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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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람찾는 광고
2009년 04월 19일 05시 35분  조회:2035  추천:52  작성자: 리동렬


김광호가 부친 김병수를 애타게 찾고있습니다. 금년 2월 18일에 집을 나선 뒤 여직 종무소식이니 행방을 아시는분들은 H현조선족제1중학교 고중3학년 1반 학생 김광호에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집아저씨, 사람찾는 광고를 이렇게 쓰면 되겠어요?
정말, 부친의 년령, 외모, 직업도 쓰고 부친께서 집떠난 원인도 써야겠구만요! 그러나 집안허물밖에 내지 않는다고 어머닌 쓰지 못하게 해요. 아니, 광고조차 내지 못하게 해요. 저도 이러길 죽기보다 싫어요. 보란듯이, 번듯이, 그것도 동네방네 이 세상사람들이 다 알라고 누가 꽹과리를 두드리기 좋아하겠나요? 더구나 전 학생이 아니얘요?
하지만 전 멍든 어혈 빼지 않고 곪은 속 터치지 않고선 도저히 참을수 없어요! 활활 터놓고 속시원히, 기어이 써내고야말겠어요!…
이 밤따라 저주맞을 눈보라는 어쩌라고 사납게만 불어치는지? 승냥이의 날카로운 울부짖음 같기도 하고 여우의 애잡짤한 흐느낌 같기도 한 그 소린 창문쯤으로 비비닥질해 들어와선 저의 가슴을 허비고 신경을 팽팽히 조이고있어요. 해서인지 어느새 연기에 그을고 덞어진 천장이며 거미줄이 매달린 들보는 당금 정수리를 내리뭉갤듯 찌걱찌걱 소리를 내는것 같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북쪽벽은 금시 화당탕 몸을 깔아버릴듯 눈에 아찔아찔해 보여요.
바로 이 헌집에, 《무덤》속에, 찬바람만 썰렁썰렁 쏘다니는 《남극나라》에서 며칠전만 하여도 각혈하시던 어머니께서 몸을 옹송그려뜨리고 눈을 감고있어요. 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오른 녀동생을 꼭 끌어안고 간간히 신음하고있어요…
아, 아버지! 아버진 어디에 가 계시나요? 어찌하여 앓는 어머니를 두시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버리시고 떠돌아다녀야 하나요? 도대체 그건 무엇때문인가요? 무엇때문에?!…그래서 전 남다른 광고를 내요, 그걸 기어이 밝히려 해요!

편집아저씨, 어쩐지 전 도저히 나무꼬챙이같은 몇마디 말로 이 어린 가슴에 서리고 엉키고 박힌 옹을 다 지울수 없군요!
저의 동년과 부친, 저의 꿈과 부친, 우리 가정과 부친… 그래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웃음도, 울음도, 희망도 어찌 저의 부친을 떠나 상상할수 있겠어요? 하다면 천리를 가도 자식을 못잊는게 부모고 누구에게나 가장 아늑한 곳은 자기 집이라는데 정말 부친께서 영영 집을 떠날수 있단말인가요? 아니! 부친께선 돌아오실거얘요! 이 밤에, 이 눈보라를 타시고 바야흐로 집으로 오시고있을거얘요!
글쎄, 좀 보시라요! 문이 펄쩍 열리고있잖아요? 장대한 체구가 온 문을 떡 막으며 들어서고있잖아요? 아, 민들레꽃! 민들레꽃까지도 한줌 꺾어오셨어요! 들일 하고 돌아오실 때마다 그러하듯 오늘도 잊지 않으셨네요.
보세요, 《애달콩 데달콩》하는 노랗고 탐스런 꽃송이며 거기로 향해 나풀거리는 고사리같은 두손! 그리고 부자간의 재미난 뺑뺑이!… 문득 부친께서는 《오― 하하하…》하고 호탕히 웃으시면서 저를 와락 껴안고 빙글빙글 환락의 원무를 추셔요. 그러자 온집안에는 금시 학이 울고 두루미가 날개치듯 웃음이 파닥이고있어요. 파닥파닥 날고있어요!…
아, 잊을수 없는 동년, 황홀한 채색의 꿈! 달콤한 그제날의 꿈이야기여!…
어찌 그뿐이겠나요?
    《자르륵―투닥, 자르륵―투닥…》저는 꿈에서 늘 이렇게 비단을 짜 늘이였어요. 늘이고 또 짜서 집둘레를 감고 또 끝없이 감아나가군 하였어요. 그러다 부시시 일어나 눈뜨고 보면 희뿌연 새벽빛을 안고 가마니틀에 앉아 투닥거리는 부친의 뒤모습이 환영처럼 보이겠지요.
