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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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천회귀(母川回归)ㅡ 혼으로 울리는 은은한 가락
2014년 06월 24일 15시 49분  조회:1326  추천:1  작성자: 김룡운
 모천회귀(母川回归) 혼으로 울리는 은은한 가락
ㅡ 김학송의 최근시를 보면서
                            김몽
 
  1. 학송은 시인이다.
   바야흐로 몸이 무르녹고있다. 살구꽃이 연분홍 미소를 흩날리고 민들레가 파란 노래를 부르고 종달새가 하늘가에 춘향(春香)을 수놓고 아지랑이가 요염한 자태로 만물을 현혹한다.
 이런 유정한 봄날, 나는 지금 김학송의 최근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간다. 이야기속에서 향내가 묻어난다. 그것은 김학송의 시가 과연 시이며 김학송은 과연 시인이기때문이다. 시라고 하여 모두가 시인것은 아니며 시인이라는 패쪽을 달고있다고 하여 모두가 시인인것은 아니다. 시향이 묻어나는 시라야 시라고 할수 있으며 그러한 시다운  시를 써야 비로소 시인이라고 할수 있다. 김학송은 우리 시단에서 명망있는 시인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사람의 숲에는 사람이 없다», «고향에는 고향이 없다»를 미롯하여 무려 20여권의 시집을 산출하여 량적으로 가장 많은 시집을 펴낸 시인이며 «해외 동포상»,  «준마상 »등 굵직한 상을 받은 시인이며 많으 평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아온 시인이다.  
  황금찬은 “김학송의 시는 읽을수록 정이 가는 점이 있다. 그것은 그의 시세계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생명을 절대시하고 우주를 시인의 가슴에 품어주는 높은 시상을 갖고있으며 고도의 상징적기법으로 조용히 구름이 장미를  빚듯이 빚어내고있다.”고 말했고 신동욱은 “평범한 체험속에서 근원적인 님을 탐구하는 감격적인 서정을 보여주었는바 시적감수력이 뛰여나며 서정시편의 질감높은 기량을 느꼈다. 상업주의가 넘치는 시대에 가치의 안정성과 정체성의 인식방식으로 님을 탐구하는 서정시인의 령혼이야말로 고귀한 별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고 했고 임헌영은 “김학송의 시는 이제 연변의 울타리를 벗어나 한국의 독자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서게 된다. 그것은 주제와 소재의 기법에서 충분히 오늘의 한국시에 새로운 충격을 줄수 있기때문이다.”고 평가했다.
 물론 평론가들의 말이 모든것을 결정하는것이 아니며  그것이 한 시인의 가치척도를 가름하는 기준으로 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평자들로부터 이만큼한 평가를 받는 시인이라면 적어도 자격이 있는 시인라는 점만은 부인할수 없다.
  엎딘김에 절이라고 이 기회에 우리 시단을 살펴보면 중국조선족시단이라는 이 시동네에 시인협회에 가입하여 시인이라는 칭호를 달고다니는 사람이 몇백명이 되지만 진정으로 시인라고고 할만한 명실상부한 시인은 크게 잡아도 몇십명밖에 되지 않는다. 까딱하면 시인들한테   <물매>를 맞을 소리같지만 필자의 생각이 이러하니 <물매>를  맞더라도 할말은 해야겠다.
 우리의 시동네에 말썽이 꽤나 많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가 진짜 시인이고 다른 사람들은 시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앞에서는 사뭇 겸손한체 점잖은체 하지만 뒤에서는 서로 흉보기가 일쑤다. 그리하여 바람직한 문인상경( 文人相敬)의 풍조 대신 유감스럽게도 응당 멀리 하여야 할  문인상경(文人相轻)의 페단이 형성되고있다.
과연 어떤 시가 좋은 시고 어떤 시가 나쁜 시일가.
    필자는 이에 답으로 간단히 아래와 같이 분류를 해본다.
첫째,읽기 쉬우면서도 시인  시. 둘째,  읽기 쉬운데 시가 아닌 시  셋째, 읽기 어려운데 시인  시.  넷째. 읽기 어려우면서 시가 아닌 시.
 
