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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리시진"김수철(련재 38)
2021년 09월 01일 04시 39분  조회:2235  추천:0  작성자: 오기활
                               제 3부      신문잡지로 읽는 김수철

11, 장백의 불로송
우리가 탄 승용차가 김수철교수님의 둘째아들댁문앞에 이르렀을 때 허리구부정한 늙은분이 끝신을 신고나와 계셨다. 저분이 그래 오늘 내가 찾아뵙자고한 김수철교수란 말인가 !
올해91세라는 교수님은 보기좋게 허허웃으시며 나한테 왔다.
나는 허리굽혀 공손히 인사하면서 거쿨진 교수님의 두손을 잡았더니 교수님이 어찌나 으스러지게 잡는지 흠칫놀랐다. 그 년치에 비하면 너무나도 억센손아귀였다.
나는 교수님댁에 들어가서 교수님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비록 머리에 희슥희슥한 서리가 내렸어도 혈색이 좋은 면상에는 잔주름이 한오리도 없었다. 단 넓으신 이마에 깊은주름이 건너갔을 뿐이였다.
나는 김교수님에게 관계되는 자료를 많이읽고 왔다. 그러니 자연히 교수님이 왜서 허리가 이렇게 구부정했는가를 가늠했다.
젊어서부터 무거운 철통을 짊어지고 강을 건너 들을지나 산을 톱아오르며 식물을 채집하느라 너무도 고생하시여 허리가 이렇게 구부정했구나고 생각하면서 교수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보았다.
소탈하고 푸접이 좋은 김수철교수님과 나는 얼마지나지않아서 허물없는 사이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수 있게 되였다.
자습하여 인재로
나는 김교수의 자료를 보면서 의문난점이 있었다. 다름아닌 그가 대학교에 입학했다가 쫓겨난 신세인데 어떻게 대학교교수로 되였는가는 것이다.
김교수는1944년에 위만간도성 왕청국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에 룡정의과대학에 입하엿는데 항일군정대학이 룡정의과대학을 이관받고 신입생들에 대한 정치재심에서 가정성분이 규편중농이라는데서 입학자격을 취소당했다.
그러다가 사람이 착하고 책임성이 강하며 파고드는 정신이 좋은덕에 연변농학원 생물학강좌실험원으로 일하게되였다 이런 실험원이 대학교교수로 된다는 것은 실로 조련치않은 일이였다.
알고보니 김교수도 여느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허심히 학습하고 부지런히 실천하면서 대담하게 개척하고 끈질긴노력을 경주하여 알찬열매를 가꾸어 냈던 것이다.
첫째, 허심히 과학지식을 학습하였다.
대학공부를 못하고 실험원으로 일하자니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하나씩 배워야만했다.
그는 밤을 패가면서 대학교과서를 열심히 학습하면서 학생실험지도를 하였다.
1952년부터1959년까지 농학원조교로 교수일선에 나서게된 그에게는 과학지식이 더더욱 필요하게 되였다. 워낙 친취심이 강하고 탐구력이 강한 김교수는 교수하는 한편학습을 늦추지아니 하였다.
둘째, 부지런히 실천하였다.
식물학은 원래부터 말그대로 식물을 접촉해야만 한다. 하여1950년부터1958년까지 여름방학과 공일을 리용하여 연변각지와 백두산일대를 돌아다니며 식물표본을 3000점이나 수집정리하였다.
1959년부터6 5년까지 여름방학을 리용하여 동북3성을 돌아다니며 식물표본2500점을 수집정리하였다. 문화혁명기간에 남들은 혁명을 한답시고 돌아칠 때 김교수는 통화지구, 백두산일대, 동북3성, 내몽고, 산서, 해남도 등 성시의 50여개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며  2500점의 식물표본을 채집정리하였다.
김교수는 발이 부르트도록 만리길을 걸어다니면서 눈이 아플정도로 몇천종의식물을 관찰하고 손이 저리도록 25000점의 식물표본을 수집정리하였다.
이렇게 채집한 표본들을 잎과 줄기, 뿌리를 관찰분석한 기초상에서 식물을 우선 무화식물과 유화식물로 나누고 무화식물을 또 뀬식물과 이끼식물로, 유화식물은 라자식물과 피자식물로 분류한 다음 목, 과, 속, 종으로 분류하며 식물학의 과학연구원시자료를 축적하였다.
김교수는 1960년부터ㅡ1978년까지 강사로, 1980년에 부교수로 진급하였다.
그는 대학강당에서 “식물형태학”, “식물해부학”, “식물분류학”, “식물라틴어학”등 과목을 강의하였다.
