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의 꿈을 찾아서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창작음악극 《꿈 · 춘향》을 보고
□ 주금파
《꿈 · 춘향》의 한 장면
일전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구연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중국 조선족 창작음악극 《꿈 · 춘향》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음악극은 연극, 음악, 무용, 조명, 미술, 의상, 그래픽 등 모든 예술쟝르를 총동원하여 만들어지므로 예술의 최고 경지라고 한다. 그리하여 나는 극장에 들어가 앉을 때까지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극을 보는 내내 놀라움과 감탄이 전기충격처럼 나를 강타했다. 우리 조선족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춘향전》을 현대감각으로 간략하고 경쾌하게 재해석하여 6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집약해놓았는데 세련되고 우아한 예술적 표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러한 고차원의 음악극이 만들어진 데는 무조건 국외 명장들의 지도와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춘향》의 포스터
며칠후 이 작품의 총연출 김영주, 예술총감독 리경화 등 제작일군들과 만날 수 있었다. 작곡가로 익히 알고 있던 김영주 총연출은 초면이였는데 애된 얼굴의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였다. 나는 이분들과 진지한 대담을 나누면서 하나하나 의문을 풀어나갔다.
필자: 《꿈 · 춘향》은 어느 나라 예술가들과의 합작품입니까?
김영주: 아닙니다.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의 배우와 가수들 그리고 우리 연변 현지의 예술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것입니다.
필자: 연변에서도 이런 고차원의 음악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어떤 계기로 우리 민족의 고전명작 《춘향전》을 음악극으로 만들게 되였습니까?
김영주: 어느 날, 연길시문화라지오텔레비죤방송및관광국 정성무 국장님이 저에게 춘향과 몽룡의 쌍무를 만들 수 있느냐고 문의하였습니다. 그 때 만들 수 있다고 대답하면서 음악극 같은 좀 큼직한 작품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국장님께서 그런 큰 그림이 있으면 대담하게 준비해보라고 격려하더군요.
리경화: 배우의 종합능력을 필요로 하는 음악극을 시도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연길시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은 무형문화유산을 발굴, 보호하는 단위입니다. 구연예술을 한층 더 발굴하고 전승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사명이지요. 음악극은 구연과 마찬가지로 종합예술이 아니겠습니까? 저희 예술단에는 말하기, 노래부르기, 악기연주, 춤추기 등 모든 쟝르를 거뜬히 소화해낼 수 있는 팔방미인들이 많지요.
가사창작 토론모임중인 제작진
김영주: 창작평론실, 구연부, 성악부, 무용부의 골간들을 불러서 음악극을 창작할 데 관한 결정을 공포했더니 처음에는 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였습니다. 일반 구연극을 만드는 것도 아닌 음악극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지요.
리경화: 고전명작을 잘못 건드리면 본전도 못 건지고 망신만 당할 수 있다는 걸 저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다들 안된다고 할 때 김원희 부국장님이 “세상에 안될 일이 없습니다. 꼭 해내리라고 믿습니다.”라고 격려하였습니다. 그 말에 힘을 입은 저는 단원들을 설득했지요. “함께 지혜를 모아서 한번 우리 민족예술의 힘을 보여줍시다. 이번 작품의 총연출인 김영주작곡가를 믿고 따라가봅시다.”
김영주: 저로서는 부담이 상당히 컸지만 지도부의 믿음에 신심이 생겼습니다. 우선 가사가 직설적이고 간단명료하면서도 철리적인 함축미가 도드라져야 합니다. 저는 김은연과 지화림 이 두 젊은 친구를 가사창작에 투입시켰습니다. 1970년대 조선에서 제작한 《춘향전》의 주제가인, 지금까지 사람들이 즐겨부르는 명곡 〈사랑 사랑 내 사랑〉의 가사 한줄, 선률 한박자도 모방해서는 안됩니다. 순수한 우리의 새로운 창작품이여야 합니다. 좀 어설프더라도 남의 걸 흉내냈다는 느낌을 줘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리고 음악극이란 우아하고 아름다운 가무와 음악이 집결된 고차원의 예술쟝르이기에 지금까지의 연변 ‘촌티’에서 벗어나야 했지요. 이것은 리경화 예술총감독의 철칙이였습니다. 젊은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수십번 고치며 만들어낸 가사들이 점점 내 마음에 들었습니다. 머리속에 이미 만들어진 악상에 맞출 마땅한 가사를 찾아가는 힘든 작업이였지요. 마치 아름다운 웨딩드레스에 얼굴과 몸매, 키가 맞는 녀성을 찾는 것처럼 어려운 작업이였습니다.
