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박희춘씨가 신빈현 북사평향 당위서기로 부임했을 때 향산하의 산림훼손상황은 극히 엄중했다. 이 문제해결을 고민하고있을 때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그는 의식적으로 한국의 산림정책을 료해했다. 문제는 소유제에 있었다. 귀국후 그는 한국의 모식과 향의 실정을 결합하여 집체림을 촌민들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집체소유인 산림을 개인소유로 한다는 박희춘씨의 방안을 지지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박희춘씨는 향당위성원들과 일일이 1대 1 담화를 진행하여 끝내 그들을 설복시켜 현위에 개혁방안을 올렸다. 하지만 현위에서는 그의 개혁방안을 묵살하였다.
박희춘씨는 물러서지 않고 직접 무순시림업국의 령도를 찾아 한국의 산림정책을 상세히 소개하고 자신이 작성한 개혁방안을 제시하면서 성공가능성을 극력 피력했다. 그의 개혁방안을 자세히 검토하고난 무순시림업국에서는 무순시위에 회보, 무순시위에서는 정책연구실주임을 북사평향에 파견하여 산림개혁령도소조를 무어 구체적으로 지도하게 하였다. 결과 석달간의 긴장한 사업을 거쳐 무순시에서 첫 “개인소유산림”이 생겨났는데 그해 겨울 산림훼손사건이 한건도 나타나지 않았다. 촌민들 저저마다 “산림보호원”으로 나섰기때문이였다.
이듬해인 1998년, 무순시의 농업주관부시장이 해당일군들을 인솔하여 북사평향을 시찰, 북사평향의 산림개혁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해의 무순시농촌사업회의에 박희춘을 특별초청하여 경험을 소개하게 하였다. 그해 박희춘은 무순시 로력모범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그후 박희춘씨가 고안해낸 “산림개혁방안”은 산림개혁의 모델이 되여 전 무순시적으로 보급이 되였고 전 성 지어는 길림성의 부분 시에서도 현재 실시되고있다.
인터넷료녕신문 박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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