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젊은 조선족프로기수 박문요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5월22일 07시57분    조회:686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국바둑계에 우뚝 솟아오르는 별

박문요 간력:

1988년 할빈에서 출생. 1999년 초단, 2006년 5단으로 승격. 2000년 전국소년선수권대회 3등, 제10회LG컵세계기왕시합4강, 2005년 전국바둑개인시합 4등, 제7회리코컵4강, 2005년 국가청년팀에 입선. (글/계옥 사진/항월, 《바둑천지》 2007년 9기에서)

◇ 의식적으로 어떤 기풍을 추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른바 기풍이라 함은 실은 가치판단의 련관성이라고 본다.

◇ 쌍방이 모두 받아들일수 있는 정해진 모형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존재하기 어렵다고 본다. 어쨌든 한 사람의 판단이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 바둑판이 텅 비여있을 때 제일 어렵다. 나와 고수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6년 12월 31일까지 중국바둑선수등급점수순위에서 제11위를 차지하여 바둑계의 주목을 끌고있는 조선족기수가 있다. 로승이 입정한듯한 집중력, 나이와는 상반되게 로련하고 신중한 기풍, 그가 바로 흑룡강 할빈태생으로 금년에 20살밖에 안되는 나젊은 기수 박문요 5단이다.

1995년  8살 나던 해 바둑을 접촉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박문요는 선발을 거쳐 할빈시 한 바둑구락부 훈련반에 들어갔다. 구락부와 집사이의 거리는 한참이나 멀었지만 부모들은 박문요의 자강정신과 의지력을 키워주기 위해 일부러 혼자서 공공뻐스를 타고 오가도록 하였다. 박문요의 어린시절은 비교적 굴곡적이였다. 그는 일찍 13살 나던 해 아들을 기수로 키우려고 꿈꾸며 분전하던 아버지를 불행하게 잃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2000년 박문요는 전국소년바둑시합에서 3등을 하여 국가소년팀에 가입하고 북경으로 입성하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박문요를 꼭 바둑인재로 키워달라는 남편의 유언을 실현하기 위하여 함께 북경으로 와 기원부근에서 작은 방을 세맡고 어려운 경제여건을 참아내면서 문요의 뒤바라지를 하였다. 그러나 박문요의 바둑길은 평탄하지만 않았다. 일년후 그는 국가소년팀에서 락선되여 다른 애들과 함께 자기 절로 훈련을 조직해야만 하는 고배를 마시게 된다. 하지만 성격이 강의한 박문요는 더욱 열심히 노력을 경주하여 실패를 딛고 억척스럽게 일어섰다.

성공은 노력하는 자에게 있다고 몇년사이 그의 기예도 하루하루 진보하여 국가소년팀에서 국가청년팀에로, 일년사이에 2단이나 승격하는 출중한 표현을 보여주었으며 여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따내 점차 중국바둑계의 제1진영에 한자리를 단단히 매김하는 괄목하는 성적을 이룩하였다.

동년배들중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침착하고 신중하며 로련한 기풍, 사람들은 박문요에게 이창호의 그림자가 비쳐있다고 말하고있다. 이제 박문요의 등급점수는 10등의 문턱에 다달은 상태, 그가 뛰고있는 갑급팀에서도 절대적인 주력이다. 박문요, 그의 바둑인생에 더욱 창창한 앞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리철수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의료기계 틈새시장을 겨냥한 사나이커시안의료기계 문진수사장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선미 기자 = 지난 7일 할빈시 도리구의 커시안(옵毆갛)의료기계사무실에서 300여명이 모인가운데 126명 로인(조선족 1명)들에게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을 가득 차려 조선족 전통습관으로 환갑잔치를 마련해주어 뭇사람들의 칭찬...
  • 2009-11-13
  • 추억의 언덕우에 살아 숨쉬는 옛 씨름왕—당년 평강벌 무적의 힘장사 고 방창직옹 20세기 60년대에 연변에서 씨름왕으로 마도일이 소문났다면 그보다 훨씬 앞선 40년대, 50년대에 벌써 평강벌에 위치한 서성, 팔가자 일대에서 소문난 씨름장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고 방창직옹(100세)이다. 지금도 70여세 되는 로인들...
  • 2009-11-12
  • 중국 유일의 조선족자치현…관광강현 만든다장백조선족자치현 정형일현장을 만나본다정형일 프로필: 1966년10월 장백현에서 출생길림공학원 화공공정학부 졸업길림대학 철학사회학원 연구생 졸업싱가포르남양리공대학 관리경제학 박사학위 획득선후로 장백현규소토공업회사 부공장장, 공청단현위 부서기, 십일도구향 ...
  • 2009-11-12
  • 조선족 기업, 韓中의 다리가 되다 수교 17년 이래 한중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빠르게 발전했다. 특히 지난해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맺은 이래 더욱 폭넓은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최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양국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피부로 와 닿는다.중국 중앙정부의 적극적 민족정책 아래 중...
  • 2009-11-12
  • 중국의 최대 조선족마을 만든 사람 —심양시 만융촌 당위서기 겸 촌주임 박승택씨 만나본다   (흑룡강신문=하얼빈)'전국문명촌'의 영예를 안은 만융촌은 전통의미의 초가삼간 마을이 아니라 도시의 대형아빠트단지를 방불케 하는 도시화된 현대화마을이다. 촌에는 무려 82개의 기업이 유치되여 있으며 촌소학교에는 ...
  • 2009-11-10
  • 중국조선족사회의 진로... “조선족사회의 진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나의 밀어버릴수 없는 사명” ㅡ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 및 인류학연구소 정신철연구원의 추구   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 및 인류학연구소 연구원이며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생원 교수인 정신철(51)씨는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많은 성...
  • 2009-11-10
  • 20세기 중국조선족문화의 일대산맥연변대학 전임 부교장 고 정판룡교수를 회고한다 ○ 정판룡은 20세기 중국조선족이 낳은 가장 우수한 문화지성인중의 한사람이며 저명한 문학교수,교육가였으며 문학평론가, 산문작가였으며 사회활동가였다. 정판룡 프로필: 1931년 10월 2일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면 항교리에서 출생1949년...
  • 2009-11-10
  • —청도아혁회사 창업편린 청도 하면 사람들은 흔히 청도맥주를 떠올린다. 그만큼 우리와 익숙한 고장이다. 새로운 력사시기에 진입하면서 연해개방도시로서 청도는 우리 민족의 새로운 집거지로 이미 자리를 굳혀가고있다. 중국조선족이 근 20만, 한국인들이 10여만명에 달하여 불완전한 통계에 의해도 우리 겨레가 30...
  • 2009-11-10
  • —청도농업대학 경제관리학원 부원장 리종수교수우리 나라 농업문제를 전문 연구하면서 대학생양성에 일신을 몰입하고있는 청도농업대학 경제관리학원 부원장 리종수교수는 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 우리 민족의 농업문제전문가이다.연변농학원에서 사업하다가 한국 충남대학교와 한국 경북대학교에서 선후로 농...
  • 2009-11-10
  • 신금천사우나 윤금철 회장 "소비문화는 선도해야 한다" 신금천사우나 윤금철 회장 인터뷰 현지인 상대 헬스방, 방갈로 셔틀차량 운영 신 모델 (흑룡강신문=하얼빈) 투자금 300만 위안을 들여 전체적으로 새롭게 인테리어를 하고 최신 한국 설비를 도입한 신금천사우나가 지난 10월 25일부터 이창구 흑룡강로에서...
  • 2009-11-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