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재한조선족성공시대] (16) '여의도의 중국통' 박인금 애널리스트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0월4일 11시11분    조회:749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인금
한족 학교 다닌 조선족 3세, 언어장벽 딛고 서울대서 경제학 석사
중국어 학원강사 거쳐 증권계 입성, 고비 때마다 '포기 대신 끈기'
'차이나 데스크' 팀장으로 中시장 심층분석 "예상 적중때 성취감"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여의도의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증권맨들 사이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 출신 애널리스트도 있다.

올해로 여의도 입성 6년 차인 박인금(33)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 책임연구원.

그는 지난달 3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딱히 계획한 것도 아닌데 한국에 와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꾸리고 여의도에서 일하게 됐다"면서 "지금 돌아보면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박 연구원은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조선족 3세로 태어났지만 한족 학교에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낸 터라 한국인이나 한국어를 거의 접하지 않고 컸다.

그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지린대(吉林大) 경영학과에 다니다 2004년 교환학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에 들어가 1년 동안 서울 생활을 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한국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할머니의 나라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관심도 많아졌거든요. 첫 소감요? 물가가 무척 비싸더라고요.(웃음)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처음이라 힘들었죠. 한글이 글자가 아니라 그림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경영학과 수업을 따라가려고 따로 시간을 내 한국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박 연구원은 교환학생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 '엘리트 코스'인 지린대 졸업장을 받고서는 다시 한국행을 결심했다. 2007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시작한 것이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기란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실제로 박 연구원은 당시 대학원 동기 중 유일한 조선족이어서 '나 홀로' 좌충우돌을 겪어야 했지만 고비가 닥칠 때마다 포기 대신 끈기를 택했다.

"실은 졸업을 3년 만에 했어요.(웃음) 논문 통과를 못 해서 한 학기 정도 늦었죠. 언어장벽이 너무 높았거든요.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고…. 고민 끝에 학교 게시판에 제 소개 글을 올렸더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선뜻 스터디그룹에 넣어주겠다는 제안이었죠. 덕분에 선후배도 사귀고 한국 생활에 조금씩 적응했어요. 한국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피부로 느꼈죠."

졸업 후에도 한국의 취업 문턱은 조선족인 그에게 한층 더 높게만 느껴졌다. 2010년 3월 석사학위를 받고 10여 군데 지원서를 냈지만 면접은커녕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 곳도 많았다. "언제까지 놀 수만은 없어서" 찾아간 곳이 서울 종로의 중국어 학원.

중국어 강사로 일하던 그에게 5달이 지나서야 전공을 살릴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10월 신영증권에 리서치어시스턴트(RA)로 입사해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한 첫발을 디뎠다.

"당시엔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 수요가 크지 않았어요. 하지만 폭발적 성장을 점치는 투자자들이 많았죠.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 전략을 분석해 국내 투자자에게 알릴 애널리스트가 필요해졌고, 덕분에 저로서는 중국에서 온 경제학 석사라는 게 유리하게 작용했죠. 그렇게 시작한 여의도 생활이 벌써 6년이 됐네요."

새내기 RA의 하루는 녹록지 않았다. 새벽에 출근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았고, 서툰 한국어로 보고서를 쓰느라 남몰래 속앓이를 해야 했다. 한국 특유의 수직적 조직 문화도 낯설었다.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없지 않았죠.(웃음)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한국에 계속 있어야 할 이유가 생기더라고요. 버티다 보니 RA를 거쳐 애널리스트로 승진했고, 이직도 두 번 했고…. 2012년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가정도 꾸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아 모든 게 인연이었나보다' 싶어요."

박 연구원은 여의도 애널리스트 중에서 '중국통'으로 꼽힌다. 당연히 그의 눈과 귀는 온통 중국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있다 사무실 컴퓨터로는 늘 중국 정부·기업 홈페이지, 중국어 포털사이트를 띄워놓고, 정기적으로 베이징·선전 등으로 출장도 다녀온다.

"중국 투자 전망을 보고서로 쓰려면 중국의 경제 정책부터 금리, 통화량, 환율, 제조업 지수 같은 거시 경제 지표까지 샅샅이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시장이라는 게 정치, 사회,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움직이거든요. 저도 중국에 있을 땐 '중앙경제공작회의'(중국 정부가 연말마다 개최하는 거시경제 정책 회의)가 뭔지 잘 몰랐는데, 정작 한국에 와서 아주 자세히 알게 됐죠.(웃음)"

그는 지난해 12월 중국 경제공작회의에서 다뤄질 내용을 미리 점친 보고서를 발표해 투자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보고서는 2016년 중국 정부가 '공급 과잉 업종', 즉 철강·석탄·시멘트 등에서 구조조정을 강화할 것이라는 한발 빠른 '점괘'를 내놓기도 했다.

"중국 투자 전망을 조금 미리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애널리스트로서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중국어가 모국어인 만큼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는 데 시간이 덜 걸리겠죠. 그렇다고 엄청나게 빠른 건 아니지만, 다만 한걸음이라도 앞서야겠다는 목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의도를 통틀어 조선족 출신 애널리스트는 박 연구원을 포함해 3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연구원이 증권맨에게 '꿈의 도시'인 홍콩이나 상하이로 옮기지 않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바쁘고 피곤한 와중에도 애널리스트로서 보람을 느낄 때가 많아요. 중국 시장은 2021년 완전 개방을 목표로 말 그대로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거든요. 복잡한 시장 흐름을 분석해 투자자들에게 알릴 때, 제가 내놓은 예상이 적중했을 때 무엇보다도 큰 성취감을 얻죠. 한국에서 여전히 제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복을 타고난 그답게 최근엔 새로운 미션을 하나 맡았다. NH투자증권 내 중국 전담 리서치 조직인 '차이나 데스크'에서 팀장 역할이 주어진 것.

