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는 조선족인이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0월3일 17시36분    조회:1025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동철
일본 BLUEDOT주식회사 리동철회장
 


작년 7월, 필자가 "재일 조선족류학생 삶의 현장"을 취재할 때 안내자가≪이번 취재에 두분이 빠지면 안됩니다≫고 하였다.그중 한분은 일본서 ≪천지협회(구락부)≫를 창설한 리동철회장이고 다른 한분은 일본에 ≪연변대학학우회≫를 창설한 연변대학 리동철교수이다.
 
작년7월 4일, 필자는 ≪천지협회≫를 시작으로 재일 조선족들의 만남의 장을 마련한 BLUEDOT주식회사 리동철회장을 인터뷰를 하였다. 
 
무작정 쏟아지는 비를 마다하고 역에까지 마중을 나온 리회장은 커피색 얼굴에 행동이 무겁고 말씨가 다감하며 기쁨과 노함을 얼굴에 쉽게 담지 않는 사나이였다. 
 
바로 리회장의 심중한 행보와 침착하고 세련된 처사로 하여 본 문의 탈고가 지난 8월 20일의 인터넷대담을 마감으로 옹군 1년이 걸렸다. 
 
그가 말하는 성공은?
 
1965년 료녕성 무순출생인 동철씨는 1989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중국인민대학 국민경제계획전업을 졸업하자 바로 국가로동부에 배치되여 출근하였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자신이 원하는것을 해야 한다. 허나 먼저 희망을 품은 인간이 되라≫는 명언을 남겼다.
 
동철씨가 바로 먼저 희망을 품은 인간이 되는 길에 나섰다. 그는 이미 자리한 일터에 만족하지 않았고 마음속에서 늘 새로운 미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국가로동부라는 일터에서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두달간의 국록만 받고 1991년에 일본류학길에 올랐다.
 
≪성공이란 진보의 과정일 뿐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다. 성공이란 더 한층 훌륭한 인간이 되려는 노력의 과정이며 정신적, 사회적, 금전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다.≫
 
이는 동철씨가 말하는 성공이다.
 
교류를 해야 한다
 
동철씨는 일본땅에 행장을 풀어 놓자 바람으로 일본어학원에서 1년간 일본어를 익힌후 계속하여 일본 케이오대학원 법과연구(정치사상)과 석사과정을수료하면서 1997년 7월에   ≪BLUEDOT 주식회사≫를 창업하고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였다.
 
≪무엇을 하려면 사람들 서로간의 교류가 있어야 한다. 일본에는 교류로 백년, 천년이상을 이어가는 조직이 있다.≫
 
성공의 첫째가 교류라는 화두로 동철씨가 재일 조선족들의 만남과 교류를 위한 보귀한 노력과정을 시작부터 들려 주었다.
 
일본에 온후 그가 풋면목으로 알고 지내는 280여명의 재일 중국류학생중10여 명의 조선족이 있었다. 그네들과의 빈번한 만남과 교류에서 동철씨는 리동위씨, 박학씨와 손을 잡고 1995년 3월 25일에 ≪교류, 협력, 공동발전≫을 취지로 한  <천지구락부≫(천지협회)를 설립하였다.
 
협회초창기엔 핸드폰도 없은 때라 전화와 편지를 통신수단으로 하며 정기적으로 매월 1차씩 만나 사업을 검토하며 협회활동반경을 부단히 늘이였다. 
 
≪천지협회≫가 회원이 늘어나면서 리사회를 설립, 동철씨가 회장을 맡았다.
 
≪천지협회≫는 회원당 500엔의 회비를 받고 교류의 수단을 전화, 편지로부터 간물과 공식사이트(천지넷)로 승격하고 달마다 협회활동을 충실히 하는 외 조선족운동대회, 망년회, 댄스파티, 취직경험교류회, 연구토론회등 활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협회는 ≪중국조선족소년보≫와 손을 잡고≪천지장학금≫을 설립, 조선족사이트인 ≪쉼터≫와 협력하여 ≪사랑의 손길≫홈페지를 만들어 조선족어린이들에 대한 물심량면 지원활동을 조직하였다. 
 
