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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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조선어의 미》

4. 4글자말의 미감
2013년 12월 14일 10시 45분  조회:1972  추천:150  작성자: 리동혁
 조선어의 미
 
리동혁


4. 
4글자말의 미감

 
녀류시인 리청조(李清照, 1084~ 1155)는 사(词)의 대가로 소문났지만 시도 잘 썼다. 제일 유명한 시는 20자짜리 절구이다.
 
生当作人杰/ 死亦为鬼雄/ 至今思项羽/ 不肯过江东
 
금(金)나라가 중원에 쳐들어가 북송(北宋, 960~ 1126)이 망하고 중원사람들이 숱해 강을 건너 남방으로 도망갈 때 한낱 녀자로서 어떻게 해볼수 없는 안타까움을 담은 작품이다. 옛날 류방(刘邦, 기원전 256~ 기원전 195)과의 싸움에서 참패한 항우(项羽 , 기원전 232~ 기원전 202)는 워낙 강동으로 돌아가서 다시 일어설수도 있었건만 여러해전 강동젊은이 8천명을 거느리고 떠났던 내가 어찌 이제 와서 홀몸으로 돌아가겠느냐면서 강가에서 자결했다. 그런데 왜 송나라의 귀족들은 부랴부랴 강을 건너 남방으로 달아나느냐?…

이 시의 역문을 나는 하나만 보았다.
 
살아선 인간호걸 되여야 하고/ 죽어도 귀신영웅 되여야 하네/ 지금도 항우를 생각해보면/ 강동에 건너가려 하지 않았네
 
뜻을 정확히 옮겼고 7· 5조를 기본으로 했으니 조선어의 내재적미에도 어울린다. 역문만 보면 괜찮다. 헌데 원문과 대조하면 너무 길다. 물론 한자 5개로 이뤄진 시구들을 이보다도 더 길게 7· 7조로 옮겨야 할 경우도 있지만 될수 있는한 시구길이를 줄여야 한다. 일단 5자구절을 보면 우선 4· 4조로 옮기려고 시도하는게 맞다.

2012년 2월 11일 밤 잠을 설쳤다. 잠이 오지 않으면 전에 풀지 못한 난제들을 생각해보는게 나의 습관이다. 리청조의 시를 4· 4조로 옮길수는 없을가? 따져보니 2, 3, 4구절은 4· 4로 맞추기 어렵지 않은데 첫구절이 너무 길어진다. 불을 끄고 누웠다가 무슨 생각이 들면 일어나 긁적거려보고 잠이 들었다가도 소스라쳐 깨여나 따져보기를 몇번 거듭했던가. “살아선 꼭 인간호걸”, “살면 응당 인간호걸”… 새벽까지 씨름하였다. 끝내 문제를 풀고나니 너무나도 간단했는데, “鬼雄(구이쓩, 귀신영웅)”과 정연한 대조를 이루는 “人杰(런졔, 인간호걸)”에서 “인간”이라는 뜻을 빼버리면 되였다. 물론 방향을 잡았대서 마땅한 구절이 곧 나온건 아니였다. “살면 호걸 돼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걸. 그러다가 “살바에는 호걸 되고”라는 구절이 떠올라 굉장히 흥분되였다.
“살바에는 호걸 되고/ 죽더라도 귀신영웅…/ 지금까지 항우생각/ 강동 가지 않던 심정.”

새벽에 이렇게 썼다가 밤에 마지막 구절을 “강 건느지 않은 심정”으로 고쳤다. 원작에서 “江东(쟝둥, 강동)”을 씀으로써 옛날 사실에 따라 “江东”이 한족력사, 한어문화에서 지니는 형상을 충분히 활용했는데, 조선어에서는 “강동”이 특별한 형상을 띄지 않으므로 이 대목에서 핵심이 되는 강을 건느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게 훨씬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2, 4구절을 “웅”, “정”으로 끝냄으로써 원작의 “雄(쓩)”, “东(둥)”이 내는 코소리효과에 접근한것과 “된다”는 말을 빼면서도 현대적인 줄임표를 리용하여 그런 맛을 충분히 살리고 다음 구절의 생각과 잘 이어지도록 노력한 시도 등은 특기할만 했다.
이 역문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는데 후에 우연하게도 수첩에서 2010년 4월에 옮겼던 역문을 발견했다. “살아서는 인간호걸/ 죽어서도 귀신영웅/ 지금까지 항우생각/ 강동가지 않으렸지”. 부끄러웠다. 나 자신도 까맣게 잊었는데 2010년의 수준이 이렇게 낮았다니.

