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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리시진'김수철전"련재(25)
2020년 11월 25일 11시 24분  조회:1969  추천:0  작성자: 오기활
고성김씨네3大“땅소나기”
갑자기 창살같은 비가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소낙비의 먼저 들려오는 높은 굉음을 “소나기운다”고한다.
누구의 목소리가 굉장히 높고크면 그사람을 소나기소리에 비춰“땅소나기” 라고 부른다.
문자기록이 시작되여 고성김씨가문에 세기 42년부터 3대“땅소나기”이야기가 오늘까지 구전되고있다.
“땅소나기”의 맏이로 소가야왕의 34세 손인 절세의 애국명장김빈길(金斌吉)장군이시다.
장군님은 朝鮮李太祖洪武丁丑年에 倭賊을 전멸시켜 三道水軍都節制使,정승(政丞)벼슬까지하신분이다.
왜적과 싸울때의 그 “땅소나기”군령이 위력이 높기로 부근의 海域을 진동했고 왜군들은 벌벌떨게했다고한다.
둘째 “땅소나기”는 소가야왕의 37 대 세손으로 김빈길장군의 증손인 김경현(金慶賢)이다.
公은 오위장(五衛将)의 벼슬로 14세기 大將魚有沼의 부하로 직무하다가 반란을 이르킨 李滿住를 토벌하기위하여 咸吉道로 원정을하게 되였다.
公은 高敞에서 떠나 원정하던도중 逆賊인 리만주가 산험을 리용하여 잠복하고있었기에 공격이 매우 어럽던 시각에 魚有沼대장이“누가火箭으로 적굴에 불을 달수있느냐?”고 물으니 김경현공이 앞장에 나서며 “내가 할수있습니다”고 “땅소나기”로 답하였다. 어유소대장의 “급히 행하라!”는 명령에 경현공은 시위에 물렸던 화전을 온몸의 힘을모아 힘껏당기다가 “씽ㅡ!” 소리를 내며 火箭을 날렸다.
火箭은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적군의 마초에 꼽혔다. 마침 붓는불에 부채질을 하는듯 삽시에 북풍이 불어치더니 적진이 불바다로일거에 리만주무리들을 격파하였다.
한번은 경현공이 변을 보다가 달려드는 호랑이를“땅소나기”로 놀래우고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있다.
셋째“땅소나기”는 소야국왕 51대손 김병인(金秉仁)이다.
김병인은 1923년 9월 10일 연변고성김씨 제2회 종친회를 소집하였고 연변 고성김씨종친회의 2대회장으로 추대되였다.
김병인의 사연은 지금 룡정에있는 그의 손자 김삼철(현임연변고성김씨종친회 회장)이 2018년 3월 29일 “길림신문”에 발표한 “땅소나기할아버지”란 제목의 기사로 소개한다

 
“땅소나기’할아버지”지금부터 60여년전 연길현 태양공사 중흥대대 제7생산대(지금연길시조양천진중평촌제7촌민소조)에 김병인이라는 로인이 계셨는데 목소리가 류달리높아 그소리가 10리를갔고 마을사람들은 그를 ‘땅소나기’라 불렀다.
‘땅소나기’는 30여 세되던때에 태양구백석골안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당시마을에는 울바자가없이 터밭채소농사를 지었다. 30여호마을에서 집집마다 닭, 오리를 키웠는데 이전에는 여름이면 닭들이 채소를 쪼아먹어 절단하였지만 ‘땅소나기’가 이사를오면서 마을의 닭, 오리등 도깨비짐승들이 꼼짝못했다고한다. ‘땅소나기’가산비탈에서 “독수리여!-”, “독수리여!-” 하고 소리칠때면 10리골안이쩌렁-쩌렁- 진동하여 하촌까지 들리였고 닭, 오리들은 무서워 모두제굴로 들어가 떨었다고한다. 심지어 날아가는 산새들도 기겁하여 멀리피신했다고하니 그야말로 믿기어려운 이야기다.
“땅소나기’의 셋째손자인 나는 할아버지를 잘알고있다. 할아버지의 음성은 어찌나 높은지 집안에서 조용히 말해도 밖에까지 다들려 우리집에는 비밀이없었다. 좀만 성이나면 큰소리로 호령하는데그때면 온마을이 쩌렁쩌렁하여 우리집에서 큰싸움이 벌어졌는가하며 마을분들이 모여오군하였다. 내가 10여살 되던 해부터는 내가 보이지않으면 할아버지가 나를 찾느라고 내이름 을불렀는데 2리밖 아랫마을에 놀러갔다가도 그 부름소리를 듣고 인차달려오군하였다.
‘땅소나기’ 소문이 퍼지면서 태양구 구정부간부들은 우리할아버지를 모르는사람이 없었고 연변주정부의 정용선이란분은 태양구에 하향할때면 꼭꼭 할아버지를 찾아보군 하였다.