 
   손오공이 여불애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듯 모든 시는 이 네가지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상술한 네가지 부류중에서 첫번째와 세번째가 쓰기가 가장 어렵고 두번째와 네번째가 쓰기가 가장 쉽다.
 지금 우리에게는 첫번째 부류와 세번째 부류의 시들이 적고 반면에 두번째 부류와 네번째 부류의 시들이 많다. 너무 알기 쉬워 벌거벗은 시들이 적지 않고 모더니즘이나 초현실주의시 같은 경우, 세계를 망각한 자의식이 잡음이 많고 너무 두터운 옷을 입어 아무리 하여도 그 속을 전혀 들여다 볼수 없는 시, 시인 자신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지나치게 시이비한 시들이 적지 않다. 이런 시들은 대중들로부터 소외를 당한다.  미국의한 평론가는 “오늘의 시는 이민선의 3등선실에 탄 가난뱅이처럼 보인다”고 말했는데 도리가 전혀 없는 말은 아닌것 같다. 시인의 가치하락에서 시인도 자유롭지 못한바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할것이다. 시인이 자기 위상을 높이자면 오로지 좋은 시를 쓰는  방법밖에 없다.
  좋은 시가 되자면 알기 쉽든 알기 어렵든간에 결국엔 시 밑바닥에 삶에 도움이 되는, 또는  귀중한 어떤 계시를 주는 묵직한 철리가 웅크리고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다면 독자는 시를 외면할것이며 시는 독자가 없는 울타리안에서 저희들끼리 좋다고 떠들썩할것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삶에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것들을 시로 육화하는 작업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이며 현상의 배후에 있는 시대의 혈색과 호흡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의 유무를 묻는것이 시인의 옳바른 자세이며 이런 자세하에서만이 좋은 시가 탄생한다. 그리고 자격이 있는 시인이 되자면 타인의 마음에도 깃들줄 아는 존재로 되여야 한다. 세계, 내적존재로서의 세상 사람들의 체취를 끊임없이 자아화 함으로써, 그리하여 더더욱 자기 자신을 고양하거나 지양함으로써 인간의 내면에 신성한 기운이 움크게 하야야 한다. 삶과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진정으로 헤아릴줄 알 때만이 누구 아닌 바로 그 시인으로 영생할수 있다. 김소월이나 윤동주, 정지용 등을 비롯한 많은 명시인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시인으로 살아있는 까닭은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주요하게는 다름아닌 그들의 시가 “인간의 내면에 신성한 기운을 움크게 하는 힘”을 갖고있고 “삶과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진정으로 헤아릴줄 ”알기때문이다.
  필자는 김학송을 알기 쉬운 표현으로 상당히  무거운 시를 쓰는 시인으로 보고있다.  최근의 그의 시들을 보면 대개  민족성에 뿌리를 내리고 인생과 세상을 깊이 있게 투사하고있으며 그 와중에 시의 무늬가 수놓아진다.
 
모색이  이우는 버드나무강변에서
한줄기 우환을 깔고앉아
로인은 퉁소를 분다
마을을 향해 한곡조
강물을 향하여 한곡조
배부른, 할일 없는 소들을 바라보며 또 한곡조
아리랑, 도라지, 양산도
 신나는 가락에 어깨를 들썩인다
로인은 분다 저무는 황혼의 비애를 분다
먼저간 이들이 채 못부른 노래
그리고 수천년 이 민족의 가슴에 자리잡은
깊은 한과 고독을 분다
 
