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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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優와 劣(김정룡)
2008년 06월 16일 09시 36분  조회:6275  추천:112  작성자: 김정룡

 제8부 부  록


한류의 優와 劣


김정룡


 한류라는 말을 얼핏 보면 문자 그대로 현재 중국을 비롯한 아세아지역에서 한창 거세게 불고 있는 한국바람의 현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기실 그 유래를 따지고 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우선 한류라는 말은 한류의 주역인 한국인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수년 전에 중국인이 지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보자. 즉 왜 중국인은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일본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가 서서히 중국에 밀려들기 시작했고, 특히 1978년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을 선포한 후 일본의 가전제품을 비롯해서 자동차, 영화, 소설, 잡지 등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는데도 그 당시 중국의 그 어느 지식인도 그러한 현상을 ‘일류(日流)’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중국에서 ‘일류’라는 말을 지어내지 않았던 이유는,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급속히 자본주의대국으로 부상하였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중국의 장개석, 노신, 곽말약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재들이 일본유학을 다녀왔고, 또 근세부터 일본인이 서양의 것을 번역한 철학, 과학, 화학, 물리, 지식인 등 술어들이 중국에 역수입되었으며, 그리고 뼈아픈 일이기는 하나 일본침략을 받는 것까지 경험한 중국인의 머릿속에는 ‘일본제품’이 중국에 밀려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19세기 말부터 일본의 모든 것에 대해 별로 신기하지 않을 정도로 면역력이 생겼기 때문에 ‘일류’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한국드라마, 가요, 전자제품, 자동차, 라면을 비롯한 식료품 및 대중국투자붐 등 일련의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바람이 마치 1970년대 말부터 약 20여 년 동안 중국대륙에서 불고 있던 일본바람과 똑 같은 현상이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에 대해선 ‘일류’라는 말을 쓰지 않은데 비해 한국에 대해 ‘한류’라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문제부터 풀지 않고 한류를 운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빈종이장만 놓고 군사를 논하는(紙上談兵) 것에 지나지 않는다.

 ‘류(流)’란 일종 시대적 흐름이거나 시대적 현상을 나타내는 말인데,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우리는 그 파급효과를 영향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 ‘류’가 내적으로 산생된 것이 아니고 외적으로 흘러들어온 것이라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자(일본)에게 ‘류’를 붙이지 않고 후자(한국)에게 ‘류’를 붙이는 것은, 전자의 영향은 필연인데 반해 후자의 영향은 우연이라고 인식하는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즉 일본이 그만큼의 실력을 갖춘 것은 필연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중국에 흘러들어온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는 당연한 일인데 비해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별로 볼꼴이 없는 것으로 인식해왔고 따라서 최근 몇 년 사이에 흘러드는 한국바람은 생각 밖의 우연이라 인식하는데서 ‘한류’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인지상정으로 말하자면 갑자기 흘러드는 한 흐름이거나 현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필연이라고 인식할 때는 충격을 적게 받거나 받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우연이라고 인식할 때는 충격이 크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류’라는 말은 중국인이 한국인에 대한 콤플렉스 및 그로 인하여 받은 충격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단 중국 측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역시 한국 측의 생각이기도 하다. 즉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측과 한국 측 모두가 한국의 것이 그토록 빨리 중국시장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러므로 받는 입장에 있는 중국이든 주는 입장에 있는 한국이든 한국바람에 대해 당황해하는 분위기에서 서로 다른 각도로 한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중국인은 한국의 문화전통에 대해 매우 낯설다. 그리하여 한류연구에 있어서 한국인의 고유한 민족적인 소질보다 한국이 어떻게 단시간 내에 빨리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는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연구하다보니 온전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정작 한국인은 자기네 민족적인 문화전통과 민족소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필자가 보기엔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인은 기껏해야 한류에 대해 ‘현대기업경영 마인드와 노하우, 제품의 질과 브랜드, 몇몇 배우의 인기, 중국시장에 대한 성공적인 답사’ 등등의 요소를 갖고 연구하다보니 역시 온전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중앙대 총장이신 박범훈 교수는 “한류 속에 한국이 없다.”고 지적하고 본대학에 한류아카데미를 설치했다. 이는 실로 정곡을 찌른 지적이며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박범훈 교수처럼 실질적인 태도와 조치가 있는가 하면 또 한류연구에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을 하는 분들도 있다. 이를테면 00교수 분은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한류’는 일시적인 유행을 뜻하기에 한류를 살리려면 ‘한류’를 죽여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한류’라는 말이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뜻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결코 ‘한류’의 전부의 뜻이 아니다.

