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총리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墓碑銘)을 미리 써뒀다. 김 전 총리 장례위원회 부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23일 본지 통화에서 “부인 박영옥 여사가 돌아가신 뒤 김 전 총리께서 미리 묘비명을 써놨다”며 “여사와 나란히 안장될 김 전 총리의 묘비명은 고인이 남긴 글귀 그대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부인 박영옥 여사가 지난 2015년 숨을 거둔 직후 써뒀던 묘비명은 총 121자다. 김 전 총리는 묘비명에서 “한 점 허물없는 생각(思無邪)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라 다스림 그 마음의 뿌리를 ‘무항산이면 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에 박고 몸바쳤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다”라며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고 묘비명을 끝마쳤다.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한 김 전 총리는 이와 같은 묘비명이 세워질 충남 부여 선산 가족묘에 안장될 전망이다. 평소 부인인 박 여사와의 금실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던 김 전 총리는 부인의 옆에 마련될 자신의 묘 자리도 돌아봤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5년 박 여사의 빈소에서 조문객들과 만나 “난 마누라하고 같은 자리에 누워야겠다 싶어서 국립묘지 선택은 안했다”며 “(장지에) 거기 나하고 같이 나란히 눕게 될 거다. 먼저 저 사람이 가고 (나는) 그다음에 언제 갈지…외로워서 일찍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며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은 김 전 총리가 작성했던 묘비명의 전문.
「思無邪」를
人生의 道理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無恒産而無恒心」을
治國의 根本으로 삼아
國利民福과 國泰民安을 具現하기
위하여 獻身盡力 하였거늘
晩年에 이르러
「年九十而知 八十九非」라고 嘆하며
數多한 물음에는
「笑而不答」하던 者-
內助의 德을 베풀어준 永世伴侶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銘 雲庭 自僎
書 靑菴 高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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