오얏나무가 있는 곳에 길이 생기기 마련이듯이 ≪천지협회≫를 중심으로 한 소중한 만남들이 한 뿌리로 이어져 재일 조선족단체들이 용솟음쳐 나왔다. 
 
1999년 1월에 재일 조선족연구자, 대학원생들을 주체로 재일 ≪중국조선족연구회≫가 설립, 2001년 12월에 ≪중국조선족연구회≫와 ≪천지협회≫의 공동 주최로 ≪제1차 재일 중국조선족국제심포지엄(21세기조선족의 발전 및 동북아지역교류와 발전에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2001년 10월에 조선족류학생을 중심으로 동북아나라의 류학생들로 뭉친 ≪동북아청년련합회≫가 설립, 2002년 3월에 재일 조선족축구팀인 ≪백두산천지팀>>이 발족, 9월에는 조선족온라인커뮤니티인 ≪쉼터≫, ≪나가자≫, ≪느낌≫등 사이트들이 선후로 개통되였다. 
 
≪돌아 보면 재일 조선족들의 만남의 한마당을 만든것으로 만도 가슴이 뿌듯합니다!≫
 
기쁨의 표정을 얼굴에 쉽게 나타내지 않는 리회장이 가슴이 뿌듯하다니 필자의 마음도 뿌듯했다. 행복과 웃음은 전염이 되니깐.
 
지난 일을 반추하며 리회장이 말을 이었다. 
 
≪천지협회≫는 월간집지로 천지인문을 발간했다 처음에는 김병철씨가 편집을 맡았고 후에는 편집전문가인 ≪연변대학일본학우회≫ 리동철회장이 편집장을 책임맡고 회원들의 봉사적인 노력으로 거의 3년간 출간하다가 정력과 경제적인 문제로 잠시 정간되앴다.
 
≪우리는 만남과 교류에서 시종 자유성, 민주성, 정기성을 지켰다. 이는 우리가 일본사회에서 배운것이다.≫고 말하는 리회장은 몸을 낮추는 자세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뭉치면 성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의 말이 쇠를 녹인다≫고 부언하였다.
 
공자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이 인의지례(仁義智禮)라고하였다.
 
이에 비춰 동철씨는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며 ≪인≫(仁)은 사람이 둘이라는 뜻으로서 사람은 혼자서 살수 없고 혼자서 성공할수 없다고 한다. 
 
교류는 신앙(신념)이 뒤받침이 되야야 하고 견지는 정신을 필요로 한다.
 
교류는 비주류(非酒類)적으로도 이어져야 하며 술집에서의 교류보다도 커피점에서의 교류가 훨씬 더 좋다고 한다.
 
또한 교류는 알 사람을 안 다음에는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한다.
 
일본 북릉대학 미래창조학부 국제경영학과교수며 재일 조선족연구학회 리강철전임회장이 만남, 교류에 대한 체험담이다. 
 
ㅡ만남은 나의 행복과 성공의 원천이였다.
 
나는 일본서 일본국회의원, 총리급 인물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상상도 못했고 일본서 중국, 조선, 한국, 몽골, 러시아, 유럽, 미국의 정치가, 외교관, 학자들과 만날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빈번한 만남의 과정에서 세계 30여개 나라에 친구가 있게 되였고 세계(지구촌)시민을 만들어가는 네트워크활동도 빈번히 이어가고 있다. 만남이 내인생을 개변하고 행복하게 하였다. 
 
똑 같은 바람에도 어떤 배는 동쪽으로 향하고 어떤 배는 서쪽으로 향한다.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이 아닌 돛이다.
선현들은 인생은 도착이 아닌 려행, 나그네의 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등탑 없는 망망한 대해에서 돛을 잡은 동철씨의 령혼과 의지는 무엇일가? 
 
