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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 작가 김혁과 현재진행형의 상처들에 대한 보고서
2010년 12월 28일 09시 20분  조회:3587  추천:25  작성자: 김혁


[한국 방송대문학상 평론부문 가작]

 

일상사로 끌어안은 문혁의 폭력

 

이새아 (방송대학 국문과 4학년)
 

 

1. 중국 조선족 작가 김혁과 현재진행형의 상처들에 대한 보고서

 

김혁은 조선족 문단 내에서 이미 중단편소설 70 , 장편소설 2, , 수필 300 편을 발표하며 20여차에 걸쳐 문학상을 수상한 있는 유명한 중견작가이다.

여기에서 잠깐조선족, ‘조선족 작가 의미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조선족에 대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담론들예를 들어 2 보모, 민족적인 동질성, 조선족을 이용한 여러 사기행각, 값싼 노동자로서 인식 등이 있겠다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이다. 사실 중국 조선족과 남한의 우리는 그동안한민족이라는 민족적 동질감 내지는 공통된 모국어의 사용이라는 이유로 인해 서로를 하나의 테두리 안에 두어야 한다는 명분론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시각에서 출발된 여러 담론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오해와 상처를 남기는 결과만을 낳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김혁이라는 작가의 이름 앞에 우선중국 조선족 작가 라는 이름을 붙여중국이라는 그의 국가적 정체성에 무게를 두고 작품을 논하려 한다. 작품을 통해 분명히 있듯이 그의 국가적 테두리는 중국이고 또한 그는 중국의 근현대사의 정치적 질곡을 직접 경험하며 성장한 대표적인 세대이다. 또한 그의 조선족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은 김형규가 논하였듯이대등한 관계로 대립하는 국가(국적) 민족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합이라는 전체와 이에 대해 부분적으로 이질적인 성격을 가지는 소수민족주의의 관계하는 것이기에 작품은 중국문학의 일부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조선족 작가의 작품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작품에 더해질 수도 있는 동정적인 시선들을 거두어들이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작품이 읽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김혁의 마마꽃, 응달에 피다 작가인 김혁 자신의 자전적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은 김찬혁이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똥파리, 엄상철, 짜그배누님, 회충, 앵무새, 김표, 사마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인물들을 각각의 독립된 장으로 나누어 형상화하였는데 그들 모두는불확실한 우물과 불확실한 룡에 대해 불확실한 꿈으로 더듬던(프롤로그 중에서) 1976년을 보내었던 성장기의 아이들이었다. 특히나 주인공 김찬혁의 성장기는 작가의 삶과 많은 부분 겹쳐있다. 주인공 김찬혁은 체육부장을 위시한 주변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머니에게 그의 출생의 내막을 추궁하게 된다.

나의 닦달질에 이겨 어머니는 눈물 흘리며 드디어 내가 입양아라는것을 시인했다. 신분이 나쁜 나의 친부모가 운동 배겨내지 못하고 금방 태어난 나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지금의 어머니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우물곁에 병원이 있었고 병원에서 겨우 4 3, 버러지 새끼 같은 강보의 나를 넘겨받은 것이다. (37)

실제로 작가 김혁의 친부모 역시 문화대혁명 당시 지주, 교사와 같은 지식인, 수정주의자 성분이 나쁜 계급으로 분류되었고 그로인해 자신의 자식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현재의 부모에게 그를 맡겼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문혁이라는 역사적 현장에서 이러한 비극들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그것은 작가인 김혁 자신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닌 지극히 일반적인 비극, 그래서 비극적일 수도 없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김혁은 작품의 마지막에 각각의 등장인물들의 현재의 근황을 전하면서 소설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힌다. 주인공 김찬혁은 밀린 공부를 하다가 신문사의 기자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작가 김혁의 직업도 신문기자이다.) 그리고 김찬혁은우리들의 어제 무훈담을 장편으로 펴내었다 하는데 바로 무훈담이 작품을 뜻함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있다. 또한 어렵게 결혼을 했던 상철형님과짜그배누님 이혼을 했는데 짜그배누님한국령감때기에게 시집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식탐이 유독 심했던회충 위암말기로 죽었다고 전한다. 김찬혁은 현재의 거리에서 한국과의 결혼을 주선하는 브로커 역할을 하다 잡힌 누님을 만나기도 하고 잡총구에 화약을 넣다가 폭발해서 실명이 김표를 안마원에서 만나기도 한다. 모택동 어록을 모택동보다 정확하게 앵무새처럼 외워대던앵무새 교회의 집사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모두운명의 어느 시간대에서 누구도 경험할 없는 블랙홀에 잘못 빠져들어 중력을 상실해버린 아이들이었다고 주인공은 작품의 말미에서 회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먼지가 쌓인 흘러간 역사의 상처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바로 지금의 상처임을 작가는 말하려고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자신의 구구절절한 일기장을 꺼내듯이 문혁이 일상에 가한 쓸쓸한 회상의 편린들을 엮어 보여준다. 그의 어조에는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비극 속에서 벌여지는 어이없는 삽화들은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한다. 50년대 이후 우파 투쟁, 정풍운동, 대약진 운동 등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이미 그들이 살아가던 곳이 어떻게 황폐화될지를 예상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이미 일상화된 폭력 앞에서 그들의 저항은 삶의 터전 전체를 잃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다만 이제야 꾸덕꾸덕해진 스스로의 상처 위에 앉은 딱지들을 매만지며 시간들을 관통해온 그들의 현재의 삶이 이젠 안녕하냐고, 그래서 지금은 과연 괜찮냐고 묻는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도 감히 건드려 보지 못한 자신의 상처에 대한 들여다보기. 바로 소설은 물음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2. 상흔문학의 새로운 , 문화대혁명의 일상성을 확보하다.

