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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아버지 누가 더 행복할까?
2009년 01월 28일 11시 31분  조회:5904  추천:55  작성자: 김정룡

나와 나의 아버지 누가 더 행복할까?


김정룡 재한 조선족칼럼니스트



사람들은 흔히 사회는 발전하고, 역사는 전진하고, 현재는 과거보다 낫고, 오늘이 어제보다 좋고, 미래는 오늘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공식’ 대로라면 나는 나의 아버지보다 더 행복하고 나의 딸은 나보다 행복해야 한다. 참말로 그럴까?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1917년 10월 18일(음력) 함경도 명천군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3개월 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등에 엎여 만주로 오게 되었다. 그 때 용정현 동불사 요구촌에 자리잡은 것이 장장 77년을 그 고장에서 살아왔다.

나의 아버지는 14세에 장가가서 우리 8남매를 낳았고, 나는 막내였다.

우리 집은 전통유교가문으로서 남존여비사상이 뿌리 깊었다. 어머니는 맛난 음식이 생기면 아버지를 공대했고, 매년 봄이면 개를 잡아 엿을 대려 아버지를 공대했고, 평상시에도 미숫가루를 떨구지 않았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내가 대여섯 살 때부터 남자들의 밥상에 끼웠고 밥식기를 따로 챙겨 받았으며 내가 밥을 먹고 나면 누나들이 양치물을 떠다 바쳤다.

아버지는 토지개혁에 앞장서 공산당원에 가입했고 민정, 당지부서기를 역임했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야학을 다녀 대충 글을 때웠다. 하여 민정을 맡으면서 나보다 10세 전후의 온 동네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당지부서기를 맡으면서 26명의 공산당원을 배양하여 <<연변일보>>에 실리기까지 했다. 공산당사업에 충실해서 문화혁명 전에 주덕해와 함께 사진까지 찍었다.

문화혁명 기간에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투쟁 받고 매를 맞아 한 때 정신이 이상해졌다가 문화혁명이 끝나고 나서 정신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토록 심한 풍파를 겪고 나서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따져볼 생각도 해보지 않고 오로지 공산당사업에 충실했다. 무식이 유식보다 덜 머리가 아프고 행복하다는 말이 진리인 것 같다.

아버지는 인품이 좋고 싫은 소리를 모르고, 누구네 부부가 말썽이 생기면 화해시켜주고 하면서 덕을 많이 쌓아 온 동네에서 ‘양반대접’을 받아왔다. 70이 넘어 노동력을 상실하고 가끔 몸이 편치 않으면 동네 사람들이 돈 5원을 들고 오는 사람, 닭 한 마리, 혹은 차입쌀을 몇 근 들고 문병을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당시 도시사람들이 관직에 높이 계시는 분들에게 아부로 본첨을 하는 것보다 나의 아버지한테 드리는 동네사람들의 정성은 참으로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느낌을 깊게 받았다.

아버지는 가문의 좌장이어서 매년 생일이 되면 수십 명의 친인척과 동네사람과 먼데서 온 친히 배양 받았던 후계자손님들까지 합치면 100여 명이 넘게 모여 큰 잔치를 벌렸다.

아버지가 77세 되던 해에 내가 연길에 모셔와 살다가 79세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5년 뒤에 돌아가셨다. 물론 추도식도 굉장하게 치뤘다.

아버지는 태어나서 3개월 만에 만주에 온 후 돌아가실 때까지 서쪽으로 가장 먼 곳은 돈화, 동쪽으로 도문, 동북쪽으로 왕청에 가보았다. 물론 일생 동안 침대기차를 타보지 못했고, 비행기는 구경도 못했다.

아버지가 장가가서 1942년 나의 둘째 형을 낳았을 때, 우리 집 식구는 17명이었다고 한다. 그 후 이래저래 분가하다보니 아버지 어머니에 우리 형제들만 살게 되었으나 역시 식구가 많았다.

