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는 조선족들의 '큰집'
정년퇴직후 김수길씨는 민족사회 격변기의 진통으로 민족간부가 날로 위축되여 민족권익을 위한 사업에 많은 공백과 부족점이 있다는것을 실감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2002년 8월 18일 사단법인인 연수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www.cheonji.com.cn)를 설립하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연수현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는 민간단체로서 산하에 법률자문부, 조선족직업소개소, 복지문화부 등 부서를 설치하여 민족권익을 대변하고 수호하는 사절역할을 하고 있다.
법률자문에서 법원과 손잡고 유능한 변호사들을 초빙하여 그들을 통해 조선족들에게 각종 법률서비스를 제공했다. 현재 토지에 관한 송사가 많아 나라의 토지법에 위반되는 사건들을 단돈 10원만 받고 법률자문을 제공하여 소송에서 이기도록 도와 조선족의많은 경제손실을 만회했다.
흑룡강성로동사회보장청의 허가를 받아 2006년에 설립된 조선족직업소개소는 심양, 대련, 단동, 할빈, 목단강, 통화 등 10여개 해외로무송출자격을 가진 회사와 위탁협력관계를 맺고 현재까지 한국, 일본, 리베리아, 호주 등 국가에 100여명의 로무일군을 송출했다.
조선족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협회의 취지에 따라 복지기금을 모아 2003년부터 극빈생 4명과 70호 극빈호 및 기타 장애자들에게 생활보조비를 지불했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조선족사회에 따뜻한 손길을 뻗쳐 민족의 정체성과 동질성 및 동포애를 구현했다.
전성 첫 조선족민족사를 편찬
연수현은 조선족들이 비교적 오래전부터 거주한 곳으로써 백년이 넘는다.하지만 력사에 대한 중시가 부족하고 극좌적인 년대에 력사를 바르게 볼수 없는 시대적제한과 사료의 부족 등등 원인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된 자민족의 력사를 문자로 정리해놓지 못한 력사허점이 있었다.
더우기 당시 정황을 잘 아는 많은 로세대들이 점차 사라짐으로 하여 시간을 미루다가는 지금까지의 력사를 영원히 만구할수 없는 위기감을 갖고 김수길회장은 민족사편찬이란 거대한 공정에 나섰다.
엄청난 재력, 인력, 물력이 소요되는 이 공정에 김수길회장이 성과 현 관계부문을 찾아다니며 정부자금을 쟁취하고 연수출신의 민족기업가들을 설득하여 필요한 경비를 마련한뒤 현민족종교사무국과 손잡고 전문 편찬위원회를 내와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며 선후로 3년간의 시간을 들여 2005년 4월에 60만자에 달하는 '연수현조선족백년사'를 정식 출판했다.
흑룡강성내에서 조선족의 지방력사를 처음 기재한 조선족 '연수현조선족백년사'는 자기문자로 된 자기민족의 력사가 없던 공백을 메우고 국내외 각계 주목을 받았으며 기타 현시들에 민족의 지방력사를 정리하는 선구역할을 했다.
민족사업을 각별히 중시하는 '전통'
연수에는 한가지 우량한 '전통'이 있다. 바로 현 주요책임자들이 민족사업을 각별히 중시하고 민족사업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우선적으로 나서 해결해주는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것이다. 연수에는 렬사가 258명 있는데 그가운데 절반이 넘는 146명이 조선족렬사이다. 공화국창립에 막대한 공훈을 세운 선렬들의 발자취를 따라 김수길회장을 비롯한 민족간부들이 정부각계에 널리 포진하며 현지 한족들과의 융합에 힘써 정부의 혜택을 계속 입고 있다.
한가지 일화로 조선족이 밀집한 거의 전부 지역에서 한국위성방송을 합법적으로 시청할수 없지만 연수현만은 례외이다. 조선족들이 시름놓고 한국위성방송을 시청할수 있도록 김수길회장은 현 주요책임자들을 찾아 설득하고 과거 공무원시절 친분이 두텁던 TV방송관리국 국장을 통해 일정한 관리비를 내고 조선족들이 합법적으로 한국위성방송을 시청할수 있게끔 하였다. 위성방송 1대당 1년에 100원인 관리비는 50원이 연수현조선족로인협회에 납부되여 로인협회 자금마련에도 큰 역할을 했다.
민족사업에는 사명감이 필요하다. 이런 사명감이 있기때문에 민족사업에는 정년 퇴직이 없는것이다. 김수길회장은 바로 이런 사명감을 안고 고희에도 불구하고 민족사업에서 영원히 푸르청청한 소나무처럼 오늘도 시원한 솔향기를 곳곳에 전달하고 있다.
jinhu20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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