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함순녀 인대대표 민족문화발전 담론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3월5일 23시23분    조회:772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된 연변가무단 일급 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는 함순녀 대표를 전화로 연결해서 두 회의와 관련해 그의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하 "기"는 기자, "함"은 함순녀 대표를 지칭합니다.) 

기: 안녕하십니까?

함: 안녕하십니까?

기: 우선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직에 당선된것을 축하드립니다. 한편 어떤 심정일까도 궁금합니다.

함: 당연히 기쁘고 격동된 심정이지요. 제가 이번에 전국인대 대표로 된데 대해서 한편으로는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깨에 놓여진 무게를 가늠하게 되거든요.

기: 녜, 그렇겠지요. 이력서에 보면 1981년부터 현재까지 줄곧 길림성의 연변가무단에서 무용예술 사업에 종사해 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공연무대를 가졌을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함: 제일 인상이 깊었던것은 제가 무용무대를 그만두고 지금은 후대양성 사업에 종사하고 있거든요. 제가 2001년에 무용 서사시 "장백정"의 주연을 담당했습니다. 그때는 연꽃컵 콩클이였는데 그때 제가 38살정도 되였는데 무용 배우로 놓고 말하면 나이가 많은 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당시 주연을 담당했는데 마지막 공연에서 제가 한편으로는 인물의 내심세계에 빠지는것은 둘째치고 거의 25년간 무용배우로 일해오면서 인제는 이 무대를 떠나는구나 이런 생각으로 제가 울면서 공연을 했습니다. 자기의 생명보다도 더 아끼는 직업이 됐는데 이걸 그만두고 교육사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눈물이 나는거예요. 그런데 그날 공연이 그렇게 진실하고 그렇게 우수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날 두가지 심정을 가지고 공여에 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평을 했습니다.

기: 가장 진실한 공연이였다고 봐야 겠네요.?

함: 그렇지요. 그런데 그때는 우리 무용계를 놓고 말하면 가장 큰 연?컵 무용콩클이거든요. 그번에 제가 여 주연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입니다.

기: 국가 일급 배우의 영예를 안고 계신데 성장과정에서 가장 용기와 신심을 얻었을때가 언제였습니까?

함: 제가 1981년도에 연변예술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연변가무단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무용천부도 있고 또 조건도 좋고 해서 직장에서 상해무용학교에 저를 강습을 보냈습니다. 북경해방군 예술학원에서도 공부했습니다. 이 두곳에서 저는 모두 발레를 전공했습니다. 약 1년반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와 가무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정말 곤난이 많았습니다. 저를 인정해 주지 않는것이였습니다. 제 생각엔 선배들보다 능력도 기능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다른 사람보다 공부를 더 했으니깐요. 하지만 경험부족이라든가 등 원인으로 선배님들보다는 차이가 있었지요. 그래서 좋은 작품이 있어도 저에게 주연을 주지 않고 했지요. 업무회보나 기능 시험에선 항상 일등을 하는데 왜서 저를 써주지 않느냐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도 저는 항상 자신에 대한 신심을 잃지 않고 기회는 한번뿐이 아니므로 꾸준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자기의 기량도 키우고 연기력도 키우느라면 아무때건 기회가 꼭 올거라는 신념을 갖고 훈련을 강화해 왔지요.

기: 그렇다면 무용예술가의 꿈은 언제부터 키우셨습니까? 가정의 영향이라도 있었습니까?

함: 가정의 영향이란 없고 하지만 제가 어린시절부터 뛰여난 무용 자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릴때 항상 춤을 추면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지요. 그리고 또 제가 소학교에 다닐때 한번은 연변가무단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게 되였습니다. 그때 무용가이신 이록순 선생님의 장고춤을 봤는데 그때 선생님의 공연이 너무나 황홀하고 해서 밤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생각이 나도 커서 저런 훌륭한 무용배우가 되리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아마 무용을 배우려는 싹이 튼것 같습니다.

기: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셨습니다. 인민대표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많은 제의를 가지고 오셨을텐데 어떤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지요?