드디여 서막의 가사가 완성되였습니다.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옛날 그 옛날의 진정한 사랑 얘기
리몽룡과 춘향의 진정한 사랑 얘기
청풍명월 달 밝은 밤 맺어진 그 사랑
광한루에서 시작된 두 사람 사랑 얘기
나도 꿈에서라도 이런 꿈 같은 사랑 한번 해봤으면…
합창: 사랑 사랑 사랑 사랑
꿈속 향기는 님의 향기
님의 향기도 꿈의 향기
정녕 꿈도 있고 님도 있고
진정한 너와 나의 사랑
세상 그 어떤 역경이 온다 해도
막을 수 없는 우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아 진정한 사랑아
사랑아 영원한 사랑아
꿈에서라도 나도 한번만
그 같은 사랑 원없이 해봤으면
사랑아 진정한 사랑아
사랑아 영원한 사랑아
깨지 말아 꿈 깨면 님 없고
가지 말아 너
너 가면 꿈이 없다
옛날 옛날 그 옛날의 진정한 사랑 얘기
오늘날에 보며는 또 다른 사랑 얘기
저 달 속 궁전 광한전을 지상에 옮겨놓은
광한루에서 다시 보는 두 사람 사랑 얘기
진정한 사랑 얘기 황홀한 사랑 얘기
진정한 사랑 얘기 황홀한 사랑 얘기
허공에서 비추던 달 광한루에 내렸네
남: 사랑— 사랑—
녀: 사랑— 사랑—
남: 사랑— 사랑—
녀: 사랑— 사랑—
리경화: “…한양에 홀로이 계시는 서방님, 보고픈 그리움을 담아서 보내드립니다. 떨어지는 잎새에 서방님 이름 적어 이 밤도 내 님을 그려봅니다…” 이 가사를 볼 때 저는 등골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떨어지는 잎새에 서방님 이름을 적어…” 이 대목이 압권입니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찬서리를 맞은 잎새처럼 크나큰 고초를 겪게 될 것이란 걸 예시해주지 않습니까?
《꿈 · 춘향》의 한 장면
필자: 음악극의 주인공인 춘향의 첫 등장이 어떤 방식일가 상상했는데 대보름달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김영주: 중국 전설 속의 선녀 항아가 달나라에서 옥토끼와 같이 살았던 곳을 광한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춘향전》 원작에서도 단오날에 그 광한전을 본 따 지은 광한루에서 그네를 뛰던 춘향이가 몽룡과 처음으로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네줄을 달에 매여서 춘향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로 비약시켰습니다.
필자: 참신한 아이디어였고 참 대단한 도약입니다. 우아하고 아름답게만 만들면 취미성이 약해지겠는데 음악극 《꿈 · 춘향》을 보면 구연에 유머가 담겨있어 재미가 쏠쏠하던데요.
리경화: 이번 음악극에는 구연부가 주축을 이루는 명장면이 꼭 있어야 했습니다. 방자와 향단의 사랑장면, 그리고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기생점고장면에서 구연의 극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생점고에 나오는 대부분 출연자들은 구연배우가 아니라 가수들이였습니다. 무대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노래 부르던 그들을 완전 망가진 모습으로 우습강스럽게 포재를 피우게 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인물들의 캐릭터를 설명해주고 일 대 일로 동작들을 하나하나 가르쳤습니다.
김영주: 저도 사실 가수 분들의 표현이 어색할가 봐 근심했는데 리경화 예술총감독이 직접 동작들을 가르치며 채찍질하니 일취월장으로 실력이 올라가더군요.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해주는 리경화 예술총감 작곡중인 김영주 총연출
필자: 《춘향전》 원작에는 쪽배를 타는 장면이 없었잖습니까? 그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김영주: 관객들이 춘향과 몽룡이 겪게 되는 사랑의 고난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마주하게 하려고 비바람과 파도 속을 헤가르며 가는 쪽배에 담아봤습니다.
필자: 그리고 한양으로 올라오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장면의 예술처리를 아주 재치 있게 잘했던데요.
김영주: 재래식 표현 대로 종이에 적은 서한을 손에 들고 읽게 하면 이야기 전달에는 무리가 없겠지만 예술적으로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폭이 1.5m, 길이가 6m의 흰 천에 붓글씨를 써서 천정에서 무대바닥까지 드리우게 하고 그 대형 편지를 감싸고 돌면서 주인공 남녀가 곧 리별해야 할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게 했습니다.
필자: 원작에서는 분명 춘향이가 주인공인데 이번 음악극에서는 몽룡과 방자, 향단이가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했더군요. 그리고 지금까지 변학도는 나이 많은 뚱보에다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것이 대표적인 형상이였는데 이번 음악극의 변학도는 몽룡에 못지 않은 젊고 잘생긴 미남자이던데요.
