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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동일민족이라는 감정으로 형성된 모국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이 결과적으로 모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로 전환한 것이다. 물론 모국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고 해서 모두 부당한 것은 아니나 지금 나타나고 있는 극단적으로 한국이거나 북한을 부정하는 경향은 결코 정상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없다. 88올림픽을 계기로 연변조선족사회는 한국의 발전을 실감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동경심과 기대감이 부풀어올랐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국방문은 자기들은 아직도 모국의 구성원이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게되었다. 본 조사와 황승연교수의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연변조선족인들의 모국에 대한 총체적인 인상은 좋고 또 한국의 환경과 사회질서 등 환경성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나 한국사회의 인정과 가치관 등에 대해서는 강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에 대한 동일민족의 정과 관련되는 기대감이 너무 컸거나 실제적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하였을 때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국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은 그의 발전에 대한 과대 평가에서 형성된다. 즉 모국의 발전상황과 그의 포용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결핍하였기에 그들이 경험한 불만족스러운 대우가 곧바로 "민족의 정이 결핍하다"는 식의 인식으로 전환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국에 대한 기대감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겠지만 그것이 모국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한반도와 연변조선족사회는 수십년간 단절상태를 겪어왔으며 또 제도적으로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기에 부동한 가치관, 사유방식, 생활방식을 형성하였다. 엄격히 말하면 한반도와 연변조선족사회는 부동한 문화권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부동한 문화의 교류에서 상대방의 행위를 자기들의 가치관과 사유방식에 맞추어 인식한다면 커다란 문제점을 초래할 수 있다. 연변조선족인들은 아직도 사회주의식의 가치관이 농후하다, 평등의식, 집단주의 의식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의 가치관으로 본다면 한국의 권위주의적인 사회질서, 치열한 경쟁 속에 빠져있는 개개인의 관계 등은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연변조선족사회에 거의 상식처럼 떠돌고 있는 "한국은 정이 메마른 나라", "서울 깍쟁이" 등등의 인식은 자본주의식의 가치관과 사유방식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여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들의 가치관으로 상대방을 강요할 때 필연코 문화적인 충돌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민족의 감정과 경제적인 흐름을 혼돈하여 이해하는데 경제적인 행위를 민족감정이라는 추상적인 문제에 연관시켜 평가한다. 연변조선족사회는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낙후하다, 경제적으로 낙후하면 할수록 발전한 곳에 귀속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 공정한 대우란 실현되기 극히 어려운 요구이기 때문에 일체 불공정한 대우라고 인정되는 제도적이고 경제적인 행위를 모두 민족의 정이 미약한 것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보여진다. 예를 들면 연변조선족사회에는 한국이 불법체류자들에게 불공정한 대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을 추방하는 법적인 행위까지 비난하고 있다. 자기들의 경제적인 욕구를 만족하기 위하여 한 개 나라의 법까지 무시한다는 것은 그 어느 시각에서 보나 동정할 바가 못된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의 불법 행위로 인하여 한국과 중국조선족사회간의 정상적인 교류마저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행위이므로 그에 대한 법적인 제재는 상당한 합리성을 띠고 있다. 사실 연변조선족사회의 모국에 대한 불만의 정서는 그들의 경제적인 요구를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로 많이 표현되는데 이러한 불만의 정서를 거꾸로 민족감정으로 전환하여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이러한 인식은 그들과 모국간의 교류는 실질적으로 경제의 교류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고 그것을 민족감정과 혼돈하여 인식하였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고 필자는 인정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연변조선족인들의 대북한관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도 쉽게 해석될 수 있다. 본 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연변조선족인들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거의 "잘 못산다", "부담스럽다" 하는 것으로부터 형성되었는데 그들의 한국에서 경험했던 불만스러운 대우가 북한인들과 연변조선족사회간의 교류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예측된다. 즉 이러한 현상들은 경제적인 흐름으로 하여 필연적으로 나타날 문제이므로 단순히 민족감정에 귀결시켜 이해한다면 무리를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도 연변조선족인들은 모국방문에서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았다고 인정하며 그들이 한국에서 받은 부당한 대우의 이유를 합리화할 생각은 전혀 없고 또 한국도 재외동포들에 대한 합리한 정책을 펴내기를 요구하고 있으나, 경제적인 문제와 민족 감정적인 문제를 나누어 본다면 많은 문제점들은 자연히 해소할 수 있다고 느껴진다.
