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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전" (련재13)
2020년 05월 10일 11시 32분  조회:3057  추천:0  작성자: 오기활
후반전에“멋진 꼴!”을
인생은 2모작이다.
인생을 100으로, 50은 전반생, 50후는 여생이 아닌 후반생이다. 후반생은 전반생에서 저축해 온 것을 토대로 살아간다.
인생 60을 시작으로 후반전이다.
축구를 보면 멋진 꼴이 거의 모두 후반전에 난다. 인생사도 마찬가지로 후반생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랜드모스는 71세에 그림을 시작했고 갈릴레오는 74세에 마지막 저서를 출판했으며 파블로카 찰스는 85세에 백악관에서 연주를 했고 버나드쇼는 96세때 가지를 치기 위해 나무에 올랐다가 다리를 상했다.
지능과 창의력은 다르다고 한다.
 지능은 20쯤에 가장 완숙하고 창의력은 30후에 서서히 발달하다가 70부터 또 다시 상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명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고 창의력의 평균년령이 74세로 나타났다.
최종승부는 후반전이다.
후반전에 성공한 사람이진짜 성공한 사람이다.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나이가 수자에 불과 하다.
나는 후반전에 승부를 걸고 더 멋진 꼴을 넣었다.

첫 “꼴”은 중조변경에서
1987년에 내가 정령퇴직을 하니1990년에 “중화인민공화국 도문동식물검역국”에서 나를 “延辺中朝辺境檢疫性杂草, 田園杂草種類及其分布調査硏究”사업 기술고문으로 초빙되였다.
하여 우리는 조사팀을 조직하여1992년 9월 20일까지 조사사업을 마무리를 하고 다음 보고문건을 작성하였다.
1, 項目鑑定大钢
2, 延辺中朝辺境檢役性杂草田園杂草種類及分布調査硏究工作報告
3, 調査点分布圖(地圖)
4, 延辺中朝辺境主要檢疫性杂草, 田園杂草名錄
5, 延辺中朝辺境田園杂草分區圖
6, 延辺中朝辺境田園杂草檢索表
그때 우리가 조사구역내에서 발견한 잡초가 모두 71科에 256属, 504種이였다. 그 중에는 검역성잡초 1종, 水田잡초 132종, 旱田잡초 169종, 果園잡초 337종, 熟地잡초 137종이 포함된다.
성해당부문에서1992년 9월 27일에 감정회를 소집하였는데 길림성정부에서 파견한 심양농학원식물보호전업의 백교수가 감정위원회 주임을, 장교수가 부주임을, 冠廣淸, 金洙哲 등이 위원으로 감정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감정회는 만장일치로 우리가 작성한 보고문을 통과하고 성정부에 보고하니 성정부 해당부문에서 제때에 본 감정을 통과하였다.
이는 내가 후반전에 중조변경에서 넣은 첫번째 멋진 “꼴”이였다.
 
 
두 번째 멋진 “꼴”은  서울에서
1994년 8월 한국 “아카데마서적”에서 金洙哲, 安相得, 李相來의 공저로 세상 처음으로 “原色白頭山資源植物”을 출판하였다
“장백산은 “식물의 宝庫”로 세상에 알려졌다.. 특히 장백산은 세상에서 만병통치의 灵葯으로 불리는 산삼의 분포 중심지역이고 잣나무, 오리나무더부살이, 참돌꽃 등 량온대의 유용자뭔식물의 분포지다.”“중, 한 두 나라전문가들이 ‘우리가 물려받은 자연은 그대로 보존하고 보호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며 유용한 식물은 순화, 번식, 개발하여 멸종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는 취지로 팀을무어 2년간 백두산의 유용자원식물을 탐사한 기초상에서 농학, 식물학, 약학, 림상학, 축산학 등 자연과학을 연구하고 배우는 각계층의 모든 사람들에게 백두산 자원식물에 대한 좋은 지침서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원색백두산자원식물”을 집필하였다”
이는 “원색백두산자원식물”의 “머리말”의 한 단락이다
 