 

문화대혁명(이후문혁이라고 지칭함) 중국현대사에서 가장 참담한 시기로 뽑힌다. 1966년부터 1976, 10 동안 지속된 문혁의 정치사적 시각의 논의는 차치하고 문혁으로 인한 개인의 일상사와 인권의 파괴 양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맹목적인 충동과 유치한 리념이 너나의 심심을 얽동이던 세월이었다. 어느 한번 학교에서 투쟁대회를 벌렸는데 반혁명학술권위를 타도하자!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를 타도하자! 선창을 받아웨치던 접수실의 령감이 주석대에 앉은 교도처주임에게 전화를 전달하느라 홍주임 전화!-하고 웨치자 다같이 홍주임 전화! 홍주임 전화! 하고 목청껏 받아웨치고는 뒤늦게야 소리죽여 킬킬거린적도 있었다.(중략) 하루가 멀다하게 벌어지는 투쟁대회와 비판대회에서 우리는 차츰 도에 넘는 격앙에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모습은 사실 문혁의 일반화된 풍경을 희화화한 가장 전형적인 모습의 하나이다. 모택동이 죽고 문혁을 일으킨 주범인 사인방(이것은 순전히 중국인들의 관점이다.) 처형을 당하자 문혁은 형식적으로 종결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후반부터 문혁 시기를 비판하거나 문혁의 상처를 드러낸 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한다. 시기의 이러한 작품들을 중국 문학사에서는 상흔문학(傷痕文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당시의 상흔문학은 지난 과거에 대한 폭로에 가까운 것이었지 무엇으로 인해 혹은 누구로 인해 중국인 전체가 그러한 세월을 살아야만 했는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들을 제기할 없었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이는 그들의 삶이 여전히 문혁으로 인한 고통의 그림자에 의해 포획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실제로 조선족 상흔문학은 중앙에서 듣고 싶어 하는 신음의 양상의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고 대다수 사람들은 상처의 치유를 포기하며 그들의 언어를 깊고 어두운 자신만의 안에 가두게 된다.

조선족 작가들과는 다르게 문혁이라는 상처로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확보한 중앙의 지식인들은 문혁을 회상하고 고발한다. 가령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사람아><시인의 죽음> 바진의 <수상록> 대표적이다. 또한 홍콩이나 서방국가로 망명 아닌 망명을 해야 했던 지식인들의 소설과 회고록이 적지 않게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은 지식인의 시각에서 쓰여진 지식인 중심의 문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위화의 <살아간다는 (活着)> 상흔문학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데 의의가 높다. 그것은 중국 문학이 비로소 중국혁명, 대약진, 문혁 등의 역사적 사건들과 객관적 거리를 확보함과 동시에 세월을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투를 끌어안고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와 화해의 악수를 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화의 작품이 중국 현대 정치사를 통시적으로 관통하고 있다면 김혁의 작품은 현대사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이었던 문혁의 광란을 일상의 차원으로 끌어내어 문혁의 일상이 체화된 작가의 몸으로 당시의 풍경들을 직접 재구해 내었다는 의미가 있다. 조리돌림을 당했던 지식인의 절망적인 눈빛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일그러진 표정들과 그런 험난한 세월 속에서도 어머니의 가슴을 닮은 사진을 찾아 헤매던 동년의 자화상들의 조각조각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해내어 문혁이라는 거대한 일상사를 그려내었다. 생존, 자체가 국가의 폭력 아래 놓여 있던 시대를 돌아보며 그의 소설이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영정사진과도 같아서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은 소설과 더불어 참담해 질런지도 모른다.