자대와 바디는 《자르륵―투닥! 자르륵― 투닥!…》
손풍구는 《푸루릉, 푸루―릉―…》
아, 그건 과연 얼마나 조화롭고도 미묘한 음악이였던가요? 스르르 눈감고 듣노라면 뭉게뭉게 피는 구름 밟고 예술의 전당을 찾아들어서는듯…
이렇게 신근한 로동으로 시작되고 란만하는 웃음꽃으로 끝을 맺군 하는 우리 집의 하루! 저녁이면 어쩌는줄 아세요? 어머니께서 가마니를 짜시면 저와 부친은 새끼꼬기시합을 하지요. 잘추린 짚을 세몫으로 나눈다음 , 한몫은 제가 꼬고 두몫은 부친께서 꼬되 먼저 다 비빈 사람이 이길내기지요. 부친은 그 솥뚜껑 같아보이는 손을 늘근늘근 비벼대도 짚은 얼마나 잘 없어지는지!…애간장이 탈수록 저의 조막손은 빳빳해나 어디 돌아야 말이죠! 힘있는자 힘으로, 꾀있는자 꾀로 하랬다고 그래 전 부친께서 머리만 돌리시면 얼른 제몫을 좀 쥐여 부친앞으로 슬쩍 밀어놓군 했지요. 그런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그럴 때마다 어느결에 보시는지 부친은 그 두툼한 입술을 쭝긋거리지요. 침묵은 잠시, 다음에 우린 마주보며 집안이 떠나갈듯 웃음소나기를 쏟아놓지요…그때 전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었댔어요. 헌데 하많은 이야기중 한 이야기만은 들을 때마다 귀동냥갔었는데 근일에 와 곱씹어보노라니 심령의 호심에 자꾸만 의문고리를 던져놓게 되더구만요!
멀고먼 옛날, 금상산 어느 골에 한쌍의 젊은 부부가 감자농사에 입에 풀칠하면서도 아기자기 재미있게 살았대요. 먹는건 감자밥, 입는건 다닥다닥 기운 누데기일지라도 부부사랑 록파에 노니는 원앙같고 부부금슬 달밤에 깃든 백조 같더래요. 온 하루를 웃으며 그렇게 재미있게 살더래요.
이 소식 듣고 하루는 걸인행색의 웬 더벅머리총각이 찾아왔었는데 아니 글쎄, 보물단지를 내놓으며 웃음을 사겠다는게 아니겠어요? 보물단지를 보자 녀인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지만 사나이만은 그 선량한 마음에도 욕심이 굴뚝처럼 솟아 대뜸 응낙했다나요. 《허허허, 보물단지는 내거다! 웃음아, 너 가거라!》하고말입니다. 하긴 웃음을 팔고 산다는것도 황당하니까요! 헌데 그《보물단지》는 놀부박이 아니고  뭐얘요? 이튿날부터 이 집에서 정말 웃음기가 사라지더니 후엔 아예 영영 자취를 감추고말았답니다.
구경 어찌된 감투끈일가요?…

아,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가 계시나요? 아버지께선 그 비밀을 알려주지 않고 여직 신비로운 수수께끼로만 남겨두셨지요…그러나 그걸 풀 필요가 있어요? 우리 집 웃음만은 누가 사갈 사람도 없거니와 날따라 둥글둥글 흥부박처럼 커만 갔으니까요!
편집아저씨, 그래요, 장이 탁 트이고 호도거리를 마음놓고 하게 되자부터 우리 집은 더는 가마니를 짜느라 복닥을 하지 않아도 되였어요.
수집은 어머닌 장사를 배워《김치아주머니》로 소문놓았고 활량인 부친도 땅을 남에게 맡기고 《양계전문가》로 동네방네 자자하게 명성떨쳤지요.
참! 어머니의 장사항목은 많기도 하였어요! 노르무레한 영채김치, 불그레한 양념물이 뚝뚝 떨어지는 배추김치, 참기름 반질반질 도는 검붉은 무우오리무침, 절군 통마늘이며 깨잎… 보기만 해도 군침이 슬슬 돌 지경이였지요. 물론 부친도 어머니께 짝지지 않았어요. 혼자 6백여마리의 닭을 키웠으니까요! 그때 전 부친을 도와 자주 닭알줏기를 하였지요. 참말이지. 횐 광주리에다 《노란 닭알, 흰 닭알》하며 소복소복 담아놓기란 정말 꿀먹기보다 더 달콤하고 상받기보다 더 기쁜 일이였지요.
이렇게 부모들이 손맞잡고 알뜰살뜰 깨끗이 버니 근기있게 일하는자 황금빚고 웃는 집문으로 복이 들어온다고 우리 집에도 차차 단색텔레비죤이며 록음기, 세탁기, 자적걷르이 막 쓸어들어더군요! 거기에다 오는 해에는 벽돌집을 짓자고 돈까지 2천원이나 저금하였어요. 물론 남들이 소문낸것처럼 돈을 그렇게 많이 번건 아니였지만 돈이란 없다 있고 보니 새끼새가 깃 다 자란것처럼 얼마나 기쁘던지요!…하여 낮이면 록음기가 《디스코》곡을 울리고 밤이면 텔레비죤이 웃음망울 터치는 《복된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였지요                
    비단에 수놓은 격으로 좋은 꿈엔 항상 웃음이 따르는 법이얘요.
글쎄, 텔레비죤극 보고 이 드러내놓기전에 우리는 늘 《간이극》때문에 배창자를 실컷 꼬게 되니까요!
부친께선 어쩌는줄 아세요? 술을 얼근히 잡수시곤 대자로 온 구들을 차지해누워선 게슴츠레하게 눈을 내리깐채 녀동생 애꼭지를 태우느라 꼭꼭 어머니 무릎을 베지요. 하면 《질투심》많은 녀동생이 가만있자고 하겠어요? 하지만 능청스러운 부친은 녀동생이 바질바질 속을 태우며 눈물을 찔끔찔끔 짤 때에야 어머니를 향해 거적눈을 치뜨며
   《네 엄마 보고 아버지 입맞추라고 해라, 그럼 자릴 양보해주마!》하고선 구들장이 들썽들썽 드놀도록 껄껄껄 웃음통을 터뜨리지요. 그러면 부녀간의 다툼질을 일별한채 상글상글 웃고있던 어머니의 얼굴은 삽시에 꽈리처럼 활딱 붉어지고 입에선 단통 《에개개!》가 터져나오지요.
