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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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단의 怪事,奇事,庆事
2014년 03월 06일 15시 57분  조회:1742  추천:2  작성자: 김룡운
우리 시단의 怪事,奇事 ,庆事
 
 박운호의 시집<还魂梦记 >를 두고
 
  1. 창의성과 초월성으로 살펴보는 우리 시단의 그라프
 
시인 박운호가 2000년1월에 첫시집 <쑥대밭>을 내놓은지 꼭 10년만에 두번째시집 <환혼몽기>를 내놓았다. 이 시집은  오래간만에 우리 조선족시단에 던진 어벌큰 도전장으로 주목된다. 시집의 표제를 풀이하면 죽었던 혼이 환생하여 꿈에서 본 일들을 적는다는 뜻이다.  시인은  꿈에서 한번 죽은후 이 세상의 희노애락과  시시비비,진진허허를 자세히 관찰하고 드디어 깨도의 대문을 노크한다. 시인은 꿈꾸는 동안  육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수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인생감오와 시적감오를 얻으며 종당엔 홍진세계의 먼지를 툭툭 털어버리고 나름대로의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

<환혼몽기>의 탄생은 우리들에게  우리  시단의 모습을 새로이 성찰하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왜냐하면 <환혼몽기>는 오래동안 고요하고 잠잠하던 우리 시단에 충격을 준 례사롭지 않는 시집이기때문이다.

우리 시단은 해방후 몇차례의 진통과 탈피의 행로를 밟으면서 오늘까지 걸어왔다. 사실 알고보면 중국조선족시단은 시의 혁신과 창의성, 혁명성에서  전통이 있다. 일찍 일제시기 만주에  만주조선인 문학이라는것이  있었다.   1936년7월 부터 8월 사이에   리상이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라는 쉐르일리즘 시를 련재하여  한때 큰 센세인숀을 일으켰다. 리상의 오감도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 파격적인 이단으로 문단의 공격을 받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상은 전위적인 시인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허나 현실보다 너무 앞선 이상의 시는 반역으로 이단으로 몰려 <오감도> 9호까지 내고 발표를 단념할수밖에 없었다. 리상의 영향을 받아 당시  시현실동인으로 활약하던 함형수, 이수성,김북원 신동철 등이 1939년과 1940년도에 <만선일보>에 <정오의 –모랄>,<백란의 수선화>,<생활의 시가(市街)>, <창부의 명령적 해양도> 등 파격적인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시들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중국에서의 조선족시의 첫 혁명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1945년부터 1980년까지 중국조선족시단에는 력사의 원인으로 하여 이렇다고 할만한 새로운 시혁신운동이 없이 줄곧 사회주의사실주의시가 통치적지위에 있었다.

그러다가 개혁개방의 훈풍이 불어서야 비로소 우리에게도 시가혁명의 기회가 오게 되었다. 1980년대초에 한춘시인이 현대파시의 기치를 추켜들었고 거기에 호응하여 김정호가 상징주의 시 <추억>을 발표화여 40년간 잠자던 시단에 한차례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이어 시혁명 비슷한 창작이 이어가기 시작하여 90년대초에 김혁이 <신오감도> 22수를 실험하였고  조광명이 불교시를 선보였으며 김파가 립체시를 들고 나오고 최룡관이 이미지시론을 들고 나오고 남영전이 1980년대 중기부터 토템시의 기치를  추켜들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새로운 리론 창조가 아니라 서방기성리론에 대한 선양작업과 답습에 그치고말았다. 오래동안 사실주의시만 보아오던 그들이 갑자기 어느날 서방현대리론을 접촉하게 되자 마치도 콜롬보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를때처럼  격동하고 흥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콜롬보스가 지브랄타르해협의 한섬에 도착했을 때 그 섬에는  “세상은 여기에서 끝난다”는 패말이 꽃혀있었는데 콜롬보스는 그 패말을 뽑아버리고 대신 “세상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는 패쪽을 세웠다. 우리의 대다수 실험시들은 콜롬보스와 같은 전위성, 창조성, 모험성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다만 “세상은 여기서 끝난다”는 패말앞에서 흥분하는데 그치고말았다. 그것을 본것만 해도 너무나 경의롭고 신선했던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우리의 시혁명은 서방현대문학리론이 이미 만들어놓은 기성품을 선양하고 옯겨오는   작업, 그것에 다름아니였다. 그러나 설령 이렇다 할지라도 우리문학사에 남겨놓는 공적은  거대하다. 가령 그들의 시혁신운동이 없었더라면  침체되고 고갈되고 진부하던 시단에 활역소가 생길수 없었을것이며 다원화창작과 백화반발의 경상이 나타날수 없었을것이며  시의 개성이나 시의  질의 향상 등을 운운할수 없었을것이다. 오늘 우리 시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있는데 이는 모두 시혁신운동과 시혁명운동의 결과물이다.

