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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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의 유래와 조선어논쟁에 대하여
2008년 09월 16일 09시 25분  조회:6280  추천:95  작성자: 김정룡


母語의 유래와 조선어 논쟁에 대하여


김정룡 재한 조선족칼럼니스트




1997년 여름 필자 일행 셋이 광주에서 택시를 타고 우리말로 너스레를 떨었더니, 기사가 “당신네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고 물었다. 나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연변에서 온 조선족이요.”라고 했더니, 그는 연변오동축구팀을 들먹이며 반갑다는 표정이었는데, “당신네 母語는 무엇인가?”고 물었다.

모국어란 말은 근세유럽에서 중세기 유일한 문자였던 라틴어가 자신들이 사용하는 말과 다른 언문불일치현상에서 유래된 것이며, 영어로는 ‘마더 팅(mother tongue)’ 즉 ‘엄마의 혀’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모국어란 본래 ‘엄마의 혀’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은 태어나서 언어를 국가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혀를 통해 배운다는 사실, 고로 ‘엄마의 혀’를 ‘모국어’가 아니라 ‘모어’로 표현함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도올·김용옥, 저, <<여자란 무엇인가?>> 서문 참조). 일본과 한국에서 ‘모국어’라 하고 중국인은 ‘모어’라 하는데, 이는 일본과 한국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의 그늘 하(특히 한문의 영향으로 빚어진 언문불일치 현상)에 흘러오다가 중국을 앞지르기 시작해서 자기네를 중국과의 차별화를 내세우기 위해 ‘국’이란 용어에 무게를 두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네 말을 유일하게 ‘국어’라 표현하는 것은 일본과 한국뿐인 것이 좋은 증거이다.

남한의 갑돌이, 북조선의 갑순이, 연변의 김정룡이 같은 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모두 국가로부터 배운 언어가 아니라 각기 자기 엄마의 혀를 통해 배운 것이므로 모국어가 아닌 모어라 함이 십분 정확하다.

그런데 우리가 순수하게 엄마의 혀로부터 배운 언어는 세계 정치, 경제형세의 변화에 따라 싫든 좋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변화하게 마련이다. 쉽게 말하자면 힘이 약한 군체는 여러모로 힘이 센 집단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며 언어도 예외일 수가 없다.
조선족은 이주민으로서 조선반도에서 엄마의 혀로부터 배운 언어를 유대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했지만 필경 약소집단이기에 부단히 대륙언어인 한어와 본가인 반도언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현재 조선족의 본가는 남북이 쪼개져 있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매우 이질적이다. 따라서 조선족의 모어도 매우 혼란을 겪고 있다.

현 시점에서 조선족의 언어는 개혁개방 전보다 많이 변화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변화해야만 민족이 생존할 수 있다는데 대해선 의논의 여지가 없는듯하다. 문제는 엄마로부터 배운 조선어를 계속 살리는 전제하에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변해야 하는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조선족문인학사들이 나름대로 견해를 피력하고 있고, 더 뜨거운 논쟁을 위해 나의 생각도 말해보려 한다.

첫째 조선어를 한국어로 바꿔야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이 주장을 강력하게 하고 있는 것은 류연산 교수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류연산 교수의 이 주장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현재 재한 조선족이 30만이 넘고 이미 한국에 장기체류하다 돌아간 수가 10만~20만이 될 거고, 단기비자로 한국에 왕래하는 조선족 수를 합치면 어마어마한 조선족이 직접적으로 한국어의 영향을 받고 있고, 중국 내 조선족 가정들에서 한국위성을 시청하고 있고, 한국도서의 유입으로 한국어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해방이후 하나의 체계를 갖춘 조선어를 한국어로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비현실적이다.

조선어와 한국어는 비록 같은 민족어이지만 A에서 B로 바꾸자면 이에 따르는 경제적 지출도 문제이거니와 더욱 관건 문제는 인재이다.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전부 한국인을 불러들여 교단에 세울 수는 없고, 현재 조선족교사들에게 아무리 한국어 훈련을 시켜도 그들은 죽었다 깨도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다.