나는 조선족인이다
 
필자가 처음 받은 재일 조선족연구학회 리강철회장의 명함장은 리회장이 자기를 ≪동아인≫(동북아세아인)라고 밝혔다. 그때 필자는 리강철씨가 세계적인 안광으로 자기의 위치를 찾는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리동철회장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조선족이라고 말하거나 쓰는 것은 틀렸다며 스스로를 조선족인(朝鮮族人)으로 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인(人)이 모여서 족(族)을 이룬다. ≪선인후족≫으로 족이 인을 앞서거나 대체하지 못한다. 례하면 어느 전형인물이 그가 속한 민족을 대표하지 어느 민족이 어느 인을 절대로 대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을 알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뿌리를 찾아야 하며 그뿌리를 찾았으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나라가 강하다고 해서 인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찾고 심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인물이 나온다. 오바마도 자기가 흑인이라는 존재룰 인식하고 그속에서 희망을 찾고 자기를 개발한데서 대통령이 되였다. 모든 경쟁은 우선 어느 사람이 하는것이지 어느 민족이 하는것이 아니다. 우리가 조선족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조선족인을 잘 알고 개발하면 엄청한 힘을 갖게 된다. 조선족인인 나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조선족(민족)의 문제점을 말한다면?
 
동철씨는 조선민족에 존재하는 문제도 곁들었다.
 
조선민족은 신앙이 없고 철학의 힘이 약하다고 말하고 싶다.
 
중국은 중화사상(4서5경), 이스라엘은 유태교(구약), 영국, 미국은 기독교(성경), 일본은 신도(고사기)가 있다면 조선민족의 정신은 무앗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 조선족인들이 공동으로 보는 책이 무엇인가도 묻고 싶다.
 
조선족들에게 흥취로 인한 조직은 있는데 정신을 기반으로 한 조직이 적은것이 문제이다. 
 
민족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어떤 민족이든 한세대(30년)이상을 식민지배를 받게 되면 그민족의 고유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사라진다고 한다.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민족이 자기 민족의 고유의 정체성을 되찾기까지는 한세기(100년)의 세월이 흘러야 한다. 그만큼 식민지배는 피지배민족의 력사, 정신, 문화를 철저하게 파괴한다. 그래서 800년이나 대국의 속국과 일본식민지로 살아온 조선민족에게 다른 민족과 견줄만한 뚜렷한 하나의 자랑거리가 없는지 모르겠단다.
 
그리고 재일 조선족인은 아직 연약하다고 본다.
 
기업적인 안광으로 봐도 재일 한족들보다 뒤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실력이 있는 한족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조선족의 기반이 아직 약하다.
 
일본에서 보니 한국도 역시 정신적이나 경제적으로 약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선족이 자기들의 우세로 한, 중, 일을 안다고 하며 경제적, 사회적으로 강한것처럼 행세 하지만 실제는 기초가 약하다. 그러니까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를 개발해야 한다.
 
무순시 조선족학교소학교건립 60주년 경축활동에 참가하여 중국 조선족의자랑찬 모습을 보았다. 일본의 조선족들은 아직까지 1세들이 기초를 닦는 과정이다. 우리가 뿌리를 튼튼히 내리자면 정신이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 일본의 조선족은 개인적으로는 우수한 분이 많지만 경제적, 사회적인 단체가 아직까지약하다. 일본주류사회에서 조선족은 튼튼한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 
 
조선족들의 일본 진출은 필연적인 추세
 
조선족들의 일본진출이 의미가 있다. 과거에 일본이 힘이 있기 때문에 한국을 삭민제로 지배할수 있었다. 한국이 식민지로 되였기에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중국으로 의주하였다. 약소민족은 강한 민족들이 무엇때문에, 어떤 원인으로 강한가를 알고저 하고 본능적으로 헤쳐보려고 강국으로 간다. 피식민지나라에서 지배국에 진출하는 것은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선택이다. 우리는 일본이 발전하고 강했기 때문에 일본에 왔다. 인도, 홍콩사람들이 영국을 가는것이 바로 이런 도리다. 갑오중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하자 많은 중국사람들이 일본에 왔다. 
 
우리는 일본에서 자기를 찾고 세계와 미래를 향하여 노력하여 자유롭고 헹복한 생활을 창조해야 한다.
 
필자와 마중한 리동철씨는 결코 남의 흉내를 내지 않는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사람이였다. 
 
진정한 생명력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다. 
 