ㅡ«퉁소와 로인» 전문
 
시를 읊어보면 힘든 낱말이 기본상 없다. 하지만 뇌리에 박혀드는  사연은 결코 적지 않다.  퉁소소리의 울림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안고있는 비희고락의 력사와 현재가 애환의 가락에 앉아 흔들거리며 춤을 추고있는 정경을 보게 된다. 퉁소의 주인인 <로인>은  우환을 반석처럼 깔고앉아 <저무는 황혼의 비애를>불고  <향토의 서정 >과 <인생의 허무>를 불로 마지막에는 < 이 민족의 가슴에 자리잡은 깊은 한과 고독을 분다>
시적주인공인 <로인>은 민족의 대변이이자 민족의 혼이다. 시인이 노래하고있는것은 민족의 오늘과  수쳔년의 력사를 아우르는  민족의 아픔이다. 고뇌와 비애속에서 빚어지는 령혼의 직조( 织造)가 곧 살아서 퍼덕이는 혼의 울림, 시로 탄생하며 아울러 김학송은 시인으로 된다.
 
 
  1. 천회귀 ㅡ혼으로 울리는 은은한 가락
 
김학송의 시를 보면서 문득 모천회귀를 떠올리는 까닭은 김학송의 시가 존재의 시원(始源)을 찾는 언어의 본능을 시의 근원을 찾으려는 시인의 인간적욕망으로 정화시키고있기때문이며 최후의 목적지 내지 정착지가 고향(어머니,민족)이기때문이다.  시원은 시인마다 제마끔 달라 모두에게 그 특유의 시원이 있다. 시원을 찾는 과정이 곧 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어떤 시인들에게는 시원을 찾아가는 길이 쉽지만 어떤 시인들에게는 대단히 고달프고  때론 비장하면서도 성스럽기도 하다. 诗자를 보면 말씀 言자와 절  寺자로 구성되여있다. 절(寺) 은 성당(圣堂)을 의미하며 석가모니, 하느님 등 지고무상의 성스러운 존재를 상징한다. 이렇듯 시란 성스러운 존재와의 대화(言)이므로  결국 시도 성스럽게 되니 않을수 없는것이다. 그리고   성스러움을 빚어내자면  구도자(求道者)와 같은  인내와 고뇌와 아픔을 감내하지 않을수 없다.    
김학송의 많은 시들이  시원을 고향, 어머니 내지 민족의 뿌리에 두고있다.
연어는 태여난 강이나 하천으로 돌아가는 모천회귀본능( 母川回归本能)을 갖고있다. 강이나 하천에서 태여난 연어는 바다에 나가 성어가 된다. 성어가 된 9개월 뒤 산란기가 되면 자기가 태여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산란하고 최후를 마친다. 강으로 올라가는 과정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있어 치렬한 박투를 하면서 목슴을 내걸고 처절한 행군을 계속한다. 그만큼 고향이라는것은 무서울 정도의 마력적인 힘을 갖고있는것이다. 중국성구에 락엽귀근( 落叶归根)이라는 말과   토끼는 죽을 때 제굴에 가서 죽고 여우는 죽을 때 자기가 살던 언덕을 바라본다(兔走旧窟,狐死首丘)는 속담이 이 있다.  
식물이나 짐승마저 고향에 대한 사랑이 이렇듯 사무치거늘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하기에 고금중외를 막론하고 고향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 많으며 우리 조선족시단에도 고향을 쓴 시들이 수두룩하다. 고향은 흔히 민족이라는 개념과 동일시되여 쓰이는 경우가 많다. 김학송도 고향주제를 많이 다루고있는 시인들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되 그는 누구보다도 뜨겁고 치렬할만큼 고향애착이 집요하다. 하기에 그의 시는 그만큼  민족정서, 고향정서, 노스탤지어정서가 농후하다. 이는 그의 의식적인 시추구에서 비롯된것이다. 시인의 고백이 그의 시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있다.
“민족의 정체성과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나선 정신궤적을 두루 다루었다. 어디에서 살든 나는 조선족이다. 이것이 자랑스럽다. 다시 태여나도 나는 조선사람으로 살고싶다.”
김학송의 이러한 진실한 고백이 이번에 <도라지>에 발표된 시들에서  명백히 드러나고있다. 고향과 민족에 뿌리 내린 그의 시의 정신을 완벽하게 알아보기 위해 먼저 최근에 발표한 시집 «고향에는 고향이 없다» 중에서 한수를   골라본다.
 