함: 저는 물론 문화예술사업에 종사하는 전문인원으로서 우리 민족문화에 대해서 정부로 부터 많은 중시를 돌려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제의를 갖고 왔습니다. 한 민족의 문화는 한 민족의 영혼과 혈맥이라고 말할수 있지 않습니까? 최근 몇년간 각 민족들은 당의 정확한 영도하에서 단결하고 창업하여 사회경제 발전에서도 거대한 성과를 이루었을뿐만아니라 문예 창작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족문화를 발전시키는것은 부유한 강국으로 건설하는데 근본적인 수요이고 또 사회진보를 촉진하며 조화사회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럴뿐만아니라 문화를 추동함으로써 인민들의 자질을 제고하고 민족의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인 도경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혁개방이래 중국을 놓고 말하면 경제발전에 많은 신경을 써왔고 또 비약적으로 많은 성과를 이룩했습니다. 30년간의 발전을 거쳐 현재는 경제대국이라고 말할수도 있는데 여기에 병존해야 할 부분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방금 끝난 17차 당대표대회에서도 이와 관련해 강조하지 않았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회의에 참석하면서 말하고 싶은것은 물론 정부에서 결심을 내렸으니까 중시를 하다고 믿겠지만 우리는 변방소수민족 지역인것 만큼 정부에서 문화 사업에 대해 더 많은 투자를 하고 특히는 우리 변방의 소수민족 문화건설에 대해서 더 많은 투입을 해주었으면 하는 제의를 갖고 왔습니다.

기: 정치 참여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경험을 쌓거나 필요한 지식을 축적한 적은 없는지요?

함: 그런건 없습니다.

기: 전국적으로 평가하면 현재 민족예술은 비약적인 발전시기를 맞이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 내용과 형식은 물론 창작, 공연, 홍보드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운남이나 티베트, 내몽골 등지의 소수민족 예술이 특히 전국적 또는 국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조선족 민족예술의 상황에 대해 살펴본다면?

함: 최근 년간 조선족 민족 예술은 크게 발전을 못했습니다. 특히는 다른 소수민족들과 비할때 90년대까지는 그래도 우리 연변의 예술이 앞자리에 섰거든요. 여러가지 콩클에서 수상도 하고…제가 가무단에 몸담고 있으니까 가무단의 사례를 든다면 90년대 초에 무극 "춘향전"이 문화대상을 수상했고 그리고 오페라 "아리랑"도 좋고 무용서사시 "장백정"도 좋고 "장백정" 여러가지 상을 수상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놓고 말하면 하나의 예술단체가 전국적으로 가장 권위적인 상을 세번씩이나 탄다는것도 많지 않습니다. 그때 말하면 정말 휘황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새 세기에 들어와 90년대보다 발전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발전폭이 별로 크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경제발전과 관계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뒤받침이 없으면 문화건설도 영향을 받는것은 사실입니다. 정부의 투자가 없으면 저희들로서는 어쩔수가 없습니다.

기: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민족예술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면?

함: 이 국면을 돌려세우려면 정부로부터 투입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관련종사자들은 여기에 맞춰 자신의 자질 제고와 기량을 닦아야 합니다. 그뿐만아니라 창작인원들은 새 시기에 맞는 훌륭한 정품들을 창작해 동시에 교사들은 훌륭한 후대들을 양성해 우수한 배우들을 키워내야 하고 또 작품만 있어 공연만 하는것이 아니라 시장을 개척해 세계적인 무대로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우리 민족의 예술을 자랑해야 홍보가 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기: 방금 후대양성에 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요. 후대 양성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

함: 후대양성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재 연변같은 상화에서는 웬만하면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서 예술학부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습니다. 예술학부는 다른 학부보다 학비가 비싸기 때문에 농촌학생들은 학비를 지불할수 없어서 지원을 못하는 학생들도 있는 상황에서 나라적으로 이런 학생들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준다든지 어떤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교사들도 북경이나 다른 우수한 학교들에 가서 많이 배워 좋은 후대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 방금 민족예술의 세계화 진출에 관해서 얘기를 했는데요. 한국이나 혹시 조선과의 교류는 이루어 지고 있습니까? 예술단체의 교류도 좋고 행사 참여도 좋고…

함: 한국 춘향제에는 많이 참가합니다.

기: 그렇다면 앞으로 꼭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함: 저는 이 몸을 무용예술에 투입해 왔고 하니까 배우는 그만 뒀지만 후대양성에 종사하고 있는데요. 저 보다도 더 훌륭한 배우들을 양성하기 싶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그래서 앞으로 중국무대, 나아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하는 후대들을 양성했으면 하는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램입니다.