필자는 리동철씨가 학자, 기업인, 리더의 사명감으로 자기를 개발하며 조선족의 부흥을 위한 세계속의 비범한 조서족인(人)으로 부상될 것임을 기대해 본다.
 
조글로미디어/오기활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쓸쓸한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려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시작은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였다. 중국 옌볜에서 양팔이 없는 지체장애인 최금호씨를 사계절 따라다니며 카메라에 담았다. 방송은 반응이 좋았지만 김광호 감독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싶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다큐멘터리에서 ...
  • 2008-07-04
  • 창립 4주년맞은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 대표 김해성 목사 ‘크레파스와 물감에 살색을 없애야....’ -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진료 제공“감사하고 또 눈물이 납니다”국내에 하나뿐인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에서 만난 중국 심양이 고향인 김혜숙(52, 여)씨.김씨는 한국에 건너와 애기를 돌...
  • 2008-07-04
  • —현장총지휘 리종환씨를 만나 온몸으로 열심히 지휘하는 리종환씨,  그의 지휘하에 1만명도 훨씬 넘는 무용배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리종환씨는 이번에 자원봉사자로 나서 현장총지휘를 맡게 되였다. 연변군중예술관 부관장으로 대형행사때마다 총연출의 중임을 떠메였던 리종환씨는 퇴직한 몸이지...
  • 2008-06-29
  • 목단강지구 문과장원 - 외교관이 되고싶어요 대학입시 시험에서 659점의 성적, 흑룡강성 문과 장원의 663점 보다 4점이 떨어지는 성적을 따낸 해림시조선족중학교 고3-2반의 남홍옥학생이 목단강지구 문과 장원석에 올랐다. 《어제 저녁 동창들로부터 저의 시험성적을 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위해 기뻐 했는데...
  • 2008-06-28
  • 환자의 아픔은 곧 의사의 아픔입니다연변대학병원 중의과 김향숙주임의 진찰권을 떼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려야 겨우 뗄수 있다고 한다. 진찰권이 긴장하다는것은 그만큼 의술이 높아 환자량이 많음을 의미하지만 김향숙주임의사는 "환자들이 병원의 지명도를 보고 찾아온것이지 저 개인을 보고 온것이 아닙니다&q...
  • 2008-06-27
  • 《떼떼부부》가 며느리를 보게 되였다. 즉 《작은 떼떼》가 사귀는 녀자친구를 데리고 부모님께 인사시키러 온다. 그런데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며느리감을 보고 왕청같은 말들을 늘여놓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는 며느리감을 보고 말한다는것이 로친한테 대고 말한다. 그래서 김광철은 난처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사리밝고 례...
  • 2008-06-15
  • 2년에 국가특허발명 5건 농민발명가 천해룡(53세)씨는 다년간 모색과 연구끝에 지난해와 올 상반년짧은 2년여 기간 ‘다기능 비누곽’, ‘정량분유채취기’ 등 국가발명특허를 3건 획득하고 2건은 현재 신청 출원중에 있다. 흑룡강성 오상시 광휘향의 조선족 농민 천해룡씨는 지난해 5월 ‘다기능...
  • 2008-06-14
  • 박민자 연변가정연구소 소장 통일의 밑거름으로 조선족 활용 기대  “조선족의 중국 이민정착사는 150년이다. 만주 땅을 개간하고 중국을 건설하는데 기여하여 당당한 중국국민의 위치를 확보했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코리안드...
  • 2008-06-13
  • "의사는 무엇보다도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또 배운 리론지식과 실제경험들을 관통시켜야만이 진단의 정확률을 높일수 있다"고 늘 얘기하는  연변대학병원 소화내과 주임 박희서는 시골 아저씨와도 같은 소박하고도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평소 환자를 진찰하거나 제자들에게 지식을 전수할 때도 항상 차근차...
  • 2008-06-13
  • 중국관계자 중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지난 두 차례의 한중올스타전 때 중국 올스타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방복순(69) 통역이었다. 방 통역의 한국과 인연은 벌써 18년이 넘어간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는 되지 않았지만, 스포츠 교류는 있었던 90년 김학영 국제심판과 중국인 심판의 가교 역할을 맡은 것을 계기로 ...
  • 2008-06-1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