    《저리 가요, 저리! 부끄럽지도 않은가베!》그러든말든 부친은 어머니 한쪽무릎을 붙들고 지그시 누르며 그걸 재촉하지요. 하면 어머닌 할수없이 《아가가!》를 노래부르고 노란장판우에는 금시 웃음방울이 데굴데굴 그을게 되지요.
    《자, 빨리 맞추라 해라!》
    《엄마, 빨리 아버지 입맞춰 응?…》
    둘이 어느새 《통일전선》을 이루어 어머니를 들볶는데 그럴수록 어머닌 어머니대로 그 가늘고 흰 목덜미까지 꽃물을 들이면서 고운 반달눈을 약간 치뜨고 마구 손을 내젓다간 부친을 향해 관세음보살을 외우지요. 그래도 안될 때면 아예 부친의 동가슴에다 대고 팡팡 종주먹을 날리지요. 그것이 좋다고 부친과 녀동생이 더욱 열성을 올리면 종당에는 어쩔수 없다는듯이 머리를 살래살래 젓고나선 고개를 살풋이 숙이면서 입맞추는 시늉을 하군 하시는데 이럴 때면 어디 심술궂은 부친께서 가만두자 해야말이죠. 어느결에 벌떡 일앉으며 긴 팔을 늘여 어머니 목을 껴안고 《뽁》하고 볼에다 정말 입자리를 내지요.
    《에그, 망측해라!》어머니가 비명을 올리며 비자루를 찾아 꺼꾸로 쥘 사이 부친은 벌써 껄껄껄 웃으시면서 끌신을 들들들 끌고 저만치, 닭장으로 몸을 피하지요. 하면 온집안엔 웃음덩이 꽃덩이가 데구루루 구을면 구을수록 봄날의 눈덩이마냥 커만 갔었지요. 했건만!…
    아,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제가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기때문인가요? 아니면?… 복에도 화의 삭이 있다더니 그후, 참말 믿지 않을래야 않을수 없는 일들이 우리 집에서 그토록 급작스레, 놀랍게 벌어질줄이야 누가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어요?!…
    편집아저씨, 그건 음력설후부터였어요. 딱히 어느날부터 어떻게 시작되였는지는 모르나 전 어머니와 부친 사이에 이름못할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고있음을 본능적으로 감각하였어요. 마음약한 어머닌 뒤에서 자주 눈물을 훔치고있었어요. 정지간에서 풀풀 한숨을 내쉬는가 하면 닭장에서 멍청하니 넋을 놓기도 하고 동쪽벽모퉁이에서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기도 하며.
    (무슨 일이 생긴걸가? 왜 어버지는 식사할때면 골도 못들고 어머니 눈치만 살살 볼가? 그리곤 자릴 툭 털고 아침에 나가면 한밤중에야 들어오지!…이젠 닭먹이도 다 떨어져가는데…)
    몸은 비록 학교에 가 앉았으나 (졸업학년인 우리는 초닷새부터 개학을 했던거얘요.)머리속에 팽글팽글 맴도는것은 그저 이런 의문과 걱정들뿐이였어요.
    어느날 저녁, 저는 창문에 딱 붙어서서 어머니와 부친 사이에 오가는 말들을 엿듣게 되였어요. 학급동창인 《쏠쏘리》네 집에 공부하러 갔다가 닥친 기회였지요.
    가만히 보니 부친께서는 얼굴에 먹장구름을 싣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여 담배만 풀석풀석 피우고있었고 어머니는 펴다만 이불에 엎디여 쿨쩍쿨쩍 울고있었어요.
    《글쎄 주겠소, 안주겠소》갑자기 부친이 담배꽁초를 바닥에 홱 내던지며 빽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아니?!…) 와뜰, 한발 물러선 전 사지가 덜덜 떨렸어요. 부친께선 종래로 어머니앞에서 성내본적이 없었으니까요!
    《소린 왜 …왜 질러요?》갑자기 어머니도 발딱 일어서더니 이를 앙다물고 대들지 않겠어요? 가뜩이나 놀라 커진 저의 입은 딱 벌어지고말았어요!
    《저금통장을 이리 내놔요! 2천원돈을 어디다 써버렸어요?!》어머니가 거품을 물고 대들자 부친은 눈을 화등잔같이 뜨고 
    《이거, 이거…》하며 속이 걸리는지 말만 먹더군요.
    《뭐가 이거, 이거얘요? 흑흑…이 돈은 제가 별을 이고 나가 달을 등지고 들어오며 번거얘요. 겨우내 손발 땅땅 얼구며 번거란말이얘요. 못줘요. 못줘!》하고는 부친의 턱밑으로 바짝바짝 파고들었어요.
    《글쎄 내놓겠소, 안내놓겠소?》
    《못내놔요, 못내놔!》
    《이게 환장을 했나? 정말이야?》
    《누가 환장을 했어요? 누가? 정말 아니문?…》
    《에익! 빌어먹을!…》그다음은 부친의 손이 번쩍하더니 어머니의 오른뺨에다 《찰싹!》하고 번개를 날렸어요. 순간, 모든것이 얼어붙었어요. 어머니의 울음도, 부친의 손도, 저의 심장도…
    《당…당…신이?!…》어머닌 볼을 싸쥔채 피맺힌 입술을 떨며 가까스로 씹어내뱉듯 말했어요.
