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대 조선족마을 만든 사람
—심양시 만융촌 당위서기 겸 촌주임 박승택씨 만나본다(흑룡강신문=하얼빈)'전국문명촌'의 영예를 안은 만융촌은 전통의미의 초가삼간 마을이 아니라 도시의 대형아빠트단지를 방불케 하는 도시화된 현대화마을이다. 촌에는 무려 82개의 기업이 유치되여 있으며 촌소학교에는 300명 학생이 다녀 도시소학교의 규모다. 촌운동회도 무려 촌내기업들이 30여만원 규모의 돈을 후원해 3일동안 연다.
도시거리를 방불케 하는 깨끗하고 아늑한 만융촌의 상업거리. |
이 중국조선족제1촌을 만들어낸 사람은 바로 만융촌 당지부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인 박승택(55세)씨다. 사람들은 "박승택이 없다면 오늘의 만융이 있을수 없다"고들 말한다. 언변이나 행동거지도 지적인 이 평안도 중년미남자가 중국조선족농촌의 대황페화라는 추세에서 이런 조선족 새 농촌의 기적을 만들수 있은것은 바로 자기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 모으기'활동
기자 : 만융모식은 개혁개방이후 조선족농촌발전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되고있으며 한편 중국 새농촌건설의 성공모델중의 하나로 인정되고있다. 만융모식은 어떻게 형성된것인가?
박승택: 12년전, 촌민들은 나를 촌민위원회 주임으로 선거했다. 격변의 시기 만융촌의 출로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제일 먼저 동북삼성 조선족마을 현황조사를 했다. 인구위기, 혼인위기, 교육위기, 인재위기, 언어위기, 도덕위기 등 고민은 대동소이했다. 나는 조선족농촌의 여러 가지 위기중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사람이 없는 인구위기'라고 인정하고 '우리 민족 모으기'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천호만 모으면 마을밖에 안나가고도 상권이 형성되고 먹고살수 있고 애들 공부하는 학교도 운영할수 있을것이다 .
촌지도부에서는 '만융촌의 15년 발전총체계획'을 세웠고 그때로부터 그것을 하나하나 실천해온것이다. 나는 '만융발전을 200만명 중국조선족의 사라져가는 문화와 전통과 긍지를 살리는데로부터 보아야지 자그마한 마을의 발전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우리 마을을 정치, 경제, 문화, 전통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앞장선 마을로 꼭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이것이 바로 만융모식이다.
촌간부는 외교관이 되여야 한다
기자: 지난해 동삼성조선족새농촌건설좌담회에서 료녕성의 조선족로간부인 장현환은 '왜 같은 조건을 가진 촌들은 만융촌처럼 성공하지 못했는가'는 질문에서 만융촌지도부에 훌륭한 인솔자가 있고 대담한 사상해방, 기회포착, 사업심이 강해 촌민들이 감복하고 따라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 동릉구서기 김정구는 '박서기가 없다면 오늘의 만융촌이 없다. 발전한 마을을 보면 꼭 훌륭한 지도부와 인솔자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촌간부사업에서 만융촌의 중요한 경험은 무엇인가?
박승택 : 현시대 촌간부는 외교관이 되여야 한다. 좋은 생각을 이루자면 외부의 지원이 아주 중요하다. 촌의 발전을 위한 외교관이 되여야 한다. 우선 정부 정책을 잘 아는 외교관이 되여 정부의 지원을 적극 쟁취했다. '촌장이 바로 정책이다.'는 말도 있다.늘 정부의 정책을 학습한 다음 그 정신에 맞추어 발전계획과 항목들을 세워 정부 각 부문에 따라 지원요청 보고서를 신청한다. 거의 매일 정부의 해당 사무실에 가있다싶이 하니 '어느 곳이 당신 사무실인가'하는 롱도 잘 받는다. 그 동안 우리는 정부로부터 총 2000만원의 지원을 쟁취하여 도로, 문화광장, 문화실, 환경록화 등 큰 일들을 했다.
나와 촌간부들은 직접 외자유치에 나서 친구, 친척의 련줄을 찾고 국내외 유지들을 방문하고 만난다. 현재 우리 촌은 82개의 기업을 유치했으며 한국공업단지까지 조성했다. 또 홍보를 할줄 아는 외교관이 되여 기회와 언론을 통해 마을을 해내외에 널리 알렸다.'중국조선족제1촌' 심양시 만융촌은 명실공한 '중국조선족제일촌'이라는것은 자타가 공인하는바다.
무려 1600가구에 6000명 인구를 가진 이 마을은 '지구상에 제일 큰 우리민족촌이다'라고도 한다.
만융촌은 정부로부터 심양한국주의 주요행사장으로 되였으며 한국의 전임 총리 등 고위관원이 마을을 방문했다. 열심히 친구를 사귀며 각 행사마다 다 참가하여 모든 기회에 만융을 홍보한다.