이들 혁신파들중에서 가장 떳떳하게 나의것으로 인정받은 것이 남영전의 토템시이다. 남영전은 조선족시단은 물론 전 중국시단에서 처음으로 토템시리론을 제기하고 체계화하고 완선화시킨 시인이다. 그는 또 자기의 리론을 립증하는 54수의 토테시를 중문으로 창작하여  전반 중국시단을 놀래웠으며 이른바 중국에서의 남영전의 문화현상이라고 하는 거대한 문화현상을 만들어내게 되였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시단의 분위기가 오래동안 잠잠하다가 박운호의 출현으로 다시금 새로운 화제거라가 생겨나게 되였다. 즉 가로세로보기 시가 탄생하여 물의을 일으키고있다.
 
인생은가고오고
생활은고독만이
은은히 오다담는
가고오는해식고
고독다해뜸뜸해
오만담식뜸들인
고이는 고해인가
 
 
ㅡ«만가»(시인과 성녀와 대화 )
 
위의 시는 가로 읽으나 새로 읽으나 똑 같다. 첫행 첫글자에서 시작하여 가로 읽으면 <인생은가고오고>로 되고 첫행 첫글자로부터 내리 읽어도
 







 
로 된다. 두번째 행에서 첫글자로부터 가로 읽으면 < 생활은고독만이 >로 되고 내리 읽어도
 







 
 
로 된다. 모든것이 이와 같다. 마방진에서 가로 보나 세로 보나 똑같은 것과 같은 도리이다.

지금 박운호의 가로세로 시읽기를 두고  우리 조선족문단에 시비가 엇갈리는 찬반의 론조가 있는것 같은데 무척 좋는 현상이라고 보아진다.

박운호시인이 만들고있는것은 루빅큐브식시로서 그 발상이 기상천외이고 아주 어벌이 크고 모험적인 창작이라고 할수 있다.  루빅큐브식은 일명 마방진(魔方陈) 혹은 (魔方)마방이라고도 하는데 그 어원은 영어의 magicspuare에서 온것이다. 마방진의 형식은 1에서 n2까지 정수를 n형 n렬의 정사각형모양으로 라렬하여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전부 같아지도록 한것이다.

박운호시인이   우리의 훈민정음을 가지고 립체적인 마방을 고안해냈다는것이야말로 실로 칭찬을 받을만한 장거라고 할만하다. 우리 민족언어는 자모결합의 문자로서 한자처럼 글자 하나가 나하 내지 몇개의 뜻을 안고있는 글자가 많지 않다. 상형문자이고 뜻글자인 한자를 리용하여 마방진시를 만들기는 그렇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기타 게르만어, 라틴어,슬바브어, 아랍어 등 자모문자를 가지고 루빅큐브식시를 쓴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일이다.  우리 글도 자모음절결함의 문자이지만 천,지,인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우리글의 우수성으로 하여 마방진시가 가능하다. 오늘 박운호시인이 그 가능성을 가능성이 아닌 현실로 바꾸어놓았다. 이것이 바로 초월의식이요 전위의식이요, 창조의식이다.  박운호시인은 사각형의 소우주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념주를 세고 좌선(坐禪)을 하고 목탁을 두드리면서 나름대로의 인생감오를 읊조리고있다. 그리고 그것은 글자유희가 아니고 수련을 동반한 고행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말하자면 단순히 가로세로 글을 읽는 무의미한 놀이가 아니라 철리와 사색을 전제로   시혁신과 시혁명을 꾀하고있다. 박운호의 시가 이제껏 창출된  조선족의 시 중에서 동양적숨결이 가장 다분하다는것도 특징의 하나라 되고있다.
 