나를 포함해 현대 사람들은 우리부모세대들은 조롱조롱 그 많은 식구들을 눕혀놓고 섹스를 어떻게 했을까는 것이 궁금하다. 물론 어떻게라도 섹스를 많이 했기 때문에 물렁 여덟 형제나 낳지 않았는가?

더욱이 우리부모세대들은 절대다수가 오로지 ‘한 구멍, 한 작대기’만 파고, 바라보고 살아왔다.

나는 연변일중 교사로 있을 때까지 오로지 사업과 가정밖에 몰랐다. 그러다가 1990년 5월 당시 하해(下海)바람의 물결을 타고 철밥통을 버리고 ‘상업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여행사가이드를 하면서 한국 관광객을 모시고 가라오케나 나이트 가서 아가씨들을 만나면 불쌍하다고 돈을 주면서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고 하면서 매우 천진했다.

그러다가 중국의 연해도시와 내지 관광도시를 돌아다녔고, 동남아를 비롯해 한국 등 외국나들이를 하면서부터 차차 순진했던 내가 ‘부화타락’하기 시작했다.

나는 적어도 나의 아버지가 향수 못했던 비행기도 지구를 몇 바퀴 돌 정도로 뻔질나게 타보았고, 별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도 많이 묵어보고, 산해진미도 많이 먹어보고, ‘여러 구멍’도 파보았다. 거기다 한 때 자가용까지 몰고 다니면서 세상을 주름잡았다. 맨발의사도 해보고, 소학교 선생도 해보고, 연변1중 교원도 해보고, 기업법인대표도 해보고 정부관원도 해보았다. 이 세상의 향수란 향수는 거의 다 해보았다.

그런데 그 ‘호화로운 향수’ 속에서도 늘 마음은 공허하고 허전했다. 나는 늘 나에게 “네가 대학시험을 7년을 봐서 성공한 것이 기껏해야 잘 먹고 잘 놀기 위해서였던가?” 만약 나의 딸애가 성인이 되어 “아버지는 일생 동안 뭘 해놓았는가?”고 묻는다면 “응 그래 한때 잘 먹고 잘 놀았다.”는 대답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100여 편의 글을 발표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곧바로 한때 잘 먹고 잘 놀았던 시절이 아니라, 애를 금방 낳고 열심히 출근하여 사업에 몰두하고, 집이 차려져 열심히 가꾸고, 올해는 녹음기를 사놓고, 내년에는 자동세탁기를 사고하면서 열심히 사업을 하고 가정을 위해 열심히 신경을 썼던 시절이다. 그다음 행복한 것은 돈을 떠나 내가 지금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사는 것이다.

나의 지금까지 생애는 겉으로는 나의 아버지에 비해 훨씬 호화롭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모든 면에서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삶이 아버지에 비해 너무 공허하고 너무 허무하다. 앞으로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걱정이 크다. 적어도 나의 아버지는 나와 형제들의 노력에 의해 마감까지 참 행복하게 보내다 돌아가셨다. 이에 비해 내가 늙으면 나의 딸에게 기댈 수 있는 보장이 없다. 아울러 나의 아버지세대는 죽으면 자식들이 적어도 청명과 추석에 아버지 묘소를 찾아 벌초하고 흙을 올리고 술을 부으면서 제사를 올린다. 허나 내가 죽으면 이러한 전통을 나의 하나밖에 없는 딸애에게 바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나의 답은 나의 일생이 결코 나의 아버지보다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세상이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변해버려 전통적인 ‘경(經)’ 이 깨져 사회가 혼란스럽고, 가정윤리가 바닥났고, 사람마다 자기만의 편함을 추구하고, 부질없는 경쟁만 부추기고 해서 현대사회는 사람이 살기가 참으로 피곤하다.

중국어에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세상의 기풍이 못해가고, 인심이 옛날 같지 않아, 오늘이 과거보다 못하구나!(世風日下, 人心不古, 今不如昔)”. 나는 늘 이 격언으로 나와 나의 아버지 삶을 비추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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