 

3. 문혁의 그물망에 갇혀 버린 일상사들

 

문혁의 여러 지침들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이었다. , 그것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수반하기 이전에 이미 일상을 장악하고 쾌쾌한 공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주인공 김찬혁은 당시가머리에 뿔이 나고 몸에 가시가 돋힌 꼬마맹장의 이미지를 선호하던 시대였지만 그는 심약한 인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는 뤼페어(생선의 일종) 사려고 인공 늪에 갔다가 탯줄이 달려있는 채로 죽은 아기가 늪으로부터 건져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것은 그가 최초의 죽음이었고 충격의 여파로 죽은 아기가 웃으며 다가오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 그가 동년을 지나 받아들여야 했던 세상은 죽은 아이의 시체처럼 끔찍한 것이었다. ‘한편에서는 수많은 금기와 취약한 의료 시설 속에서 유기된 영아들이 많았고 한편에서는 국가가 쥐어준 죄명을 안고 억울하게 죽거나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죽인 가해자가 국가일지도 모른다는 인식은 애초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결코 존재할 없는 상상의 영역이었고 당대의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에 대한 가해자가 그들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에 젖어있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내려진 여러 방침, 강령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그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 일상의 모든 담론들은 문혁과 연관하여 논해지곤 하였다. 가령 빨리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은꽹과리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면 잰걸음으로 등장하는 본보기극(일종의 혁명극으로 문혁시기에 공연된 유일한 연극임) 주인공 오버랩 된다. 잠을 자는 시간조차도()자가 새겨진 베개를 사용하게 되어 있었던 시절이었다. 마을엔 홍위병 처녀가 목매 죽은 집이 있어 사람들은 그곳을 에돌아 다녔고 라디오에서는 혁명 가곡만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산아제한 노래 혁명가만을 불렀다. 주석 어록책의 안표지는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는 공짜 목욕표를 보관해두던 비밀 장소였고 의붓아버지는 신문의 최신동향(중앙정부의 지침)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불리할 같은 사안들에 대비하며 전전긍긍하였다. ( 시절은 서로가 서로에게 투쟁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세상을 똑같이 모방한다. 동네 건달패들은싸움이라는 단어 대신혁명하자 말을 하고 제대로 싸움이 붙지 않으면 어른들의 말을 모방하여혁명은 수놓이도 아니고 손님접대도 아니라고 모어른(모택동을 말함) 말했잖냐라고 말하면서 싸움을 더욱 부추긴다. 아이들이 사용하던 최악의 욕들은 문혁을 통해 중앙이 축출해내고자 했던 부류를 칭하여지주새끼, 공인역적, 반혁명수정주의분자, 구멍에서 태어난 우파새끼들등이었다. 그러한 모방에는 모방에 대상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부모님이 하시던 말을 따라 아무 의미도 모른 타인에게 건넸던빨갱이 같은 같은 맥락의 모방, 그것은 그들의 일상 전체에 만연된 일상화된 폭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혁 시기의 다른 일반적 풍경의 하나가 대자보와 선전화였다. 작가 역시 이점을 놓치고 있지 않는데 그의 시선은 서로를 비난했던 대자보의 내용에 있지 않다. 작가는 누구나 대자보를 써야했던 시대-공격의 대자보든, 반격의 대자보든, 혹은 자아비판의 대자보든 간에-글씨를 쓰는 사람이 유독 많았던시절이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대자보의 내용보다는 커다란 백지를 시원하게 하게 채워가던 필체들에 감탄한다.

모택동의 얼굴이 도배되다시피 하던 선전화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비아바이> 집구석에 숨어 가만히 동네사람들에게 화투장도 그려주군 했다. (중략)- 작은 그림딱지가 나는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흔상(감상:필자주)수준은 단눈에 호의나 적의를 가려볼수 있는 선전화에나 버릇되여있었다. 그러했던 우리에게 달이며 꽃이며 풀이며 새며 메돼지며 사슴이며가 변형되여 그려준 추상적이지만 보기 좋은 도안들은 하나의 신선한 세계가 아닐 없었다.