류 교수는 연변대학을 제외한 다른 대학에서는 조선어 아닌 한국어과를 설치하고 있는 것을 이유로 드는데, 그들 대학에서 가령 교재는 한국 것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하더라도 강의를 전부 한국 교수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와 유학했거나 국내 조선어전공 졸업자들인 조선족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를 완벽한 한국어라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199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인을 접촉하는 일을 해왔고 한국에서 독서를 많이 해 한국식으로 글을 쓰는 데는 문제없다. 하지만 말은 아직도 조선족 티를 벗지 못하고 있어 강의한다면 한국어도 아니고 조선어도 아닌 밥도 죽도 아닌 언어로 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여러 대학 한국어과 조선족 강의자들이 가르치는 언어는 나는 한국어도 아니고 조선어도 아닌 그냥 우리민족의 모어일 뿐이라 나는 본다. 대학이 이럴진대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조선어를 한국어로 바꾼다는 것은 결코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이다.

둘째 한국어수용반대 주장에 대하여
세월의 변화에 따라 언어도 부단히 변화한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사실이다. 현재 조선어논쟁에 있어서 일부 조선족 지식인들은 한국어 수용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들의 주장 중에 한국어는 잡탕언어로서 정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도 한국어가 잡탕언어라는 견해에 공감한다.

우리민족의 모어는 한어영향을 지대하게 받아와 어휘 중 70%이상이 한자단어이고 일본인처럼 한자에 대한 훈독이 없고 음독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은 음독마저 ‘리’를 ‘이’, ‘라’를 ‘나’, ‘류’를 ‘유’라 발음하는 두음법칙인지 뭔지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 이 때문에 ‘柳’, ‘李’, ‘羅’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법정소송사태까지 있었다. 한국인은 이상하게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하고, 외래어 사용에도 내적으로 시비가 없는 것이 아닐 정도로 한국어가 많은 논란을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잡탕언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일본어도 平假名와 한자를 섞어 쓰고 片假名으로 외래어를 표기하고 일상생활에서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 잡탕언어이지만 일본은 세계 두 번째로 꼽히는 선진국이고, 한국도 잡탕언어이지만 중진국으로 발전했고, 현재 우리조선족사회는 특히 경제적으로 한국에 매달려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듯 언어도 역시 선진적인 곳에서 후진적인 데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조선족의 언어도 알게 모르게 한국식으로 많이 변화해가고 있다. 한국어가 잡탕언어라 해서 배격하고 싶어 배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언어가 어떠하든 간에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수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놈의 언어인 미국식영어(영국인의 입장에서 하는 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서 세계 공용어로 된 것이 아니고, 옛날 장안 사람들의 눈에 촌놈의 언어로 인식되었던 燕京말이 표준화로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한국어가 비록 많은 폐단을 안고 있더라도 우리는 이미 수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수용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일부 지식인들의 고집처럼 조선어어문조례를 들먹이고, 서사규범을 내세우고, 조선족정체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어수용을 극단적으로 반대한다면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는 것과 다름없다.

서사규범은 문법 중심을 의미하는데, 문법이란 것은 우리민족 역사에서 끽해야 반세기밖에 되지 않으며, 입시기준을 위해 강조되는 것이고 실생활에서는 아무런 역할이 없다. 다시 말해서 문법을 알아도 그렇고 몰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나의 경우 시골소학교 3학년 때 문화혁명이 일어났고 초중부터 한족반을 다녀 조선어를 매우 엉터리로 배워 문법을 모르고 서사규범이 뭔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말로 글 쓰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일본인 谷岐潤一郞은 그의 저서 <<문장독본 >> 서문을 “문법적으로 정확한 문장이 반드시 명문은 아니다. 그러므로 문법에 갇히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학교가 존재하고 출판물이 존재하는 한 문법을 중심으로 하는 서사규범이 있어야 하겠지만 이것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란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이다. 조선족사회가 한국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고, 한국어로 의사소통할 일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조선어문조례나 낡은 서사규범에만 매달리지 말고 한국어를 수용해야 한다.

나는 흑룡강신문이 이 면에서 잘하고 있다고 본다. 즉 한국어를 수용하는 동시에 외래어에 해석을 달아주는 등 조치는 비교적 현명한 처사라 생각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는 모어를 살리는 동시에 한국어를 적절하게 단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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