2.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거듭나기 
 
<환혼몽기>는 <아지랑이>,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류광과 더불어>,<베를린장벽 페허에서>, <꿈의 향연>, <옛사람과 더불어> 등 모두 6개부분으로 구성되여있다. 이들중에서 시적으로 가장 성공하고있는 부분은 <아지랑이>와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과 <류광과 더불어>이며 시혁신에서 크게 괄목하만한것은 <옛사사람과 더불어>이다. <아지랑이>와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류광과 더불어>는 개성이 뚜렷하고 심오하고 철리적이고 함축성이 다분하다. 그외 민족의 우환의식을 다룬 <베를린장벽페허에서>와 시조를 다룬 <꿈의 향연>은 어딘가 평범무의한 인상을 준다.  <베를린 장벽폐허에서>는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아픔과 설음이 진하게 내비치고있으나 어지간히 시재가 있는 시인이라면 누구나 쓸수 있는 그런 시들로서 여지껏 민족의 애환을 노래한 시들을 릉가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별도로 다루지 않았다. 시조인  <꿈의 향연>은 현대판  <명심보감>이라고 할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친구의 도리, 삶의 참자세 등을 주로 쓰고있는데 인생에 주는 계시가 적지 않다. 헌데 형식탐구에서 새로운 노림이 없어 아쉽다. 모든 시조가 단순하고 단일한 평시조의 옷을 입고 있어 신선한 맛이 나지 않는다. 좀 파격적인 형식으로  현대시조를 썼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고 그런 연유로 이 글에서 시조도 살핌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는 <아지랑이>와 <꿈이였다고 생각하기엔>, <류광과 더불어>  중에서 일부 시들을 선택하여   옅은 소견을 피력코저 한다.

박운호의 시들을 일별하면 담담한 어조속에  고행의 흔적이 력력하며 그리고 그 고행은 인생에 대한 성찰과 거듭나기로 일관되여있다. 시인은 크게 떠들지 않으면서 세상을 말하고 자신을 말한다. <환혼몽기>는 시인이 이 세상을 랭철하게 관조하고 그 느낌을 쓴것이다.  인간의 거듭나기는 고통없이는 불가능하다. 시인은 거듭나기 위해 한번 죽었다가 부활한다.
 
꿈속 떠돌던 마을어귀
숨죽은듯 고요한 내 무덤앞에는
자그마한 반듯한 비돌이
나지막히 세워져있었다
묵묵히 장사를 치르고 망종을 하면서
굳이 사람 사는 내막을 조금씩알게 되였다
……..
사람은 한번 죽어보아야
사는 진상이 어렴풋이 짚이였다
 
ㅡ -<환혼몽기>
 
<한번 죽어보아야 >한다는것이 바로 인생에 대한 성찰이며 <사람 사는 내막을 조금씩 알게 되였다>는것이 바로 거듭나기의 시작이다.
그러되 박운호의 시들은 기본상 불교를 핵심으로 동양사상에 뿌리내리고있다. “동양사상은 가치를 외부에 두지 않는다. 동양학의 인간주의는 인간을 배타적인 존재로 상정하거나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가 아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하나이며 그 자체가 어떤 질서나 장(場)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이다. 그리고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인 가치로 인정하는 경우에도 인간을 관계로서의 맥락에서 파악함으로써 개인주의의 좁은 틀을 벗어나고있다.”(신영복,[강의] 54쪽)
박운호의 시들은 인간관계의 맥락에서 세상을 관조하며 자신을 수련하고있다.
 
하늘을 우러르면서 하늘을 속이고
다소나마 알듯하면 부모를 속이고
나름대로 저도몰래 친구를 속이고
괜한걸 가지고 부부간에 속이고
아래도 속이고 우로 속이고
 
  • 『하계단상』일부
  한번 <죽어> 저승에 갔다가 인간세상에 돌아온 후  시인의 눈에 비친 인간세상의 한 모퉁이이다. 속임과 속히움이 반복되는 인간세상, 이런 나쁜 근성을 고칠 처방은 없을가. “어쩌면 속아사는게 더 편할수도 있지 않는가/더러는 모르는것이 오히려 부처니까 말이다” 이것이 처방이다. 다음 시인은 <속이는 병>의 병인을 밝힌다. “모든 음페된 절차속에는  질서가 있었고/모든 엄연한 사실은 감추어진 결과이다” 음페된 질서를 무너뜨리고 감추어진 사실을 까밝아놓는것이 세상을 강건하게하는 방법이다.
시인은 이 세상의 온갖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있다.
 