할아버지가 회갑이 되는해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저세상으로먼저 보내고 속을태웠는데 몇 년 지나지않아 또 로친까지 앞세우다보니 심병에 걸려 우울증이심각했다. 한번은 독약으로 자살까지시도한것을 맏형님이 요행 독약을 빠앗아 물도랑에 던져버린 일도있다..
그러다가 맏손자가 결혼하고 증손들이 다섯이나 생기면서 화기를 찾았고 얼굴에 웃음이피였다. 증손녀에 증손자까지 련이어 안아보게되니 너무반가워 매일 증손군들을 번갈아업고다녀 마을에서는 ‘보모할아버지’라고 친절히 불렀다. 그때는 큰형님을 따라 가정이 룡정시교 광신촌에서 생활할때라 ‘땅소나기’라면 모르는 사람이없었다.
4대 식구가 한집에서 생활하다보니 세손자의 자식들이 10여명으로 늘어나면서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는것 같았다. 증손군들을 번갈아 불러들이다보니 자주 소리를쳐서그런지 할아버지소리는 그 진동력이 더욱컸다.
년세가 80이 넘었는데도 터밭채소전을 알뜰히 가꾸었고 보통음성도 남보다 한 옥타브높아 처음 대하는 사람은 성부터낸다고 좋아하지 않았다. 마을에서는 사람찾는 일이 생기면 의례 우리할아버지를 찾았다. 그러면 우리할아버지가 한번 아무개- 하고 부르면 그분들은 인차달려왔다. 한번은 증손녀 영순이가 4리 밖의 룡지촌 학교에 놀러갔는데 할아버지가 “영순아!” 하고 소리치니 영순이가 인차 달려왔다.
그런데 우리할아버지는 목소리만 높은것이아니라 방귀소리도 유별나게 높아 집에서 뀌는방귀소리가 뒤집까지 들리여 마을사람들을 웃기였다. 한번방귀를 뀔때면 마치 기관총을 쏘는것처럼 련발하는데 그소리가 높아듣는 사람마다 놀라하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방귀는 건강의 상징이였다. 방귀가심하다고 병원까지 가보았으나 할아버지의 신체에는 아무런 이상이없다고 하였다.
1965년겨울, 할아버지의 셋째손자 즉 나의 약혼녀가 처음 집에놀러왔었다. 모두들 점심을 먹고있는데 할아버지가 방에서 점심상을 받으며 방귀를뀌였다. 그소리가 어찌나 요란하였던지 나의 약혼녀는 손에쥔 숟가락까지 놓치고 배를끌어안고 웃었다. 그러나 곁에있는 10여명식구들은 모두 말없이 조용하였다. 약혼녀가 머리를 들어 식구들을 둘러보니 모두들 소리없이 웃고있었다. 우리집식구들은 자주듣는소리라 례사로왔지만 새손비에게는 난생 처음 듣는 놀라운소리였던 것이다.
내가 할아버지방귀력사를 이야기하니 약혼녀는 또 죽겠다고 웃어대였다. 그날오후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그녀는 할아버지방귀소리를생각하며 길에서 실신한사람처럼 계속 웃으며 걸어갔다고하였다. 이이야기는 후에 안해가 자식들에게까지이야기를 한데서 지금도 나의 자식들은 방귀소리만 나면 옛날 어머니가 로할아버지의 방귀소리에 놀랐던 이야기를하며 한바탕 웃음판을벌린다.
할아버지의 ‘땅소나기’ 음성과 방귀는 확실히 할아버지의 건강비결이였던지 90세까지 병원한번 가보지않고 건강하게 생존하시였다. 돌아가시던그해여름에도 오전에 한전기음을 매고 점심에 오이랭국에 점심을 잘잡수시고 목침을 베고 점심낮잠을 주무셨다. 오후 3시가되여도 깨여나지않으니 큰아주머니가 방에들어가 깨웠는데할아버지는 이미사망하시였다. 병원의의사를 불러확인하니 할아버지는 자는중풍을 맞아 사망하였다고하였다. 할아버지는 이렇게피한방울 보이지않고 깨끗이조용히 이세상을 떠나였다. 1976년에세상을 뜬 우리 할아버지는 당시 사회에서도 매우보기드문 장수로인이였다.
‘땅소나기’로 이름을 날렸던 우리 할아버지는 일찍 청소년때부터붓글씨를 잘써 표창을 받았고 례의범절이 밝아 촌군중들의 존경을받았는데 1950년대에는 중흥촌로인회의 총책임 ‘조니’(지금의회장직함)로 김주사라고불렸다.
할아버지의 ‘땅소나기’ 유전자는 셋째손자인 나에게전해졌는지 나는 지금 79세나이에도 신체가 아주건강하고 음성이 보통사람보다 몇갑절높아 처음대하는 사람들은 모두성을 낸다고 오해한다.
‘땅소나기’ 별칭으로 많은사람들에게 깊은인상과 웃음을 남기며행복했던 시절은 인제 아름다운추억으로만 남았다.
김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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