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녀성평생교육협회 연변항공승무학교 탐방
연변녀성평생교육협회(회장 김영순)에서는 당창건 98돐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해 지난 6월 28일, 연변영예원을 방문, 평생교육에 당수업을 접목시켜 애국주의 사상을 고양하도록 했고 또 연변항공승무학교(교장 최옥금)를 탐방하고 최옥금 교장으로부터 창업담을 듣는 것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성공비결을 공유했으며 녀성의 강의함과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했다.
최옥금 교장은 자신의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오늘의 연변항공승무학교가 있기까지 남편의 공이 크다며 성공비결을 5가지로 종합했다.
첫째, 담량(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사유(명석한 두뇌가 있어야 한다.)
셋째, 목표(목표를 세우고 당면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넷째, 됨됨이(인간 됨됨이가 무엇보다도 중용하다.)
다섯째, 업종(그 분야에서 화끈하게 잘 할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해야 한다.)
최옥금은 음악이라는 예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단돈 40원을 가지고 고향인 흑룡강 밀산으로부터 연변으로 왔다. 예술학교에서 2년간 진수과정을 거쳐 음악교원이 되였고 국가사업편제를 얻기 위해 28살 로처녀가 될때까지 책과 씨름했다. 또한 평범한 음악교원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히 철밥통을 버리고 모텔사업에 뛰여들었다. 모델학교를 운영하는 3년사이 그는 실패의 쓴맛을 맛볼 때로 맛보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전업적인 모델교원이 없이 저녁이면 책을 보고 연습하고 이튿날에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장소가 없으면 이집저집 빌려서 사용하기도 했으며 모델들에게 줄 로임이 없어 리자돈을 꿔가면서라도 신뢰와 책임을 다했다.
기회는 잡는자의 몫이라 했다. 모델사업을 포기하려는 시점에서 항공회사에서 스튜디어스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최옥금은 2004년부터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5년에 연변항공승무학교를 꾸렸다. 당시 한국인이 1만5000원을 투자해 함께 공동경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화적인 차이로 합작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반년만에 '독립'을 선언하고야 말았다.
통 크게 30만원을 꿔서 5층짜리 건물을 임대했고 홍보에 4만원을 투자해 학생을 모집, 결과 기존의 20명으로부터 60명으로 늘렸다. 이렇게 한층 한층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늘의 승무학교가 있게 되였으며 200여명의 학생을 둔, 일정한 규모를 갖춘, 길림성에서 유일한 항공승무학교로 자리매김했다.
연변대학의 석경화 교수는 "교육의 다양화 즉 특색교육이 성공을 불러왔다. 최옥금 교장의 창업의 핵심은 기회를 잘 잡았고 꿈과 현실을 잘 결합했기 때문이며 강의한 의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연변녀성평생교육협회 김영순 회장은 "연변항공승무학교의 한벽을 독차지한 영예증서들로부터 학교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현재 해마다 7~8명의 학생들이 인민대회당 도우미로 취직을 하고 있고 선박, 공항, 철도 등 분야에 취직을 하고 있다니 전업성을 띤 업종의 우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며 " 창업에서 성공한 우리 녀성들은 어찌보면 기업을 경영했다기보다 인생을 경영했다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고 말했다.
조글로미디어 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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