연변조선족의 대남북한관의 문제점들은 모국과의 교류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에 그것을 단순히 그들의 일방적인 행위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일 모국에서 연변조선족사회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본다면 연변조선족사회의 모국에 대한 인식이 너무 비뚤어질 이유가 없고 반대로 모국에서 그들을 비뚤어지게 보고 있다면 그들의 모국에 대한 인식은 더욱 비뚤어질 수밖에 없기에 연변조선족인들의 대남북한관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해소하려면 반드시 그것을 모국과의 교류라는 배경 속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연변조선족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태도는 그들이 모국에서 읽었던 한국인들의 자기들에 대한 무시와 모멸적인 태도와 관련된다. 1996년에 한국과 중국조선족사회를 뒤흔들었던 페스카마호 집단 살인사건이 바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연변조선족사회의 대남북한관 문제점의 형성에서는 모국도 한목 했다고 인정한다. 만일 우리들에게 한반도의 분열과 대중국 진출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연변조선족사회와 모국간의 관계에 아무리 큰 문제점이 존재한다고 해도 모두 정상적으로 이해해야할 문제들이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연히 해결될 문제일 따름이나 한반도의 분열과 대중국 진출이라는 배경이 존재할 때 연변조선족사회와 모국간 교류에서 나타난 많은 문제점들은 한반도의 전략적인 사고의 부족에 기인될 수 있다. 만일 모국이 거시적인 전략적 시각에서 연변조선족사회를 남북통일의 가장 중요한 교포사회, 그리고 대중국 진출에 있어서 거대한 문화집단으로 인정하고 활용하였더라면 지금처럼 황당한 문제들이 이토록 많이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연변조선족사회와 모국간의 교류는 물론 혈연적인 민족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간의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민족감정이란 빈말밖에 지나지 않는다. 연변조선족사회의 대한국관이 아무리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한국방문의 열은 식지 않고 있는 이유가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 때문이다. 그럼 한국은 연변조선족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가? 이것을 해석해야만 한국의 대연변조선족 정책기조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필자는 일찍이 한반도의 통일과 대중국진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인 지역이 연변조선족사회라고 지적하였었다. 만일 이러한 전략적인 의의를 깊이 이해했더라면 한국정부의 대연변조선족 정책은 물론 한국 주민들의 연변조선족사회에 대한 인식을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였을 것이다. 여기에서 연변조선족사회의 남북한통일에 있어서의 위치와 작용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고 한국의 대중국진출에 있어서 연변조선족사회의 전략적인 위치와 작용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위에서 지적한바와 같이 중국조선족사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방문이란 민족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경제적인 흐름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 한국의 대 중국조선족사회의 교류의 실질은 무엇일가? 필자는 십여 차의 한국방문에서 한국인들은 중국조선족사회에 일방적인 혜택을 주고 있는데 비해 중국조선족은 거꾸로 자기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사실 이러한 시각은 경제적으로 발전한 발달 국의 주민들이 쉽게 범하는 간단한 착오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한중수교 이후 대중국 진출에서 중국조선족사회의 거대한 문화자원을 저렴한 대가로 이용하고 있으며 또 그것을 이용해 금후의 대 중국 진출을 꿈꾸고 있는데 이러한 문화자원에서 얻을 수 있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이득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전에 별로 생각지도 않았던 중국조선족사회가 일시에 대중국진출을 손쉽게 이루게 할 수 있는 문화자원으로 돌변하였던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1994년 중국 청도에 600여개(1995년의 다른 보도에서는 700여개라고도 인정함)의 한국 기업체가 진출하였는데 이것은 청도에 있는 일본 기업체의 15배나 되는데 그들이 손쉽게 청도에 자리를 잡게된 원인 중 중국조선족의 작용이 엄청나게 크다고 일본인들은 말한다고 한다. 간단히 상상하여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정치적인 이념의 대립으로 하여 전혀 오해조차 없었었는데 중국과 한국의 문화에 익숙한 연변조선족사회가 없었더라면 한국이 무슨 힘으로 중국의 시장에 손쉽게 진출할 수 있었겠는가? 특히 미래에 있어서 자원이 결핍한 한국으로 두고 말하면 연변조선족사회는 더없이 중요한 전략적인 문화자원이라는 것을 명백히 지적하고 싶다.
