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석'찜질방의 류정영(柳正榮) 사장
‘신비석’이라고만 하면 한국인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연길 시민에게 '신비석'은 찜질방의 대명사다. 택시를 타고 “썬미쓰(神秘石)"라고만 하면 류사장의 찜질방으로 직행을 할 정도. 지난 25일 개업 6주년을 맞이한 '신비석(神秘石)' 찜질방의 류정영(柳正榮 57)사장을 만났다.
류사장이 연길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한중수교 직후인 지난 94년. 류사장의 첫 아이템은 백화점 건설을 통한 한국상품 도매업. 그러나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패기 하나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웠는지 결과는 참패였고, 한국에서 사업자금으로 가져온 적지 않은 돈도 몽땅 날려먹었다.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 중국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극심한 반대를 뿌리치고 온 것을 생각하니 창피해서 못 가겠더군요. 결국 오기가 생겨 ‘죽어도 이 곳에서 죽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아이템이 한국식 찜질방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원적외선 방식의 웰빙 찜질방. 이거다 싶었죠.”
그러나 아이템만 있을 뿐 수중에는 돈 한푼 없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그 동안 현지인과 신뢰를 쌓아놓았던게 큰 힘이 되어 초기 사업 자금을 빌릴 수 있었다. 이후 찜질방 내 슈퍼마켓, 식당 등의 임대료 등을 선수금으로 받아 지난 2000년 건물을 완공하였다.
결과는 생각한데로 대박이었다. 한국식 찜질방 개념에 건강에도 좋은 ‘신비석’의 인기는 높아만 갔고 평일에도 류사장의 찜질방은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류사장의 '신비석'찜질방이 큰 호황을 누리자 곧바로 후발 주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연길 시내 곳곳에 들어선 한국식 찜질방으로 인해 류사장의 가게는 큰 타격을 받았다.
“손님의 80%가 줄어들었어요. 손님들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신비석'보다 갓 지어서 깨끗하고 찾기도 쉬운 시내의 찜질방을 찾더군요. 결국 복무원들 월급도 제때 못 줬고 직원들이 한명씩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난 확신했어요. 다시 '신비석'으로 손님들이 돌아온다고. 원적외선 방식의 찜질방은 보통 찜질방과는 다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예전과 비슷하게 손님들이 오더군요.”
'신비석'찜질방은 게르마늄 원석을 고온으로 가열할 때 나오는 원적외선을 이용, 피하층을 자극시켜 체내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방식으로 온열물리치료가 가능한 웰빙식 찜질방이다. '신비석'만의 차별화된 기술력은 결국 손님들을 다시 유인하기 시작했고, 한 동안 '신비석'을 떠났던 손님들도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현재 ‘신비석’은 연 평균 2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현재 '신비석'찜질방은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를 비롯한 중국 전역에 7곳의 체인점이 생겼고, 다른 도시들과도 꾸준히 투자를 논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4년 연길시 의란진(伊欒鎭)에 ‘신비석온열의료기계제조유한공사’(神秘石溫熱醫療器械製造有限公司)를 설립하고 가정용 온열 치료기 및 게르마늄 금타일, 맛빳데리 등을 개발 본격적인 시판을 준비중이다.
“개업 1주년 쯤, 20년 간 병원에 다녔어도 계속 아팠던 몸이 ‘신비석’을 다닌 이후 싹 사라졌다며, 떡과 죽을 손수 만들어 주신 할머니의 모습에서 삶의 보람을 느꼈다”는 류사장.
지난 2003년 사스(SARS)가 중국 전역에 퍼졌을 때 '연길이 건강해야 나도 잘된다'며 하루 평균 1,000여대의 택시를 무료로 소독해 주었으며, 해마다 열리는 한국인 체육대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장에 수 천장의 무료 티켓을 나누어 준 류사장의 넉넉한 마음이야말로, 지난 6년간 연길 시민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신비석'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
/온바오(on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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