 

호의나 적의만이 가득했던 선전화가 일상의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지만 혁명의 일상 아래에서 아이들은 화투장의 그림을 통해서나마 그들의 동심을 확인할 있었다. 화투장이 혁명과 투쟁의 세월을 그럭저럭 견디어 내려는 어른들의 회피책이었다면 아이들에겐 선전화의 대칭점에서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주었던 매개체가 되는 것이었다.

다른 문혁의 풍경에는 말마디에 주석 어록과 정치구호를 끼워 넣는 것이 규범처럼 유행하였던 대화의 방식들이 있는데 작가는 장면은 매우 독립적으로 삽입시키고 있다.

 

손님 : 인민을 위해 복무합시다.동무, 사진을 찍으려는데

형님 : 우리의 임무는 인민을 위해 책임지는것입니다. 촌을 찍겠슴둥?

손님 : 혁명을 틀어쥐고 생산을 촉진합시다.3촌을 찍으려는데 값은 얼마요?

형님 : 절약하면서 혁명합시다.3촌에 60전이지만 2촌엔 40전입꾸마.

손님 : 사회주의 풀을 요구할지언정 자본주의 싹을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그럼 2촌을 찍겠소.

형님 : 기률을 강화하면 혁명은 승리합니다. 따라옵소.

 

개그 콘서트의 장면 같은 손님과 주인(형님) 대화는 당시를 살았던 사람에게는 매우 격앙된 어조로 주고받았을 지극히 평범한 대화였음이 틀림없다. 정치구호를 외우는 부분에선 사람들이 자세를 곧게 하고 또박또박 이를 복창했음을 상상할 있다. 구호 뒤에 따라오던 일상의 대화들을 작가는 조선족들이 사용하는 방언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규율로 가득한 어조와 개인적인 방언의 어조 사이에 놓인 긴장감과 느슨함의 반복은 개인의 사적 공간 역시도 국가의 통제와 규율에 점령당해야만 했던 그들의 우울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일상을 비틀어서 폭로한다.

또한 작가는 '짜그배누님' 통해 문혁의 다른 풍경들을 끄집어낸다. ‘짜그배 뜻은 짝짝이란 뜻으로 당시 용정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쓰이던 말이다. 량친 가운데 어느 쪽이 타민족이면 우리는 그들 사이에서 생겨난 자식을 짜그배새끼라고 불렀다. 어쨌든짜그배누님 원래 이름은 최승미다. 그녀가 그런 이름을 갖게 데는 시대적인 맥락이 자리잡고있다. 대약진 시절, ‘영국을 릉가하고 미국을 따라잡자(超英勝美)라는 구호 때문에 많은 아이들의 이름이 초영(超英)이나 승미(勝美)였던 것이다.’이는 바로 문혁의 시발점인 일련의 중국 현대사가 아기의 이름조차도 그들의 부모가 원하고 추구하는 소망을 따라 짓는 것이 아닌, 국가의 정책 속에서 하나의 구호로 불렸음을 보여주며 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개인의 삶이 허용되지 않았던 당시의 불행했던 현실들을 끊임없이 되뇌게 하는 태생적 상처의 표지가 되었다.

 

4. 문혁의 응달 속에서도 마마꽃은 피어나고

 

문혁 시기 투쟁의 대상들은 목에 흑판을 걸고 고깔모양의 모자를 비판을 당하였다. 이것은 문혁의 가장 전형화된 풍경이다. 아이들은 이런 문혁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한다. 김찬혁이 똥파리 무리의 성원이 되자 똥파리는 그동안 김찬혁을 괴롭힌 체육과대표를 잡아와서 어른들이 비판투쟁대회에서 하는 것처럼 목에 흑판을 걸어 놓는다. 김찬혁은 가해자의 자리에 있긴 하였지만금세 몸이 떨리고 딸꾹질이 터져 나온다.’ 시점에 언젠가 비판을 받으며 침세례를 받았던 늙은 지식인의 절망적인 눈길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것은가슴속에 음각되어 지워지지 않는 한폭의 경상이었던 것이다. 어느 비판 대회에서 명의검은 오류분자들의 얼굴에 주인공 김찬혁은 침을 뱉는다. 심지어어린지라 키가 닿지 못해 퐁퐁 뛰면서 침을 뱉는다.’그러나 마지막에 앉은비누거품이 온통 침투성이인 반혁명학술권위(늙은 지식인, 교수: 필자)앞에서 김찬혁은목구멍을 추키며 혀를 굴리며 침을 만들려 애를 썼지만침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눈길을침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안경알 사이로마주하게 된다.

