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송경철 "우리 노래만 부르렵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5월16일 08시13분    조회:880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였던 진달래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더니 이젠 사과배꽃이 하얗게 웃어주고 있다. 꽃은 사람들의 눈을 아름답게 장식한다면 흥겨운 노래가락은 또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것이 아닐가?

연변의 진달래나 사과배꽃 못지 않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청년가수가 있다.

송경철, 금년에 37살 나는 송경철가수는 연변사람들의 사랑과 각광을 받는 가수로 부상되고 있다.

어려서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던 송경철은 안도현에서 중학교를 졸업, 다년간 농촌에서 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1990년 안도현예술단에서 가수모집을 했다. 가수가 되는것이 꿈이였던 송경철은 가수모집시험에 참가했다. 예술학원에서 배양받지 못했지만 평소에 닦은 실력으로 하여 그는 그번 시험에서 합격되여 마침내 무대에 오르게 되였다. 근 1년간 안도현예술단에서 노래를 부르던 송경철은 1991년 화룡시예술단의 초빙을 받았다.

그때 화룡시예술단은 전국우룸치식 예술단으로 명명되였으며 해마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온돌공연을 하고 있었다. 화룡예술단에 가면 무대에 오를 기회도 많고 자신의 노래 실력을 더 공고히 할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송경철은 화룡으로 전근했다.

화룡예술단에 전근하니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아서 좋았지만 일하기도 쉽지 않았다. 한번씩 온돌공연을 떠나면 무거운 짐들을 어깨에 메고 산간벽지를 돌아야 했으니 그 고생이란 막심했다. 농망기에는 다닐수 없으니 언제나 추운 겨울에만 떠나는 온돌공연, 말 그대로 촌보난행이였다. 허나 송경철은 언제 한번 힘겹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도 농촌에서 일을 해보았으니 농민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리해할수 있었고 그들의 문화생활을 다채롭게 해주고 즐겁게 하는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한번 또 한번 무대에 올라 청충들의 박수갈채를 받을 때마다 송경철은 언제나 가슴이 뿌듯했다. 그는 무대가 아닌 평소에도 성악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 짧디짧은 5년 사이에 어느새 연변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지닌 가수로 될수 있었다.

1995년 연변TV음력설야회에서 ‘보고 싶었소 듣고 싶었소’라는 연변노래를 불러 청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으로 부상해가는 송경철, 1997년에는 마침내 연변예술단에 입사할수 있는 행운까지 지니게 되였다.

그는 남들처럼 영예의 꽃다발을 안아본적도 없다. 가요경연과는 늘 담을 쌓고 사는 그였지만 청중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것은 그만의 비결이 있었다. 남들처럼 류행가나 따라부르고 외국노래를 선택하여 부르는것이 아니라 연변에서 자체로 작사, 작곡한 노래들을 선택하여 불렀다. 예술도 민족적 특색이 있어야 한다면 지역적인 특색도 배제할수 없는것이고 그래서 어쩌면 청중들에게 더욱 가까이 느껴지는것이 아니였을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물었을 때 송경철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띄웠다.

‘전 앞으로도 연변노래만 열심히 부르겠습니다. 우리가 자체로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는 우리의 생활을 반영한것이고 그래서 더욱 가까이 느껴지는것이 아닐가요? 그리고 우리 노래를 우리가 불러야만 연변예술도 발전할것이며 연변특색을 잃지 않게 되지요.’

그렇다. 우리 예술은 우리가 발전시키고 우리의 지역적인 특색을 잃지 말아야 하는것이 아닐가? 그래서 어쩌면 송경철도 청중들의 사랑을 받는것이고.

송경철의 무대에서의 소박한 꿈, 그것은 그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꿈이 아닐가? 