한국과 중국조선족사회의 거래에서 민족감정적인 요소가 큰 작용을 한 것은 사실이나 본질적으로 경제의 흐름 속에서 그 교류의 실질을 파악하고 서로간 얻을 수 있는 이익구도를 제시하여야만 그들간의 교류는 건전해지고 합리화될 것이다. 필자는 한국과 연변조선족간의 교류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제시해야만 연변조선족사회의 대남북한관의 문제점을 이해할 수 있고 또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여태껏 한국과 중국조선족사회간의 교류는 너무나도 짙은 인위적이고 이상주의적인 민족의식과 감정 속에서 진행되어 왔고 그의 본질에 대한 이성적인 고찰이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하기에 경제적인 흐름에서는 문제시 될 수 없는 문제들을 민족감정적인 차원에서 다루게 되는데 그의 역적인 효과는 적극적인 효과보다도 더욱 크다. 예를 들면 본 연구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연변조선족인들의 반수이상은 한국인들이 자기들을 못 산다고 없신여긴다고 하는데 돈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도리가 없다는 면을 홀시하는 듯하다, 같은 한국인들끼리도 돈이 없으면 "걸어다니는 송장"이라고 비웃고 있는데 이국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특별히 존중해야하는 도리는 어디에 있는지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자기들을 무시한다면 교류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중국조선족사회는 왜 무시를 당하면서도 그렇게도 끈질기게 한국과의 교류를 원하고 있는가? 단순한 민족감정으로는 결코 해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무턱대고 중국조선족을 깔보거나 무시한다면 더욱 큰 문제점을 나타낼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은 중국조선족사회의 문화자원을 동포라는 구실 하나로 저렴한 대가로 이용하고 있는데 그들을 존중까지 아니하면 결국은 경제적인 도둑놈 짓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도덕적이고 민족감정적인 차원보다도 경제적인 흐름으로 파악한다면 더욱 쉽게 해결될는지도 모른다. 사실 경제의 흐름 속에서 본다면 민족감정이란 미약한 것임에 틀림없다. 쌍방의 경제적인 수요가 아니라면 오늘날의 한국과 중국조선족사회의 교류는 상상조차 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둘째, 오늘날 한국과 중국조선족사회의 교류에서 나타난 많은 문제점들은 우리들의 전략적인 사고의 부족에 기인될 수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고려한다면 중국조선족사회는 대 중국 진출에는 물론 남북한의 통일에까지도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고귀한 문화자원의 애원이므로 전략적인 시각으로 중국조선족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다른한면 중국조선족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은 또한 고귀한 문화자원이므로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서로의 협력이라는 전략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렇게 무궁무진한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하지만 우리들의 교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도대체 왜 형성되고 있는가? 전략적인 사고의 결핍이 그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셋째, 연변조선족과 한국 그리고 북한간의 교류에 필요한 문화전략이 결핍하였고 특히 언론매체들의 오도에 감정적으로 좌우지 되는 경향이 농후한바 서로간의 불신과 갈등이 날로 싸여가고 있다. 문화전략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많은 정치와 경제의 문제들은 문화적인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으며 또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고 부동한 문화권 사이의 가장 큰 文化功能은 그들의 이질성에 대한 접수와 동질성에 대한 추구에서 온다는 것이다. 즉 부동한 문화권은 모두 그 존재하는 이유가 있으므로 그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서로간 교류의 필수적인 조건이며 문화의 이질성을 흡수하여 자체 문화의 부족 점을 보완하므로서 문화권간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문화동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변조선족사회와 모국간의 건전한 교류를 추구하려면 우선 문화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즉 정부와 언론매체들은 적극적인 방면으로 사회를 유도해야 하며 서로간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고 동질성을 구축하는 문화적인 풍토를 형성해야 한다. 여태껏 연변조선족사회와 한국간의 교류를 살펴보면 이러한 문화적인 전략의 결핍으로 서로의 불신을 초래하였고 나아가서는 경제적인 손실도 엄청나게 보고 있다. 예를 들면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에 투자를 바라면서도 또 중국조선족에 대한 우려심이 점점 더 커가고 있고 심지어 중국인을 고용할 지언정 조선족은 고용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중국에서의 투자 실패 원인을 중국조선족들에게 미는 것이다. 물론 중국조선족들 중 나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한국인들의 대 중국 투자의 실패 원인을 중국조선족에게 돌리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 하겠다. 한국인 윤영태씨는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좌절과 실패를 당하고있는데 그 주요 원인은 중국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남의 문화, 생활습관, 사고방식을 알고 존중하는 것이 남의 땅에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관건"이라고 자기의 경험을 소개하였으며 오정창씨는 "청도시에 진출한 700여개 한국업체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인과 중국조선족간의 화합여하가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되고 있다. 초창기부터 조선족들에 의거하고 그들과 화합을 잘 이룬 업체는 흥성했고 반대로 조선족들의 작용을 무시한 업체는 일이 순조롭지 못하였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로간 문화적인 이해와 협력이 그들의 성공을 이루게 한다고 해도 된다. 물론 중국의 조선족인들도 한국과 북한의 문화를 존중하고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많으나 특히 한국인인 경우 이러한 점을 더욱 깊이 사색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고 하는 지역일수록 문화중심주의적으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이해하려하지 않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조선족문화를 존중하지 않으면 한국의 대중국진출의 성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기에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필자의 경험으로 말하면 한국인들은 중국조선족의 역할을 근근히 통역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고 생각된다. 사실 중국조선족사회가 저렴한 가격으로 그들의 문화자원을 한국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으며 또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필자도 중국조선족의 거대한 작용에 비해 그들이 한국에서 받은 대우가 너무나도 불공정하지 않은가를 종종 생각해 본다. 아무튼 연변조선족인들의 대남북한관의 문제점들을 해소하려면 모국의 보다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연변조선족사회의 대남북한관의 문제점들은 한 면으로 남북한과 중국조선족간 교류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 문화적인 충돌을 예시하고 있으며 다른한면으로 연변조선족사회의 자아각성을 반영하기도 한다. 하기에 그들에게 문제점들이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할 도리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타국의 문화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서로간의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5. 맺는 말