 중국인이 ‘한류’라는 말을 지어낼 적에 한국 것이 중국에서 일시적으로 유행하다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지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류가 일시적일 수도 있고 얼마동안 지속될 수도 있고 또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한류를 일부러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분이 한류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고 마는 것을 막자는 의도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말이다. 

 중국이 수천 년 동안 주변국에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수출해왔으나 종래로 ‘한류(漢流)’ 속에 중국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이 20세기를 통털어 주변국에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수출해왔으나 종래로 ‘일류(日流)’ 속에 일본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구열강들이 지구촌에 이르는 곳마다 식민지를 개척해왔으나 ‘구류(毆流)’ 속에 그들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일까? 중국은 유교와 도교라는 문화전통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신도(神道)적 신념이 강하기 때문에, 서구는 기독교의 이념이 강하기 때문에 모두 나름대로 민족적인 전통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왔기에 자기네들의 대외영향은 당연한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이와 반면에 유감스럽게도 한국과 한국인은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민족이라고 하지만 종래로 역사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린 적이 없으며 또 자민족의 종교문화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한국인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연구가 매우 인색할 정도다. 그리하여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한류열풍에 대해 당황해할 뿐만 아니라 한류의 힘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명확히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곧 한류의 열세이자 비극이다.

 필자는 한류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데는 필경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숨은 힘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아울러 그 힘이 한국인의 문화전통에서 생겨난 것으로서 세상의 그 어느 민족보다 못하지 않는 훌륭한 문화전통이라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류 속에는 필경 한국이 있다.” 이 명제를 증명하자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한류의 루트를 두 가지로 나눈다면, 그 하나는 한국 땅에서 벌어진 ‘사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의 대외수출이다. 전자의 경우 <2002년한일월드컵> 시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붉은악마의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고, 후자의 경우 현재 중국을 비롯한 아세아지역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이다.

 <2002년한일월드컵>에 앞서 있었던 <88서울올림픽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이 지구촌에 전해지자 수많은 나라들이 쇼크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수많은 나라들에서 코리아란 나라가 도대체 지구의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크를 받은 나라들에서는 코리아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면밀하게 분석했다. 특히 구쏘련을 비롯한 동구공산권에서 가장 크게 쇼크를 받았는데, 왜냐하면 코리아는 자본주의 길을 잘못 선택한 탓으로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주제에 무슨 자격과 힘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큰 잔치인 올림픽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가는 의문 때문이었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자기네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운동선수보다 각 분야의 전문가 고찰단 성원을 더 많이 파견했다. 실제 눈으로 확인한 결과 전에 소문으로 들었던 것은 전부 거짓이었고 자기네들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는 것을 보아냈다. 당시 그들은 귀국하여 사실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나라에 바쳤다. 결과는 한마디, 즉 “<88서울올림픽대회>는 구쏘련을 비롯한 동구공산권의 몰락을 불러오는 촉매제였다.”

 다른 한 측면으로부터 볼 때 한국인은 <88서울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므로 인하여 세상에 이름 없던 코리아가 국제무대에 명함을 올리게 되었다.

 코리아민족은 본래 훌륭한 문화전통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왕조정치의 탄압과 군사정권의 압제 하에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오다가 민주화바람이 정착하기 시작해서 드디어 21세기 벽두에 <2002년한일월드컵>을 통해 자신들의 장끼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었다. <88서울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2002년한일월드컵>을 순리롭게 치를 것이라는데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월드컵을 통해 코리아를 세상만방에 잘 알려지게끔 하는가는 것이 당시 한국인의 중심과제였다. 결과는 붉은 악마의 사건을 통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으며 한류열풍의 기폭제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렇다면 붉은악마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먼저 표면에 드러난 형식적인 것부터 살펴보자.