    《내…내가…때렸단말이지?!》부친은 얼빠진 사람처럼 솥뚜껑같이 큰 손바닥을 펴보이며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듯이 묻는것이였어요. 그래요, 어찌 믿을수 있겠어요? 저도, 어머니도 그 손에다 대고 눈총을, 불총을 쏘았어요!
    아, 장알보석 빛나던 저 근면한 손이여! 언제든지 웃음을 주고 믿음을 주고 행복만을 안겨주던 복손이여! 묻노니 어찌하여 오늘은 그토록 여린 어머니의 뺨에 피자국을 남기는가요? 어린 자식의 가슴에 그토록 피멍을 남기는가요?…
    이윽고 문소리가 나는바람에 저는 대뜸 벽에가 딱 붙어섰어요.
    《뚜벅, 뚜벅…》부친의 우람진 몸집이 동쪽벽모서리를 꺾어안으며 사라지는 찰나였어요.
그제야 저는
《어머니!…》하며 무작정 집안으로 뛰여들어 어머니를 와락 껴안았어요.
《아니?!… 얘가 왜… 이래?!》든정신 반, 난 정신 반해서 앉아있던 어머니는 깜짝 놀라시더니 아닌보살하고 저의 손을 슬쩍 쳐버리며
《휴―…마루에 코박이를 했더니…》하며 손등으로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고는 입가에 애써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피워올리는것이였어요.
허나 여린 뺨에 새겨진 네손가락자국만은 억울하고 분함을 못다 감추겠는지 벌겋게 독을 내고있었어요.
《어머니! 전…전 다 알아요!》마침내 울음의 동뚝을 터치며 저는 한없이 넓고 그지없이 포근한 어머니의 품에 골을 묻었어요…
그날 저녁, 부친은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어요.
이튿날, 저는 학교가는 길에 간이식품상점에 들어가 처음으로 《인삼》표담배를 한곽 샀어요. 맵고 쓰고 역한 담배연기속에서 모든것이 흐리멍텅해보였어요. 흐리멍텅한 태양, 달, 선생님과 동학들… 그래요, 전 바로 이런 뼈저린 자극속에서 답안을 찾자는것이였어요. 이를테면 2천원돈은 어디다 썼고 어찌하여 어머니의 푼돈마저 탈탈 앗아내려 땅땅 으르는건가?…그러다 골이 뗑해나면 시간을 보든말든 아예 책상에 엎디여 쿨쿨 잠만 청했어요. 했어도 정신만은 몽유병환자처럼 사면팔방 헤매며 무얼 찾고있었어요…
연분이 있으면 만나기 마련이라고 전 끝내 어느 후미진 골에서 더벅머리총각을 찾아내고야 말았어요. 그는 만사람 부럽잖게 경치좋은 곳에 팔간기와집 덩실하니 지어놓고 꽃같은 색시에게 장가들어 부자같이 살고있었는데 글쎄 저를 보자 버선바람으로 반기는게 아니겠어요? 그통에 전 더위먹은 소 달만 보아도 허덕인다는 격으로 대방이 베푼 친절을 그만 오해하고 평시에 그렇게 묻고싶던 말마저 구중천에 싹 동댕이친채 기겁해서 소리쳤어요.
《아니야, 안! 그걸 가지러 온게 아니야!》…
《하하하…》저는 문득 홍수처럼 쏟아지는 웃음소리속에서 꿈을 깨게 되였어요. 머리를 드니 수학선생님의 《오백도》가 절 무섭게 쏘아보고있잖겠어요?…

편집아저씨, 어느 명인이 생활은 애꿎은 장난꾸러기이도 하다고 했던가요? 참말인가봐요! 그건 사람들이 무얼 애타게 찾으면 찾을수록 란리만난 수전노 보물감추듯 어둡고 구석진 곳만 찾아 숨겨두다간 이젠 대방이 기진맥진하여 그걸 아예 잊자고 하면 그제야 얄밉게 불쑥 내미니까요! 저의 경우가 바로 그런것 같아요.
그날 시간이 끝난 다음 수학선생님께 붙들려 교무실에 갔다 오니 바로 《쏠쏘리》가 우리 집 흉을 보느라 열을 올리지 않겠어요.
…《아니문 내 손에 장을 지져라! 직접 본 일이란데두나! 그날 저녁 광홀 바래주고 되돌아서다 다투는 소리가 나기에 뒤창문에 붙어서서 말이야!… 광호 그녀석 몹시 울었지!》
《통나발 불지 말어! 2천원이라구? 2백원이겠지! 아니문 20원이구…》누군가 입을 딱 벌리며 못믿어워하는 소리를 내뱉었어요.
《저런 조막손 봤나? 그것도 노름이라고 해?》
《흥, 제사 큰소린? 그래 단 두판에 2만원은 아니고 2천원이야?!》
《이런 우물안의 개구리라구야! 만원돈 잃게 되자 녀자가 리혼한다고 울며불며 야단하는건?》
《쯧쯧, 여하튼 기 딱 찰노릇이야! 지금 법이 무르긴 참 무르지, 그런걸 가만두니!… 하긴 우리 집도 보니 땅 몇무 안되니까 농사일을 제꺽 해치웠는데 돈벌이구멍은 찾지 못하고. 그러니 노름으로 허송세월할수밖에!…》체육위원 명호의 목소린듯싶었어요.
