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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시골에 계시는 큰아버지가 쌀 몇자루를 가져왔다. 무공해 입쌀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만 먹자면 2년도 족히 넘길 량이였다. 맛 좋은 쌀이라기에 가까운 친구에게 나눠줄 료량으로 친구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둬달정도 기름이 자르르한 맛있는 쌀밥을 먹을 친구 생각에 무거운줄도 몰랐다.
“어, 쌀이네”
친구는 쌀주머니를 받아 쏘파곁에 놓았다. 그리고 두주쯤 지나 다시 그곳에 들렀는데 두주전에 내가 두고 간 쌀주머니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친구가 미안해 하며 “그렇잖아도 오늘은 가져갈 참이였다”며 게면쩍게 웃어보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쌀에 대해 생각해봤다. 오랜전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 어릴때만 해도 쌀은 귀한 선물이였다. 햇쌀이라 특별히 맛 좋다며 가져다주는 쌀을 어머니는 뒤주에 쏟으면서 그렇게 흐뭇해 하실수가 없었다. 쌀을 받으면 늘 집안이 넉넉하고 훈훈해지는 느낌이였다. 정성스럽게 쌀밥을 새로 지어 상을 내오는것이야말로 어려운 시절 최대의 손님접대였다.
그런데 그 쌀이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되여버린 셈이다. 그때에는 밥이나 한번 먹자는 인사는 말 그대로 잘 담근 포기김치에 하얀 쌀밥과 송송 무 썰어 넣고 끓인 소고기국 한그릇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것이였다. 그러나 밥이나 한번 먹자는 인사는 이젠 식사나 한번 하자로 바뀌였다.
쌀밥 먹을 기회는 줄어드는데 외식할 기회는 많아졌다. 식사나 한번 하는데 식당 고르는 일부터가 여간 머리 아프지 않은것이다. 쌀밥 나오는 식당을 굳이 못찾을 리유도 없지만 상대 립장을 고려하자면 일식집이나 레스토랑쪽으로 알아볼때가 많다. 문제는 이 식당들이 너무 비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비쌀수록 속은 허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번지르르한 식당에 가면 나누는 대화 또한 어쩐지 속정깊은 내용은 잘 안나오는것 같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나누는 이야기와는 사뭇 다를듯하다. 우리의 음식이 세계화로 나간다는 얘기가 나올때면 혼자 픽 웃곤 한적이 많다. 지금의 아이들이 쌀밥에 된장국이며 김치보다도 피자나 스파게티를 더 찾고있는데 아무리 세계화를 한들 무엇할가.
가끔씩 시내의 번화가에 나갔다가 부쩍 시장기를 느낄때가 많아진다. 발음도 어려운 식당간판들이 요란하다. 그럼에도 내가 느끼는 허기와 공복은 왜서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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