지금 세상은
미상불 등불이 휘황하여 밤도 낮같아
가까스로 신변엔 모든것이
마법같은존재
까닭모를 징조는  떠도는 스캔들뿐
고조된 변형, 고조된 갈등
고조된 고민 고조된 불양
 
  • 『스캔들』일부분
 
 이 세상을 직시하면 수많은 추문들이 란무한다.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그 안에서 갖가지 추문들이 활보한다. 시인은 마법과 같은 스캔들이 살판치는 현실을 두고 서글프게 넉두리한다. “등불은 지금 고조로 난연하고/덩덩한 이 밤은 저조로 짙어간다”
 
 
시인은  인성의 자유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하고있다. 시인은 제 나름대로 제 생긴대로 자유롭게 사는것도 재미라는것을 발견한다. 기지와 해학성분이 약간 가미된 『재미있는 세상』은  철리성이 다분하며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의 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장자의 『변무(辯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그렇기때문에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된다.”장자는 길다고 그것을 여분으로 여기지 않고 짧다고 그것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것이 자연이며 자유이며 도의세계라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세상』은 장자의 사상이 어지간히 녹아있는듯 하다. 시인은 『재미있는 세상』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내가 재미있다고
남이 재미있는것은 아니다
  1.  
 
 내 재미로 남의 재미를 재지 말고
 남의 재미대로 꼭 부러워할것까진 없을것 같으니
재미있는 세상에서 한껏 재미를 느끼며
재미있게 사는것이 재미가  아니겠는가
 
  • 『재미있잇는 세상』
성찰과 거듭나기에서 극치를 이루는것이 『불당에 들어』와 『심성정곡』과 『관음당에 들려 향을 스르다』인것 같다.
 시이은 새로운 인간으로 탈바끔하기 위하여 불당에 들어가서 친견한다.
 
 
번뇌도 고통도 없는 경지에 도달하고
탄식도 회포도 없는 선경에 닿으려면
거치른 마음에 가득하게 들어있는
거치장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느꼈을때
불당에는 향내가 저으기 진동하고
불상은 다정하게 미소를 짓고있다
 
  • 『불당에 들어』
 
거듭나기란 결국은 참삶에 위배되는 모든 비정한 것들을 버리는것을 의미한다. 그러할 때 인간은 이 세상의 축복을 받고 모든 사람의 찬양을 받는다. 시에 언급되는 <향내>와 <미소>는 바로 축복과 찬양 그것에 다름아니다. 
 
『관음당에 들려 향을 스르다』도 우의 시와 맥락을 같이 하는 시이다.
 
모처럼 마음을 비운 거기가 바로
오매불방 그리던 심령읭 정토이고
모처럼 비워진 거기가 바로
억조창생 극치가 왕생하는
극락정터가 아니가싶었다
영생토록 비우면 비울수록 거기가 바로
령혼이 환생하는 드넓은 왕국이고
령과 혼이 깃든 거기가 바로
왕국이 들어앉을 명당지인가싶었다
 
-『관음당에  들려 향을 사르며』
우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에게 불리한 모든 나쁜것들을 버려야만 비로소 극락정토에 이를수 있고 심령의 왕국에 도달할수 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비움의 철학이다. 시적주인공은 비움의 철학을 실현한다. 그래서 축복을 받아 “향연은 언제 보나 모락모락 피여나고/ 향내는 늘쌍 코앞에서 향긋하게 맴돈다”
마지막으로  『심성정곡』을 살펴보자.
 
무언한 자연속에  넉넉히 안겨
무명이 없고 망집도 망탄도 없는
무심한 심성을 무념으로 정화하면
무료한 집탈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무아경에 도취하여 신신이 되는듯
무상한 느낌속에   한번쯤 부처가 된다
 
-『심성정곡』
표제를 풀이하면 마음을 바르고 깨끗하게 하는 노래라는  뜻이다. 망집,망탄, 집탈이 인간을 해치는 잡물들로서 이런것들을 없애면  무아경에 도취하고 한번쯤 부처가 된다. 부처는 모든 깨끗하고 위대하고 거룩한 이름의 상징이며 인간이 도달해야 할 최고경지이다.
 박운호는 이 세상을 깊이 통찰하면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작업에 혼신을 다하는 시인이다.
 
 
 
2.소우주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목탁소리

오랜 세월  파란만장한 인생의 고개길을 톺아오르던 시인이 마침내 오도의 대문에 들어서서 자신만의 소우주를 만들어놓고  경건한 자세로 좌선을 하고 념불을 하고있다.

