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강의는 특성상 슬라이드 자료가 없으면 불가하다. 하지만 이브 클랭의 파란색 회화는 예외다. 캔버스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파란 칠만 해 놓은 그림. 그러면 설명 끝이다. ‘IKB’라는 암호 같은 제목은 또 뭔가? 감상자를 ‘대략 난감’하게 만드는 그림이지만 수백억 원대의 몸값 높은 명작이다. 이쯤 되면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프랑스 니스 태생인 클랭은 부모가 모두 화가였지만 한 번도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19세에 그는 친구와 함께 남프랑스 바닷가에 누워 “푸른 하늘은 나의 첫 미술 작품이다”라고 말하며 어디엔가 사인을 했다고 한다. 물론 하늘 어디에 어떻게 서명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클랭은 이후 파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됐다. 그에게 파란색은 하늘의 색이자 정신적인 색이었으며 온전한 자유를 주는 색이었다.
1949년 첫 모노크롬 회화를 완성시킨 클랭은 이후에도 니스 바닷가에서 본 하늘색에 유난히 집착했다. 금색이나 분홍, 빨강, 노랑 등 다른 색도 실험했지만 1957년부터 파란색이 그의 트레이드마크 색이 됐다. 1960년 클랭은 아예 자신만의 파란색 물감을 개발해 ‘IKB(International Klein Blue)’라는 이름으로 특허까지 받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신적인’ 파란색은 캔버스에 칠해지면서 200점 가까운 IKB 회화를 탄생시켰다. 작품명 뒤의 일련번호는 클랭 사후, 그의 아내가 매긴 것이다.
클랭의 이런 실험들은 당시 화단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자 새로운 미술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오로지 색 하나로 그림을 완성시킴으로써 ‘그림을 그린다’는 인류의 오랜 관념과 ‘대상의 재현’이라는 미술의 전통을 전복시켰다. 이렇게 미술의 역사는 틀을 깨는 사고와 과감한 실행력을 가진 예술가들이 만들어 간다. 그래서 클랭의 파란 그림은 매우 불친절하지만 위대하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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