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고 김호근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7월6일 08시20분    조회:907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더없이 비통한 심정으로 김호근선생을 추모하게 되였습니다.

김호근선생은 2007년 7월 2일 아침 4시 15분 의외의 사고로 59세를 일기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벗이며 자애로운 선배를 잃었습니다.

김호근선생은  1948년 1월 5일, 화룡의 가난한 교육가의 가정에서 태여났습니다.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후《문화대혁명》의 세파에 떠밀려 화룡현 숭선향으로 내려갔다가 1972년 연변대학교 언어학부에 입학하였습니다. 1975년 연변대학교를 졸업하고 《연변문예》(연변문학의 전신)의 편집으로 사업을 시작해 선후로 편집부 주임, 부주필 등 직을 력임하였으며 1982년 3월 2일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습니다.

1997년 연변작가협회에 전근되여 연변작가협회 제7기주석단 상임부주석 겸 비서장, 당조성원 등 직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연변문학예술련합회 제6기주석단 부주석, 연변조선족서화학회 리사, 비서장, 부회장 등 직을 맡았고 조선글서예가협회의 예술고문, 연변웅변가협회 주석, 중국현대청년서화가협회의 부회장 등 직을 력임하였습니다.

김호근선생은 20여년동안 《연변문학》에서 문예편집사업을 하면서 우리 조선족문학의 발전을 위하여 무려 3000여만자에 달하는 문학작품을 편집하였고 3백 명의 문학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선생께서 수많은 문학작품들을 편집, 출판했는데 그중 6편(부)의 작품이 국가급문학상을 6편(부)의 작품이 성급문학상을, 52편(부)의 작품이 주급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선생께서 《연변문학》의 주요한 직책을 담당하고있던 기간에 《연변문학》의 전신인 《천지》는 《길림성10대 우수간행물》, 《동북3성사회과학우수간행물》의 영예를 안아왔습니다. 선생께서는 1993년과 1996년에는 전국소수민족문학 《원예사》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김호근선생은 문학편집으로 사업하는 한편 수많은 작품을 창작하였습니다. 근 200여편(수)에 달하는 소설, 산문, 수기, 시를  발표하였으며 400만자에 달하는 고금중외명작들을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이러한 풍성한 문학성과를 거두었기에 그는 주급이상의 문학상을 3차 수상하였습니다.

김호근선생은 연변작가협회로 전근한후 연변작가협회의 사업에 혼신의 열과 성을 다 바쳤습니다. 그는 8차의 《천지물줄기》대형문학행사를 기획, 주최하였으며 한문판으로 된 《20세기 조전족문학정수》와 조선문판으로 된 《조선족작품정수》의 번역, 편집, 출판에서 모두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연변작가협회의 기타 사업에서도 탁월한 조직력과 추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그는 사업일선에서 물러난후에도 병이 있는 몸으로 편벽한 산골인 숭선에 가서 문학창작기지를 건립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호근선생은 문학사업에서뿐만아니라 서예와 사회활동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조선글서예에서 독보적인 《단천체》를 개발하였으며 우리 조선글서예를 중국의 주류사회, 나아가서는 세계에 알리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는 1990년부터 선후로 중국, 조선, 한국, 로시야 등 나라에서 무려 14차에 달하는 개인서예전을 가졌습니다. 하여 그는 세계서예대상컵대회에서 금상을, 《국제서예명인상》  등 큰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국제서예예술명인증서》를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서예작품과 생평은 《중국당대서화전각가사전》, 《중국당대서예가명가대사전》, 《중국서화금석가대사전》, 《중국서예가대사전》,  《중국명인록》 등에 수록되였으며 그의 서예작품은 《한림비원》에 석각으로 조각되여있고 중국 산동성 위방시에는 《단천김호근서예원》이 설립되여있습니다.

김호근선생의 일생은 우리 민족의 문예사업과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자신의 정열과 재능을 다 바친 자랑스러운 일생이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소처럼 부지런히 일했으며 언제나 겸허하고 성실한 태도로 동지들을 대했습니다. 그는 또 언제나 선배를 깍듯이 모시고 후배들을 사랑하였으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앞장을 서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의 선량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성품과 천재적인 입담은 우리 문단에 언제나 즐거운 기분과 활기를 가져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저명한 문학편집인이며 작가이며 서예가이며 사회활동가이며 우수한 공산당원인 김호근선생을 잃었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 문예사업의 미봉할수 없는 손실입니다.