전략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연변조선족사회는 남북통일의 가장 중요한 교포사회이며 한반도의 중국 진출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문화자원을 소유한 문화집단이다. 이러한 중요한 위치에 처해있는 교포사회와 모국간의 교류는 우리민족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중국과 한반도간의 교류에서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기에 마땅히 전략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역할을 충분히 긍정하고 중요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변조선족사회와 한반도간의 교류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존재하고 있는바 시급히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민족의 통일과 미래의 발전에 커다란 저애력을 형성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교류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극히 자연스러운 문제들이므로 정상적이라고 인정해도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은 더 깊은 차원에서 우리들의 전략적인 시각이 결핍하다는 것을 설명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60-70년대 한국인들의 일본과 미국 진출과 마찬가지로 연변조선족이 한국진출에서 그 어떤 괴로움을 당했거나 그 어떤 가슴을 찢어내는 눈물을 흘렸다고 해도 모두 경제의 흐름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모국에서의 경험이 모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형성하였다고 할지라도 모국의 현실을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과 기대감을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결코 나쁘다고만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는 한국인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이거나 문화적으로 연변조선족사회보다 월등히 우월하다고 자부심을 느껴온 그들이지만 연변조선족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또한 그들의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한계를 나타내는 계기이기도하다. 즉 한국과 한국사회의 포용능력의 한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과 연변조선족사회의 교류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정상적인 관계의 정립에 있어서 필수적인 단계이고 또 필요한 진통이라고 느껴진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과 연변조선족사회간의 교류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외면한 채 방치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한반도는 아직도 분열상태에 처해 있으며 미래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민족의 공동체 의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의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고려한다면 지금이 바로 한반도의 통일과 대 중국 진출에 있어서 한국과 중국조선족사회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 절호의 시기를 놓친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하기에 필자는 한국과 연변조선족간의 거래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지만 시기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피는 물보다 짙다"는 말로 우리민족의 깊은 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러한 표현은 우리민족사회의 문제점을 감추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우리민족의 문제점들을 다루려하는 일부 사람들의 좋은 구실로밖에 되지 않는다. 본 조사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매일과 같이 우리민족의 깊은 정을 논의하면 할수록 "정이 메말랐다"는 결론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한 개 민족의 정체성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것이 없으나 아직까지 서로를 완전히 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서로간의 이익구도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 기초 상에서 서로의 협력을 구상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고 전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노력이 더욱 깊은 민족의 정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서는 연변조선족사회와 북한간의 관계에서도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지금 연변조선족사회의 북한에 대해 그들이 잘 못살고 부담스럽다는 측면에서 많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미래의 교류에서 그들이 북한주민들을 무시하고 모멸적으로 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을 예시한다. 이런 예측이 가능하다면 연변조선족인들의 대북한관을 정확한 방향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소위 한민족의 정이라는 감정적인 요소로만 한민족의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사유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의 북한 주민들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는 결코 피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연변조선족사회와 북한간도 뗄 내야 뗄 수 없는 이익구도가 존재하고 있다. 즉 중국조선족사회가 건전하고 잘 산다면 북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북한이 개방하고 잘 산다면 중국조선족사회도 잘살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연변조선족사회에서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런 이익관계를 제시한다면 그들도 북한 주민들을 무시하거나 모멸적으로 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민족은 더욱 무거운 짐을 떠메고 있다. 탈냉전의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다른 민족들은 일체 유리한 조건들을 이용하여 세계적인 경쟁속에 뛰어들어 자기들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아직도 손바닥만한 땅마저 동강나 있으며 아직도 한민족공동체의 문화적인 기반마저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자세로 21세기를 들어선 우리가 어떻게 미래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아무튼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지금이 바로 전략적인 시각이 가장 필요한 때라고 보여진다.
2002.12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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