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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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굽쇠 주인공 왜 죽였을까?
2014년 10월 28일 09시 26분  조회:5946  추천:0  작성자: 김정룡
영화 소리굽쇠, 주인공을 왜 죽였을까?

영화 제작사들이 연변거리라 부르는 조선족밀집지역 일번지 가리봉에 와서 영화를 많이 찍어 시사회 참가 초청을 여러 차례 받았으나 한 번도 가지 않다가 조선족1급 배우 ‘쑤이러우(水肉)’로 소문난 이옥희 씨가 조선족으로 처음 한국영화에 캐스팅 된 영화 시사회 초청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10월 23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영화 소리굽쇠 시사회가 있었다. 시사회에 참석하는 것은 영화관에 개봉되기 전에 미리 볼 수 있는 특권이 있으나 특권을 향수하는 대신 홍보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의무가 있다. 기자의 신분으로 참석하였으니 소식보도 식으로 기사만 쓰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필자는 조선족 위안부 할머니(이옥희)의 파란만장한 삶의 고통과 손녀 향옥(조안)의 코리안 드림을 담은 스토리로 만들어진 영화라 기사도 기사지만 영화평을 써내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한국에서 위안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혹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것은 여러 편 있었지만 영화로는 소리굽쇠가 처음이라는 것, 조선족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선족 배우가 출연하여 공감을 진실성 있게 느끼게 되는 것, 감독을 비롯해 배우와 스탭 전원이 재능기부로 영화가 제작되었다는 것 등등의 의미가 있다.

일제 때 경상남도 밀양에서 천진난만한 소녀가 일본순사한테 속이어 만주 방직공장에 취직되는 줄 믿고 따라 나선 것이 일본군 위안부 생활의 시작이었다.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면서 모진 고통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조선족 할머니로 중국 흑룡강성 오지에서 살아왔다. 할머니에겐 유일한 핏줄로서 손녀 향옥이다. 향옥이는 중국 심양에서 통역 일 하다가 한국에 어학연수 기회가 생겨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입국한다. 향옥이는 통역사 공부하는 한편 조상의 연줄로 귀화수속을 밟는다. 이 과정에 신원보증을 선다고 나선 한국인이 돈을 사기치고 사라져 절망하게 된다. 귀화하면 할머니를 한국에 데려가겠다던 약속이 물거품이 되자 귀국하려고 서두른다.

이 때 덕수(김민상)라는 한국인 노총각이 나서 향옥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덕수는 할머니 소녀 때 첫사랑으로 좋아하던 동네 오빠의 손자이다. 향옥이가 한국에 떠날 때 할머니가 자신의 첫사랑 영감을 찾아보라고 부탁하면서 60여 년 간직해 오던 소리굽쇠를 목에 걸어준다. 마침 덕수 총각도 소리굽쇠를 간직하고 있어 과거 할머니가 맘에 품고 살아온 분의 손자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덕수 아버지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피해자이다. 원폭이 덕수 가족에게 남긴 피해가 영화에서 드러난다. 덕수가 향옥이를 설득하여 한국에 남게 하고 두 사람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덕수는 시골에서 딸기 농사를 지으면서 심성이 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의 열매가 생겨 향옥이가 임신한다. 허나 태아가 뱃속에서 죽는 비극을 맞이한다. 원인이 바로 덕수 아버지가 원폭피해자인데 아들에게까지 후유증이 미쳤던 것이다.

덕수가 절망하여 망가진 모습으로 일인시위도 해보고 하다가 향옥의 곁으로 찾아온다. 잘 살아보려고 결심하는데 동네 양아치들이 국제결혼한 조선족여성들의 흉을 보는 소리 듣고 참지 못하고 싸우다가 죽는다.

부부가 알콩달콩 깨알 쏟아지게 잘 살고 있을 무렵 출입국 공무원이 덕수의 집을 방문하여 위장결혼여부를 확인한다. 진짜 결혼이 맞냐를 확인하려고 집안 곳곳을 샅샅이 훑어보며 하는 소리가 “요즘 국제결혼 온 여성들을 믿지 마라. 돈 관리를 마누라에게 맡기지 마라.”는 등 마뜩치 않는 말들을 늘여놓고 사라진다. 덕수가 죽자 출입국 공무원이 또 나타나 향옥에게 출국명령을 내린다. 남편이 죽었으니 한국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기에 불법체류자가 되기 전에 출국하라는 것이다.

