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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기행 4
북경외국어학원에서 영어교원으로 있는 조카 김화가 늘 “삼촌 영어는 꼭 배워야 해요.” 하고 거듭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귀등으로 흘려버렸다. 이번 시드니기행에서 조카의 말을 안들은것을 많이 후회하였고 조카의 말의 참의를 깊이 느끼게 되였다.
연길을 떠날 때 항상 부지런하고 이모저모 잘 생각하는 황인숙이가 간단한 영어를 타자해서 매 개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처음 뵙습니다.”, “만나 반갑습니다.”, “저의 명함장입니다.”등등 간단한 대화였다. 허지만 낯설고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시드니에선 이것으로만 판판 부족이였다.
회의기간에 녀성 몇분이 24시간 복무하는 버스에 앉았다. 그 버스는 온종일 고정된 로선을 따라 달린다. 길도 모르지 영어도 모르는 그들은 운전기사나 옆에 사람들과 물어볼수도 없고 함부로 내릴수도 없었다. 운전기사가 뭐라고 하는것을 그들은 "저것 봐라 운전기사가 우릴 쫒는거 같다. 절대 내리지 말자." 이렇게 약속하면서 서너시간을 남직이 달렸다. 그러다보니 방광이 터질지경이였다. 관광길에 화장실을 못 찾는것만이 안타까운 일이 어디 더 있으랴? 마침 곁에 앉았던 사람이 내렸다 다시 원래 표를 갖고 버스에 오르는것을 보게 되었다. 이때야 그들은 차표 한장이면 아무곳에서 오르내릴수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마침 버스에서 내리고보니 자기들이 든 호텔이 눈앞에 있었다. 미국에 가서 1ㅡ2년 있어도 화장실이 어디있는가 물을줄 몰라 궤춤을 쥐고 쩔쩔 매는 사람이 있다더니 시드니에 처음 온 그들이야말로 얼마나 혼을 뗏겠는가?! 후에 집에 돌아와서도 간혹 이 말이 나오기만 하면 한바탕 폭소가 터지군 했다.
1992년에 나는 태국으로 관광간적이 있다. "오케", "노" 두마디로 한달동안 그래도 가볼데를 다 가보았다.그때 나이 안많은지라 집에 가면 꼭 영어를 배우리라 결심내렸다. 정작 집에 오니 그 결심이 물거품되고 말았다. 황인숙원장과 남정애변호사는 돌아가면 선차적인 과업이 영어강습반에 참가하는것이라 했는데 지금 강습반을 다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든 호텔은 5성급 포 포인트호텔이다. 우리는 호텔에서 손시늉으로 복무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동련화방의 전등이 고장나서 전등을 가리키니 눈치빠른 복무원이 제꺽 알아맞히었다. 엘레베트를 탔는데 아무리 5자를 눌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복무원이 달려와서 우리의 방키를 제꺽 꽂는것이였다. 우리는 방의 키를 꽂아야 엘레베트가 올라간다는것을 몰랐던것이다. 이전에 들었던 재미있는 말들이 생각난다. 연변사람이 러시아에 가서 기차역전을 몰라 택시기사를 보고 "뿡- 칙칙 푹푹"음내를 내니 기사가 인차 알아차리더란다. 또 한국분이 연길에 와서 공항으로 가야하는데 언어가 안통하니 두손을 날개처럼 펼치고 "윙- " 소리를 내며 택시차를 한바퀴 나는 동작을 하니 한족운전수가 공항까지 실어주더란다. 이럴 때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수 있다.
기실 호주 영어발음이 그리 긍적적이 아니라고 한다. 미국식 영어가 아닌 영국식의 영어를 섞기때문에 딱딱한 발음은 다소 미국식의 부드러운 영어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고 들었다. 언어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 8명이 시드니 공항에 내렸을 때이다. 동춘희가 "내 려권이 어디 갔나"하고 놀란 소리를 했다. 낯선 고장에 와서 려권을 잃으면 큰일이 아닐수 없다. 동련화는 동춘희의 언니이다. 동련화가 동춘희를 가리키며 "자대밑에ㅡ"(겨드랑이)하고 소리쳐 어찌나 웃었던지 모르겠다. 누군가 화장실 갔다오면서 "금방 대배질번 (넘어질번) 했다"고 해서 또 웃었다.
우리들만이 알아들을수 있는 조선말, 우리들만 리해할수 있는 방언이 무시로 튕겨나와 웃음으로 스쳐버리니 피곤도 깡그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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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정말 빠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