바람이 희다
바람이 달다
바람이 맛있다
바람이 길다
바람이 둥글다
바람이 깊다
 
 김치냄새가 난다
청국장냄새가 난다
막걸리냄새가 난다
 
바람이 삼배저고리 같다
바람이 행주치마 같다
바람이 두루마기 같다
 
바람이 퉁소를 분다
바람이 묵장구 틴다
바람이 가야금 탄다
바람이 둘래춤 추며
강강수월래를 부른다
 
옛성터에 부는 바람은
늙어도 늙지 않는
뿌리 깊은 바람이다
 
ㅡ«옛성터에서 5» 전문
 
이 시는 우리 민족에 대한 대찬가이다. 이 시의 내용의 깊이와 넓이에 앞서 우선 말짱 고유어로 된 시어가 주목된다. 전편시에 한자 한마디도 끼우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는 민족어의 고유성과 지킴이라는 이 한가지에서도 큰 점수를  따고있다. <바람>은 우리 민족의 상징이다. <바람>을 통해 민족의 형상, 민족의 특징, 민족의 영원성,창창한 미래까지 현시한 시인의 자태가 돋보인다.
1련에서는 <희다>, <달다>,<맛있다>로 우리 민족의  깨끗히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2련에서는 <길다>, <둥글다>, <깊다>로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단결심을, 3련에서는 <김치냄새>, <청국장냄새>,<막걸리냄새>로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의 특색을, 4련에서는 <삼배저고리>, <행주치마>, <두루마기>로 우리 민족의 복장특색을,   5련에서는 <퉁소>, <북장구>, <가야금>, <강강수월래>로 춤과노래를 즐기는 우리 민족의  기질을 노래부르고있으며 마지막 련에서는 “옛성터에 부는 바람은/늙어도 늙지 않는/뿌리 깊은 바람이다”고 하면서 민족의 영원한 창성과 번영발전을 기원하고있다. 한수의 짧은 시에 알기 쉬운 표현으로 민족의 모든것을 일목료연하게 다져놓고있는데 시 전편에 민족정서의 가락이 은은히 울리고있어 사뭇 정겹다.
11수의 시에서 고향애착이 가장 선명한것이 <퉁소와 로인>이다. 우에서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이 시는 고향의 령락과 피페에서 비롯된 시인의 안타까운 심정과  이로부터 인기된 암울한 정서를 읊은것인데 범용한 서정시의 얼개를 뛰여넘고있다는데서 주목된다. 이미 우에서 간단히 언급했기에 구체적인 살핌을 하지 않는다.
모천회귀성은 모성회귀성과 통하고 모성회귀성은 또 고향회귀성과 민족회귀성으로 통하기도 한다. «어떤 귀향>이 그러한 경우이다.
 
16년전에 객지에서 떠돌던 사나이는
머리 허연 로인이 되였네
떠날 대는 호기롭게 검은 머리 흔들며 사라졌지만
병든 로구 간신히 이끌고 동구앞에
찬바라 휘몰고 나타난 모습은
그젯날의 그 사람이 아니라네
얼니 냇물에 절을 올리고  늙은 당수목에 머리를 조아려도
그때 그 시절은 돌아오지 않고
이 모든걸 헤아려주는 향풍(乡风)만이
너른 품으로 해일처럼 무너지는 육신 안아주네
 