하지만 선생의 주옥같은 글과 서예작품들은 우리 민족의 유산으로 영원히 남을것이며 선생의 겸허하고 선량한 품성과 멋진 웃음소리는 영원히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을것입니다. 또한 선생께서 평생의 열과 성을 쏟아부어 가꾼 우리 문학의 백화원은 더욱 현란하게 꽃필것입니다.

고 김호근선생이여, 고이 잠드시라.

2007년 7월 2일
  
 
연변작가협회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미국 뉴욕의 일원지역은 조선족의 급속한 류입으로 어디를 가나 조선족들을 쉽게 접할수 있다. 특히 조선족의 90%이상은 한국인사회에서 생활하며 한인가게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야채장사나 식당, 네일가게(손톱관리) 등 한인들이 하는 곳마다 조선족 직원이 한두명씩은 있다.대부분이 부지런하고 일 잘한다는 평을 받고있...
  • 2006-01-16
  • [원제: 녀자축구팀 로장 손문의 청혼광고] “남자가 나이 들면 장가가기 마련이고 녀자가 나이들면 시집가기 마련”이라고 올해 33살인 손문도 청혼광고를 내 사회상에서 반향들이 크다. 청혼광고의 내막을 보면 본인이 집필한것이 아니고 “상해수요일”신문사의 편집으로 있는 그의 친구가 몸소 기획하고 집필하였던 것이...
  • 2006-01-16
  • 황우석 "용서를 빈다…참담한 심정" 서울대 황우석교수가 12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론문조작에 대해 사과 하고 있다. /외신 한국 황우석교수는 12일 “서울대 조사위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 대한 론문과 관련한 허위 데이터 사용은 제1저자인 제가 모두 책임질 부분으로 모두 인정하고 사...
  • 2006-01-13
  • 황우석은 1953년 12월 15일, 한국 충청남도의 한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를 좋아했고 커서 꼭 수의사가 되고야말겠다고 작심했었다. 1972년, 그는 소망대로 서울대학 수의약학원에 입학, 1982년까지 그는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및 박사학위를 따냈다. 졸업후 그는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게 되였...
  • 2006-01-13
  • 품팔이녀자애로부터 연길시인대대표로 되기까지, 월수입 5000여원의 업주로부터 500여원의 로임을 받는 사회구역위원회서기로 되기까지 갖은 세파를 겪어온 조국영(34살)은 《사회구역사업을 하면서부터 진정으로 인생의 가치를 느끼고있다》고 말하고있다. 1986년 12월, 16살에 나는 조국영은 호북성의 한 편벽한 농촌에서...
  • 2006-01-11
  • [원제: 어머님의 손맛으로 고객 감동] 이제까지 없었던 새 업종이나 서비스를 개척해 큰 성공을 거둬보자는 블루오션전략, 가치혁신으로도 통하는 이 전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약 성공의 희열을 맛보고있다. 그제날 따뜻한 온돌방에서 온 집 식구가 단란히 모여앉아 먹던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칼국수, 생각만 해도 어...
  • 2006-01-11
  • 일전 북경에서 있은 2005년 중국기획년회 및 제2기《제갈량》기획평의활동에서 연변오늘기획연구소 소장 겸 연변오늘상무광고유한회사 리사장 박준덕이 《2005년 중국10대기획전문가》명예를 받아안았다. 소개에 따르면 박준덕사장은 길림성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영예를 받은 사람일뿐만 아니라 조선족가운데서 《기획전문가...
  • 2006-01-10
  • [원제: 전통산업에 인터넷 나래를 달아] 할빈호천과학기술개발회사 오철웅총경리 사업담 “대형국유기업에서 거들떠보지 않는 비표준장비제조의 거대한 시장잠재력을 노리고 접어들었지요." 2000년말 등록자본금 50만원으로 할빈호천과학기술개발회사를 일떠세운 오철웅(43세, 고급공정사)총경리가 밝히는 창업동기이다. 일...
  • 2006-01-10
  • "마음의 고향 한국에 와서 기쁩니다." [세계일보 2006.01.08 13:00:19]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항상 그리워하시는 제 마음의 고향 한국에 오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중앙아시아·러시아 동포청소년 연수단으로 6일 모국을 찾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거주하는 한국인 4세 라가이 베라양(17). 라가이 양은 고려인들이 한국어...
  • 2006-01-09
  • [원제: 잣왕 조이철의 삼단도약] 장백산자연부원에 의탁해 세계를 도모한다 조이철은 누구? 그의 창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조이철, 길림송보생물기술산업유한책임공사의 리사장. 길림성 정우현 사람.올해 47세. 1985년 장춘사범학원 력사학부 졸업. 1990년 경제관리 연수. 1996년 주식회사 길림송보공사 창설. 길림성 특색기...
  • 2006-01-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