"중국인 또는 중국어에 능숙한 애널리스트가 7명 참가해 중국 시장과 기업을 심층 분석합니다. 중국의 선강퉁(深港通·선전과 홍콩 주식시장의 교차거래를 허용하는 제도) 시행안이 당초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개방 폭이 컸거든요. 앞으로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이 가속할 것이란 뜻이죠. 이에 대응해 중국 시장을 빠르게, 깊숙이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팀장은 공식적인 직책은 아니고요, 회식 장소를 정하는 일을 주로 해요.(웃음)"

4살 아들을 둔 '워킹맘'이기도 한 박 연구원은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야근할 게 좀 남았다"며 다시 16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여의도 빌딩 숲에는 꺼질 줄 모르는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브랜드 '코스모' 경영자 김송월 대표   (흑룡강신문=하얼빈) 염청화 연변특파원= 중국어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이 있다. 무언가에 미친듯이 몰두해야만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이 고사성어의 의미를 온몸으로 풀어낸 사람이 있다. 연변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 2017-06-29
  • [백성이야기57]‘중덕할매’와 그의 좌우명  장학생들과 함께‘아지트’에서 20주년 기념이벤트를 두고 상론하고 있는‘중덕할매’(앞줄 오른쪽) 요즘 덕림장학문화재단 (준)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느라 무척 분망하게 보내는 연변가정연구소 박민자 소장과 인터뷰를 약속한 장소는...
  • 2017-06-28
  • 학창시절 누구나 궁금해 하던 전교 1등의 모습. 2017년 대학입시에서 684점(소수민족 가산점 10점 추가)의 성적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 문과장원으로 된 연변제1고급중학교 3학년 9학급의 방은별 학생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방은별 학생은 서글서글한 인상에 웃음이 가득한 미소가 인상적이였습니다. 기자의 취재를 받고있...
  • 2017-06-28
  • 꿈을 가지고 미국류학의 길을 선택하다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인사들이 적지 않듯이 미국 한인사회에도 류학을 목적으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각종 도전과 시련을 이겨내고 성공한 재미사업가 하용화 회장이 있다. 미국보험업계에 진출해 성공한 재미사업가 하용화 회장. 그의 성공사례가 꿈을 ...
  • 2017-06-22
  • 외국에서의 창업(创业),기업(起业), 사업(事业)의 길이 대부분 가파로운 ‘산길’을 경유해야 된다는 재래의 력사를 허물어 가고 있는 80후의 젊은 기업인 권용, 그는 자기만의 노하우로 당당히 일본 중소기업가들과 어깨 나란히 달리고 있다. 그를 도꾜도니시아사쿠사(東京都西浅草)에서 만났다. 외국 관광객들...
  • 2017-06-22
  •       (흑룡강신문=하얼빈) 우리에게는 책을 살수있는 많은 대안들이 있다.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받아볼수 있는 온라인 서점, 책이 많고 편하게 앉아서 읽어볼수있는 대형 서점, 저렴하고 가볍게 읽을수 있는 e-book까지. 얼핏 상술한 대안들과 뚜렷한 비교우위가 잘 보이지 않는듯 하나 요즘들어 소규모...
  • 2017-06-21
  • 푸단대 공회 김재근 부주석   (흑룡강신문=하얼빈) 박형군 특약기자, 이수봉 기자=중국의 경제허브 도시인 상하이에 위치한 중국 명문대 푸단대학 공회 부주석으로 활약하며 대학과 기업을 접목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조선족들이 상하이에 뿌리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김재근(47, 사진) 부연구...
  • 2017-06-15
  • 박은 예로부터 우리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생활도구로 널리 사용되여왔다. 물을 떠마시거나 술을 마실 때, 그리고 쌀을 퍼낼 때에도 우리 조상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박이 쥐여져있었다. 박을 던지거나 밟아 깨뜨림으로써 잡귀를 쫓아내는 주술적 풍습도 가지고 있어 박의 크기는 작지만 쓰임새는 아주 컸다. ...
  • 2017-06-12
  • 한국 건대양꼬치거리상인협회 김순희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나춘봉 서울특파원 = "조선족 대부분은 힘들게 한국생활을 시작해요. 좌절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누구보다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을 갖고 이 한 몸을 불사르면 꼭 성공하는 날이 올 거예요."   건대양꼬치거리에서 '복만루'라는 중국 음식점...
  • 2017-06-08
  • 향토작가 리태수선생의 문학생애를 돌이키다 서재에서 원고를 심열하시는 리태수선생님(2017년 4월8일) [지난 5월9일 저녁, 습관적으로 위챗모멘트를 뒤지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뜻밖에 연변작가협회가 위챗계정을 통해 발표한 부고를 그것도 한달전에 취재했던 조선족문단의 향토작가 리태수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 2017-06-07
‹처음  이전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