기: 하시고 싶은 일이 꼭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구요. 다시 한번 바쁘신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함: 감사합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의료기계 틈새시장을 겨냥한 사나이커시안의료기계 문진수사장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선미 기자 = 지난 7일 할빈시 도리구의 커시안(옵毆갛)의료기계사무실에서 300여명이 모인가운데 126명 로인(조선족 1명)들에게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을 가득 차려 조선족 전통습관으로 환갑잔치를 마련해주어 뭇사람들의 칭찬...
  • 2009-11-13
  • 추억의 언덕우에 살아 숨쉬는 옛 씨름왕—당년 평강벌 무적의 힘장사 고 방창직옹 20세기 60년대에 연변에서 씨름왕으로 마도일이 소문났다면 그보다 훨씬 앞선 40년대, 50년대에 벌써 평강벌에 위치한 서성, 팔가자 일대에서 소문난 씨름장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고 방창직옹(100세)이다. 지금도 70여세 되는 로인들...
  • 2009-11-12
  • 중국 유일의 조선족자치현…관광강현 만든다장백조선족자치현 정형일현장을 만나본다정형일 프로필: 1966년10월 장백현에서 출생길림공학원 화공공정학부 졸업길림대학 철학사회학원 연구생 졸업싱가포르남양리공대학 관리경제학 박사학위 획득선후로 장백현규소토공업회사 부공장장, 공청단현위 부서기, 십일도구향 ...
  • 2009-11-12
  • 조선족 기업, 韓中의 다리가 되다 수교 17년 이래 한중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빠르게 발전했다. 특히 지난해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맺은 이래 더욱 폭넓은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최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양국 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피부로 와 닿는다.중국 중앙정부의 적극적 민족정책 아래 중...
  • 2009-11-12
  • 중국의 최대 조선족마을 만든 사람 —심양시 만융촌 당위서기 겸 촌주임 박승택씨 만나본다   (흑룡강신문=하얼빈)'전국문명촌'의 영예를 안은 만융촌은 전통의미의 초가삼간 마을이 아니라 도시의 대형아빠트단지를 방불케 하는 도시화된 현대화마을이다. 촌에는 무려 82개의 기업이 유치되여 있으며 촌소학교에는 ...
  • 2009-11-10
  • 중국조선족사회의 진로... “조선족사회의 진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나의 밀어버릴수 없는 사명” ㅡ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 및 인류학연구소 정신철연구원의 추구   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 및 인류학연구소 연구원이며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생원 교수인 정신철(51)씨는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많은 성...
  • 2009-11-10
  • 20세기 중국조선족문화의 일대산맥연변대학 전임 부교장 고 정판룡교수를 회고한다 ○ 정판룡은 20세기 중국조선족이 낳은 가장 우수한 문화지성인중의 한사람이며 저명한 문학교수,교육가였으며 문학평론가, 산문작가였으며 사회활동가였다. 정판룡 프로필: 1931년 10월 2일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면 항교리에서 출생1949년...
  • 2009-11-10
  • —청도아혁회사 창업편린 청도 하면 사람들은 흔히 청도맥주를 떠올린다. 그만큼 우리와 익숙한 고장이다. 새로운 력사시기에 진입하면서 연해개방도시로서 청도는 우리 민족의 새로운 집거지로 이미 자리를 굳혀가고있다. 중국조선족이 근 20만, 한국인들이 10여만명에 달하여 불완전한 통계에 의해도 우리 겨레가 30...
  • 2009-11-10
  • —청도농업대학 경제관리학원 부원장 리종수교수우리 나라 농업문제를 전문 연구하면서 대학생양성에 일신을 몰입하고있는 청도농업대학 경제관리학원 부원장 리종수교수는 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 우리 민족의 농업문제전문가이다.연변농학원에서 사업하다가 한국 충남대학교와 한국 경북대학교에서 선후로 농...
  • 2009-11-10
  • 신금천사우나 윤금철 회장 "소비문화는 선도해야 한다" 신금천사우나 윤금철 회장 인터뷰 현지인 상대 헬스방, 방갈로 셔틀차량 운영 신 모델 (흑룡강신문=하얼빈) 투자금 300만 위안을 들여 전체적으로 새롭게 인테리어를 하고 최신 한국 설비를 도입한 신금천사우나가 지난 10월 25일부터 이창구 흑룡강로에서...
  • 2009-11-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