시인은 자기 특유의 집을 짓는다. 건축모양은 마방진식이고 사용한 재료는 대부분 불문에서 가져온것이다. 시인은 불학을 포함해 공자, 맹자, 장자, 묵자 등 동양철학에 대해 깊은 조예를 갖고있다. 가령 동양철학에 대한 연박한  학식이 없었더라면 불교적,유가적냄사가 물씬 풍기는   마방진식의 시를 창출할수 없었을것이다. 보건대 시인은 가로세로세를 쓴느데 엄청난 대가를 치룬것 같다. 박운호시인은 무려 16수의 마방진시를 창작하였다. 이 세상에 없는 <집>을 짓자니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한채를 짓자해도 지난하고 아름찬 작업인데 무려16채나 지었으니 실로 놀라지 않을수  없다. 우리가 박운호시인의 마방시를 주목하지 않을수 없는 리유는 시인이 만들어놓은 괴상하고 경이로운 소우주가 결코 심심풀이로 장난삼아 지은 집이 아니라는 점이며 절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무심히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인은 자기가 안주하고있는 절간을 인생도리를 낳는 요람으로 만들고있으며 하나하나의 목탁소리에다 인간세상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철리적이면서도 유정한 말씀들을 얹어주고있다.

또 하나 주목할것은 시인이 소우주안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대상들이 말짱 <옛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시인이 동양적사상과 동양적철학에 시핵심을 두고있음을 보아낼수 있다. 사실상 가로세로보기시  이외의 기타 대부분의 시들에서도 동양철학의 숨결을 다분히느낄수 있다. 동양철학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인성이다.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규정하는 인성이란 한 개인이 맺고잇는 여러층위의 인간관계에 의해 구성된다. 인성은 개인이 자기의 개채속에 쌓아놓은 어떤 능력 즉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혀나가는 어떤능력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것이다. <논어>에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邻) 이라는 구절이 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이다. 덕성이 곧 인성이다. 인간이란 존재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견해이다. 그래서 동양적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존재에서 구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있는 관계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이다.”(신영복,[강의],41쪽)

여기에 비추어보면 박운호의 시핵심이 동양철학의 인성고양에  뿌리내리고있음을 어렵지 않게 보아낼수 있다. 마방진시들을 보면 모두 <대화>, 즉 인간관계로 되여있다. 례하면 <시인과 숙녀와의 대화>, <시인과 성녀의 대화>, <시인과 마녀의 대화>등등. 한마디로 인성에 초점을 두고있다. 례문과 마주앉아본다.
 
천성
 
-시인과 수녀의 대화
 
안빈락도성한삶  
빈한막심한생엔
락막한자과도견
도심자는시심마
성한과시행이지
한생도심이자성
삶엔견마지성을
 
위의 시를 전통시 형식으로 고치면 아래와 같다.
 
 
安貧樂道 성한 삶
貧寒莫甚한 생엔
樂莫한자
果盜見
 
道甚者는 是甚麽
聖汗과  施行이지
 
한생
道心이 資性
삶엔
犬馬之誠을
 
 
 
이 시를 풀이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가난을 즐겁게 여기며 이룩한 삶이요
극빈으로 구차하게 살아온 삶이라 
실패한 자는 수행을 착실하게 못했기때문
불문에 들어선자는 마땅히 항상
깊히 사고하며 언제나 땀으로 시행할지어다
참다운 도심이 인간을 만들거늘
자기의 삶에 견마지성을 다해야 하리
 
이 시는 인간으로 되는 도리를 이야기하고있다. 자신을 항상 돌이켜보고 자기   삶에 충성하라고 귀띰한다.
 
 
도의
-
-시인과 승녀의 대화
 
지덕은감여령고
덕성은여실수행
은은한종지론가
감여종성자은한
여실지자심감계
령수론은감계시
고행가한계시록
 
이 시를 전통시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지덕(智德)은
감여령고(堪輿 靈告)
덕행(德行)은
여실수행(如实修行)
 
은은한 종지(種智)론가
감여(堪輿) 종성(終成) 자은(自隠)한
 
 
 여실지자심( 如實知自心 )
감계 (鍳 戒 ) ….
령수론( 靈遂 ) 은감( 殷鍳)계시
고행( 苦行 )가한 계시록( 启示录 )
 
이 시의 내용을 풀이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지와 덕은 하늘이 내리는것이요 덕성은 참다운 수행끝에 이루어지는것이노라. 부처님이 지혜로우매 하늘과 땅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나니 자신을 참답게 알면 교훈이 될것이로다. 하(夏)나라의 멸망의 력사를  깊이 통찰하고 스스로 고행을 행할지라. 이것이 곧 인생을 살아가는 계시록이니라.
이 시는 자신을 참답게 알면 실수가 없으므로 평소에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읽을수 있다..
 