《그게 바로 작은 벌인 눈거적아래 돌고 큰벌인 눈섭우에 맹랑히 춤춘다는거야! 지금 사람들은 전문 <마술사>가 되여서 그저 나는 돈만 붙잡으려 들거던. 광호 아버지도 괜히 올방자틀고 한몫 보려다 휘―익 날고말았지 뭐야! 하하하…》《쏠쏘리》의 얻어들은 《경험담》에 교실안은 갑자가 웃음으로 꽉 찼어요.
순간, 저는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귀가 윙윙 울려났어요.
(뭘?!… 도박에 뽕뺐다구?…2천원을…몽땅?!…아글타글 번걸 저렇게?…) 눈앞에 무수한 반디불이 춤추는듯. 통 리해가 가지 않았어요! 그저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것만 같아 누구라도 붙들고 한바탕 드잡이를 하고 실컷 울고싶었어요. 헌데 붙는 불에 키질이라고 《쏠소리》는 그냥 지껄이며 동학들을 웃겨대는게 아니겠어요? 밸안의 밥알이 다 곤두서서 어디 참을 《인》자가 막아서야지요! 그래 문을 탕 열어젖히고 불쑥 뛰여들어갔더니 몇십쌍의 눈길이 놀람을 잔뜩 싣고 날아오지 않겠어요? 공부 잘하고 곱살스레 생긴 혜숙의 그 동정과 련민, 이름못할 야릇한 물기를 머금은 눈길도말이얘요. 일순, 끝없는 치욕감이 회오리를 만난 불길처럼 온몸을 확 달구었어요.
《임마, 실컷 지껄여봐!》저는 미친 사람마냥 《쏠쏘리》에게 와닥닥 달려들어 그의 면상에 대고 힘껏 주먹을 내질렀어요. 그리곤 왝 돌따서서 문을 쾅 박차고 나와 발가는대로 무작정 뛰기 시작하였어요.
눈물, 눈물은 그칠새없이 줄줄 흐르는데 울분과 설음은 어쩌라고 달음질칠수록 세차만 가던지요?…
문득, 돌부리를 차며 곤두박질칠듯! 그제야 정신이 펀뜩 든 저는 찰나에 맞닥친 나무에 등을 콱 맡기며 고갤 훌 젖히고 숨을 후―후― 내쉬였어요… 이윽고 입안에 흘러드는 찝질한것을 의식하면서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니 눈망울에 비치는것은 청청한 솔이고요, 뇌리에 스치는것은 어쩌면 너만은 푸르냐는 부러움이였어요.
《아부지, 솔은 왜 겨울에도 푸르나요?》
《그건 마음이 곧고 굳세기때문이란다.》
《나도 솔이 될테야!》
《오―그래! 너도 되고 나도 되자!…》
문득 이런 음성이 옛기억을 걷어안고 귀뿌리를 스쳐지나 저 강변에서 불어치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사라졌어요. 허나 우린 누구도 솔이 되지 못했어요…

편집아저씨, 그날 저녁, 착잡한 생각을 안고 집문에 들어선 전 재다시 놀란 토끼를 가슴에 품게 되였어요. 글쎄 구들에 한 녀인이 누워 있었는데 뺨에는 파리한 기운이 서리서리 감돌고있고 입술에는 왕가물이 바짝바짝 타들고있지 않겠어요? 그 녀인이 바로 우리 어머니였어요. 꼭 감은 속눈섭에 맺힌 방울방울의 서러움과 원망은 바늘끝처럼 얼마나 세차게 저의 심장을 콕콕 찌르던지!…
저는 너무도 억이 막혀 몇분간은 좋이 땅에 다 발뿌리를 내리고 서있었어요. 저의 이런 모양을 보고 병자를 보살피던 이웃집아주머니들도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치는것이 아니겠어요?
이때였어요. 어머니 머리맡에 앉아 눈물코물 쥐여짜던 녀동생이 발딱 일어서며 와―하고 설음을 터뜨리더니 이윽고 울음범벅이 된 말들을 조리없이 해대더군요.
《응응… 오빠 록음기랑, 내 털레비랑 응응… 엄마가 낯선 사람들과… 싸웠다. 응응. 그래 이렇게 넘어져서 응응…》
《…뭐?》된 강타에 몸을 휘청이며 저는 반사적으로 집안을 휘―익 둘러보았어요. 텅 빈, 어수선한 집안정경이 아찔하니 눈에 날아들었어요! 실망! 분노! 원한! 저주!… 딱히 이름못할 정감들이 서리고 엉키더니 주먹이 불끈 쥐이고 이가 달달 맞쪼이였어요. 전 방안을 두리번거렸어요. 그러다 마침 들어오는 웬 사나이의 얼굴에다 대고 《꽝!》하고 눈총을 놓았어요! 해선지 그 사나이는 일순 고개를 푹 꺾으며 가래짝같은 손을 어데다 건사할지 몰라 쩔쩔 매고있었어요. 한발자국, 한발자국… 전 부친앞으로 다가갔어요. 무쇠같이 틀어쥔 주먹은 격분에 떨고있었어요. 앞으로 다가가던 저는 흠칫하며 무춤 서버렸어요. 부친께서 고개를 들었던거얘요. 한데, 혼백이 쑥 빠져달아나버린듯한 눈에도 이슬기가 반짝이고있지 않겠어요?
아, 인간이여, 인간!…
저는 그만 맥을 탁 놓고 망두석처럼 굳어지고말았어요.
제가 꼭 열살 잡아들던 해였어요.