2012년 11월에 역문을 한군데 고쳐보았다.
 
살바엔야 호걸 되고/ 죽더라도 귀신영웅…/ 지금까지 항우생각/ 강 건느지 않은 심정.
 
나로서는 물론 음악미가 더 나아졌다고 여기는데 뭇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어시가를 익히려면 4자말이 기본이다. 현대시인들은 4· 4조가 딱딱하다고 꺼린다. 물론 농경시대에 나온 4· 4조시가들이 내용도 형식도 문제가 적잖은것은 사실이다. 허나 조선어의 내재적미는 4자말에서 두드러진다. “아지랑이”같은 “ㅏㅣㅏㅣ”구조, “저기 멀리”같은 “ㅓㅣㅓㅣ”구조, “아시리라”같은 “ㅏㅣㅏㅣ”구조들을 비롯하여 음절군이 미를 조성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 또한 4자에 조금 붙이면 5자, 6자말이 나오고, 4자에서 조금 줄이면 2자, 3자말들이 나온다. 4자로 된 고유어, 합성어, 음절군들을 익히면서 조선어미감의 비밀을 장악하고 4자에 최대한 정보를 많이 넣는 훈련을 하면 정형시는 물론 자유시의 창작과 번역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나의 체험이 이 주장을 받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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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5 ]

5   작성자 : 송미자
날자:2013-12-18 10:31:26
우리말과 글 그리고 시학에 대해서 쓰신 좋은 글 여러편 보았습니다.
감복하면서 배워갑니다.
4.4.글자말의 미감은 우리말의 고유리듬의 기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랑송으로 많이 언어의 미감을 찾아보는데 4.4조는 딱딱한것이 아니라 기본이기에 현대시에서도 많이 살려서 응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유시 내재율도 정형시의 운율을 바탕으로 읊조려지는데 거기에서도 4.4조의 운률이 기본입니다.
정인갑선생님 번역도 좋았습니다. 두분의 번역 좋습니다.
저도 84년도 이 시를 접해서 지금까지 아주 좋아하는 시중의 한수가 되였지요.

살아서는 영웅호걸
죽어서는 저승영웅
오늘까지 항우생각
강동가기 저어되네

좋은 글 또 기대하겠습니다.
4   작성자 : 鄭仁甲
날자:2013-12-17 23:10:01
동혁군, 건재?
리청조의 시를 나는 이렇게 번역해 봤소.
살았을땐 호걸이고
죽어서도 영웅답다
항우정신 본받아서
중원지킨 귀신되리
중국 고대에 '강동'은 또한 '남방'의 대명사로도 씌었소. 항우가 강동(서주 쪽, 남방)에 가면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겠지만 家鄕父勞보기 창피하여 떳떳이 북쪽에서 죽었지.
3   작성자 : 한국적딴조선족
날자:2013-12-17 12:08:48
1번동지는 그렇게 료해하기요
2   작성자 : 한국적딴조선족
날자:2013-12-17 12:07:52
리동혁동지의 "조선어의 미"는
넓은사유로 한국어까지 포함되여 말한거겠짐.
글구 조선족이 한국어르 완벽히 하는사람은 한명도없소
이게 현실이란말이...
국적따두 그건마찬가지오...내두 한국말 조선족말 썩끼여
알골이
어질어질하오.
1   작성자 : 한국어의 미
날자:2013-12-15 15:57:42
리동혁의 글은 두음법칙만 빼면 맞춤법, 띠어쓰기 등 완벽하게 현대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다. 분명 한국어 책을 주로 읽고 한국말로 공부하며 한국어 체계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글쓰기와 읽기 그리고 공부는 현대 한국어를 활용하고 있으면서 제목은 "조선어의 미"라고 해 자기가 이미 익숙해져 있어 일상에서 활용하는 현대 한국어와 모순된 제목을 달아놓았다.조선어라면 연변식 한글쳬계거나 북한식 한글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리동혁의 글이 조선어식 글씨체계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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