/한영남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 2006 월드컵 재독 동포 응원 지휘 선경석씨] [동아일보 2005.12.31 03:00:37] “세계가 깜짝 놀랄 응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내 집보다 편안하게 독일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쏟겠습니다.”‘2006 독일 월드컵 재독동포 응원단’을 조직한 선경석(58·사진) 씨는 월드컵이 5개월 이상 남았지만 벌...
  • 2006-01-03
  • [원제: 창업인생 - 수놓는 녀자 정미향] 젊고 아름다운 정미향이 5년전 길림에서 상해에 와 처음 찾은 일거리가 사발씻는 일이였다. 그러던 그녀가 십자수놓이와 인연을 맺은 1년전 한국관광때이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가지고 놀았는데 어느날 비지니스를 하는 친구가 독일에서 십자수놓이 수입대리를 하고있다기에 그것...
  • 2006-01-03
  • [원제: 창업 취업도 작은것부터 시작해야] 길림성조선족기업가협회 리규광회장의 일가견 길림성조선족기업가협회 리규광회장(장춘대화그룹 리사장)은 현재 우리 성 조선족민영기업 발전상황을 다음과 같이 개괄한다. 우리 성 조선족민영기업들은 아직 저마다가 그룹형태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각자의 선정항목에선 성공,...
  • 2006-01-03
  • 연예인직업은 인기를 중요시하는데 인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힘들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있는 대신 수입도 자연히 높아지게 돼있다. 지난 년도 중국연예인 수입순위표를 보면 30년을 한결같이 영화계, 광고계 등에서 많은 인기를 받아온 성룡의 한해 수입이 인민페로 2억 3000여만원을 넘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일년에 7편...
  • 2006-01-03
  • 을유년을 보내고 바야흐로 병술년을 맞는 새해의 벽두에 훈춘시인민정부 김상진시장과 지난해를 총화하고 새로운 청사진을 펼치는 중대과제를 가지고 대화를 가질수 있었다. 김시장은 우선 지난 《10.5》기간을 회고하면서 감개무량하였다. 그에 따르면 훈춘시는 지난 5년간 국민경제와 사회사업 제반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
  • 2005-12-30
  • 재일동포무용가 서울·동경정명자한국예술연구원 정명자원장 6세때부터 현재까지 춤만을 위해 살아온 서울·동경정명자한국예술연구원 원장 정명자(48세)씨, 춤으로 인한 그녀의 수많은 희로애락은 진정 그녀의 힘이자 아픔으로 발전, 승화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4일 중한문화교류행사차로 처음 할빈을 찾은 ...
  • 2005-12-29
  • 지난 22일, 많은 우량종벼를 육종해내여 연변은 물론 전국에 명성을 날렸던 농민벼육종재배전문가 류창은(69세)로인의 저택을 찾았다. 1957년 류창은은 안도현 만보진에서 벼재배와 벼육종연구에 달라붙어 만보6호, 만보11호와 장풍 등 3가지 벼우량종자를 배육해냈고 새로운 벼재배법을 보급시켰다. 하여 헥타르당 벼생산량...
  • 2005-12-29
  • 자기 식당을 활동관으로 예술단도 조직 길림시 강북 밀하참(蜜哈站)에 살고있는 박명분(56세)은 자기의 음식점을 중년들의 오락활동관으로 내놓고 현재는 예술단을 조직하기에까지 이르러 미담이다. 그는 원래 1999년부터 밀하참에서 420평방메터에 달하는 금수산민속관 음식점을 경영하였다. 주위에 모여살고있는 많은 조선...
  • 2005-12-29
  • 북경발 신화통신 12월 26일 중앙정법위원회는 최근 통지를 발표하여 전국 각 급 정법기관과 전체 정법사업자들이 김계란(녀, 조선족, 흑룡강성 녕안시 인민법원 동경성 법정 법관)을 따라 배우는 활동을 전개할것을 호소했다. 통지는 다음과 같이 요구하였다. 각 급 정법기관과 전체 정법사업자들은 김계란동지의 당과 국가...
  • 2005-12-28
  •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양력설문예야회에서 방송하게 되는 연변가무단의 가무 가 26일, 중앙텔레비죤방송국 공개홀에서 록화됐습니다. 록화중 무대중앙에서 아름다운 자태와 짙은 감정으로 연변의 주화로 불리우는 를 부른 가수가 바로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변영화학생입니다. 양력설야회뿐만아니라 올해 문화부에서 조직한 음...
  • 2005-12-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