 첫째 붉은색의 의미

 월드컵 당시 운동장에 직접 가서 응원하는 붉은악마만 홍색유니폼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길거리응원에 나선 무려 700만에 달하는 축구팬들도 전부 일색으로 홍색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니까 붉은악마의 대오는 700만인 셈이다. 이는 인류역사 이래 최초의 사건이다. 

 붉은색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코리아민족은 복식선택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흰색 옷을 입기를 즐기기 때문에 백의동포라고 부른다. 그러나 전투에 임하여서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동양의 색문화전통에 있어서 붉은색은 생명의 색이며, 승화의 색이며, 상승의 색이며, 발전의 색이며, 전진의 색이며, 투쟁의 색이며, 의지의 색이며, 분투의 색이며, 승리의 색이다. 축구는 일종 평화적인 전투이다. 그러므로 전투의 승리를 바라기 위해 붉은색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악마는 모든 것을 두려워함이 없고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이므로 역시 전투의 승리를 바라기 위해 선택된 호칭이다.

 둘째 응원구호의 의미

 “대~한 민국! 짜자장 짱짱!”의 율동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대’를 길게 뽑아 2박으로 하고 ‘한’과 결합시켜 본래 2박이던 ‘대한’을 ‘대~한’인 3박으로 만들고, ‘민국’을 2박으로 만든 것은 3박과 2박의 조화인데, 3박의 율동은 코리아전통에 있어서 천지인삼재사상에서 유래된 것이고, 2박의 율동은 음양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당시 서구지역에서 온 축구팬들이 “대~한 민국! 짜자장 짱짱!”하는 율동에 감동을 먹고 따라 외쳐보려고 애썼으나 도무지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왜일까? 서구지역의 음악전통은 4박이 위주이며 또 코리아민족음악처럼 굴절이 심한 율동이 없기 때문에 갑자기 따라 외치자니 입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인은 3박과 2박의 조화율동을 쉽게 따라 외칠 수는 있으나 왜 하필이면 중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코리아민족이 3박과 2박의 조화율동으로서 응원열기를 북돋았을까? 당시 동시개최국인 일본의 응원구호의 율동은 코리아에 비해 참으로 초라했는데, 이것이 곧 일본인과 코리아민족의 음악예술기교의 차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코리아인의 응원구호의 율동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이었다.

 셋째 붉은악마의 자발적인 참여 의미

 이북에서는 쩍하면 10만 명이 동원된 집단체조행사를 펼친다. 그 예술기교를 놓고 보면 역시 세상에서 가장 멋진 표현이다. 하지만 이북의 집단체조행사는 타의(他意)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에 반해 붉은악마의 경우 수백만의 팬이 거리응원에 참여하였으나 정부의 간섭도 없었고, 그 어느 단체의 동원활동도 없이 순수하게 자발적인 참여였다. 이는 인류역사 이래 초유의 사건이었으며 당시 전파를 타고 그 열광적인 모습이 세상만방에 알려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그 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건의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정말로 인류역사 이래 최초의 기적이다. 이 사건을 통해 코리아민족은 얼마나 문명한 민족인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축구종가인 영국, 터밭이 없이는 살아도 축구장이 없이는 못산다는 브라질, 국내리그로 세상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에서도 여태까지 한국인과 같은 그렇듯 멋진 광경을 연출해내지 못했다.

