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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규상 - 성공보다 아름다운 도전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3월24일 08시47분    조회:7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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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천우그룹 전규상회장을 찾아

사람의 내외면을 한꺼번에 표현할수 있는 단어가 있다.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스치는 사람들속에서조차 공기처럼 쉽게 발견되는 , 그래서 어찌보면 더욱 느끼기 힘든 "사람의 향기"가 바로 그것이다. 길림천우그룹 전규상회장(57세}한테서 풍겨오는 사람의 향기는 바로 "사람냄새"이다  

바로 이런 상대방의 마음의 온도를 높여주는  "사람냄새"때문에  근 60년에 이르는 천우그룸 (전신 연변건축총공사)은 전규상회장의 선두하게   개혁개방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유기업 개조와 주식제개조 등 하나 또 하나의 변혁과 같은 개혁을 거치면서 수천명에 다하는 직원들을 하나로 묶어놓을 수가 있었고 몇십년간의 단일한 시공업체로부터 현재 건축업, 부동산,국제무역,  상업,공장을  비롯하여 산하에 17개 회사를 가지고 년매출액 6억을 거뜬히 넘기고있는 주내 일류회사로 발돋음할수 있었던것이다.


변화, 그리고 혁신의 시작은 자신감

건축업에 뛰여든지가 어제같은데 벌써 근 38년이나 흘렀다고 이야기하는 전회장의 얼굴에는 따스함이 배여있는 아름다운 미소가 흘러넘친다.

20살이라는 앳된 나이에 지칠줄 모르는 정열과 열정으로 건설현장에 뛰여들면서  말단직원으로 부터 시작하여 부대장, 대장, 안장공사경리 , 건축공사총경리로 한발자국 한발자국 나아가면서 전규상은 힘들기는 하였지만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에서 더욱 많은 기회를 주고 꿈을 가지고 부단히 도전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성공의 희열을 만낄할수 있다는 도리를 깨우쳤다고 이야기한다.

1993년  40세 나이에 주당위로부터 연변건축공사 총경리로 임명받은 전규상앞에는 41년라는 발전력사와 더불어 4500명의 직원과 1000여명의 리퇴직일군들의 취업, 의료보험, 로임 등 문제들을 해결을 기다리고있었고 설비가 낡고 관리가 혼란한데다 기업경영적자로 2000만원이라는 빚까지 걸머지고 있어  기업은 곤경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자기만을 쳐다보고있는 수천명의 직원들을 돌아보면서 전규상은 유일한 출로 는 개혁이고 "기업 형상"을 다시 수립하고 기업스스로의 실력과 경쟁력으로 시장에서의 위치를 확보할것이라고 다짐하였다.  전반개혁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하여 그는 광범하게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회사의 지도층으로 부터 대담히 간소화하고 회사의 중요한부서는  공개초빙으로 등용하며 효익로임제를 실시하는 등 일련의 개혁을 실행하였다. 개혁을 통하여 회사의 지도부성원은 원래의 17명에서 문화정도가 높고 경영에 뛰여난 8명의 재능있는 간부로 간소화 되였고 회사내기관간부도 125명으로부터 56명으로 간소화하고 간부사업책임제를 기용하였다.

개혁과정에서 일부 사람들은 전규상을 찾아와 책상을 두드리며 언성을 높이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지만 이럴때마다 회사외 직원들을 내집, 내식구로 생각하는  "사람냄새"가 묻어나는  그의 경영원칙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전체 직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을수있었다.

일련의 개혁을 거쳐 기업의 각항운행기제는 틀을 잡아갔고 따라서 경제효익도 잇따르면서 곤경에서 허덕이던 국유기업의 모자를 벗을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그는   1999년에 전주  동일업종에서 선참으로 주식제개조를 시작하여 길림천우그룹으로  탈바꿈하였고 2003년에는 제2차개조를 거쳐 완전히 현대민영기업의 발전궤도에들어서면서 쾌속성장의 선두에 달리게 되였다.  

지칠줄 모르는 자신감으로 부단한 개혁과 혁신을 주도할수 있었던 그는 회사의 지도부와 함께 도약을 기점으로 하는 발전전략을 짜고 내부의자원을 잘 활용하여 2004년에 총투자가 2.7억원에 달하고 건축면적이 15만평방메터에 달하는 천우생태가원을 개발하여 2008년까지 1583세대가 입주함으로서 선진적이고 아름다운 주거문화를 창조하는 앞장에 섰다.

"천우는 믿을만 하다"

건축업에 38년간 몸을 담그고있는 전규상에서 있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천우는 믿을만 하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그는 거의 매일  같은 업종으로부터 또는 고객들로 부터 지인들로 부터  이 말을 들을수 있어서 행복하고 즐겁다고 한다.

