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취미로 시작, 일이 아니라 놀음이다; “예술품은 경제화 사회화 산업화 되여야”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2월18일 11시03분    조회:575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오운봉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86) 

정원조각가 오운봉씨를 만나                          
 
 



      자연 그대로, 우리 주변에 예술품 있어
 
      예술품은 재료보다 예술가치 담아야
 
      놀음으로 번 돈은 돈이 아니라 놀음이다

 
 
5년전 조선족 집거구인 연길에 온 이가 있다. 1979년 29살 나이에 집을 떠나 중국 연해지역에서 수년간 사업하고 생활해오다가 5년전 48살 되는 해 다시 돌아온 셈이다. 그 리유는 단 한가지, 애들 교육문제이다. 조선말과 글을 배워야 한다는것이다.

오운봉씨이다. 그렇다고 높은 학력이나 지식의 소유자가 아니다. 반면 그는 소학교 문화정도, 재간이란 태여난 그림그리기,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조각, 특히 정원조각이다. 하지만 바깥세상을 보고 느끼고 배운것이 최대의 자본, 중국의 동부 연해선을 따라 수산물 국제무역을 벅차게 했고 상상할수도 없는 엄창난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정직성만은 버리지 않아 매사가 순조로웠고 돈도 벌었고 세상만물과 인간사를 느끼고 감수하면서 자신의 행동준칙의 틀을 점차 만들어가면서 지금은 연길 서쪽 변두리에서 예술품 창작에 몰두하고있다.

“공부를 못했어요. 그림을 좋아했고 13살부터 수령들의 초상화를 보면서 그렸지요. 모주석이라던가 맑스, 레닌 등 분입니다. 그때가 수령들의 초상화를 접하기 쉬웠지요. 그리고는 개패를 목에 걸고 투쟁도 받았고요. 그 후에는 양자영, 소금파 등 소묘를 시작했고 좀 커서 18살때부터는 동네방네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식장이나 옷장, 풍경화를 그려주니 술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지요, 그때는 다 그렇지요. 그림을 그리고 또 시도 즐겨 읊었고 처녀애들에게 인기도 좋았지요, 지금은 얼굴이 보잘것 없이 되였지만.”

이상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집에서 찾아와 고인의 사진이 없으니 그려달라는것이다. 평소 잘 아는 사이이고 또 고인과도 생전에 친분이 있으나 막상 그림요청을 접하고나니 고인의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캄캄하고 정말로 해석하기 힘든 일이였다고 한다.

끝내는 집을 떠나 돈 한푼 없이 단신으로 바깥세계를 향한 걸음을 시작했다. 북경, 상해, 광주, 복건이 그의 무대였다. 한국회사에 취직하여 4개월 직장생활 하다가 수산물무역을 택했다. 이렇게 거의 30년이 지났고 나중에는 정원조각에 정착했다.

“우리의 조각은 경제성, 산업화로 발전되여야 합니다. 중국을 무대로 하고 점차 조선, 로씨야, 한국 등에 눈길을 돌려야지요. 대량으로 생산하여 팔려나가는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경제와의 접목이 이루어져야 지속성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공상품은 아니지요. 모든 조각은 세계 유일한 작품입니다.  예술의 특징이지요.”

독특한 일을 하면 돈이 생긴다고 오운봉씨는 말한다. 정원조각, 또는 정원원예가 그것이라고 한다.

“미술가의 꿈을 못이룬 아쉬움의 보상으로 지금하고있는 일을 즐겨합니다. 그림은 평면의 작품이고 일반조각은 움직임이나 향기가 없는 립체모양이지요. 저는 그림이나 조각에 향기와 생명과 움직임을 부여하고 싶지요. 돌이나 바위나 흙에 나무, 화초를 함께 심지요. 그리고 그 바탕에는 때론 그림으로 장식합니다. 제가 주장하는 독특한 예술형태이기도 합니다. ”

특정지식이나 기술이 없이도 누구나 할수있고 돈벌이 된다는 오운봉씨의 해석이다. 꾸준함만 필요하다. 몇 날, 몇 달 또는 1, 2년을 주기로 잡아 돈을 벌려하지 말고 꾸준히 견지하면 거의 투입이 없이 열매가 맺는것이다.



“정원원예는 일본이 가장 앞서고있습니다. 현재 일본에는 530년 되는 분경이 있습니다. 국보입니다. 가치는 돈으로 따질수도 없지요. 그러한 꾸준함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화분만을 집에서 기르지 말고 꽃에 나무와 돌, 꽃을 접목시키면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부여됩니다. 10년이상 경유하면 작품이 되고 30~50년이면 명작이 되는겁니다. 멀리 생각하여 후대에게 자본으로 남길수도 있는거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축소하여 옮겨놓은 쾌락감, 생명감은 어떠한 향수로도 대체할수 없는거지요. ”
바깥세상에 익숙한 오운봉씨는 연변사람들이 사유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즘 한국 나가는 분도 있고 또 한국에서 수년에서 10여년씩 일하는 분들도 있지요.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 있는 조선족들은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둔해져요. 거의 독자적인 사유를 안하고 기계적으로 피동적으로 일하고있지요.  로보트식이지요. 머리가 퇴화할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사업을 해야 근로해지고 큰 사업을 하면 사람이 똑똑해집니다. 자체의 발전에 신경을 써야 하니 자꾸 생각하고 노력하는것입니다. 한국에서 돈 벌어서는 돌아와 집 사고 차 사고 다시 한국에 나가고,  이렇게 몇번 오고가면 인생은 끝납니다.”