 필자는 붉은악마의 사건에 대해 한국의 일부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일시적인 유행이다.”, “할일이 없는 젊은이들의 소행이다.”, “군국주의의 부활조짐이다.”, “파쇼의 위험이다.”, “천시 지리 인화가 그러했기에 한국인은 천지개벽을 이루어냈다.”는 등등의 견해와 달리하고 싶다. 즉 붉은악마의 기적적인 사건은 코리아민족문화전통의 힘이 표출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연세대 유동식 교수는 저서 <<풍류도와 한국인의 종교사상>>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풍류도는 비록 종교는 아니지만 한국인의 사상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해왔으며 풍류도의 핵심의미내용이 곧 ‘멋’이다.” <<추한 한국인>>의 저자 가세히데아키(加漱英明)는 “‘멋’이란 어휘는 같은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필자는 한중일 삼국언어에 익숙한바, 확실히 ‘멋’이란 말은 중국어와 일본어로 정확히 번역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말 ‘판’이란 어휘도 역시 우리민족만 사용하는 특수용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우리민족은 ‘멋’을 추구하고 ‘판’을 벌리기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것을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붉은악마의 사건도 역시 코리아민족의 특유한 ‘멋’과 ‘판’의 문화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코리아민족은 일상생활에서 무엇이든 멋지게 하려하고 ‘판’에 대한 참여도가 그 어느 민족보다 높고 또 기왕에 판을 벌리는 바엔 한바탕 떠들썩하게 하는 것이 생활특징이다. 붉은악마는 확실히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관을, 가장 떠들썩한 판을 탄생시켰다. 

 확실히 붉은악마의 사건은 한류를 절정에로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학계에서 그렇듯 멋진 한류를 일으켜놓고도 그것을 한류라고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벼라별 당치도 않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것이 또 하나의 한류의 비극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중국의 청년남녀들이 한국에 관광갔었는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한일월드컵> 때에 감동을 먹고 일부러 배우러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가서 열심히 연마해서 2008년북경올림픽 때에 써먹을 타산”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붉은악마의 사건이 중국대륙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에 얼마나 큰 견인차역할을 하고 있는가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음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한류열풍에 관해 논의해보자.

 한국의 것이 외국에서 호평 받는 이유는, 한국음식은 맵고 얼큰해서 쨍하게 위까지 자극하는 ‘멋’이 있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제품은 브랜드가 ‘멋’이 있고, 한국가요와 드라마는 연예인들의 세련미와 한민족의 특유한 미, 즉 한민족의 특유한 ‘멋’이 있기 때문인데, 그 ‘멋’은 중국인과 일본인 및 기타 여러 민족에게서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는 ‘멋’이다.

 한국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 있는 이유는, 중국이 문화혁명 때문에 전통적인 유교식 가족분위기가 깨지고 또 1970년대 후반부터 한 자녀만 낳게 하는 산아제한정책 때문에 한국인과 같은 가족적 분위가 사라졌으므로 한국드라마를 통해 잃어버린 전통가족분위기를 심리상에서나마 되찾아보려는 마음에서 매우 즐겨보고 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력과 미적 감각 및 스토리가 재미있는 등 요소들도 인기 있는 요소들이다.

 한국역사극, 예하면 <대장금>이나 <명성황후>가 중국에서 인기 높은 이유는 중국역사극은 매우 딱딱한 분위기가 짙은데 반해, 한국역사극은 활발한 분위기가 있으며 인간미가 돋보이고 또 배우들의 패션도 아주 ‘멋’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 높은 이유는, 주로 일본여성들이 냉혈동물과도 같이 정이 메마른 남편들과의 생활에서 질식할 것만 같은 가족분위기로 살아온 심리상의 고통을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멋지게 반영한 한국드라마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인의 고유한 물처럼 따분한 생활분위기에 비해, 한국인의 활기 있는 멋진 생활에 도취되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과거시대와 달리 그 어느 특정민족이 지어낸 특정종교에 열광하는 시대가 아니다. 거꾸로 사람들은 삶의 질을 다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그 어느 민족보다 한국인이 외모를 가꾸는 멋진 세련미가 가장 돋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아울러 한국인의 역사적인 외왕(外王)과 내성(內聖)을 중시하는 ‘멋’의 전통이 중국인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한국인의 외왕 추구에 있어서 개별적으로 돈깨나 있다고 폼 잡고 중국인이 가난하다고 시기하거나, 체면의식 때문에 없는 게 있는 체, 못난 게 잘난 체, 모르는 게 아는 체하는 등 허세를 부리는 부정적인 면이 한류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으나, 이러한 현상은 개별적인 것으로서 한류에 있어서 극히 미세한 열세일 뿐 큰틀에서 말하자면 역시 중국인은 한국인의 세련된 멋진 삶을 본받으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류가 장기간 계속 지속되게 하려면 물질적인 상품에 동반하여 그 만큼의 정신적인 상품이 따라서 수출되어야 한다. 현재 중국에서 한류열풍이 아무리 거세다고 하지만 필경은 물질적인 것에 치중되어 있을 뿐 정신적인 것이 매우 취약하다. 혹자는 가요,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이 정신적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필자가 말하는 정신문화는 곧 한국인의 문화전통을 반영하는 서적이다.

