을 낳고 나서 히가시는 숨을 거둔다.

창작하고있는 유미리


 “명”은 다큐멘터리를 방불케하는 차갑고도 정밀한 회상기다. 유부남의 아이를 잉태해 겪어야 하는 미혼모의 고통과 말기암 환자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면서 삶과 죽음, 사랑과 집착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사적인 치부를 조명이 찬란한 무대 전면에 드러내놓은듯한 문체, 그 부분이 꺼림칙하면서도 다 읽고나면 그 용기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필봉의 권한을 쥔 작가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합리화시키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나약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점이 좋았다.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뿌리가 무언지 유미리는 몸으로 부딪히며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역시 천생 작가였어! 하는 감탄과 함께 작품 곳곳에서 작가의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습윤하게 느낄수 있었다.

 “지옥에 떨어졌다고해도 정확히 그걸 써내고 알뜰하게 뒤수습을 하는 유미리는 대단한 작가라고 일본문단은 그에 대해 평하고 있다. 불우했던 어린시절을 자양분삼아 랭정한 시선으로 가장 불행한 삶의 부분을 극도로 솔직하게 드러내보이는 것이 유미리 소설의 특징이다 .

재일교포 2세로 태여난 유미리는 집단 따돌림과 부모의 학대와 폭력속에 자랐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로 실어증, 부모와의 별거, 자살기도, 퇴학 등으로 힘들고 비정상적인 어린시절을 보냈던 유미리는 학교에 다니면서 특별한 문학수업을 받은적이 한번도 없었다. 가벼운 자폐증을 보일 정도로 온통 동물 기르기, 책 읽기 등 혼자 하는 취미에만 빠져 있었던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구구단조차 잘 외우지 못했다. 퇴학후 집에서 2년여 동안 칩거하면서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빠졌으며 그렇게 쌓은 문학수양으로 어느날인가 필을 들었다.

1997년”가족시네마”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명”은 일본에서 발행 5개월 만에 50만부를 돌파한 작품이다.

내가 소장한 유미리의 동명작품을 각색한 영화
"가족 시네마"

 도꾜에 혼자 살고있는 그는 전화는 절대로 받지 않고 외부와의 련락은 팩스가 대신하고 있다고한다. “일생 혼자이고 싶으며 소설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해왔으나 2000년 미혼모로 아들을 낳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작가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저도모르게 유미리의 존재감을 떠올리게 된다. 동포2세, 녀류작가라는 딱지를 떼놓고 일본 본토작가들속에 나란히 세워놓고 보아도 그의 작품은 분명 대단함이 틀림없다. 그의 소설은 일본사회와 충돌하고 교류하여 형성된 정서로 씌이긴하지만 일본의 다른 작가들과 농도와 줄기가 많이 다르다. 그의 작품에서는 일본소설에서는 좀체 볼수없는 가족에 대한 강박, 민족적인 정체성이 끝없이 로출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이 역시 재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인 우리에게서도 정서와 공감을 얻어내는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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