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여화영 아동유괴사건에 대해 19일 귀주성고급인민법원에서 2심 재판을 열었다. 여화영의 아동유괴사건에 대한 항소심에서 법원은 여화영의 상소를 기각하고 1심에서 내린 사형 판결을 유지했다.
10년간 17명의 아동을 유괴해 수많은 가정에 씻지 못할 아픔과 치유하지 못할 상처를 남긴 여화영이 최종 사형에 언도되기까지 그 추악한 궤적을 알아보도록 하자.
1981년, 당시 21살이던 운남 대리의 여화영은 6살 년상의 왕가문을 만나 결혼했다. 1991년, 왕가문이 절도죄로 투옥된 기간 여화영은 중경에서 공현량(이미 병으로 사망)과 사귀게 되였으며 두사람 사이에 아들 한명이 태여났다. 여화영이 처음 팔아넘긴 아이가 바로 본인이 직접 낳은 친아들이다.
여화영이 기소된 첫번째 아동유괴사건은 1993년 귀주성 준의기차역 부근에서 발생, 그녀와 공현량은 6세 어린이를 유괴했다. 본인이 직접 낳은 아이를 서슴없이 팔아넘기고 낯모를 6세 아동을 유괴하고… 여화영은 점점 죄악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2003년까지 10년간 여화영은 공현량과 남편 왕가문과 결탁해 귀주, 운남, 중경 등 곳에서 도합 17명의 어린이를 유괴했다. 현재 유괴되였던 이 17명 모두를 공안기관에서 찾아냈지만 아쉽게도 일부는 아직도 친부모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0월 25일, 왕가문에 대한 아동유괴사건 1심 재판에서 왕가문은 아동유괴죄, 도주죄와 집행되지 않은 형기를 합쳐 법원으로부터 유기징역 16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날 열린 여화영의 아동유괴사건 1심 재판에서 귀양시중급인민법원은 여화영을 아동유괴죄로 사형에 처하고 정치권리를 종신 박탈했으며 개인의 전부 재산을 몰수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불복한 여화영은 상소를 제기했다.
17일, 여화영에 의해 유괴되였던 피해자 양뉴화의 대리 변호사 왕문광은 여화영의 상소 리유에 대해 “여화영은 본인이 주범이 아니며 공현량과 왕가문의 감언리설에 넘어가 유괴에 손을 댔고 그들의 지시에 복종하기만 했기에 1심 형량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생각되여 상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여화영 아동유괴사건의 전반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93년부터 여화영과 일당은 여러명의 아동을 유괴했다.
2022년, 여화영에게 유괴되였던 피해자 양뉴화가 하북성 한단 공안기관과 귀주성 귀양 공안기관에 유괴사실을 제보했으며 그해 6월 여화영이 중경에서 경찰에 검거되였다.
2023년 11월 28일, 여화영의 아동유괴사건 2심 재판이 열렸으며 2심 재판 후 검찰기관은 여화영의 ‘빠뜨린 죄’가 미처 처리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재심을 건의했다.
올해 1월 8일, 귀주성고급인민법원은 여화영 아동유괴사건을 재심에 회부한다고 판결했다. 올해 10월 11일, 사건은 귀양시중급인민법원에서 재심(1심)을 맞이한 가운데 여화영이 유괴한 아동의 수가 11명에서 17명으로 증가했다,
10월 25일, 귀양시중급인민법원은 여화영의 범죄정절이 극히 엄중하고 사회 위해성이 극히 크기에 법에 의해 피고 여화영을 아동유괴죄로 사형에 언도하고 정치권리를 평생 박탈하며 개인의 전부 재산을 몰수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여화영은 상소를 제기했으나 귀주성고급인민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1심에서 내린 사형판결을 유지했다.
팽배뉴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