 중국은 서구와 일본의 정신문화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그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왔다. 그러나 현재 한류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전통에 관한 연구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류의 주역인 한국인이 자신들의 문화전통을 많이 연구하고 아울러 수출해야 한다. 중국이 일본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후 서점가들에는 일본에 관한 서적이 한 개 코너를 거뜬히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에 비해 한중국교정상화가 된지 13년이 넘는 오늘날에도 중국서점가에는 한국에 관한 서적이 한 개 코너는커녕 달랑 몇 권정도 뿐이다. 중국 젊은 대학생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류, 한류하고 떠들지만 정작 한국문화전통을 알 수 있는 책이 보이지 않으니 한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는 천만번 지당한 말씀이다.

 지난해 <<동아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중국대학생관광단이 한국에 갔는데, 간판, 푯말, 비문 등에 한자가 적혀 있는 것을 목격하고 “엉, 한국에서도 한자를 쓰고 있네!”라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중국인이 한국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거꾸로 일본에서 한자를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중국대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은 한국을 어느 정도로 알고 있을까? 2003년 일본고등학교 부분적인 민의측험(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고등학생 중 30%가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고 여기고 있고, 무려 50%가 한국은 대만처럼 중국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20%만 한국을 독립국가로 알고 있다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반세기 동안 한국인이 철석 같이 우방이라 믿어왔던 미국도 고등학생과 대학생 30%가 한국은 대만처럼 중국의 일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한류열풍이 어쩌고저쩌고해도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 및 한국인이 종주국처럼 50여 년이나 받들어왔던 미국이 한국에 대해 그 정도로 생소하게 느끼고 있다면 기타 나라들이야 더 말치 않아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중국이 낙후하고 어떻다할지라도 한국에서 학교 문을 나왔다는 사람치고 <<삼국지>>를 읽지 않은 자가 없고, 일본에서는 <<삼국지>>를 읽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상대도하지 말라는 유행어가 있다. 현재 일본에서 <<삼국지>>를 만화, 영화, 소설 등을 통해 해마다 2억 엔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한국도 매년 수억 원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한국과 일본에서 <<서유기>>와 <<수호지>>가 <<삼국지>> 버금으로 읽히고 있다. 이 삼대소설 속에 중국의 전통문화가 다 담겨져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중국이 어쩌고저쩌고해도 절대 무시 못한다.
 서구각대학교 도서관과 국립도서관에는 중국책이 수없이 많다. 일본책도 적지 않다고 한다. 허나 한국 책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고 한다. 지난해에 미국하버드대를 우습게 여기고 있는 영국옥스퍼드대에서 한국학과를 폐지하느니 마느니 하는 풍파가 있었다. 멀리 말고 일본 동경대학에조차 한국철학과가 없는 실정이다.

 총적으로 말하면 한류열풍은 근근히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으며 정신적인 것이 전무한 상태이며, 한류가 앞으로 계속 장기간 지속되게 하려면 한국문화전통과 전통문화를 많이 수출해야 한다.

 한류는 낙관적이면서도 앞으로 걸어 갈 길은 멀고도 험악하다.

<<문학과 예술(20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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