 

나는 목구멍으로 짜내여 겨우 만들어냈던 침덩이를 꿀꺽 삼키고말았다. 진저리를 치며 뒤로 물러나 사람들의 틈새에 몸을 숨겼다. 경황함을 떼칠 없어 허겁지겁 집을 향해 뛰여갔다. 두억시니같은 눈길이 계속 나를 쫓는듯해 뒤를 돌아다보며 허겁지겁 집으로 뛰여갔다. 저녁, 온통 침에 게발려진 비닐테안경의 얼굴이 꿈자리를 커다랗게 매우며 달려들었고 나는 식은땀 흘리며 비명지르며 꿈에 가위눌려 깨어났다.

 

시대는 모든 인민들에게 가해자와 피해자 무조건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해자가 되는 척이라도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가해자의 역할을 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마치 마마꽃을 앓았던 김찬혁의 몸에 깊게 패여진 마마꽃 자국처럼 지울 없는 마음의 짐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악몽과 같은 무의식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려고 하였다. 메를로-퐁티의 말처럼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도록 부추김과 동시에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에겐 자신들은 역사와의 공모자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역사에 의해 부추겨진 범죄의 주동자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따라서 문혁의 열조에 들떠 있던 사람들 역시 결국 자신이 피해자이면서도 역사의 범죄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문혁이라는 거대한 집단적 폭력은 일상적 삶을 살아가던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지만, 종국에는 누구도 폭력에서 자유로울 없었다는 점에서 집단적 희생양을 요구한 것이 되었다.

문혁은 이렇듯이 억압과 통제, 그리고 폭력의 시대였지만 그런 동란의 세월 속에서도 자연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문혁의 폭력이 그토록 가혹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본성 자체를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성적 호기심으로 들떠 있기도 하고 짝사랑의 감미로움에 젖기도 한다. 아이에서 청년이 되는 과정을 경험하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고도 한다. 김혁의 소설은 문혁의 풍경 속에서 고통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곳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의지와 서로를 보듬어 주던 따뜻한 손길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김찬혁이 어느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장면을 살펴보자.

나는 처음으로 나의 벗은 몸매를 살펴보았다. 은밀한 구석구석까지 살펴보았다. 귀퉁이에 혁명적구호가 새겨져 있는 체경 속에서 나는 혁명하려 하고 있는 남성을 보았다. 소중하면서도 흉물스레 느껴지던 부분에 눈밑의 봄싹 같은 것이 모숨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봄물이 팽팽히 차오르듯 일어서는, 동면에서 대가리처럼 머리를 쳐드는 욕망의 다른 나를 보았다.

 

이렇듯 어른이 되어가는 똥파리의 애인인 '짜그배누님' 짝사랑한다. 나에게는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하나가 '짜그배누님' 아름다운 모습이 찍힌 사진 장을 얻는 것이었다. 우연한 계기에 누님의 사진 필름을 발견한 나는 필름을 가지고혁명적열의로 격양된 사람들과는 역방향으로걸어 대포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사랑의 열병으로 뜰뜬 진달래꽃을 처음으로 의식한다.

 

나는 짜그배누님의 사진을 가까이에 쳐들었다. (중략) 수줍음으로 단을 꺾고 잠복해있던 포신 대번에 머리를 쳐들었다. 갈망에 넘친 그것은 튼실했고 뜨거웠다. 포문으로 나는 광분하는 도시를 겨누었다. 손을 천천히 그러다 잽싸게 움직이며 장탄을 했다. 조준경을 맞추었다.

 

그는 자신의 최초의 욕망을 높은 위에서 광분하는 도시를 향해 분출한다. 그것은 인간이 가질 있는 가장 솔직한 동물적 욕망이었고 어떤 세상의 광기도 이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이치었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김표는 여자의 속옷이나 생리대를 훔치는 성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변태적 행태로 표출한다. 그는 본보기극보다 재미있다면서 여성의 나체사진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김표의 주접스런 행동에 화가 똥파리는 그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린다. 집으로 돌아와서 짜그배누님과 , 김표만이 마주하게 되었다.

 

녀자것이 그렇게 보고싶던?”(중략)

찬혁아, 자리 비워주겐?”