특히 지도부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단결사상이다. 촌의 모든 사업은 우선 촌간부부터 사상을 통일시키고 전체 당원과 전체 촌민대표들의 마음을 통일시켰다. 그러니 항목마다 촌민들의 지지를 받고 일마다 성공할수 있은것이다.
진심과 믿음은 성공의 필수다. 내 명함장 중심에 '믿을 신(信)'자가 크게 씌여있다. 촌민들의 믿음, 정부의 믿음이 있어야 장구할수 있다. 우리 촌간부들은 1년 365일을 하루와 같이 열심히 일해왔다고 감히 말할수 있다. 돈 50만원을 지원하면 50만원의 효과를 보여주어야 돈주는 사람도 재미있을것이다.
집중촌이 성공할수 있는 세가지 필수조건
기자 : 신문에서는 그동안 집중촌건설을 위한 조사 및 여론조성과 인도를 해왔다. 만융촌은 조선족집중촌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되였다. 많은 조선족촌들이 도시근접형 집중촌을 건설하고있는데 집중촌건설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박승택: 우리는 인구부터 늘리기로 했다. 인구가 많아야 학교 꾸리고 집중촌학교를 잘 꾸려야 소문나고 자식공부 위해서 사람이 몰려온다.
다음 인구의 일정한 규모가 있어야 정부의 중시를 받을수 있고 혜택을 받을수 있다. 만융촌이 이런 규모가 있기에 정부의 지원으로 여러 가지 항목을 인입할수 있었다.
오동수 심어야 봉황 온다. 기업을 꾸려 집체경제가 든든하고 마을이 잘 산다. 지난해 촌운동회도 비용이 총 37만원인데 기업에서 후원금이 43만원이 들어왔다.
우리의 경험은 집중과 규모가 없으면 출로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융촌의 규모가 크기에 동릉구에서는 언제나 우리 촌을 중시하고 지지한다. 지난 2월 전국문명촌도 전 료녕성에 3개 촌인데 우리 촌이 선정되였다.
도시조선족집중구보다 집중촌이 더 살기가 좋다
기자: 심양에는 유명한 서탑조선족타운이 있다. 귀국한 농민들이 선택한다면 도시속의 집중구가 만융촌같은 집중촌보다 생활이나 교육 등에 더 편리하지 않을가 ?
박승택: 서탑같은 시내 집중구아빠트단지는 집중촌과 비하면 생활 등에 편리한 우점도 있지만 조선족으로 사회적지위가 미약하다. 기껏해야 학교에서 조직하는 운동회나 학부형회의 정도다. 만융처럼 집중되면 조선족특색으로 미량풍속과 문화를 향수하고 여러 가지 정부의 혜택을 향수할수 있다.
기자: 현재 집중촌에 취직이 화제다. 기업들이 있어도 조선족들은 로임이 눈에 차지 않아 한국 가 벌기보다 못하다고 출근을 안 하는데 만융촌의 촌민들은 어떤가?
박승택: 지금 82개 기업이 공업단지에 입주하고 식당 등 제3산업 가게가 130개가 되기에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업체들은 촌민들을 쓰고싶어 하지만 촌민들은 사무직이나 기술자 외 다른 일은 거들떠도 안본다. 출근하면 천원정도가 되여 밥벌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급여도 오르고 진급할수 있지만 그런 인내성이 없다. 조선족직원이 몇명 있지만 기술 배우면서 외국수속 밟는다. 중도에서 출국해버리면 공장에서는 큰 손해다. 그래서 이젠 울며 겨자먹기로 외지에서 한족로동자들을 데려온다. 부지런하고 끈기있는 그들은 환영을 받는다
외지서 이사온 분들도 당당한 만융사람입니다
기자: 현재 일부 조선족집중촌에 이사를 온 사람들은 호구나 토지가 없는 등 정책적난제가 있으며 또 촌의 행정사업에 참가할수 없는 정치권리 등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만융촌의 경우 외지 이사호들은 어떻게 대우하고있는가?
박승택: 우리는 본지호 외래호라고 부르지 않고 '호구있는 촌민'과 '호구없는 촌민'으로 부른다. 외래호라는 이름이 거부감을 준다. 만융에서 살면 모두가 만융사람이다. 단지 호구가 있다 없다로 구분될뿐이다. 현재 촌에는 호구있는 가구가 718가구이고 호구가 없는 가구가 900가구다. 촌의 행사때마다 '외지사람이 아니라 다 만융사람이다'고 계속 강조한다. 길림성에서 온 분도 택시기사가 어디 사람이라고 물으면 '만융사람이다'고 대답할것이 아닌가? 그분들이 개잡이를 하거나 행사가 있을 때 나를 부르면 만사 제쳐놓고 가서 함께 즐긴다. 또 로당원들을 모시고 좌담회도 가진다.
