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국동포 성공시대> ① 강광문 서울대 로스쿨 교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6월20일 08시09분    조회:773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강광문
베이징대·도쿄대서 학위받고 2011년 서울대 교수 임용된 '빈농의 아들'
"조선족 3세, 한민족 DNA·중국인 기질 겸비…각계에서 눈부신 성취"
"한국, 제국의 경험 없다…조선족과 공존은 다문화·글로벌국가 디딤돌"

<※ 편집자 주 =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4월 말 기준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이 가운데 중국동포(조선족)는 63만 명을 헤아립니다. 귀화자 7만여 명과 불법체류자를 포함하면 7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모국을 찾아온 조선족의 숫자가 늘어나고 세대가 교체되면서 단순노무직에 머물던 이들의 직업도 학계·금융계·무역업계·문화예술계·법조계·공직자 등으로 다변화·전문화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어려운 여건과 차별적 시선을 딛고 자신의 분야에서 값진 성취를 이룬 인물을 매주 한 명씩 소개함으로써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로잡고 다문화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자 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서울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강광문 교수. 2016.6.20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중국 베이징(北京)대 졸업, 일본 도쿄(東京)대 박사, 한국 서울대 교수. 동양 3국의 명문대를 거친 수재 중의 수재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강광문(42) 부교수의 이력을 보면 대부분 그가 줄곧 성공가도만 달려왔을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질투 섞인 선망의 시선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중국 지린(吉林)성의 소도시에서 빈농의 아들로 자란 조선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가 겪었을 신산한 역경을 떠올리며 경외심을 품게 된다.

그 주인공이 바로 강 교수다. 강 교수의 할아버지는 경북 안동, 할머니는 경북 영천에서 각각 만주로 이주해 그곳에서 짝을 이뤘다. 먹고살기 힘들어 지린성과 랴오닝(遼寧)성을 옮겨 다니며 번번이 새로 땅을 갈았다고 한다. 끝없는 유랑 속에 자식 8남매는 모두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농사를 지으며 3남매를 키웠다. 아버지는 농번기가 끝나면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자녀의 학비를 모았다. 강 교수의 남동생도 명문 칭화(淸華)대를 나와 베이징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누나 역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다.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법학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겸손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이력과 조선족으로서의 한국 생활을 털어놓았다.

"제가 특별히 머리가 좋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남보다 엄청나게 노력한 것도 아니고요. 다만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이 좋았습니다. 주로 철학이나 역사 쪽이었죠. 지금도 남보다 재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그저 공부가 좋아서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에서는 한 반의 30명 중 유일한 소수민족이었다. 고향의 조선족학교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콤플렉스를 경험했고 정체성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정파(政法)대 석사과정을 다니며 변호사 자격증과 법학석사 학위를 땄다. 졸업 직전부터 1년 반가량 로펌에서 일했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던 중 친구가 일본 유학을 권했다. 그에게는 새로운 무대였다. 2000년 12월 도쿄대 법학정치학연구과에 외국인 연구생으로 입학했다.

"일본 유학 시절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환경도 다르고 말도 익숙지 않았으니까요. 변호사 시절 모은 돈을 갖고 갔는데, 당시에는 두 나라의 임금이나 물가 차이가 워낙 커 금세 바닥이 났지요. 장학금을 받기는 했지만 통번역 일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자연히 수학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쿄대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다시 딴 데 이어 마침내 2010년 박사모를 쓸 수 있었다.

그의 전공은 헌법학. 그중에서도 헌법사와 법철학에 관심이 많다. 박사 논문은 일본과 독일의 헌법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도쿄대에서 연구원으로 박사후과정을 보내던 중 서울대에서 제의가 왔다. 중국과 일본의 법률을 함께 강의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선배의 권유에 따라 지원서를 냈고 2011년 초 조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에서는 2009년 임용된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나노융합학과의 박원철(45) 교수에 이어 두 번째이고 인문사회계에선 처음이다.

"제가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선조의 고향이라 친근감은 느끼고 있었지만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지요. 중국과 일본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제가 한국에서 교수로 일한다면 시야가 넓어지고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했지요. 이번 학기에는 일본법과 헌법사상사를 강의했습니다. 보통은 한국어로 강의하고 중국법과 일본법은 각각 중국어와 일본어로 가르칩니다."

