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실크로드에묻힌 조선족화가 한낙연4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3일 09시29분    조회:1100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조국독립을 위해 고향을 떠나다 1898년 중국용정에서 태어난 한낙언은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그림에 재간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유민이 되어 조국을 떠난 가난한 조선인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체계적인 그림공부를 할 기회를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이었을 것이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부친이 병으로 돌아가시자 집안을 부양하는 책임은 오로지 어머니의 가녀린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한낙연은 그림공부보다는 우선 먹고 살 길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1914년 그는 어렵사리 소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용정전화국에 교환원으로 취직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전화교환원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중학교과정을 마친 그는 당시 용정에 있는 세관의 사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직장을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전화국보다는 세관이 보수나 대우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용정세관은 중국본토에 있던 상해 세관이 관할했기 때문에 긴박ㄹ하게 돌아가는 세계정세를 파악하는데 유리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출세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국을 잃은 민족이 어떤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하는 지를 피부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9년 한반도에서 3.1운동이 벌어지자 당시 간도의 중심지인 용정에서도 3월 13일, 3만여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미 1919년 초에 결혼해 한 집안의 가장임에도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한 한낙연은 용정의 3.1운동에 적극 참여한다하지만 실질적인 힘을 동반하지 못한 만세운동은 시위에 참여한 많은 조선인의 희생을 불러왔다. 그도 3.1운동이후 몰아닥친 일제의 검거를 피해 소련 땅인 블라디보스토크로 몸을 피했다.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가 집결해 있어 독립운동의 전초기지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3.1운동이후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해에 모여 임시정부를 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그곳에 가서 본격적으로 조국의 독립운동에 참여하리라고 결심했다. 이듬해인 1920년 설날 무렵 상해로 가는 길에 잠시 용정에 들렸지만, 이미 그의 마음은 상해 임시정부에 가 있었다. 하지만 아내 최신애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독립운동에 나서는 길이 어떤 길인지 잘 알고 있는 아내가 박수치며 환영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이 두 사람 사이에는 태어난 지 다섯 달 밖에 안 된 딸 인숙이 있었다. 한낙연은 인근의 백부 댁에 세배를 들이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떠난다. 그런 이별 아닌 이별이 부부의 마지막이란 사실을 두 사람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말하지 않아도 남편의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을 짐작한 최신애도 그를 붙잡지 못했다. 그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라를 되찾는 그날 남편이 돌아오리라 믿고 싶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용정을 떠난 한낙연은 이후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고향 용정 땅을 밟지 못했다.(계속) [*신동아] 통권554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미국 뉴욕의 일원지역은 조선족의 급속한 류입으로 어디를 가나 조선족들을 쉽게 접할수 있다. 특히 조선족의 90%이상은 한국인사회에서 생활하며 한인가게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야채장사나 식당, 네일가게(손톱관리) 등 한인들이 하는 곳마다 조선족 직원이 한두명씩은 있다.대부분이 부지런하고 일 잘한다는 평을 받고있...
  • 2006-01-16
  • [원제: 녀자축구팀 로장 손문의 청혼광고] “남자가 나이 들면 장가가기 마련이고 녀자가 나이들면 시집가기 마련”이라고 올해 33살인 손문도 청혼광고를 내 사회상에서 반향들이 크다. 청혼광고의 내막을 보면 본인이 집필한것이 아니고 “상해수요일”신문사의 편집으로 있는 그의 친구가 몸소 기획하고 집필하였던 것이...
  • 2006-01-16
  • 황우석 "용서를 빈다…참담한 심정" 서울대 황우석교수가 12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론문조작에 대해 사과 하고 있다. /외신 한국 황우석교수는 12일 “서울대 조사위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 대한 론문과 관련한 허위 데이터 사용은 제1저자인 제가 모두 책임질 부분으로 모두 인정하고 사...
  • 2006-01-13
  • 황우석은 1953년 12월 15일, 한국 충청남도의 한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를 좋아했고 커서 꼭 수의사가 되고야말겠다고 작심했었다. 1972년, 그는 소망대로 서울대학 수의약학원에 입학, 1982년까지 그는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및 박사학위를 따냈다. 졸업후 그는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게 되였...
  • 2006-01-13
  • 품팔이녀자애로부터 연길시인대대표로 되기까지, 월수입 5000여원의 업주로부터 500여원의 로임을 받는 사회구역위원회서기로 되기까지 갖은 세파를 겪어온 조국영(34살)은 《사회구역사업을 하면서부터 진정으로 인생의 가치를 느끼고있다》고 말하고있다. 1986년 12월, 16살에 나는 조국영은 호북성의 한 편벽한 농촌에서...
  • 2006-01-11
  • [원제: 어머님의 손맛으로 고객 감동] 이제까지 없었던 새 업종이나 서비스를 개척해 큰 성공을 거둬보자는 블루오션전략, 가치혁신으로도 통하는 이 전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약 성공의 희열을 맛보고있다. 그제날 따뜻한 온돌방에서 온 집 식구가 단란히 모여앉아 먹던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칼국수, 생각만 해도 어...
  • 2006-01-11
  • 일전 북경에서 있은 2005년 중국기획년회 및 제2기《제갈량》기획평의활동에서 연변오늘기획연구소 소장 겸 연변오늘상무광고유한회사 리사장 박준덕이 《2005년 중국10대기획전문가》명예를 받아안았다. 소개에 따르면 박준덕사장은 길림성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영예를 받은 사람일뿐만 아니라 조선족가운데서 《기획전문가...
  • 2006-01-10
  • [원제: 전통산업에 인터넷 나래를 달아] 할빈호천과학기술개발회사 오철웅총경리 사업담 “대형국유기업에서 거들떠보지 않는 비표준장비제조의 거대한 시장잠재력을 노리고 접어들었지요." 2000년말 등록자본금 50만원으로 할빈호천과학기술개발회사를 일떠세운 오철웅(43세, 고급공정사)총경리가 밝히는 창업동기이다. 일...
  • 2006-01-10
  • "마음의 고향 한국에 와서 기쁩니다." [세계일보 2006.01.08 13:00:19]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항상 그리워하시는 제 마음의 고향 한국에 오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중앙아시아·러시아 동포청소년 연수단으로 6일 모국을 찾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거주하는 한국인 4세 라가이 베라양(17). 라가이 양은 고려인들이 한국어...
  • 2006-01-09
  • [원제: 잣왕 조이철의 삼단도약] 장백산자연부원에 의탁해 세계를 도모한다 조이철은 누구? 그의 창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조이철, 길림송보생물기술산업유한책임공사의 리사장. 길림성 정우현 사람.올해 47세. 1985년 장춘사범학원 력사학부 졸업. 1990년 경제관리 연수. 1996년 주식회사 길림송보공사 창설. 길림성 특색기...
  • 2006-01-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