모든 생산은 소비자의 마음이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오운봉씨, 무료로 분경조각 강의를 조직해도 수업생은 고작 몇명뿐.

“왜서 배우려하지 않는지 궁금할 정도지요. 정원조각은 보통사람들도 쉽게 배울수 있고 돈 되는 일인데…”

자연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축소시키는 공정이라고 자신이 하는 일을 개괄하면서, 오운봉씨는 분경은 지방의 가장 좋은 부업이라면서 부지런한 이들의 참여와 치부를 부탁했다.
 
육삼 기자
 
 
오운봉 략력

 
중국 목단강 출생
중국 연해지역에서 한국회사 근무
수산물 국제무역 종사
정원조각에 종사(2007년부터)
연변조선족공예미술협회 리사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말레이시아로 류학을 떠날 때에는 해외에 정착하여 취직하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류학하는 과정에서 고향에서 뭔가를 해보려는 꿈을 갖게 되였고 류학후 결연히 고향행을 택하였습니다.》기자를 만나 고향 연변에서 창업하게 된 계기를 밝히는 최성숙﹙26세﹚양이다.   최성숙양은 류학후 창업에 갓 발을 ...
  • 2013-08-11
  •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표성룡 회장     "이달 말이나 늦어도 9월 10일 전에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에 대한 국가비준이 나올 것입니다. 비준이 나오는대로 선양에서 성립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로써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가 출범한 지 6년 만에 정식으로 국가가 승인하는 단체가 되며, 전국에 있는 조선족 기업인...
  • 2013-08-08
  • 장백산의 귀중한 자원을 원재료로 양생특허제품을 많이 개발하여 연변의 관광업과 산업발전에 기여하는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주 제14기 인대 대표이며 길림연변록주국제실업발전유한회사 사장인 류도는 인민대표대회제도를 참답게 학습하고 조사연구를 광범위하게 진행한후 “새 에네르기식품 품종과 범위 확대&rdq...
  • 2013-08-08
  • -우리 민족이 낳은 우수한 음악가 최삼명선생 그리고 작품들 위대한 시인이 이 세상에 남긴 것이 감동을 전해주는 시라면 위대한 음악가들이 이 세상에 남긴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선보를 그려주는 아름다운 선률이다. 사람들속에 익숙히 알려져있는 《논물관리원》이나 《내고향 오솔길》은 문화부 대상, 전국소수민족...
  • 2013-08-06
  • 최근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신옥분부교수가 《합창예술》 교재를 새로 출간했다. 이는 1958년 연변대학 예술학원이 설립되여 지금까지 처음으로 공개출판된 교재로 더한층 주목받고있다. 1987년,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졸업하고 연변군중예술관에 배치받아 성악지도원으로 있으면서 중소학교와 기관, 단위의 합창을 많이 가르...
  • 2013-08-05
  • 중국조선어문의 체계를 확립한 대학자 2012년 8월 9일, 교직종사 60주년 기념학술회에서 론문을 발표하는 최윤갑교수 중국조선어문 연구의 선구자, 대부로 불리우는 연변대학 원로교수이며 저명한 어학자인 최윤갑교수는 연변대학 조문학과 제1기 졸업생(1949년-1952년)으로 그해 10월부터 1993년까지 연변대학에 근무하면...
  • 2013-08-05
  •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 박영림교장의 미래 5년의 야심찬 목표 학생들의 선생님이자 친구인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 박영림교장 1978년에 건립된 료녕성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현재 부지면적이 3만 5000평방메터, 건축며적이 1만 3300평방메터이며 소학부, 초중부, 고중부를 일체화한 영구시의 유일한 조선족학교이다...
  • 2013-08-05
  • 작곡생애에 대중들이 익히 알고 즐겨 부르는 가요 한두수만 창작해도 유능한 작곡가로 대중들의 애대를 받게 된다. 그런데 작곡가 최연숙선생(79세)은 반세기 남짓한 작곡생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타향의 달밤”, “두만강천리”, “진달래고향” 등 중국조선족이라면...
  • 2013-08-02
  • 《어머니》,《밀림은 푸른 바다 나는 갈매기》, 《연변목가》,《진달래》…중국조선족들한테는 너무나 귀에 익은 가요들이다. 주옥같은 이 명곡들의 탄생비화를 운운한다면 단연 이 한사람을 빠뜨릴수 없다. 그는 바로 중국조선족음악계의 거장으로 존경받고있는 안국민이다. 그는 국가1급 지휘이자 유능한 작곡가로...
  • 2013-08-01
  •   사무실에서의 왕지연 회장   7월 18일 구로구청 다문화지원센터의 소개로 《한국이주여성총연합회》 왕지연(중국)회장을 만났다. 인터뷰하기전에 이주여성회총연합회의 자료를 찾아보던 중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를 보고 깜짝 놀라게 되였다. 참여하는 인원수 뿐아니라 다문화 구성이 광범위하였기때문이다. 부...
  • 2013-07-3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