ㅡ«어떤 귀향» 전문
 <향풍>은 고향의 품일수도 있고 어머니의 품일수도 있고 민족의 품일수도 있다. 16년전에 건장한 몸으로 고향을 떠났던 사나이가  <병든 로구 간신히 이끌고 > 백발이 되여 고향으로 돌아온다. 객지에 돈벌이를 나갔다가 망한것이 분명하다. 하기에 시인은 <찬 바람 휘몰고 나타난 모습>이라고 묘사한다. 또한 망함의 강도를 강조하기 위해 <해일처럼 무너지는 육신>이라고 말한다. 떠돌이인생에서 망그러진 육체, 해일처럼 무너지는 육체, 하지만 향풍은 그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인다.  모든걸 헤아려주는 향풍(乡风)은 한마디 원망도 꾸지람도 없이 그 <너른 품으로 해일처럼 무너지는 육신>을 따스하게 안아준다. <향풍>은 어머니의 품으로 볼수도 있고 고향의 품으로 볼수도 있고 민족공동체의 품으로 볼수도 있다.
연어가 알밴 배를 터트리려는 욕망에서 고행을 찾아가듯 시인 역시 생명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시의 근원을 탐색한다. 결국 시인은 가장 믿을만 하고 가장 너그럽고 가장 따사로운 곳이 고향이라는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시 <고향에는>에 이르러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고향에는 가장 순정한 향음(乡音)이 있고 가장 편한 휴식이 있다
고향에는 가장 따스한 온기가 있고 가장 애절한 눈물이 있다
고향에는 늙을수록 아름다운 인생이 있고
부를수록 새로운 노래가 있다
고향에는 나의 실패마저 안아주는 손길과
나의 흠결마저 곱게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다
 
ㅡ«고향에는» 전문
 
이 시는 «어떤 귀향»에 비해 울리는 빛갈이 맑고 흔들리는 가락이 따사롭다. 세상(고향)과 만나는 시인의 력사인식은 유충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완전변태의 방식이 아니라 기억에 푹 젖어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그런 인식이다. 김학송은 도시에 오기전의 도문의 한 시골에서 흙냄새와 소동냄새를 맡으며 농촌과 인연을 맺었다. 아마도 그러한 삶의 력사가 시인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고 발효되여있다가 저도몰래 시라는 젖으로 흘러나오은것 같다. 시인의 고향은   모든 소중한것들이 다  있는 유정한 보금자리이며  어머니의 다스한 품이다. 거기에는 <가장 순정한 향음이 있고>, <가장 편한 휴식이 있고>, <가장 따스한 온기가 있고> , <가장 애절한  눈물이 있고 >, <늙을수록 아름다운 인생이 있고 >, <부를수록 새로운 노래가 있다> 심지어  <나의  실패마저도 안아주는 손길과/나의 흠결마저도 곱게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다>. 고향은 아름다움이고 인정이고 따스함이고  노래이고 춤이고 사랑이고 너그러움이이다.
모천회귀로서의 김학송의 시는 고향을 찬미하는 맑진 목소리도 있지만 많은 경우 울림이 회색적인데 그것은 민족의 우환의식에서 비롯된것이다. <나그네는 구름 되여>에서도 그러한 침울한 숨결이 들린다. 개혁개방후 국문이 열리면서  많은 조선족들이  연해지구로 해외로 돈벌이 나갔다. 그 와중에  돈은 벌었지만 많은 페단과 비극도 초래되였다. 떠나고싶어 떠난것이 아니고 보내고싶어 보낸것이 아니다. 돈이 없어, 핍박에 못이겨 떠나고 보낸것이다.
 
기차는 산해관을 지나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기차의 속도로 달리는 마음은 뒤켠에 고향을 부려놓고
앞으로만 앞으로만 나아간다
친지들의 부름소리가 따라오지만
앞개울을 넘지 못하고 산에 막혀 돌아간다
깊이를 알수 없는 호수가 나그네의 꿈을 삼켜버리고
가도가도 생소한 풍경만이
구름너머에 마을이 있다고 알려준다
갈것들이 다 가버린 부락에선
올것들이 오지 못해 울고있다
 