 
귀속
-시인과 식차마니의 대화
 
 
꽃이이제그유정한옛삶후회없이지네
이젠제법저금은에적이회심어르던맘
이제곷은말없이피다말없이진다해도
제법은광을기리고나없이도진느거야
그저말을속에품지오이제질해거름속
유감없기에꽃으고스락갈때가든타네
정은이리품은듯이품인데시현한네맘
한에피고지고이젠성해가든히그넋은
옛적다나오스품성속여도넌피다지지
삶이말없이락인하여향가고다시지자
후회없이제갈데가도가지고가지않는
회심이도질때시든넌고고히지새는꽃
없어진지해가현히피다가지려는꽃의
이르다는거든한그다지지새는귀의소
지던해거름타네넋지지않는꽃의섭리
네맘도야속네맘은지자는꽃의소리네
 
 
  이 시를 전통형식으로 고치면 아래와 같다.
 
 
꽃이 이제  그 유정한 옛 삶 버리고
후회없이 지네
이젠 제법 저 금은에
적이 회심(會心) 어르던 맘
이제 꽃은 말없이 피다
말없이 진다 해도
제법 은광(恩光)을 기리고
나 없이도 지는거야
 
그저 말을 속에 품지요
이제 질 해걸은 유감 없기에
꽃은 고스락 갈 때 가는거라네
시현(示顯)한 네 맘 한에 피고지고
이젠 성해 가든이 그 넋은
 
옛적 다나오스(Danaos) 품성 속여도
넌 피다 지지
삶이 말없이 락인(烙印)해
여향(餘香) 가고 다시 지자
후회없이 제 갈데 가도
가지고  가지 않는
회심이 도질 때 시든
넌 고고히 지새는 꽃
 
없어
진지(振摯)해 가현(假顯)히
피다가 지려는 꽃의
이르다는 거든한 그
다시 지새는 귀의소(歸依所)
지던 해거름 타네

지지않는 꽃의 섭리
네 맘도 야속해
맘은 지자는 꽃의 소리에
 
 
 
동양의 미덕중에서 남을 위해 무수히 좋은 일을 하였으되 스스로를 나타내지 않는것이 가장 향기롭고 가장 값나가는 미덕이다. 이 시에서는 바로 유정한 삶을 살았지만 후회없이 지는 꽃을 통해 즉 비록 사라졌으되 결코 사라지지 않은 꽃의 섭리를 통해 불현(不顯)의 미덕을 칭송하고있다.

 이제까지 살펴보았지만 박운호의 가로세로보기시는 마치 리상의 <오감도>처럼 난해하여 제대로 해독을 하자면 품이 많이 들고 숨이 차다. 그  까닭은 첫째 정연한 마방진틀에 치중하다보니 띄여쓰기가 무시되였기때문이고 둘째 일반인들에게는 생경한 불교용어가 허다히 사용되였기때문이고 다음으로는 문법규정에 어긋나는 토가 사용되였기때문이다. 그외 틀짜기에 신경을 쓰다보니 행과 행사이에서의 의미련결이 불확실한 점도 적지 않다. 이런 제반 리유로 하여 박운호의 실험시 가로세로보기시는 시해독에서 정력을 많이 허비해야 하는  약점을 드러내고있다.  많은 품을 들여야 대략적인 의미는 파악이 가능하다. 문학을 연구하는 평자들도 이러할진대 일반 문인들이나 백성들이야 더 말할것이 있겠는가.

 필자의 일가견이지만 시인은 이쯤에서 발걸음을 멈추는것이 좋을듯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난해한 형식의 시는 시의 대중성과 보편성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따라서 대중의 호응이나 찬양을 받을 확률이 대단히 적기 때문이다. 물론 금후 시인이 난해성을 피면하고 대중성과 보편성을 획득하는 전제하에서 마방진시를 계속 쓰겠다면 그것은 별문제로서 필자의 권고는 근근히 로파심에 불과할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혼몽기>는 하나의 귀중한 시혁신이고 시혁명임에는  틀림없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특별한 형식에다 동양철학을 다져넣었다는 점에서 우리 시단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고있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래간만에 우리 시단에 괴상하고도 신기한 선물을 안겨준 <환혼몽기>는 우리 시단의 경사이다. 
  <환혼몽기>의 출간에 진심으로 되는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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