촌행정사업에 참여하는 문제는 각 촌민대표 선거에 촌민대표 선거권과 당선권을 특별히 주었다. 촌민대표로서 촌의 결책에 참여하고 정치권리를 행사한다. 그러나 국가의 촌간부선거법에 따라 호적이 있어야 촌간부 당선권이 있기에 촌간부로는 등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분들은 당당한 만융의 주인이며 새만융의 건설자이며 함께 만융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광장에서 떠들석 뛰노는 아이들을 볼 때가 가장 행복
기자: 10여년간 만융의 사령탑을 잡고 일해온 새 만융의 설계자, 만융촌의 일인자로서 기쁜 일과 고민이라면 ?
박승택: 장장 12년을 한몸 던지고 365일 아침 저녁 휴식일이 따 로 없이 그야말로 고생을 했다. 남은것은 뭔가 ? 과로와 술과 심신의 압력으로 심장이나 간 등 몸에 병밖에 안남았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그래도 리해해주지 못할 때 그렇게 억울할수가 없다. 왜 내가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후회될 때도 있다.
어느 기업이나 연해에서 오라는데도 많았는데 큰 돈 벌수 있었을것이다. 하고픈 일 맘대로 못하고 그 만큼 행동거지에 주의해야 하고 희생정신과 사명감 없으면 이 자리의 일 못한다. 대부분 친구들이 돈 많은 사장이 되였는데 후회 안되는가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네는 돈 많아 방에 통장이 가득하겠지만 나는 다 붉은 상장들이다. 돈은 안 많지만 살만은 하다'고 말한다. 심양시 정부에서 첫패로 16명 촌간부를 공무원으로 변경시켰는데 나도 현재 가두의 주관농업 부주임을 겸임한 공무원이 되였다.
나는 후회 안한다. 사람에 대한 사회의 인정은 돈으로 사지 못한다. 동서남북에서 많은 분들이 모여오고 저녁이면 마을의 광장에서 로인네들이 즐기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면 만융촌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성취감으로 흐뭇하다. 촌민들이 고생한다고 늘 응원해줄때면 고맙고 보람있다고 느낀다.
조선족촌 앞으로 10년이 큰 공백
기자 : ‘조선족제일촌’의 촌장으로서 조선족촌의 전망을 어떻게 내다보는가?
박승택 : (이 말을 대답하면서 박승택은 얼굴에 그늘이 지고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앞으로 조선족촌의 10년이 큰 걱정이다. 나는 그 손실이 문화대혁명 10년 공백기와도 비겨볼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공백은 부모들의 출국때문에 자식공부가 엉망인데 이 후유증이 가장 심각하며 영향이 10년 갈것이다. 조선족 신세대 전반의 자질이 떨어졌다. 자식공부 대학시험에 대한 부모들의 전통도 관심도 적어졌다. 돈으로 자식사랑을 대체하며 대체 돈밖에 모른다. 우리 마을에도 출국한 부모가 10년, 5―6년이 보통인데 이 자제들은 대부분 공부 안한다. 문화가 가장 발달했다는 우리가 뒤떨어지고있다.
다음 조선족간부 단층현상이 심각하다. 심양시만도 조선족공무원이 아주 적다.그동안 많은 민족간부들이 만융의 발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정부의 민족정책 혜택을 많이 보게 했지만 앞으로 10년이 큰 공백이다.
공부해야 진정 큰 밑천이고 장원한 투자이고 경쟁력인데 돈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정말 두렵다. 지금 백만원, 이삼백만원이 있으면 부유하다고 하겠으나 10년후에도 그럴가? 백만원을 까먹자면 잠간인데 그 다음 세대는 무엇으로 경쟁한단 말인가?
조선족촌은 규모가 있어야 생존하고 발전할수 있는데 작은 촌의 생존이 큰 문제다. 앞으로 10년후 구경 조선족촌들이 얼마나 남아있을가. 촌간부들도 대가 끊긴다.조선족촌간부 해도 무슨 혜택 없고 욕만 먹기가 일쑤이니 촌간부를 하려 안하며 시골에선 촌간부를 할만한 사람은 다 돈벌이 가고 도시주변으로 온다.
이제 3000가구 만드는것이 목표입니다
기자: 만융의 설계자인 박서기가 구상하고있는 만융의 래일은 어떤 모습인가?
박승택 : 이제 5년 노력하여 계속 늘려 3000가구가 되게 하려는것이다. 그때면 만융의 힘은 더 커질것이다. 지금 마을옆의 은덕아빠트 국제단지가 개발되면 인구가 많이 늘어나게 될것이다.
우리 민족은 오직 변화하는 현실속에서 창조와 변화로 생존의 길을 찾고 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 그 생존의 길, 발전의 길이 바로 중심촌 (집중촌) 건설이라고 생각한다. 만융모식만이 아니라 촌마다 자지방 특색에 맞게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새로운 조선족집거지를 형성해 경제, 문화교육을 발전시켜야 한다.
/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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