셋째, 자기가 수집한 재료에  대한 끈질긴연구를 하였다.
그는 1977년에  “연변중초약”(연변인민출판사)을 출판하고1984년에 “중국민족약지”(인민출판사), 1982년에 “연변사료용식물명록”(연변인민출판사), 1987년퇴직전까지 함금량이 높은5편의 론문을 발표하였다.
김교수는 비록 학벌도 학위도 없었지만 자기가 창조한 과학연구성과와 교수성과로 1985년7월에 끝내 교육계의 최고직함인 교수직함을 따내였다.
김수철교수야말로 명실공한 자학으로 성공한 교수이다.
식물학박사
김교수에게는 정년퇴직이란 있을수 없었다.
1987년 그는 퇴직을 하자 재직기간에 쌓은 원시재료를 기초로 새로운 과학지식과 과학연구활동을 활발히 진행하였다.
퇴직하여 지금까지 저작과 론문 17권(편)을 중국, 한국, 일본에서 발표, 출판하였다.1992년에 한국“자원식물학회지”에 “중국항암식물약리용현황과 전망”, “백두산항암식물유전자원조사연구보고”란인기론문을발표, 2007년에 일본동경대학 “아세아주환경자원연구중심학술보고대회”에서 “중국장백산자원식물”이란 론문을 발표하여 국제적인 중시를 불러이르켰다.
김교수는 식물학연구국제무대에로 진출하기위하여 완강한 의력으로 영어공부에 몰두하였다.
그는 1941년 연길국민고등학교에 다닐 때 영어교과서1책을 배운 밑천으로 문화혁명기간에 영어교원을 청하여 10여일을 배우고 자기로“영어단어카드”를 만들어 가지고다니며 외우고 또 외웠고 1980년대부터는 록음기를 리용하여 영어를 배웠고1990년대부터는vcD를 리용하여 영어를 자습하였다.
1991년 한국에서 조직하는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자니 영문으로된 론문이 아니면 안된다기에 중의학방면의 “영어공구서적”, “중의중한영한사전”등 공구서적과 동무하면서 “한영식물사전”까지 자편하면서 영어공부에 몰두하였다.
하여 조선어, 한어, 일어, 영어로 론문을 쓸수있는 학자로 식물학국제무대에 등단하게되였다.
김교수에게는 식물원시표본도 필요하지만 식물사진표본과 식물그림도 수요되였다 .하여 년세가 많은 그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미술교원을 찾아가서 스켓취방법을 배워채집한 식물을 그림으로그릴수 있게 되였다.
이렇게되여 김교수는 현재3200종의 식물표본을 원시자료, 그림자료, 사진자료로 만들어 중화민족의식물학계에 귀중한 재부를 남겨놓았다.
김교수는 백두산밀림속의수천수백종의 식물을 조선어, 라틴어로  학명, 별명, 산지,약효등 전부를 장악한 식물학박사급수준에 오른 학자로 되였다.
1986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로동모범”칭호를, 1987년 길림성정부에서 그에게 중약자원보충조사”선진공작자”, “길림성로동모범”영예를,1990년에 중화인민공화국농업부에서 그에게 “초원자원조사우수상”을 수여하였다.
현재 김교수는 연변생물학회명예회장, 길림성초원학회고문, 대한민국 자연식물학회고문, 연변 aloe연구소소장직을 맡고있다.
묻노니 이런 거룩한 성과를 이룩한 사람, 이런상을 수여받은 사람, 이런 사회적직무를 가진 사람이 당당한식물학박사가 아닌가?
박사는 원래 학술연구단체에서 수여하는 직함이다. 그런데 우리의 김교수는 백두산산천초목이 우러러보는 박사이며 우리조선족들이 너남없이 떠받드는 당당한 박사이며 세계가주목하는 식물학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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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존경하는 교수이며 우리의 자랑찬 식물학자 김수철교수님과 이야기를 마치고 귀향길에 올랐다.
나의 눈앞에는 김수철교수님의 예지로 빛나는 두눈이 두렷이 떠올랐다. 아직도 탐구와 창조의 빛나는 두눈!
90대고령에 그처럼 완강한 의력으로 식물학연구에 몸과 마음을 다바치는 김수철교수님의 성스러운 모습에 나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는 김수철교수님의 새로운 성과를 기대하여본다. 지금 김수철교수님은 2300종에달하는 “길림성식물도감”편집에 한창이다. 나는“길림성식물도감”의 출판을 기원하며 스스로 김수철박사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였다.
                         글/ 성문
                         (연변대학“불로송”잡지 2017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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