누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나는 곰상스레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짜그배누님 출입문의 문걸쇠를 안으로 잠갔다. (중략) 김표가 보는 앞에서 누님이 쑥색옷의 단추를 벗겨 내렸다. (중략)숨겨졌던 하나의 포만한 유방이 출렁 튕겨 나왔다. 김표가 덴겁히 눈을 아래로 내리 떨구었다. 김표가 손을 잡아채려 했으나 누님은 움켜잡아 자기의 가슴에 포개주었다.

그럼 어디 만져봐, 괜찮다. 맘대로 만져봐라, 그리고 다신 그런 치사한짓 하지 , ?”

 

눈귀로 송진 같은 눈물이 꾸역 배여 나왔다. 이어 그것은 벌창해진 보물로 되어 말라붙은 피딱지를 적시며 흘러내렸다. 그것이 내게는 표어글발의 마지막 획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물감처럼 보였다. (중략)여지껏 천하의 죄를 혼자서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맞아주고만 있던 김표가 소리내여 울기 시작했다.

김표는 누님에게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는다. 당시홍색파였던 어머니와 캉다파였던 아버지가 파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여 떠났고 하나밖에 없던 누나는 지식청년이 되어 농촌으로 내려간 3년이 지난 시기였다. 김표는 소리 내어 울면서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자리를 짜그배누님의 따뜻한 젖가슴을 통해 위로받는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인간 스스로가 지닌 양심과 삶의 의지, 타인의 따뜻한 손길들로 인해 어두운 시기를 견디어 있었다.

 

5. “마마꽃, 응달에 피다, 그리고

 

작가 김혁은 에필로그를 통해 그의 문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당혹과 불안으로 정신이 진붉은 폐유처럼 술렁대던 세월, 마마귀의 주술에 걸렸던지 나라 사람들은 저마다 홍역을 앓는 것과도 같은 병력의 아픈 나날을 보내왔다. 아픔에 머리가 뜨거웠던 어른들은 시대를 람독했고 오독했었다. 우리는 어찌보면 란폭한 시대의 제물이었다.(중략) 넘어지면 일어나고 일어나면 다시 넘어져 상처를 입었다. 방향감 없는 매진으로 점철된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소품의 련속들, 우리가 잃어버린 질서는 세계가 잃어버린 질서였다. 그때 느낄 있는 것은 단지 육신에 생채기로 남은 단순간의 상처뿐이고 지금에 와서야 정신에 남긴 핵복사같은 영원의 상처를 들여다 있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상처와 시대가 우리에게 상처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처의 아픔보다는 상처를 만들던 과정이 생각날 뿐이다.

그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행될지 모르는 그러나 결국 넋을 놓은 무방비상태로 당할 수밖에 없는 세계의 폭력의 아픔과 함께 그것이 자행된 공간과 시간을 수많은소품들로 전시해 놓았다. 바진이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문혁의 박물관 김혁은 소소한 소품들로 채워문혁의 민속박물관 만들었다. 더욱, 그가, 고마운 것은, 그가 비록중국조선족 작가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지만 동시의 그의 모국어인마마꽃 잊지 않았다는 . 그가 촘촘히 엮은 하나의 낯선 세상을 우리의 언어로 바로, 들여다 있었다는 , 그것이 작품이 우리에게 더욱 소중하게 읽혀야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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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한국 문학
날자:2010-12-30 11:26:27
김혁의 작품을 중국문학으로 봐야 된다는 것에 주저없이 대체적으로 반대한다. 전세계 어디에서 써졌던 한글로 쓰여진 작품은 한국문학으로 받아들여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만들어야 된다. 더구나 조선족은 한민족의 일원이고 우리 문화가 그들의 삶 속에 피와 살이 되어 있다. 김혁 작품이 주는 감칠맛을 과연 한국인을 떠나서 얼마나 되는 인구가 즐길 수있겠는가? 김혁의 작품이 한국문학의 일원으로 존재할 때 김혁의 작품은 한민족의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함께존재하며 역사적 가치를 점점 더하게 된다. 김혁의 작품 나아가 조선족 문인들의 작품을 한국문학으로 받아들여 이들 작품에 역사적 생명을 부여해 줘야 중국문학의 변방에 존재하고 있다가 어느 미래에 소멸해 버릴 수있는 비극을 막을 수있다. 한국 문단이 문을 활짝 열고 김혁 작가를 그리고 조선족 작가들을 받아들여야 되고 한국 독자들에게는 김혁같은 뛰어난 작가의 작품이 소개되 함께 즐길 기회가 주어져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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