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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깡동과 마우재(허성운)
2020년 08월 03일 08시 20분  조회:1867  추천:0  작성자: netizin-1

아래깡동과 마우재
삶과 문화


(허성운)

아래깡동이란 말은 로씨야 연해주지역을 일컫는 함경도 사람들이 불러왔던 말로서 오늘날 우쑤리강과 흑룡강 일대를 아우르는 땅이름이다. 아래깡동 지명은 함경도 사람들의 력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과거로부터 근현대사를 관통하여 숨쉬며 살아있는 유서 깊은 오랜 땅이름이다.

사책에 의하면 7세기로부터 많은 몽골인들은 네스토리교(聂斯脱里教)를 믿게 되는데 이를 중국에서는 경교(景教)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몽골인들은 라싸 불교를 신봉하고 있지만 13~14세기까지만 해도 샤머니즘과 네스토리교를 믿어왔었다. 네스토리우스교가 동방에 전도된 것은 8~9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오랜 세월을 거쳐 오다가 16세기 이후 이슬람과 동정교에 의하여 밀려난다. 로씨야 연해주 석관무덤들에는 네스토리우스식 십자가가 새겨있으며 훈춘 팔련성 삼존불상 보살상에도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있다.

몽골에서는 네스토리교(聂斯脱里教)를 믿는 사람을 예리커훈(也里可温)이라고 부르는데 몽골어로 하느님 은총, 은혜를 받은 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여있고 돌궐어로는 백인을 뜻한다. 여기에서 예리커훈의 소리와 뜻은 함경도 사람들이 말하는 아래 깡동이란 땅이름과 맥락이 이어진다. 즉 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1871년 지신허와 연추 등지에 살던 500여명이 아래깡동 사람들을 아무르강 지류인 사마라 강가에 이주시키고 블라고슬로벤노예라 땅이름을 붙인다. 로씨야어로 ‘신의 축복 받은 마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아래깡동이라고 써왔던 오랜 말을 로씨야어로 옮긴 지명으로 풀이된다.

기근과 학정을 피해 두만강을 넘어 매서운 삭풍을 헤치며 찾아들어온 아래깡동은 선인들에게 있어서 더 나은 삶을 향한 출구이자 자유와 방랑의 끝없는 대지였다. 극빈 속에서 강도, 살인 방화가 몰아치던 암울한 세월 속에 이들은 종교를 신봉함으로써 국적과 토지문서를 가질 수가 있게 되여 말 그대로 가난한 함경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의 축복을 내린 곳이 아닐 수가 없었다. 력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래깡동은 분명 수많은 함경도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왔던 활동무대였다.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서 로씨야가 애훈조약과 북경조약을 체결하면서 아래깡동 땅을 강점한다. 학자들은 함경도 사람들이 로씨야인을 뜻하여 부르는 마우재라는 말 어원을 중국어(老毛子)에서 왔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사실은 만주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만주어는 얼굴과 머리털이 붉은 사람 또는 그런 탈을 쓴 귀신얼굴을 말한다. 민간에서는 마우재를 부에눈(함경도 방언 부엉이 눈) 등 다양하게 불러왔다. 아래깡동으로 오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중국 훈춘 라선동(羅鮮洞 )지명을 세계한민족문화대전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신라(新羅)와 조선(朝鮮)에서 각각 한 글자씩을 따서 불렀다고 해석하고 있으나 사실은 마우재 동네 루스키라는 음을 한자로 표기한 지명이다.

오늘날 와서 아래깡동은 로씨야어로 프리모르스키(바다와 접해있는 땅이라는 뜻)라고 부르고 한국과 일본은 연해주라고 표기하고 있다. 함경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불러왔던 아래깡동이란 땅이름은 은페되고 기피되여가고 연해주란 말이 각종 서적은 물론이요 학술저서까지 공용어 대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길목 아래깡동은 선인들의 삶이 살아 숨쉬던 땅이름이며 우리 력사의 주변부를 메워주기도 하고 외곽을 넓히는 기능을 분명하고 있지만 이처럼 소외되여왔다는 대목은 우리 모두가 주목하여보아야 한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언어 표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틀로 력사를 꿰여만들다 보니 결국 타자의 손에 의해 우리 력사문화가 주물리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로씨야와 일본 사료에서 함경도 사람들이 아래깡동을 개척한 력사를 남기려 하지 않거나 남기더라도 거지무리로 떠도는 구석진 사실을 부풀리는 방향으로 외곡했다. 로씨야인과 일본인보다 먼저 아래깡동에 들어서서 개척한 선인들의 력사를 실제로도 보지 못했기에 사실상 함경도 사람들이 진실된 력사는 방치되다싶이 되였다.

누렇게 빛바랜 아래깡동에서 찍은 박물관 사진 속의 사람들이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짓밟힌 운명에 분노하며 암울한 사회 부조리에 대한 자각과 공분 의식 속에서 자유의 태동이 미숙하게나마 이들의 눈빛에서 감지된다. 그러면서도 근대조선력사자료에는 이들을 법을 어긴 월경 죄인으로만 외곡하여 기술하고 있다.

차마고도, 비단의 길, 미국 서부 횡단도로와 같은 길에 대하여서는 잘 알려지여있지만 정작 우리 선인들이 아래깡동으로 진출한 개척루트는 오늘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어 력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아래깡동은 우리 력사가 오랜 세월을 두고 쌓아왔던 기억의 언덕이며 수천만 선인들의 넋이 묻어있는 성지이며 우리 문화가 고스란히 숨쉬는 수원지이다. 선인들의 함경도 탈출루트를 따라 그 위대한 력사의 로정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도 신발 끈을 고쳐매고 흰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날 아래깡동으로 가는 렬차에 올라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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