강 교수는 전형적이면서 대표적인 조선족 3세다. 1세는 일제강점기 때 건너간 조선인이고, 2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태어난 조선족 중국인이다. 3세는 문화대혁명(1966∼1969)을 겪지 않은 이른바 '70후(後)' 이후 세대로 개혁 개방의 물결과 함께 자라 이념의 틀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국제 감각도 지녔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온 조선족은 대부분 2세였다. 남자들은 공장이나 건설 현장에서 단순 노무자로, 여자들은 식당 종업원·가사도우미·간병인 등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국내 조선족 사회에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고학력 엘리트들이 늘어나 전문직에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강 교수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KCN)에 관여하며 계간지 '맥(脈)'의 발행을 돕는가 하면, 2011년에는 예동근 부경대 교수 등 국내 거주 조선족 3세 12명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백산서당)를 함께 펴내기도 했다. 오는 8월에도 이들과 공동으로 (가칭)'동북아의 허브를 만나다-글로벌 조선족:경계를 넘어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모국의 동포들은 여전히 우리를 정형화된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듯합니다. 이건 대부분 2세에 의해 틀지어진 것이지요. 3세들은 이중언어와 다문화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각계에서 눈부신 성취를 거두고 있습니다. 특히 관광업이나 화장품 판매 등의 분야에서는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지요. 지금도 북한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조선족이 적지 않지만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이면 조선족 3세들이 시장을 선점할 것이라고 봅니다."

강 교수는 한국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먼저 배워 중국보다 앞서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는 했으나 지금은 중국의 성장 속도가 빨라 여러 분야에서 역전 현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특히 조선족 3세들은 한민족의 DNA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국인 기질이 더해져 사업이나 장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조선족을 멸시하는 듯한 시선을 거두려고 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최근에는 반다문화 정서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은 제국의 경험이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1105년 고려가 탐라국(제주도)을 복속시킨 것 정도가 있을 뿐이지요. 일본은 지난 세기 다른 나라를 침략해 이민족을 다스려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이민족에게 공격받고 이들을 지배하며 제국을 경영해왔지요. 한국은 단일민족이란 이름 아래 균일한 구성원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질적인 집단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모르고 사회 시스템의 탄력성이 약합니다."

그는 외국인 범죄가 일어날 때 집단 전체를 겨냥해 반감을 드러내거나 비난을 퍼부으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범죄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집단 간의 갈등으로 번져 수습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흔히 '조선족 사투리'로 연상되는 '보이스피싱'도 조선족에게만 화살을 겨눌 것이 아니라 허술한 금융 시스템을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물론 그렇다고 범죄 집단을 두둔하거나 피해자들의 슬픔을 도외시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한국은 같은 핏줄인 조선족과 어울려 사는 법을 익히면서 다문화 사회로 순조롭게 이행하고 글로벌 국가로 도약해야 합니다. 한국인은 중국, 미국 등 강대국에 대한 사대의식을 지닌 적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이제는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이 한국으로 몰려오니 이들을 낮잡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탈북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탈북자도 포용하지 못하는데 통일 이후 어떻게 남북이 어울려 살 수 있겠습니까. 조선족은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한국이 아시아의 모범 국가가 되려면 자기보다 못산다고, 생김새가 다르다고, 우리말을 못한다고 무시하는 태도를 하루빨리 버려야 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강광문 교수는 "한국이 다문화 사회, 글로벌 국가로 나아가려면 먼저 같은 핏줄인 조선족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충고한다. 2016.6.20

 

강 교수는 같은 조선족에게도 충고를 잊지 않았다.

"한국 사회의 관행과 질서를 존중하고 공존하려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지금은 돈 벌기 바빠 여유가 없다며 시민의식을 등한시하면 여전히 주변인으로 남게 됩니다. 또 각자 실력을 키우고 어떤 일을 하든지 성실한 태도로 임해야 주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지요."