그해 여름에 부친께서는 독성리질로 몹시 앓았어요. 아플 때는 잔등을 잔뜩 꼬부라뜨리고 마구 뒹굴며 소리까지 쳤어요. 그땐 정말, 부친의 고통을 다문 얼마라도 함께 나누지 못하는것이 어린 나이에도 얼마나 안타깝던지?… 그러던 어느날, 전 길에서 돈 1원을 주어들고 날듯이 기뻐하였어요. 어른들이 리질엔 얼음과자가 묘약이라잖겠어요? 그래 전 개성으로 장달음을 놓았지요.
왕복 6리, 재글재글 끓는 삼복철 땡볕에 후끈후끈 달아오른 모래땅을 밟으며 보온병에다 얼음과자를 꼴딱 사들고 문에 들어섰을 때는 벌써 온몸이 물자루에서 건져낸 깜장강아지가 되였을 때였지요. 했으나 전 얼음과자를 한입도 깨물지 않았어요. 부친께서 눈깜박할사이 절반이나 축내는것을 보고 얼마나 기쁘던지?… 그제야 아픔이 좀 멎는지 부친께선 잠시 손을 멈추고 저를 빤히 쳐다보지 않겠어요? 순간, 저의 가슴은 콩당콩당 쌍방망이질하기 시작하였어요. 같이 먹자고 잡아끌줄로만 알고. 전 절대 먹지 않고 사양하리라 다짐했어요. 헌데 돈이 어디서 생겼느냐는 왕청같은 벼락이 떨어질줄이야?!… 마침내 부친께서는 보온병을 마루바닥에 대고 팍 박산을 내더니 노한 사자와도 같이 고함을 질렀어요.
《에익, 이 덜된놈아! 주은 물건은 임자를 찾아주거나 선생님께 꼭 가져다바치라고 적게 타이르더냐? 사람이란 기개가 있어야 한다, 기개가!…》
아! 그땐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던지? 나무가리뒤에 숨어 섧게 울던 기억이 상금도 생생해나요. 허나 전 또 얼마나 바랐던가요? 그런 질책을! 철든 지금에도말이얘요. 하지만…
저는 픽 돌아서서 팔등으로 줄끊어진 념주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쓱쓱 닦았어요. 한들 어찌 가슴속깊이에서 분출하는 활화산을 막을수 있겠어요? 끝끝내 저는
《아버진… 솔이… 아니야!》하고 오열을 터뜨리고말았어요
그래요, 《솔이 아니다》고 손을 홱 내젓고는 밖을 훌 뛰쳐나오고말았어요!
결국, 우린 하루아침에 집도 없는 알거지로 되고말았어요. 까맣게 달려드는 빚받이군들을 막아낼 방책이 있어야죠! 아마 흥할 때는 부처님같이 인심쓰고 망할 때는 수전노같이 일푼 안 곯고 기어이 받아내려는것이 빚받이군들의 성미인가봐요!
부친께선 그래도 《인덕》이 좀 남으셨는지 식구들 몰래 집을 떠나시면서도 쪽지만은 남겨두셨더구만요!
《여보, 일찍 당신 말을 들었던들 초상집개 신세는 면했으련만…아, 이제 무얼 더 변명하며 변명한들 무슨 소용있겠소? …난 떠나오. 어린것들을 데리고 빚더미속에서 어찌 살겠소? 정말 그립소! 고생스러워도 맘 편히 살아온 그때가! 당신 무릎 베고 애들 웃음속에서 복누리던 어제날이…
그러나 남아대장부로서 어찌 좌절에 머리를 숙이고 후회에 손발 얽어매겠소?…강직하게 살아주오. 광호 그녀석 공부도 잘 시키고! 애비 본받지 말게 단속을 잘해주오… 돈벌기전에는 죽어도 집에 들어가지 않을 작정이요!…》
《위선자!》전 그 쪽지를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 홱 뿌리고 침을 탁 뱉고말았어요 해도 《남아대장부》의 도고한 《기개》만은 퍼렇게 살아 《쇠소리》쟁쟁 나는 글을 보노라니 부아가 욱 치밀어 어디 견디겠어요? 글쎄, 말이면 단가요? 도대체 누가 우리 집을 이 꼴로 만들었나요? 녜?…
목숨이 원쑤라고 울며 겨자먹기로 우린 이사를 해야만 했어요. 마을뒤, 계화네가 집짓고 나가 비워둔 이 헌집으로, 한달에 십원 방세를 물기로 하고말이얘요.
그날따라 삭풍은 얼마나 세차게 불어치던지! 속옷을 물어뜯고 비비닥질하다간 속속들이 파고들어와 무수한 가시끝처럼 살을 콕콕 찌르군 하였어요. 하지만 어머니와 저는 땅땅 언 황토를 곡괭이로 애기주먹만큼 깨서 그걸 다시 설설 끓는 더운 물로 녹여 흙을 이겼어요. 그리곤 쩍쩍 갈라진 벽쯤에 하얗게 붙은 성에를 비자루로 싹싹 쓸어버리고 그걸 마구 게발랐어요. 구들도 새로 싹 손질하고요. 벌겋다못해 푸르죽죽해나는 손은 얼마나 시리고 아리던지… 꼬장꼬장 곱아드는 언손을 입김으로 호호 녹여가며 일을 마무려가는 어머니만 없었다면 전 눈물이라도 쏟을번했어요. 헌데 안되는놈은 앞으로 엎어져도 뒤통수만 깬다더니 구들을 고쳐놓으니 불이 들어야말이죠? 나무를 넣으니 싯누런 연기가 부엌아구리로 구름같이 되쓸어나오며 삽시에 저와 어머니를 삼켜버렸어요. 마침, 마음씨 착한 이웃집 김아바이가 도와나섰으니말이지… 그러나 우린 김아바이께 술 한잔 대접못했어요. 그것이 괴로운듯 어머닌 돌아서서 얼고 갈라터진 불그죽죽한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떠는것이였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콜록콜록 된기침을 깇기 시작하더니 왝왝 비린것을 내뱉지 않겠어요?