ㅡ«나그네는 구름 되여» 전문
 
살아 생생한, 오늘의 조선족  농촌마을의 축도가 아닐가. 언제부턴가 연길역전과 연길공황은 눈물과 웃음으로 반죽된 조선족들의 리별과 만남의 현장으로 되여버렸다. 우의 시는 그 현장속에서 눈물쪽에 렌즈를 돌리고있다.  시에 등장하는 나그네는  돈이라는 꿈을 위해 <깊이를 알수없는 호수>에 뛰여든다. 떠나가는 나그네의 등뒤에서  “친지들의 부름소리가 따라오지만/앞개울을 넘지 못하고 산에 막혀 돌아온다”. <산>은 떠남을 유발한,  떠나지 않으면 아니될 , 떠남을 핍박하는 현실상항이다. 즉 가난에서 탈출하려는,물질적욕구를 만족하려는 갈증이다. 하여 <산>을 넘어 <깊이를 알수없는 호수에 > 뛰여든 사람이 어찌 한둘이랴. 결국 “갈것들이 다 가버린 동네에서/올것들이 오지 못해 울고있다”
«정거장소나무»는 고향의 스산함과 쓸슬함을 고독과 외로움의 무늬로 수놓고있는 시다. <정거장>은 현실부재로서의 고향이고  <주름투성이소나무는>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고향의 혼이며 <바람>은 고향의 혼을 달래주는 민족의 혼이다. 이 시는 고향은 사라진것 같지만 결국은 미구에 재생할것이며 영원히 소실되지 않을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있다. 그 리유는 장수를 의미하는 <소나무>가 고향을 지키고있기때문이며 민족의 얼인 <바람>이 <소나무에 앉아/소나문의 고독을 달래주기>때문이다. 우리는 <고독을 달래준다>를 민족의 자긍과 민족의 정기를 일깨워주고 불어놓어준다는 뜻으로 해석할수 있다.
김학송은 때론 다른 방식으로, 시골을 신비화 하는 방식으로 고향에 대한 긍지와 애착을 표현하기도 한다. <시골의 신화>에서 시인은 <농부는 안개를 팔아 꿈을 >사고 , <무지개를 팔아> <청량한 감각을> 산다고 말하며 <팔것이 많기> 있기때문에 수천년동안 향촌의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왔다고 말한다. <팔것이 많다>는 것은 가능하게 민족을 민족으로 남게 하는 모든 귀중한것들을 지칭하는것이라고 보아진다. 하기에 시인은 시골의 달빛마저도 사랑스럽고 귀중하여 <오늘밤엔 달빛이라도 팔아 이쁜 시 한줄 사야겠다>고 독백한다. 참 정답고 재미있는 시구다.
김학송은 고향과 민족을 아끼고 사랑하기때문에 민족이 민족으로 남지 못하고 동화될까바 걱정하기도 한다. <렬차에서 만난 녀자애>가 그러하다. 민족의 동화를예방하고 민족성을 고수하려는 시인의 의도는 가상하나 표현이 직설적이여서 재미가 슬하다. 필자는 이 시를 <읽기 쉬운데  시가 아닌 시>라고 본다. 그래도 건질만한 시구가  하나 있다. <입만 열면 꼬부랑소리가/논물처럼 졸졸 흘러나온다>
총체적으로 모천회귀과정에서 은은한 령혼의 가락으로 울리고 있는 김학송의 시는 고향과 민족의 뿌리에 파고들어 민족의 혈색과 호흡에 대해 사명감 높은 투시와  천착을 하고있으며 민족의 체취를 자아화하는 작업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신성한 기운을 움트게 하며 삶의 깊이와 넓이를 진정으로 헤아리려고 하고있다.
김학송시인이 이후에도 더 시인다운 시인이 되여 더 시다운 시를 쓰기를 기대해본다.
 
2014년 연길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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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aa
날자:2014-06-25 12:26:12
김선생님,진짜로 김시인의 시를 평하시는겁니까? 서로 사이가 좋으시면 옳게 평하시여야지 이게 무엇입니다! 물론 생각이 다를수도 있겠지만 풀을 꽃이라고 말씀하시는 경우에 풀이 꽃으로 될가요? 김시인도 김선생님도 얼굴이 붉어지면 좋겠습니다
Total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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