강 교수는 조선족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마다 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중언어에 능통하다는 것은 엄청난 자산입니다. 저는 한국어·중국어·일본어를 다 구사하지만 일본어에는 익숙지 못합니다. 어릴 때 자라면서 익힌 모국어와 철들고 난 뒤 배운 외국어는 다르거든요. 또 양국의 문화와 관습에 익숙한 것도 큰 장점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학생들에게 '지금은 한민족이면서도 중국인인 경계인의 처지를 불우하게 여길지 모르나 나이 들어 보면 내 말이 맞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늘 말합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브랜드 '코스모' 경영자 김송월 대표   (흑룡강신문=하얼빈) 염청화 연변특파원= 중국어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무언가에 미친듯이 몰두해야만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이 고사성어의 의미를 온몸으로 풀어낸 사람이 있다. 연변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 2017-06-29
  • [백성이야기57]‘중덕할매’와 그의 좌우명  장학생들과 함께‘아지트’에서 20주년 기념이벤트를 두고 상론하고 있는‘중덕할매’(앞줄 오른쪽) 요즘 덕림장학문화재단 (준)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느라 무척 분망하게 보내는 연변가정연구소 박민자 소장과 인터뷰를 약속한 장소는...
  • 2017-06-28
  • 학창시절 누구나 궁금해 하던 전교 1등의 모습. 2017년 대학입시에서 684점(소수민족 가산점 10점 추가)의 성적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문과장원으로 된 연변제1고급중학교 3학년 9학급의 방은별 학생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방은별 학생은 서글서글한 인상에 웃음이 가득한 미소가 인상적이였습니다. 기자의 취재를 받고있...
  • 2017-06-28
  • 꿈을 가지고 미국류학의 길을 선택하다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인사들이 적지 않듯이 미국 한인사회에도 류학을 목적으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각종 도전과 시련을 이겨내고 성공한 재미사업가 하용화 회장이 있다. 미국보험업계에 진출해 성공한 재미사업가 하용화 회장. 그의 성공사례가 꿈을 ...
  • 2017-06-22
  • 외국에서의 창업(创业),기업(起业), 사업(事业)의 길이 대부분 가파로운 ‘산길’을 경유해야 된다는 재래의 력사를 허물어 가고 있는 80후의 젊은 기업인 권용, 그는 자기만의 노하우로 당당히 일본 중소기업가들과 어깨 나란히 달리고 있다. 그를 도꾜도니시아사쿠사(東京都西浅草)에서 만났다. 외국 관광객들...
  • 2017-06-22
  •       (흑룡강신문=하얼빈) 우리에게는 책을 살수있는 많은 대안들이 있다.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받아볼수 있는 온라인 서점, 책이 많고 편하게 앉아서 읽어볼수있는 대형 서점, 저렴하고 가볍게 읽을수 있는 e-book까지. 얼핏 상술한 대안들과 뚜렷한 비교우위가 잘 보이지 않는듯 하나 요즘들어 소규모...
  • 2017-06-21
  • 푸단대 공회 김재근 부주석   (흑룡강신문=하얼빈) 박형군 특약기자, 이수봉 기자=중국의 경제허브 도시인 상하이에 위치한 중국 명문대 푸단대학 공회 부주석으로 활약하며 대학과 기업을 접목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조선족들이 상하이에 뿌리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김재근(47, 사진) 부연구...
  • 2017-06-15
  • 박은 예로부터 우리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생활도구로 널리 사용되여왔다. 물을 떠마시거나 술을 마실 때, 그리고 쌀을 퍼낼 때에도 우리 조상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박이 쥐여져있었다. 박을 던지거나 밟아 깨뜨림으로써 잡귀를 쫓아내는 주술적 풍습도 가지고 있어 박의 크기는 작지만 쓰임새는 아주 컸다. ...
  • 2017-06-12
  • 한국 건대양꼬치거리상인협회 김순희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나춘봉 서울특파원 = "조선족 대부분은 힘들게 한국생활을 시작해요. 좌절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누구보다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을 갖고 이 한 몸을 불사르면 꼭 성공하는 날이 올 거예요."   건대양꼬치거리에서 '복만루'라는 중국 음식점...
  • 2017-06-08
  • 향토작가 리태수선생의 문학생애를 돌이키다 서재에서 원고를 심열하시는 리태수선생님(2017년 4월8일) [지난 5월9일 저녁, 습관적으로 위챗모멘트를 뒤지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뜻밖에 연변작가협회가 위챗계정을 통해 발표한 부고를 그것도 한달전에 취재했던 조선족문단의 향토작가 리태수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 2017-06-07
‹처음  이전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