《아! 피!…》전 경황실색해서 당금 쓰러질듯 비칠거리는 어머니를 둘러업고 향병원으로 반달음을 놓았어요…
삼라만상이 곯아떨어진 이슥한 밤! 그로부터 이레가 지난 뒤였어요. 거리의 《춘강술집》에서 나온 저는 집을 향해 갈지자로 온길을 쓸고 있었어요. 찬바람이 얼굴을 휙휙 스칠 때마다 속은 얼마나 울렁울렁해나던지?… 몇번 왝왝 토하고나니 그제야 정신이 한결 맑아지는가싶던것이 이번엔 중뿔나게 관자노리가 지근지근 아파나지 않겠어요? 속상하면 술로 푼다더니만 그것도 빈말인듯!… 전 고독스러웠어요, 괴로왔어요! 저 호젓한 거리! 쓸쓸한 길! 뽀얗게 치달아와 옷자락을 물고뜯으며 어디론가 정처없이 잡아당기는 눈갈기! 그리고 광야에 홀로선 허수아비처럼 눈에 묻힌 외로운 나!… 불쌍한 이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무엇으로도 메울수 없는 공허가 저를 허탈상태에 빠지게 하였어요. 하긴 나이네 비해 너무도 힘부친 일을 급작스레 당해서일가요? 여하튼 전 이레동안 어머니를 속이고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대학시험이고 뭐고간에 어머니병을 치료해드리고 가정을 먹여살리는것이 급선무였으니까요! 어머니는 이미 엄중한 빈혈증에다 6형페결핵이라는 병진단을 받았어요. 너무 아글타글하고 속을 썩일대로 썩여 병이 골수에 미친것이였지요. 쉴 때면 몸을 새우처럼 꼬부라뜨리고 장신음하는데 오이꽃 핀 얼굴엔 땀방울이 빠직빠직 돋고 어혈진 코밑에는 다닥다닥 피딱지가 엉켜붙어 몹시 아픈지 자주 찡그리니 어디 눈물이 나 보기나 하겠어요? 전에는 어머니를 언제나 기둥같이 믿고 온갖 응석을 부려왔었는데 알고보니 어머닌 그렇듯 잔약하고 가냘픈 녀인이였어요! 사랑이 크면 그 귀함을 모른다더니 전 너무나 뒤늦게 발견한 이 모든것을 두고 피터지게 입술을 깨물면서 자신을 얼마나 호되게 질책하였다고요! 한편 전 문득 사나이로 장성한 자신을 놀랍게 발견하고 난생처럼 어깨에 실린 짐의 무게를 가늠해 보게 되였어요. 하여 전 돈꾸러 있는 비위, 없는 비위 다 팔아 동네집 문도리가 불나도록 드나들었어요. 허나 얼마 꾸지 못했어요. 하긴 누가 도박군에 집에 받지 못할 돈을 꿔주려 하겠나요? 어머닌 그 눈치를 챘는지 글쎄 입원한 사흩날에는 제가 없는 틈을 타 아예 퇴원수속까지 밟지 않았겠어요?
가까운 친척 한분 없는 저는 정말 앞길이 막막해났어요. 가난한 사람에겐 신체가 재부란데 늦추어진 병을 이젠 더는 끌수도 없는 일이고… 해도 돈, 돈이 있어야지요! 개도 먹지 않는 돈이라지만 저는 처음으로 돈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무능한 열여덟살을 꾸짖으로 전 절망으로 몸부림쳤어요. 여북하면 꿈에 더벅머리총각을 만나 그의 소개로 있는 웃음, 없는 웃음 다 팔아 낯선 사람앞에서 《보물단지》를 얻어 안고는 기쁜김에 《디스코》를 췌제꼈겠나요? 그러다 웬놈의 황둥개에게 쫓기다쫓기다가 벼랑가에서 떨어지게 되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밤에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집까지 왔던지?
갈증에 모대기다 겨우 눈을 떴을 때였어요. 저는 의외의 일에 놀라 벌떡 일어나앉았어요. 눈물 훔치며 돌아서서 나가는 어머니 뒤모습을 보았던거얘요. 얼굴에 찐득한것이 있어 다시 만져보니 저의 눈물 같지 않았어요. 그통에 술기운은 천리만리 달아났어요!…전 귀신경을 잔뜩 도사리였어요. 이윽고 정지문이 가볍게 여닫기더니 눈밟는 소리가 빠드득빠드득 났어요. 웬 일인지 그 소리는 창문가에 와 뚝 하고 한식경이나 멎었어요. 찰나, 저의 심장은 까닭없이 당금 오그라붙는듯싶었어요. 시간은 안타까이 1초, 2초… 흘러만 갔어요!