(부록);
“원색 백두산자원식물”속의  이야기
ㅡ 나의 맏아들 相术이는 국비로 일본동경에서 전기공학연수를 마치고 돌아 올 때 나에게 니컨패카메라를 선물하였다. 나는 정년퇴직을 하자3ㅡ4년간 이 사진기로 백두산의 700여종의 식물을 선택적으로 찍고나서“백두산자원식물도감”을 출판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원고를 가지고 연변인민출판사에가니 출판사에서 아직까지 원색사진 출판이 어렵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국의 동양자원식물학회 회장으로 지내는 리상래박사와 강원도 춘천대학의 안상득박사가 서울에서 출판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중, 한관계래왕에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우리 농학원의 김병진교수가 친히 관계부문을 찾아 다니며 나의 원고의 출국수속을 끝내고 원고를 우편으로 안상득박사에게부쳐 보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갈려니 근친의 초청이 없이는 매우 어렵다고 하였다. 그래서 또 리상래박사가 나서 동분서주하면서 끝내 나의 출국수속을 마무리를 하였다..
나는 1994년 1월에 중국 천진에서 비행기에 올라 상해를 경과하여 서울 김포공항에 내리니 리상래박사와 안상득박사가 마중을 나와 나를 서울대학 근처인 관악구의 어느 하숙집으로 안내하였다.
ㅡ 나는 하숙집에서 독방을 차지하였다.리상래회장이 이부자리를, 안상득박사가 채색텔레비죤을 마련해 주었다. 하숙비가 한달에 한화로 40만(인민페로 4000원)이라고 하는데 리상래회장이 전담하였다.
나는 한 달을 기한하고 원고를 추고하며 내가 찍은 식물사진을 정리하면서 편집사업에 전념하였다.
ㅡ 나는 밤 늦게까지 원고와 씨름을 하기에 아침늦게까지 잠을 자야 했지만 아침식사가 6시 반으로 제정되여 그때 너무나도 힘 들었다.
나의 방에 드나드는 사람은 단 초등학교를 다니는 6, 7살이 되는 계집애로 이름이  李宝美다.
“아저씨 아침진지 드세요”
보미가 나를 부르면 어머니가 “할아버지라고 불어야지 아저씨라면 버릇이 없는 짓이야” 라고 딸애를 가르쳤다.
어느날 보미가 나에게 자기가 그렸다는 그림책을 들고와 자랑을 했다. 구레용으로 지면을 꽉 채운 그림은 구도가 좋았고 잘 그렸다. 내가 참 잘 그렸다니 보미는 국제미술경기에서 우수상을 따냈다며 은질컵까지 보여주었다.
ㅡ 대개 열흘간을 지나니 하숙집 아줌마가 “이 방에 손님을 한 분 더 모실려니 될가요?”라고 묻기에 나는 대뜸 된다고 하였다. 그 이튿날 崔進旭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더니 방한구석에 조립식 옷 걸이를 설치하더니 대뜸 10여벌의 옷을 상품처럼 진열 하였다.
수일이 지나자 그는 나와 허물이 없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여기로 오기 전에는 어떤 독신녀와 동거를 하다가 갈라 졌다며 자기가 쓰던 물건을 그녀에게 다 주고 와도 아까운 생각이 조금도 없다고 했다.
최씨는 부산에 처가 있는데 자기가 늙었다고 곁에 가면 발길로 차내면서 싫어 하니까 새로운 애정을 찾으려고 서울에 왔다며 자기가 지금 어느 과자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는데 월급을 많이 받는다면서 서울서 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였다., 부산에 있는 처자들에게 돈을 붙이지 않아도 그들이 아무 문제없이 살아 간다며 아무런 주저도 없이 시원스럽게 말을 했다.
최씨는 기술이 팔방이라며 어선에서 큰 고기를 낚고 찍은 멋진 사진까지 보여주며 자기 자랑을 하였다.
ㅡ하숙집 옆방에는 또 장기적으로 하숙하는 郑昌吉이라는 50대 남자가 있었는데 정씨는 나와 그냥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기에 서로간 허물없이 대화하는 사이로 되였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정씨는 자기가 다니는 奉天基督敎에 함께 가자고 하였다. 나는 신자가 아니기에 갈 마음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돌려 서울의 世波도 알겸 사회생활도 체험 할 겸 한번 다녀 오는 것도 랑패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따라 나섰다.
교회의 마당에 이르니 일부 신자들이 길 좌우에 줄을 서서 환영하였다. 어떤 신자들은 나의 손을 잡으면서 “무엇을 도와 드릴가요?”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례배당입구도 그 모양이 였다. 례배당에 들어가 책상을 마주하고 앉으니 곁에 있는 신자들이 나를 향해 가볍게 인사했다. 책상 안에는 성경책이 있었고 례배당 벽 좌우에서 악사들이 줄지어서 찬송가를 불렀다. 례배가 끝날 무렵 돈 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복무원이 사람들을 빠짐없이 찾아 다녔다. 정씨가 “내가 당신의 몫까지 희사할 테니 념려 마십시요”하면서 나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례배가 끝나고 마당으로 나오니 역시 사람들이 길 량 옆에 줄지어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나는 이날 교회에 다녀온 것 역시 인생을 연구하고 교인을 알고 그네들과 단결할 줄 아는 과당이였다고 생각하였다.
ㅡ 근 40여 일간의 노력으로 편집을 끝내니. 어느날 리상래회장이 와서 “그간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자유활동 시간입니다. 서울부근에 경치 좋은 곳이 많으니 구경을 떠납시다”고 하였다.
나는 평시에 생각했던 요구를 서슴지 않고(렴치없이) 제기 하였다.
“나는 서울 구경보다도 우리 宗祖와 先祖들의 聖地를 參拜하고 싶습니다. 경주에 있는 中始祖金陽의 墓所,, 경상남도 固城에 있는 宗祖墓域, 전북 高敞의 斌吉公墓所를 참배하고 싶습니다. 이는 나의 평생 소원입니다.”
리상래회장은 나의 모든 요구를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만족시켜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하고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제기 했구나는 생각으로 낯이 뜨거워 난다.
ㅡ 2010 년 어느 여름에 내가 조양천 삼성촌에서 텔레비를 보는데 미국에서 진행된 국제급 골프경기에서 李宝美가 일등으로 “우승컵”을 수여 받는 장면을 보았다.   宝美란 이름이 하도 인상이 깊었기에 내가 나이를 따지며 계산해 보니까 확실히 내가 서울하숙집에서 함께 지낸 宝美가 옳았다.
“보미만세!”
나는 혼자서 두손들어 보미만세를 부르고 “이 세상이 너를 위해 태여 났구나!”며 혀를 끌끌 찼다.
보미가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부럼이 없이 이름값을 하면서 잘 살기를 기원한다.
 
세번째 멋진“꼴”은 연변대학에서
2004년에 “장백산 몇가지 항암식물 및 그의 약학연구 평가”란 제목으로 내가 쓴 영문론문이 “연변대학학보”에 실려 2등 우수론문으로 평선되였다.
2006년 4월2일에 연변대학 학보편집부에서 성대한 우수론문수상파티를 조직하였다.
 

 내가 후반전에 넣은 “꼴”은2007년 아세아최고학부로 불리는 일본 동경대학에서 조직한 “백두산식물세미나”에서 내가 “장백산의 야생식물”을 독강(獨講)등으로 계속하여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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