남편이 죽자 향옥이는 재산을 정신대연구소에 기부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었던 식당을 운영하는 남편 의형제한테 인사하고 귀국하려고 찾아갔는데 문밖에서 출입국 공무원의 “요즘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 여성들이 남편의 재산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죽었으니 지금쯤 오디서 좋아 웃고 있을 것이다. 다시 이 가게에 나타나면 제보하라. 중국에 추방하게.”라는 억울하고 한심하고 괘씸하기 그지없는 말을 듣게 된다. 향옥이는 이젠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절망을 느끼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정처 없이 걷고 걷다가 다리 위에서 화물차에 치여 젊은 생을 마감한다.

너무 슬프다. 코리안 드림이 너무 슬프다는 얘기다. 주인공인 조선족 젊은 여성을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가? 살릴 수는 없었을까? 만약 내가 감독이라면 절망에 빠져 자결하려고 한강에서 투신하려고 할 찰나 평생 자기(손녀) 하나만 바라보고 모진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오신 할머니가 눈에 밟혀 멈추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재기에 성공하려고 이를 악문다. 학원에 계속 다니고 통역사의 꿈을 이뤄 한국에서 맹활약하는 해피엔딩으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예술을 모르는 나의 천박한 생각일 뿐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소리굽쇠를 포인트로 전개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감독의 설정에 주인공 향옥이가 죽기로 되어 있는지 모른다. 소리굽쇠의 특성을 보면 할머니 일생이 불행하니 덕수 가족도 불행했다. 남편 덕수가 죽으니 아내인 향옥이도 죽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것이 곧 예술이다. 내가 아무리 코리안 드림이 너무 비극적으로 묘사되어 영화가 아쉽다고 외쳐도 무가내다.

그렇다면 소리굽쇠란 어떤 존재일까? 소리굽쇠의 특성을 모르면 영화가 도대체 어떤 판국인지 이해할 수 없다. 영화란 처음을 조금 보면 결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으면 그건 예술이 아니다. 시종 아리송하다가 웬 막판에 무릎을 치며 그러면 그렇지가 나와야 진짜 예술적으로 잘 된 영화이다.

소리굽쇠 영화 예술 묘기가 또 하나 있다. 향옥이가 코리안 드림이 비극적으로 끝나자 고향 집에 돌아와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영화 첫 시작 화면이 향옥이가 밧줄에 목을 매는 것으로 전개된다. 중간 중간 때때로 향옥이가 밥을 먹지 않고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는 장면이 나오고 할머니가 너무 속상해 듣지 않는 말을 혼자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영화 끝날 무렵 한국에서 유골함이 날아온다. 마지막 화면은 할머니가 향옥이한테 너를 먹이려고 씨암탉을 잡는다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그렇다면 처음 화면부터 끝날 무렵까지 향옥이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심할 때엔 밧줄에 목을 매는 장면들은 현실일까? 할머니의 꿈(환각)일까? 할머니가 위안부 생활하면서 겪은 고통이 너무 심하고 후에 한족 사내와 살면서 더러운 기생이라는 욕을 먹으며 모진 매 맞던 고통 때문에 몸은 살아 있어도 정신은 이미 죽어 영혼이 떠도는, 꿈과 현실이 망각되는 비몽사몽 속에서 살아가는 비극,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예술묘기이다. 관객들이 이 예술묘기를 알아내려면 역시 소리굽쇠의 특성을 파악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배우들의 언어표현이다. 쑤이러우 배우의 구수한 연변말도 좋았지만 향옥이 배우를 맡은 조안 씨의 연변말 구사가 오리지날 연변말에 가까워 칭찬하고 싶다. 과거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변말 한다는 것이 평양말 본 따 어색하기 그지없는 연변말이랍시고 스크린에 올리고 가정 집 안방을 휘저은 사실이 메스꺼울 정도로 거부감을 느꼈었는데 소리굽쇠 영화는 연변말 구사가 잘 되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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