《빠드득빠드득…》, 눈밟는 소리가 또 났어요. 그 소리는 점점 멀어지는가싶더니 이번에는 한가닥 회오리바람에 창고문이 여닫기는 가벼운 여음을 싣고 불어오지 않겠어요? 참, 예감이란 이상한거얘요! 순간 저는 분명 흑흑 흐느끼는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불현듯 눈앞에 무서운 환각들이 이는바람에 전 화닥닥 자리를 차고 뛰쳐일어났어요…
어머니는 백랍같은 얼굴이 눈물투성이가 되여 제가 부축하는대로 방으로 고스란히 돌아오셨어요…
저는 어머니를 향해 털썩 꿇앉았어요. 그리고 용서를 빌었어요! 맹세하며, 간절히!…
옛말에 부모마음 절반만 알아주면 효자란데 글쎄, 효성은 못할망정 병환에 계시는 어머니께 시름끼치다니? 그래도 단 한가지 잘못만은 말하지 않았어요. 아니 말할수도 없었어요!…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영원히 부처님속인가봐요! 그래서 나약하기도 한지?…드디여 어머니는 저를 품속으로 와락 끄당겨안으셨어요! 우리 모자는 서로 붙들고 밤새도록 울었어요.

아, 그립고도 미운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가 계시나요? 가정의 이 모든 피타는 사연을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전에 그토록 웃고 떠들기 좋아하던 당신의 아들 광호는 이젠 과묵해졌어요! 사색객이 되였어요! 인간생활의 갖은 희로애락을 맛보던 끝에 종내는 그토록 애타게 찾아오던 《옛이야기》의 참뜻을 깨치게 되였어요!
그래요, 그 《보물단지》는 미상불 그들 집안의 웃음을 앗아갈만 하였어요. 답안은 오직 하나― 필경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였으니까요! 시초에는 웬 굴러온 떡호박이냐싶어 일시 욕심에 그걸 가질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뉘우침이 따라갔을거얘요! 필경 그들은 또한 량심있는 사람들이였으니까요!

이까지 쓰고나니 벌써 앞뒤집 닭들이 홰를 치누만요! 동창이 훤히 밝아오누만요! 이 시각, 걷잡을수 없는 일희일비의 감구지희가 필끝에서 고패치고있어요!
아저씨, 이제 새날 밝으면 우리 집 력사는 새롭게 시작될거얘요! 놀라지 마세요, 여직 아저씨를 속였다고!― 오늘은 부친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이얘요! 참말이얘요!
그저께 현공안국에서 전화를 걸어왔더군요! 그제야 우린 부친께서 그동안 조양진의 한 친구에게 빌붙어 그 친구가 비법적으로 목재장사를 하는것을 좀 도와주다 붙들린 사연이며 이어 우리 현 공안기관으로 압송되여와서 재심문받은 사실이며 이미 큰 죄가 없음이 기본상 판명되였기에 오늘 나오게 된다는 일들을 알게 되였어요. 부친은 몹시도 뉘우치는 모양이얘요. 해도 전 미덥지 못해요! 안심할수가 없어요! 그래 생각다못해 이 광고를 내요! 부친을 찾는, 아니 이미 《잃어버린 부친》을 찾는 광고를! 그래요, 전 찾고있어요! 인젠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웃는 부친》을! 그전날의 부친께서 돌아오실가요? 꼭 돌아오실수 있을가요? 녜?…
아! 눈물 흘려 될수 있다면 울어울어 한강수에 배띄우련만!…
고개를 돌려보니 새벽빛 안고 쉬는 어머니의 입가에는 어쩐 일인지 바야흐로 수집은 장미꽃이 가냘프게 피여나고있어요! 그러나 어머니, 어머니께선 꿈엔들 생각해보셨나요? 그 꽃 꺾어안고 이 불효자식이 이제 날이 밝으면 자수하러 가리라고말이얘요! 빌어먹어도 공부는 시키겠다던, 그래서 요사인 억지공사로 책가방을 메워 학교에 보내시던, 태산같이 큰 희망을 자식의 앞날에다 전부 기탁해오시던 어머니시여! 이젠 저도 마지막 비밀을 털어놓을 때가 됐나보군요! 어머니! 아니, 아버지! 지금 어머니께서 잡수시는 저 약, 저 영양제, 그리고 제가 술 먹고 담배 사피운 돈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온줄 아세요? 칼, 칼을 들고 빼앗은거얘요! 낯모를 두 처녀의 길을 막고 강도처럼 아니, 강도가 되여말이얘요! 두번에 80원을 앗아냈지요, 바로 칼 품고 나서던 그날 저녁에…
물론 동무들에게서 돈을 꿨다고 둘러맞춘 일은 새빨간 거짓이였지요! 허나 이것이 저의 죄인가요? 어머니의 죄인가요?… 이제 몇달 지나면 우리 동학들은 대학마크를 환히 달고 고등학부에서 행복하게들 공부하련만 저만은, 어찌하여 저만은 무거운 쇠고랑을 차고 나라의 죄인이 되여 찬철창 붙들고 통곡을 쳐야 하나요? 도대체 이 모든건 다 무엇때문인가요? 구경 무엇때문에?…

아, 사랑하는 아버지! 제발 빌어요! 어머니를 잘 보살펴드리세요! 위로해주세요! 그리고 굳세게 살아가시라 용기를 주세요! 손 내밀어주세요! 이젠 아버지의 부탁을 제가 곱씹는구만요! 그리고 광고를 쓰세요, 자식을 찾는, 티 하나 없이 순결하고 깨끗한 《어제날의 광호》을 찾는 광고를 내세요!
사무치게 그리워나요! 아, 웃음보에 뒹굴어 오던 나의 동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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