김영주: 음악극이 성공하려면 주인공 역할도 중요하지만 조연들의 역할도 아주 중요합니다. 전반 극의 흥미와 웃음을 책임진 인물들이니까요. 탐욕스럽고 사치와 주색에 빠진 인물인 변학도가 겉모습은 번지르르하게 잘생겨야 극적 효과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자: 이번 음악극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 화려한 우리 민족 전통복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광한루, 아치형 돌다리, 춘향이가 타고 내려온 둥근달 등의 무대도구들은 간단하면서도 크나큰 시각적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영주: 의상과 무용부분을 책임진 박서경 감독이 복장 앞섶의 핏이 안 좋거나 하자가 있는 복장은 여지없이 페기해버리면서 의상의 완벽함을 추구했습니다. 도구를 책임진 연변가무단의 리경학 감독에게 너무 고마웠지요. 짧은 시간내에 거의 완벽에 가깝게 무대도구들을 마련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말을 했더니 그분이 오히려 자기를 믿어주고 기다려준 것이 고맙다고 하더군요. 이분들의 책임감 있는 욕심이 이번 작품을 한층 더 빛나게 했다고 봅니다.
리경화: 음악극에서 의상이 날개인데 무조건 최고로 만들어야지요. 비용 때문에 예전에 쓰던 의상실의 복장으로 일부를 대체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작품에는 어느 것 하나 대충 맞춰서 넘기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뒤심이 되여준 연길시문화라지오텔레비죤방송및관광국 지도부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꿈 · 춘향》의 한 장면
필자: 춘향과 몽룡의 리별장면에서 작은 아치형 다리가 끊어지던데 결말부분에서는 무대 량쪽에 갈라져있던 대형 아치형 다리가 천천히 마주 다가와 다시 하나로 이어지면서 두 주인공이 상봉하지 않았습니까. 그 장면에서 음악극의 극치를 보여주었다고 보는데요.
김영주: 견우와 직녀가 칠석날에 까치와 까마귀들로 이루어진 오작교에서 만나잖아요. 바로 그 오작교에서 착상을 받아서 형상화한 것입니다.
필자: 전반 조명효과를 보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화려하던데 조명은 어떤 취지로 활용하였습니까?
김영주: 미술과 조명은 등장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조명을 책임진 한택성 부단장님의 역할이 컸습니다. 조명이 지나치게 화려하고 빈번하게 바뀌면 극중 인물의 형상을 오히려 손상시키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그분의 관점이 저의 연출의도와 맞아떨어졌지요. 그래서 조명을 될수록이면 아꼈습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할 때만 사용하려고 했지요.
필자: 고정무대에서 펼쳐진 음악극이였지만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극본을 맡은 김정권선생에게 이 음악극 제작에 참여하면서 느낀 감상 한마디를 부탁 드립니다.
김정권: 재직 때부터 음악극에 흥미를 가지고 몇편 쓴 적이 있습니다. 총연출을 맡은 김영주선생이 우리 민족의 고전명작 《춘향전》을 현대감 있는 음악극으로 만들겠다며 구상을 쭉 얘기하는데 그의 머리속에는 벌써 작품 구성이 어느 정도 완성되였더군요. 우리는 몇차례 만나서 작품을 구상하고 토론하고 합의를 보면서 대본 창작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서곡은 작곡이 완성된 상태여서 그 곡을 허밍으로 수십번 들으면서 대본을 창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음악극은 음악이 생명이고 령혼이다보니 작곡자인 총연출의 의도를 따라야 했습니다. 1차 대본에서 문제점을 찾고 다시 2차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조선족이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춘향전》이지만 아무리 명작이라고 해도 새롭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어쨌든 ‘퓨전’으로 엮어야 했습니다. 극본은 음악극의 첫단계인 설계도일 뿐입니다. 설계도의 밑그림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 완성될지는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반년 넘게 몰입하여 작품을 내놓고 제작진에게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처음 공연을 보면서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가사와 작곡, 편곡이 이렇게 상상을 뛰여넘게 너무나 잘되리라고는 예상을 못했습니다. 아리아, 이중창 , 칸타타, 레치타티보 등 음악요소들이 잘 안받침되였기에 명실공히 음악극이란 쟝르가 완성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꿈 · 춘향》을 보고 나는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에서 ‘큰 사고’를 쳤구나 싶었다. 연길시가 ‘왕훙’도시로 유명해지면서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쇄도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세가지 ‘거리’중에 먹을거리와 볼 거리는 다채롭지만 보고 느낄 수 있는 문화적인 거리가 결여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꿈 · 춘향》의 탄생이 이 부분을 메꾸어 관광객들에게 정신적인 예술의 향연을 마련해주게 됐다는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중국 조선족 창작음악극 《꿈 · 춘향》의 창작자 분들에게 다시한번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사진 제공 |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
《예술세계》 2025년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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