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 ~는”의 매력
편집자의 말:
리동혁씨는 다년간 조선어의 연구에 끈질기게 매달리며 자신의 독특한 시각과 감성으로 "조선어의 미"의 세계를 재발견하고 새롭게 조명해나가고 있다. 본 사이트는 리동혁씨의 최근의 연구글들을 올려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리동혁씨는 "독자들의 의견이 가미된 연구는 조선어 미의 발견에 더욱 도움이 될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독자들의 평론과 찬반비평과 견해를 수렴하고자 하니 기탄없는 조언을 바란다.
조선어의 미
리동혁
1. “~은, ~는”의 매력
노래란 참으로 흥미로운 존재이다. 흔히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여 매력을 발휘하니 말이다. 《림진강》(박세영 작사, 고종환 작곡, 1957년)이라는 조선노래가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일본말판본을 통해 먼저 들은 사람들이 꽤나 된다. 한국에도 먼저 일본말판본을 알게 된 사람들이 많다. 1950년대 시인이 군사분계선일대에 가서 남으로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지은 가사에 좋은 곡이 붙었는데, 일본에서 사는 조선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고 일본말판본이 생겨났다. 일본말판본은 원작과 비슷한 부분들이 있으면서도 번역이 아니라 새로 가사를 붙인 셈이다.
조선말판본과 일본말판본을 대조해 감상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첫 구절을 비교해보자.
림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イムジン河水淸く とうとうと流る(이무진가와 미즈기요꾸 도우도우또 나가루)
일본어뜻은 “림진강 물이 맑은데 도도히 흐르고”이다. “맑은 물”이라는 순서대로 일본말을 한다면 “きよいみず(淸い水, 기요이미즈)”로 되여 “기요이”와 “미즈”의 구조가 음부들과 맞지 않은 점이 작용하지 않았겠나 싶다(악보를 보거나 노래를 듣지 않고서는 설명이 어렵다). 음악요소를 젖혀놓고도 그렇게 한다면 음악미조화가 생겨나지 않는다. 조선어음표기로 따진다면 “미즈기요꾸”에 음악미가 두드러지지 않으나, 일본어로는 “미즈/ 기요꾸”에서 “즈”와 “꾸”가 같은 모음이다. 일본어의 “う”는 조선어의 “ㅡ”와 “ㅜ”사이쯤에 있는 모음으로서 조선사람들이 “ㅡ”라고 발음하든 “ㅜ”라고 발음하든 일본인들의 귀에는 다름이 없이 들린다고 한다. “미즈/ 기요꾸”는 두부분의 마지막이 같은 모음으로 이뤄짐으로써 조화를 이루고 음악미를 조성한다.
같은 대목의 조선어원본은 “맑은 물은”이다. 발음은 “말근 물은”. 두부분의 마지막이 “”으로 음악미를 조성한다. 이 노래의 곡을 아는 사람들이 불러보면 더욱 선명하지만, 곡을 모르고 그저 읊어만 보아도 “미즈기요꾸”와 “맑은 물은”이 안겨주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왜 그럴가?
일본어의 “う”는 어두운 모음이다. 때문에 부르면 정서는 자연히 어두워진다. 헌데 조선어에서는 “ㅡ”가 어두운 모음이면서도 밑에 “ㄴ”이라는 받침이 붙음으로써 코소리를 내여 어두운 모음을 중화시킨다.
현존하는 자료들을 찾아보면 적어도 천여년전의 신라향가들에 “ㄴ”받침이 나온다. “隐(현대한어발음은 ‘인’, 조선어한자음표기로는 ‘은’)”으로 표기되는 말들이 지금 보면 “은, 는”에 해당된다. 오랜 세월 조선사람들이 “ㄴ”받침이 들어간 말들을 해왔다는데는 이 소리에 민족성격에 맞는 무엇이 들어있음을 말해주지 않을가?
“은, 는”은 널리 쓰이면서 조선말의 간결함에 큰 기여를 해왔다. “물이 맑다”는 뜻을 “맑은 물”로 줄인다는게 얼마나 재미있는가. 또한 표기법이 발달하면서 나아가서 “은, 는”이 줄어들어 앞글자의 받침 “ㄴ”으로 붙어 때에도 뜻과 효과는 변하지 않는다. “경우에는”이 “경우엔”이 되면 보다 간결한 음악미가 조성된다.
그리고 무언가 강조하거나 무언가 배제할 때에도 “은, 는”은 특유한 효력을 낸다. “총은 없어”라는 말을 들으면 대뜸 “그럼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지금까지 “은, 는”으로 구절과 시행을 줄이고 다듬고 즐기지만 “은, 는”의 매력을 나는 아직도 다는 모른다. 일본어에 “은, 는”과 비슷한 토가 없음을 상기할 때 “은, 는”을 아끼고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한결 강해진다.
《림진강》의 조선어원본과 일본어판본을 대조한다.
림진강 맑은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고향 남쪽땅 가고파도 못가니
림진강 흐름아 원한싣고 흐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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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イムジン河水淸く とうとうと流る
水鳥自由に むらがり飛びかうよ
我が祖國南の地 思いははるか
イムジン河水淸く とうとうと流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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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판본발음과 뜻풀이
이무진가와미즈기요꾸 도우도우도나가루
미즈토리지유우니 무라가리도비가우요
와가소고꾸미나미노찌 오모이와하루까
이무진가와미즈기요꾸 도우도우도나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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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진강 맑은물은 도도하게 흐르네
물새는 자유로이 넘나드네
내조국 남쪽땅 생각이 아득해
림진강 맑은물 도도하게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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