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운수업, 음식업, 헬스장 등을 두루 경영했던 강수학씨는 때론 성공의 희열을 맛보기도 하고 때론 실패의 쓴맛을 삼키기도 했다. 특히 1996년에 10여만원을 투입해 장식하고 시작한 음식업은 난방시설이 되지 않아 겨울에는 영업을 중지해야 했고 이듬해에는 한국의 IMF가 터지면서 려행사측에서 근 15만원에 달하는 음식값을 허망 날려버리는 바람에 처음으로 엄혹한 실패의 시련을 맛보게 되였다. 1998년에 수십만원을 투입해 설립한 헬스클럽도 몇년간의 피타는 노력을 거쳐 갓 자리를 잡을무렵, 파가이주를 당하면서 또 한번 참혹한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이미 모든 저축을 털어 헬스에 《올인》한터라 재기에 필요한 자금도 없었다.
2000년 강수학씨의 안해 오희란씨는 이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에 진출했다. 강수학씨는 안해에게 돈벌이도 좋지만 선진국에 가는만큼 국외의 선진적인 의식과 기술을 배워 새로운 창업의 기틀을 마련하자고 했다. 한국에서 있는 3년간 오희란씨는 여러 식당을 돌면서 스테이크, 해물탕, 칼국수 등 3가지 료리법을 배워가지고 왔다. 그제날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하는 칼국수, 강수학씨는 바로 이거다 하며 무릎을 쳤다. 그런데 한국의 입맛은 중국과 완전히 틀린다. 그대로 옮겨온다면 실패는 불보듯하다. 강수학씨는 한국의 입맛을 중국에 접목시키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경주했다. 국내 여러가지 밀가루들을 가져다 시험해보고 지어 한국에서 밀가루를 수입해오기도 했다. 하루 겨우 3시간씩 자며 밀가루와 씨름했다. 아무리 맛나는 음식일지라도 하루 세끼 그 음식만 먹으면 얼마 가지 못해 질리게 된다. 하지만 강수학씨는 중국사람들의 입맛에 알맞는 칼국수맛을 찾기 위해 한달간 하루 세끼 칼국수만 먹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을 거쳐 2004년 5월 마침내 연길시병원동쪽에 첫 《우의로홍두깨칼국수》음식점을 개업했다. 음식점은 개업하자마자 성황을 이루기 시작, 날마다 초만원을 이루었다. 손님들의 수요에 만족을 주기 위해 이해 7월, 원동방극장서쪽에 분점《해방로홍두깨칼국수》를 개업했고 이듬해 5월에는 또 《애단로홍두깨칼국수》를 개업했으나 여전히 밀물처럼 몰려드는 손님들의 수요를 만족하기 어려웠다. 하여 지난해 10월에는 《우의로홍두깨칼국수》를 확장, 원래의 50평방메터밖에 되지 않던 면적을 350평방메터로 늘였다.
《남의 뒤를 쫓아가면 영원히 남한테 뒤지게 됩니다. 자체로 제품을 개발하고 특색을 살려야만 치렬한 시장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수 있습니다》블루오션전략으로 성공의 희열을 만끽하고 있는 강수학씨, 오늘도 그는 부단히 새로운 가치혁신으로 새로운 도약을 꾀하고있다.
김명성기자 jmx@ybrb.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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