건축업에서 신뢰경영과 진실은 회사의 생명과 같은것이다. 이는 전규상회장이 수십년간 건축업에 몸담궈오면서 지켜온 경영철학이고  그의 리더십이기도 하다. 이런 경영철학때문에 천우그룹의 건설시공현장은  규범화, 표준화하고 문명하고 질서있게 정리돼있었고 추호의 거짓과 불량품도 허용하지 않는것이 바로  천우사람들의 형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하기에  근 10여년동안 천우그룹은 주, 성 전국으로 부터 시종여일하게 "고객만족시공기업"이라는 영예를 안아올수 있게 되였다.

이몇년간 경기불황으로 부동사업계가 다소 불활을 겪고있을때에도 천우그룹은 믿음과 신용으로 호황을 누리고있다. "천우가 지은 집은 믿을만 하다" "천우가 시공하면 부가가치가 올라간다" 는 말들은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시공을 맡기려 했고 또 고객들이 천우가 진 집을 선호하는 바람에 천우그룹은 지난해에만도 전 주 건설시공의 4분의 1을 완수하는 실적을 올렸다.


"독백을 나누어주는" 회장

전규상은 길림천우그룹의 회장이고 그의 수하에는 1000여명이 넘는 로동자들과 몇백명에 달하는 사무일군들이 있지만 그는 종래로 그들을 공용일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냄새"가 나는 그의 경영원칙에 따르면 회사직원들은 내집식구, 내 가족과 같은 것이고 직원을 사랑해야 회사가 잘된다는 것은 전회장이 언제나 외우는 말이기도 하다.

천우그룹회사에 들어서면 제일 놀라운것은 사무실 대부분이 유리로 벽을 하고있어 서로의 모습을 쉽게 볼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전회장의 사무실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어 직원들이 수시로 들락날락 할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전 하냥 회장실의 문을 열어놓습니다. 단순히 문을 열어놓는 일이긴 하지만 수시로 직원들이 쉽게 드나들수 있어 젊은이들의 생각과 사고를 많이 접할수 있고 직원들과도 따뜻한 감정을 나눌수 있습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아래사람들과 벽을 두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는 처음 접하는 사람들한테도 진심을 내비친다. 그런면에서 전회장은 "독백을 나누어주는 사람"이라도 무리가 아닌듯 싶다.

필자가 회장실밖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있는 직원들에게서도 특별한 생동감을 느낄수 있었던것은 바로 전회장의 편안하고 사람냄새가 나는 경영방식때문이였던것이다.

직원을 우선 생각하고 사랑하는 경영원칙으로 전회장은 회사에 공헌이 있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포상을 해주고 있으며 공정기술일군과 관리일군들에게는 해외고찰을 비롯한  다양한  탐구와 학습의   기회를 마련해주고있다. 하기에 천우그룹의 직원들은 하냥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천우에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루고저 아낌없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를 사랑한다.

지난해 성정부로 부터 로력모범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전규상회장은 근 10여년간 성우수기업가 칭호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예를 지녔고 사회각계로 부터 수많은 직무도 겸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규상회장은  연변기업가협회 회장이라는 직무는 하냥 가슴에 깊이 새기고 조선족기업인으로서 뭔가 우리 민족을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 연변기업가협회에는 100여명의 조선족기업인들이 있는데  올해 6월 연변기업가협회 초청으로  전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제4차년도회를 개최하게 된다고 한다. 이번 회의에는 전국각지로 부터 근 350여명에 달하는 우수한 조선족기업가들이 연길에 오게되는데 이 기회에 전회장은 많은 조선족기업인들에게   연변의 선도구건설이라는 이 력사적인 기회를 잘 설명하여 연변을 많이 홍보하고 기업인들이 연변에 와서 투자하도록 할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활동을 통하여 조선족 기업인들이 민족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경험과 정보를 잘 교류하고 힘을 합쳐 더욱 큰 민족의 발전을 도모할것이라고 한다.

또 연변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이 인재등용이였다고 이야기 하는 전회장은 민족기업인으로서 민족의 교육과 민족의  인재양성에  기여하는것은 미룰수 없은 의무라고 하면서 연변대학에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천우장학금을 마련하고 또 연변의 민족문화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추진해갈것이라고 한다.

근 38년간 건설업체에 몸을 담궈오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전규상회장은 요즘도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눈코뜰새없이 보내고 있다. 할일도 너무 많고 할수 있는 일도 너무 많아 그래서 더욱 즐겁게 도전한다는 전회장을 보면서  성공보다 아름다운 도전이 무엇인지  실감한다.

연변일보    장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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